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인연금 AtoZ] 다가오는 ‘은퇴 절벽’...응답자 33% “은퇴 준비 전혀 없다”
입력 2018-10-24 10:53:18
수정 2018-10-24 10:53:18
[스페셜리포트: '개인연금 AtoZ']
-20~50대 400명 개인 연금 설문 조사
-출구전략은 탄탄한 ‘3층 연금’
[한경비즈니스=정채희 기자] 100세 시대, 평균수명이 지속적으로 늘어나면서 가장 크게 뒤따라오는 걱정은 바로 은퇴 후의 미래, 즉 ‘노후 대비’다.
우리는 ‘은퇴 후의 나’를 위해 무엇을, 어떻게, 얼마나 투자하고 있을까. 전문가들은 국민연금과 퇴직연금으로 기본 보장을 받는 동시에 은퇴 후 평균 30~40년을 대비하기 위해서는 개인연금에 투자해 미래를 준비해야 한다고 조언한다. 이른바 ‘3층 연금 체계’다.
한경비즈니스가 20~50대 각 100명씩 400명을 대상으로 ‘은퇴 후의 미래, 개인연금 실태 현황’을 조사했다.
“4년 뒤 은퇴를 앞두고 있는 50대 회사원 A입니다. 퇴직금에 국민연금도 있고 아파트도 있으니 이 정도면 넉넉히 은퇴 후 삶을 즐길 수 있을 것 같았는데, 최근 ‘국민연금 고갈’과 관련한 뉴스를 보면 걱정이 이만저만 아닙니다. 아직 아들도 고3이고 갚아야 할 빚도 있습니다. 노후 자금을 생각하면 늘 마음이 조급해집니다. 어떻게 해야 은퇴 후에도 잘 살 수 있을까요.”
◆한국 노인 상대적 빈곤율 ‘최고’
최근 A 씨와 같은 고민을 하는 이들이 늘고 있다. 퇴근 후 친구들과 술잔을 부딪치며 “인생은 50부터”라는 말을 우스갯소리처럼 던지지만 은퇴하면 만 54세, 그 이후 남은 생을 살아가기에 모아둔 자금은 턱없이 부족하기만 하다.
노후라고 어디 돈 들어갈 곳이 없겠는가. 전문가들은 노후 준비