벌어지는 한·미 금리 차 …올리자니 1500조 가계 부채 ‘발목’
입력 2018-10-11 10:12:23
수정 2018-10-11 10:12:23
[커버스토리 = '4대 핵심지표' 긴급 점검 : ②금리]
-정부도 부동산 안정 위해 인상 압박, 투자·고용 지표 악화가 부담
[한경비즈니스=정채희 기자] “매파(금리 인상 지지)냐, 비둘기파(금리 인하 지지)냐.”
정책금리를 결정하는 한국은행의 고민이 깊어지고 있다. 미국의 금리 인상 기조로 한·미 간 금리 차가 계속 확대되고 있다. 정부와 여당은 부동산 가격을 잡기 위한 기준금리 인상론에 불을 지피고 있다.
이에 따라 하반기 금리 인상 가능성이 점점 더 힘을 받고 있다. 전문가들은 11월 금리 인상 가능성에 무게를 두고 있다.
하지만 상황이 만만치만은 않다. 기준금리를 올리자니 미국과 달리 우리 경제지표가 낙관적이지 않다. 1500조원대에 육박하는 가계 부채 ‘뇌관’은 언제 터질지 모르는 시한폭탄으로 자리 잡았다. 하반기 한국 경제를 뒤흔들 금리 인상 시나리오를 조명했다.
◆한·미 역전 금리 차 1% 우려
“금융 불균형이 누증되고 있다.”
이주열 한국은행 총재가 또다시 ‘금융 불균형’이란 키워드를 내놓으며 기준금리 인상 가능성을 암시했다. 이 총재는 10월 4일 서울 중구 한은 본부에서 열린 경제 동향 간담회 모두 발언에서 “(지난 10년간) 소득 증가율을 웃도는 가계 부채 증가세가 지속되면서 금융 불균형이 누증되고 있다”며 “금융 불균형을 점진적으로 해소하는 등 거시경제를 안정적으로 운영해야 한다”고 말했다.
금융 불균형은 장기간에 걸친 저금리 기조에 따른 가계 부채 증가와 부동산 시장으로의 과도한 자금 쏠림 등을 의미한다. 특히 금통위가 매파로 기울 때 자주 거론되는 용어다. 금융권에서는 이 총재가 금융 불균형의 점진적 해소를 언급했다는 점에서 기준금리 인상 가능성에 보다 무게를 둔 게 아니냐는 관측을 내놓고 있다.
이 총재가 금융 불균형이란 키워드를 내세운 것은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다만 그 발언 수위가 점차 강해지고 있다.
앞서 이 총재는 미국 중앙은행(Fed)이 9월 27일 기준금리를 기존 1.75~2.0%에서 2.0~2.25%로 0.25%포인트 인상했을 때 “금리 결정 여건이 생각보다 어려워졌다”며 “앞으로 금리 결정에는 거시 변수가 제일 중요하고 저금리가 오래갔을 때 금융 불균형이 어느 정도 쌓일지 종합적으로 고려하면서 최적의 결정을 할 것”이라고 말했다.
한은이 최근 금융 불균형 완화를 지속적으로 꺼내든 것은 역전된 한·미 간 금리 차이가 점점 확대되는 데 그 이유가 있다.
Fed는 2015년 말 양적 완화(QE) 정책 종료 후 기준금리 인상을 지속해 올해만 세 차례 기준금리를 인상했다. 9월 기준 미국의 기준금리는 2.0~2.25%로, 미국의 기준금리가 2%를 넘어선 것은 글로벌 금융 위기 직후인 2008년 10월 이후 10년 만의 일이다.
이러한 기준금리 인상의 명분은 미국의 고용시장과 인플레이션 등 경제지표의 호조다. 미국 2분기 국내총생산(GDP) 성장률은 2014년 3분기 후 가장 높은 4.1%를 기록했고 실업률은 지난 7월 3.9%로 금융 위기 이후 최저치를 경신했다.
추가 금리 인상도 이어질 전망이다. 9월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 회의 이후 공개된 금리 점도표는 연내 1차례의 추가 금리 인상 가능성이 매우 높다는 점을 확인해 줬다. 사실상 올해에만 네 차례의 기준금리 인상을 암시하고 있는 것이다. 아직 이른 감은 있지만 내년에도 두세 차례 기준금리를 인상할 가능성을 예고하고 있다. 2020년 Fed 위원들의 기준금리 중간값 전망치는 무려 3.4%에 달한다.
그 사이 한국은 동결을 거듭하면서 한·미 간 금리 차가 2017년 역전됐다. 최근에는 그 차이가 더 벌어지고 있다. 한은은 지난해 11월 6년 5개월 만에 기준금리를 1.50%로 올린 이후 10개월째 동결을 유지 중이다. 현재 미국과의 정책금리 차는 0.75%포인트다.
한은이 10월과 11월 계속 동결을 고수한다면 한·미 간 금리 차는 연말에 1%포인트까지 커질 가능성이 확실시된다. Fed의 기준금리 결정이 ‘방향’이 아닌 ‘속도’의 문제로 들어선 상황에서 한은이 보조를 맞출 수밖에 없게 됐다는 분석이 나오는 대목이다.
여기에 최근 정치권의 금리 인상 언급들도 기준금리 인상안에 힘을 싣고 있다. 앞서 이낙연 국무총리는 9월 13일 열린 국회 대정부 질문에서 금리 인상 여부를 묻는 질문에 “(금리 인상을) 좀 더 심각히 생각할 때가 충분히 됐다는데 동의한다”며 금리 인상 카드에 무게를 실었다.
김현미 국토교통부 장관 또한 10월 2일 국회 경제 분야 대정부 질문에서 “지난 정부 이후 지속된 저금리에 전혀 변화가 있지 않은 것이 유동성 과잉의 근본적 원인”이라며 “금리 문제에 대한 전향적인 고민이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이 총리와 김 장관의 연이은 발언은 최근 널뛰는 주택가격의 안정을 위해 금리 인상 카드를 꺼내야 한다는 지적이었다.
◆불황 지표에 근심 늘어난 비둘기파
한·미 금리 차 확대에 이어 부동산발 금리 인상 논의까지 더해지면서 기준금리 인상 압박이 커지고 있지만 한은은 쉽게 움직이기 힘들다. 현재 국내 경기 하락이 가시화되고 고용 상황도 나빠 금리를 올리면 안 된다는 목소리도 크기 때문이다.
이론상 기준금리 인상은 세계경제와 한국 경제가 호조를 보이면서 개인 소비와 기업 투자가 늘고 물가 상승 우려가 있을 때 이뤄진다. 개인의 소비와 기업의 투자가 과도하게 늘어나는 것을 방지하고 물가를 안정시키는 역할을 하기 위해서다.
반면 소비나 투자가 너무 위축되면 기준금리를 내려 경기가 회복되도록 유도한다. 이에 따라 저성장이 지속된 지난 수년간 ‘저금리’ 기조가 유지된 것이다.
따라서 실제 인상은 여전히 쉽지 않다는 의견이 나온다. 미국발 무역 분쟁 등 대외 불확실성 요인들이 지속되는 가운데 국내 경기 모멘텀 둔화에 대한 우려가 확대되고 있기 때문이다.
이미선 하나금융투자 애널리스트는 “10월 수정 전망에서는 올해 성장률을 2.9%에서 2.7~2.8%로 낮추고 물가상승률도 공공요금 인상 지연으로 하향될 전망”이라며 “10월 금융통화위원회를 6일 앞두고 발표될 9월 취업자 수는 전년 대비 마이너스가 나올 가능성이 상당해 부담이 적지 않은 상황”이라고 지적했다.
백윤민 교보증권 애널리스트 또한 “연말로 갈수록 대내외 불확실성이 확대될 수 있다는 점에서 3분기 중 금리 인상이 단행되지 못하면 사실상 연내 금리 인상이 어려울 것”이라며 “한은의 금리 인상 명분을 충족시켜 줄 만한 변화가 나타나기는 쉽지 않다고 판단한다”고 말했다.
실제 공개된 8월 한은 금통위 의사록을 보면 당시 비둘기파의 의견을 보인 한 금통위원은 “2분기까지 잠재성장률 내외 성장률을 유지해 왔지만 하반기 이후 경기 하방 위험이 확대될 것”이라며 기준금리 인상을 반대했다.
매파와 비둘기파 사이의 논란이 지속되고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수의 국내외 경제 전문가들은 하반기 금리 인상에 높은 가능성을 두고 있다. 한은이 연내에 기준금리를 한 차례, 특히 11월에 인상할 것이란 전망이다.
블룸버그가 22개 투자은행(IB)을 대상으로 설문 조사한 결과 올해 4분기 말 기준금리 전망 중간값은 1.75%로 집계됐다. 이후 2019년 3분기에 2.00%, 2020년 2분기에 2.25%로 지속 상승을 예고했다.
권영선 노무라증권 이코노미스트는 “10월 한은 금통위에서 기준금리 인상 신호를 보내고 11월 금통위에서 기준금리를 0.25%포인트 올릴 것으로 예상된다”며 올해 11월 금리 인상 가능성이 60%에 달한다고 밝혔다. 내년으로 미뤄질 가능성은 10% 수준으로 ‘하반기’ 인상론에 무게를 실었다.
한은 역시 금리 인상의 깜박이를 켜둔 상태다. 이 총재의 최근 ‘금융 불균형 해소’ 발언 외에도 8월 금통위 의사록에서 매파적 성향이 다소 강해졌다.
수출과 소비 증가세 둔화, 미·중 무역 전쟁 등 대외 불확실성에도 불구하고 7월까지 중립적 시각을 취해 온 한 금융위원이 8월 ‘금융 불균형’ 문제에 상당한 시간을 할애하면서 금통위의 성향이 매파 스탠스로 살짝 기울어진 상태다.
8월 현재 스코어는 매파(2인), 다소 매파적(1인), 중립(2인), 비둘기파(1인)다. 전문가들은 아직 9월 금통위 의사록이 공개되지 않았지만 금리 인상론이 우세할 것으로 예측하고 있다.
10월 5일 통계청이 발표한 9월 소비자물가지수도 금리 인상 명분에 힘을 실어줄 것으로 보인다. 9월 소비자물가수는 전년 동월 대비 1.9% 상승, 1년 만에 최대 폭으로 뛰면서 한은이 금리 인상 시 다소 부담을 덜었다는 평가가 나오고 있다.
이관석 신한은행 PWM분당중앙센터 센터장은 “10월까지 인상 신호를 주고 11월에 인상하는 방안이 가장 유력하다”며 “단 물가와 GDP 성장률 등 경제지표가 받쳐주지 않으면 금리를 올릴 수 없기 때문에 급격하게 인상 카드를 내세우기는 쉽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1500조 가계 부채가 가장 큰 부담
기준금리 인상 시 가장 큰 난제는 가계 부채다. 현재 1.5%의 기준금리를 유지하며 초저금리 시대를 걷고 있지만 올 하반기, 더 나아가 중·장기적으로는 기준금리 인상 움직임이 가시화되면서 천문학적인 숫자를 기록한 ‘가계 부채’의 뇌관이 터지기 일보 직전이다.
한은 통계에 따르면 올해 2분기 말 가계 신용은 1493조1555억원이 넘었다. 가계 신용은 은행·대부사업자·보험사 등의 가계 대출 외에 카드사의 판매 신용까지 포함한 가계 빚 지표다. 국민 1인당 진 빚이 2892만원에 달하는 셈이다. 1인당 빚이 3000만원에 육박하는 상황에서 시장금리가 오르면 이자 부담이 더 커질 수밖에 없다.
눈덩이처럼 불어난 가계 부채에 직격탄을 맞는 것은 원리금 상환이 부담스러운 과다 채무자들이다. 하반기 추가 금리 인상 가능성이 높아지면서 원리금 상환의 부담이 더욱 높아질 수밖에 없다. 금융 전문가들은 기준금리 인상 전인 지금에라도 가계 대출을 줄여야 한다고 강조한다.
이 센터장은 “그간 기준금리를 동결했지만 (시장금리보다 민감하게 반응하는) 주택 담보대출 금리는 이미 기준금리가 1~2차례 오른 것을 반영한 만큼 올라 있다”며 “기준금리 인상 시 레버리지를 과도하게 일으켰던 부동산 투자자들이 상당한 타격을 입을 수 있다”고 말했다.
한은에 따르면 시중은행의 주택 담보대출(이하 주담대) 금리는 지난해 11월 연 3.02%에서 지난 8월 연 3.21%로 매월 꾸준히 높아지고 있다. Fed의 기준금리 인상이 시장금리를 자극하면서 일부 시중은행의 신규 주담대 금리는 최고 5%에 육박하는 사례도 나타났다.
대출금리 상승 압박이 커지면서 저금리 시기 상대적으로 금리가 낮은 변동금리 주담대를 선택한 대출자들이 고정금리 주담대로 발길을 돌리는 경우도 늘고 있다. 이 센터장은 “금리 상승기에 대출을 받아야 할 때 고정금리가 유리하다”며 “고정금리와 변동금리 차이가 50bp(1bp=0.01%포인트) 내외라면 고정금리를 선택하는 게 우선적으로 해야 할 일”이라고 조언했다.
기업 역시 문제다. 특히 중소기업의 자금 압박이 커질 전망이다. 정귀일 국제무역연구원 연구위원은 “대기업에 비해 중소기업의 대출금리가 0.55%포인트(6월 기준) 높아 중소기업에 대한 자금 압박이 더 클 것”이라며 “수출 기업들은 향후 시설 및 운영자금 운영 등에서 발생할 수 있는 어려움에 대비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하지만 수출에 미치는 영향은 제한적일 전망이다. 정 연구위원은 “Fed가 2015년부터 시장에 충분한 신호를 보내며 점진적으로 금리를 인상했기 때문에 미국의 금리 인상이 한국 수출에 미칠 영향은 제한적일 것”이라고 말했다.
다만 그는 “외국인 자금이 유출되면 달러 강세로 한국의 수출 경쟁력에 일부 긍정적인 반사이익을 줄 수 있지만 브라질·터키·남아프리카공화국·아르헨티나 등 신흥국 경기 침체가 한국의 수출에 미치는 부정적 영향이 더 클 수도 있다”고 덧붙였다.
◆돋보기 "기준금리는 어떻게 결정되나"
한국은행이 결정하는 정책금리를 ‘기준금리’라고 하는데 한은이 은행과 자금을 거래할 때 적용하는 금리다. 기준금리가 바뀌면 은행이 다른 은행과 거래할 때 적용되는 금리가 달라지고 개인이 저축할 때나 기업이 돈을 빌릴 때의 금리도 변한다. 기준금리의 변화가 개인 저축과 기업 대출에 변화를 가져오고 이는 다시 소비와 투자, 더 나아가 경기와 물가에도 영향을 미치게 되는 것이다.
기준금리를 결정하는 곳은 한은 최고의사결정기구인 금융통화위원회다. 금융통화위원회는 의장인 한은 총재와 부총재 그리고 다른 5인의 위원 총 7명으로 구성된다.
5인의 위원은 금융·경제 등에 관해 풍부한 경험이나 해박한 지식을 가진 인사들로 각각 기획재정부 장관, 한국은행 총재, 금융위원회 위원장, 대한상공회의소 회장, 전국은행연합회 회장 등의 추천을 받아 대통령이 임명한다.
총재의 임기는 4년이고 부총재는 3년으로 각각 1차에 한해 연임할 수 있고 나머지 금통위원의 임기는 4년으로 연임할 수 있다. 현재 이주열 의장(한은 총재), 윤면식 위원(부총재), 이일형 위원, 조동철 위원, 고승범 위원, 신인석 위원, 임지원 위원으로 구성돼 있다.
금융통화위원들은 연 8회 7인의 금통위원 중 5인 이상의 출석과 출석 위원 과반수의 찬성으로 기준금리를 결정한다. 이 과정에서 세계경제나 한국 경기·물가·금융시장 상황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하게 된다.
예컨대 한국과 세계경제가 지속적으로 좋아지면서 개인 소비나 기업 투자가 과도하게 늘어 물가가 크게 상승할 우려가 있으면 금통위는 기준금리를 올려 개인의 소비와 기업의 투자가 과도하게 늘어나는 것을 방지하고 물가를 안정시키는 역할을 한다.
반면 소비나 투자가 너무 위축됐다면 기준금리를 내려 경기가 회복되도록 유도한다. 또 세계적인 대형 은행의 부도나 주요국의 재정 위기와 같이 큰 사건이 발생하면 그 영향으로 국내에서도 개인이나 기업이 은행으로부터 돈을 빌리기 어려워지는데 이때도 금통위는 기준금리를 낮춰 경제 난관을 해결하려고 한다.
정채희(poof34@hankyung.com)
[본 기사는 한경비즈니스 제 1193호(2018.10.08 ~ 2018.10.14) 기사입니다.]
-정부도 부동산 안정 위해 인상 압박, 투자·고용 지표 악화가 부담
[한경비즈니스=정채희 기자] “매파(금리 인상 지지)냐, 비둘기파(금리 인하 지지)냐.”
정책금리를 결정하는 한국은행의 고민이 깊어지고 있다. 미국의 금리 인상 기조로 한·미 간 금리 차가 계속 확대되고 있다. 정부와 여당은 부동산 가격을 잡기 위한 기준금리 인상론에 불을 지피고 있다.
이에 따라 하반기 금리 인상 가능성이 점점 더 힘을 받고 있다. 전문가들은 11월 금리 인상 가능성에 무게를 두고 있다.
하지만 상황이 만만치만은 않다. 기준금리를 올리자니 미국과 달리 우리 경제지표가 낙관적이지 않다. 1500조원대에 육박하는 가계 부채 ‘뇌관’은 언제 터질지 모르는 시한폭탄으로 자리 잡았다. 하반기 한국 경제를 뒤흔들 금리 인상 시나리오를 조명했다.
◆한·미 역전 금리 차 1% 우려
“금융 불균형이 누증되고 있다.”
이주열 한국은행 총재가 또다시 ‘금융 불균형’이란 키워드를 내놓으며 기준금리 인상 가능성을 암시했다. 이 총재는 10월 4일 서울 중구 한은 본부에서 열린 경제 동향 간담회 모두 발언에서 “(지난 10년간) 소득 증가율을 웃도는 가계 부채 증가세가 지속되면서 금융 불균형이 누증되고 있다”며 “금융 불균형을 점진적으로 해소하는 등 거시경제를 안정적으로 운영해야 한다”고 말했다.
금융 불균형은 장기간에 걸친 저금리 기조에 따른 가계 부채 증가와 부동산 시장으로의 과도한 자금 쏠림 등을 의미한다. 특히 금통위가 매파로 기울 때 자주 거론되는 용어다. 금융권에서는 이 총재가 금융 불균형의 점진적 해소를 언급했다는 점에서 기준금리 인상 가능성에 보다 무게를 둔 게 아니냐는 관측을 내놓고 있다.
이 총재가 금융 불균형이란 키워드를 내세운 것은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다만 그 발언 수위가 점차 강해지고 있다.
앞서 이 총재는 미국 중앙은행(Fed)이 9월 27일 기준금리를 기존 1.75~2.0%에서 2.0~2.25%로 0.25%포인트 인상했을 때 “금리 결정 여건이 생각보다 어려워졌다”며 “앞으로 금리 결정에는 거시 변수가 제일 중요하고 저금리가 오래갔을 때 금융 불균형이 어느 정도 쌓일지 종합적으로 고려하면서 최적의 결정을 할 것”이라고 말했다.
한은이 최근 금융 불균형 완화를 지속적으로 꺼내든 것은 역전된 한·미 간 금리 차이가 점점 확대되는 데 그 이유가 있다.
Fed는 2015년 말 양적 완화(QE) 정책 종료 후 기준금리 인상을 지속해 올해만 세 차례 기준금리를 인상했다. 9월 기준 미국의 기준금리는 2.0~2.25%로, 미국의 기준금리가 2%를 넘어선 것은 글로벌 금융 위기 직후인 2008년 10월 이후 10년 만의 일이다.
이러한 기준금리 인상의 명분은 미국의 고용시장과 인플레이션 등 경제지표의 호조다. 미국 2분기 국내총생산(GDP) 성장률은 2014년 3분기 후 가장 높은 4.1%를 기록했고 실업률은 지난 7월 3.9%로 금융 위기 이후 최저치를 경신했다.
추가 금리 인상도 이어질 전망이다. 9월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 회의 이후 공개된 금리 점도표는 연내 1차례의 추가 금리 인상 가능성이 매우 높다는 점을 확인해 줬다. 사실상 올해에만 네 차례의 기준금리 인상을 암시하고 있는 것이다. 아직 이른 감은 있지만 내년에도 두세 차례 기준금리를 인상할 가능성을 예고하고 있다. 2020년 Fed 위원들의 기준금리 중간값 전망치는 무려 3.4%에 달한다.
그 사이 한국은 동결을 거듭하면서 한·미 간 금리 차가 2017년 역전됐다. 최근에는 그 차이가 더 벌어지고 있다. 한은은 지난해 11월 6년 5개월 만에 기준금리를 1.50%로 올린 이후 10개월째 동결을 유지 중이다. 현재 미국과의 정책금리 차는 0.75%포인트다.
한은이 10월과 11월 계속 동결을 고수한다면 한·미 간 금리 차는 연말에 1%포인트까지 커질 가능성이 확실시된다. Fed의 기준금리 결정이 ‘방향’이 아닌 ‘속도’의 문제로 들어선 상황에서 한은이 보조를 맞출 수밖에 없게 됐다는 분석이 나오는 대목이다.
여기에 최근 정치권의 금리 인상 언급들도 기준금리 인상안에 힘을 싣고 있다. 앞서 이낙연 국무총리는 9월 13일 열린 국회 대정부 질문에서 금리 인상 여부를 묻는 질문에 “(금리 인상을) 좀 더 심각히 생각할 때가 충분히 됐다는데 동의한다”며 금리 인상 카드에 무게를 실었다.
김현미 국토교통부 장관 또한 10월 2일 국회 경제 분야 대정부 질문에서 “지난 정부 이후 지속된 저금리에 전혀 변화가 있지 않은 것이 유동성 과잉의 근본적 원인”이라며 “금리 문제에 대한 전향적인 고민이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이 총리와 김 장관의 연이은 발언은 최근 널뛰는 주택가격의 안정을 위해 금리 인상 카드를 꺼내야 한다는 지적이었다.
◆불황 지표에 근심 늘어난 비둘기파
한·미 금리 차 확대에 이어 부동산발 금리 인상 논의까지 더해지면서 기준금리 인상 압박이 커지고 있지만 한은은 쉽게 움직이기 힘들다. 현재 국내 경기 하락이 가시화되고 고용 상황도 나빠 금리를 올리면 안 된다는 목소리도 크기 때문이다.
이론상 기준금리 인상은 세계경제와 한국 경제가 호조를 보이면서 개인 소비와 기업 투자가 늘고 물가 상승 우려가 있을 때 이뤄진다. 개인의 소비와 기업의 투자가 과도하게 늘어나는 것을 방지하고 물가를 안정시키는 역할을 하기 위해서다.
반면 소비나 투자가 너무 위축되면 기준금리를 내려 경기가 회복되도록 유도한다. 이에 따라 저성장이 지속된 지난 수년간 ‘저금리’ 기조가 유지된 것이다.
따라서 실제 인상은 여전히 쉽지 않다는 의견이 나온다. 미국발 무역 분쟁 등 대외 불확실성 요인들이 지속되는 가운데 국내 경기 모멘텀 둔화에 대한 우려가 확대되고 있기 때문이다.
이미선 하나금융투자 애널리스트는 “10월 수정 전망에서는 올해 성장률을 2.9%에서 2.7~2.8%로 낮추고 물가상승률도 공공요금 인상 지연으로 하향될 전망”이라며 “10월 금융통화위원회를 6일 앞두고 발표될 9월 취업자 수는 전년 대비 마이너스가 나올 가능성이 상당해 부담이 적지 않은 상황”이라고 지적했다.
백윤민 교보증권 애널리스트 또한 “연말로 갈수록 대내외 불확실성이 확대될 수 있다는 점에서 3분기 중 금리 인상이 단행되지 못하면 사실상 연내 금리 인상이 어려울 것”이라며 “한은의 금리 인상 명분을 충족시켜 줄 만한 변화가 나타나기는 쉽지 않다고 판단한다”고 말했다.
실제 공개된 8월 한은 금통위 의사록을 보면 당시 비둘기파의 의견을 보인 한 금통위원은 “2분기까지 잠재성장률 내외 성장률을 유지해 왔지만 하반기 이후 경기 하방 위험이 확대될 것”이라며 기준금리 인상을 반대했다.
매파와 비둘기파 사이의 논란이 지속되고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수의 국내외 경제 전문가들은 하반기 금리 인상에 높은 가능성을 두고 있다. 한은이 연내에 기준금리를 한 차례, 특히 11월에 인상할 것이란 전망이다.
블룸버그가 22개 투자은행(IB)을 대상으로 설문 조사한 결과 올해 4분기 말 기준금리 전망 중간값은 1.75%로 집계됐다. 이후 2019년 3분기에 2.00%, 2020년 2분기에 2.25%로 지속 상승을 예고했다.
권영선 노무라증권 이코노미스트는 “10월 한은 금통위에서 기준금리 인상 신호를 보내고 11월 금통위에서 기준금리를 0.25%포인트 올릴 것으로 예상된다”며 올해 11월 금리 인상 가능성이 60%에 달한다고 밝혔다. 내년으로 미뤄질 가능성은 10% 수준으로 ‘하반기’ 인상론에 무게를 실었다.
한은 역시 금리 인상의 깜박이를 켜둔 상태다. 이 총재의 최근 ‘금융 불균형 해소’ 발언 외에도 8월 금통위 의사록에서 매파적 성향이 다소 강해졌다.
수출과 소비 증가세 둔화, 미·중 무역 전쟁 등 대외 불확실성에도 불구하고 7월까지 중립적 시각을 취해 온 한 금융위원이 8월 ‘금융 불균형’ 문제에 상당한 시간을 할애하면서 금통위의 성향이 매파 스탠스로 살짝 기울어진 상태다.
8월 현재 스코어는 매파(2인), 다소 매파적(1인), 중립(2인), 비둘기파(1인)다. 전문가들은 아직 9월 금통위 의사록이 공개되지 않았지만 금리 인상론이 우세할 것으로 예측하고 있다.
10월 5일 통계청이 발표한 9월 소비자물가지수도 금리 인상 명분에 힘을 실어줄 것으로 보인다. 9월 소비자물가수는 전년 동월 대비 1.9% 상승, 1년 만에 최대 폭으로 뛰면서 한은이 금리 인상 시 다소 부담을 덜었다는 평가가 나오고 있다.
이관석 신한은행 PWM분당중앙센터 센터장은 “10월까지 인상 신호를 주고 11월에 인상하는 방안이 가장 유력하다”며 “단 물가와 GDP 성장률 등 경제지표가 받쳐주지 않으면 금리를 올릴 수 없기 때문에 급격하게 인상 카드를 내세우기는 쉽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1500조 가계 부채가 가장 큰 부담
기준금리 인상 시 가장 큰 난제는 가계 부채다. 현재 1.5%의 기준금리를 유지하며 초저금리 시대를 걷고 있지만 올 하반기, 더 나아가 중·장기적으로는 기준금리 인상 움직임이 가시화되면서 천문학적인 숫자를 기록한 ‘가계 부채’의 뇌관이 터지기 일보 직전이다.
한은 통계에 따르면 올해 2분기 말 가계 신용은 1493조1555억원이 넘었다. 가계 신용은 은행·대부사업자·보험사 등의 가계 대출 외에 카드사의 판매 신용까지 포함한 가계 빚 지표다. 국민 1인당 진 빚이 2892만원에 달하는 셈이다. 1인당 빚이 3000만원에 육박하는 상황에서 시장금리가 오르면 이자 부담이 더 커질 수밖에 없다.
눈덩이처럼 불어난 가계 부채에 직격탄을 맞는 것은 원리금 상환이 부담스러운 과다 채무자들이다. 하반기 추가 금리 인상 가능성이 높아지면서 원리금 상환의 부담이 더욱 높아질 수밖에 없다. 금융 전문가들은 기준금리 인상 전인 지금에라도 가계 대출을 줄여야 한다고 강조한다.
이 센터장은 “그간 기준금리를 동결했지만 (시장금리보다 민감하게 반응하는) 주택 담보대출 금리는 이미 기준금리가 1~2차례 오른 것을 반영한 만큼 올라 있다”며 “기준금리 인상 시 레버리지를 과도하게 일으켰던 부동산 투자자들이 상당한 타격을 입을 수 있다”고 말했다.
한은에 따르면 시중은행의 주택 담보대출(이하 주담대) 금리는 지난해 11월 연 3.02%에서 지난 8월 연 3.21%로 매월 꾸준히 높아지고 있다. Fed의 기준금리 인상이 시장금리를 자극하면서 일부 시중은행의 신규 주담대 금리는 최고 5%에 육박하는 사례도 나타났다.
대출금리 상승 압박이 커지면서 저금리 시기 상대적으로 금리가 낮은 변동금리 주담대를 선택한 대출자들이 고정금리 주담대로 발길을 돌리는 경우도 늘고 있다. 이 센터장은 “금리 상승기에 대출을 받아야 할 때 고정금리가 유리하다”며 “고정금리와 변동금리 차이가 50bp(1bp=0.01%포인트) 내외라면 고정금리를 선택하는 게 우선적으로 해야 할 일”이라고 조언했다.
기업 역시 문제다. 특히 중소기업의 자금 압박이 커질 전망이다. 정귀일 국제무역연구원 연구위원은 “대기업에 비해 중소기업의 대출금리가 0.55%포인트(6월 기준) 높아 중소기업에 대한 자금 압박이 더 클 것”이라며 “수출 기업들은 향후 시설 및 운영자금 운영 등에서 발생할 수 있는 어려움에 대비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하지만 수출에 미치는 영향은 제한적일 전망이다. 정 연구위원은 “Fed가 2015년부터 시장에 충분한 신호를 보내며 점진적으로 금리를 인상했기 때문에 미국의 금리 인상이 한국 수출에 미칠 영향은 제한적일 것”이라고 말했다.
다만 그는 “외국인 자금이 유출되면 달러 강세로 한국의 수출 경쟁력에 일부 긍정적인 반사이익을 줄 수 있지만 브라질·터키·남아프리카공화국·아르헨티나 등 신흥국 경기 침체가 한국의 수출에 미치는 부정적 영향이 더 클 수도 있다”고 덧붙였다.
◆돋보기 "기준금리는 어떻게 결정되나"
한국은행이 결정하는 정책금리를 ‘기준금리’라고 하는데 한은이 은행과 자금을 거래할 때 적용하는 금리다. 기준금리가 바뀌면 은행이 다른 은행과 거래할 때 적용되는 금리가 달라지고 개인이 저축할 때나 기업이 돈을 빌릴 때의 금리도 변한다. 기준금리의 변화가 개인 저축과 기업 대출에 변화를 가져오고 이는 다시 소비와 투자, 더 나아가 경기와 물가에도 영향을 미치게 되는 것이다.
기준금리를 결정하는 곳은 한은 최고의사결정기구인 금융통화위원회다. 금융통화위원회는 의장인 한은 총재와 부총재 그리고 다른 5인의 위원 총 7명으로 구성된다.
5인의 위원은 금융·경제 등에 관해 풍부한 경험이나 해박한 지식을 가진 인사들로 각각 기획재정부 장관, 한국은행 총재, 금융위원회 위원장, 대한상공회의소 회장, 전국은행연합회 회장 등의 추천을 받아 대통령이 임명한다.
총재의 임기는 4년이고 부총재는 3년으로 각각 1차에 한해 연임할 수 있고 나머지 금통위원의 임기는 4년으로 연임할 수 있다. 현재 이주열 의장(한은 총재), 윤면식 위원(부총재), 이일형 위원, 조동철 위원, 고승범 위원, 신인석 위원, 임지원 위원으로 구성돼 있다.
금융통화위원들은 연 8회 7인의 금통위원 중 5인 이상의 출석과 출석 위원 과반수의 찬성으로 기준금리를 결정한다. 이 과정에서 세계경제나 한국 경기·물가·금융시장 상황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하게 된다.
예컨대 한국과 세계경제가 지속적으로 좋아지면서 개인 소비나 기업 투자가 과도하게 늘어 물가가 크게 상승할 우려가 있으면 금통위는 기준금리를 올려 개인의 소비와 기업의 투자가 과도하게 늘어나는 것을 방지하고 물가를 안정시키는 역할을 한다.
반면 소비나 투자가 너무 위축됐다면 기준금리를 내려 경기가 회복되도록 유도한다. 또 세계적인 대형 은행의 부도나 주요국의 재정 위기와 같이 큰 사건이 발생하면 그 영향으로 국내에서도 개인이나 기업이 은행으로부터 돈을 빌리기 어려워지는데 이때도 금통위는 기준금리를 낮춰 경제 난관을 해결하려고 한다.
정채희(poof34@hankyung.com)
[본 기사는 한경비즈니스 제 1193호(2018.10.08 ~ 2018.10.14)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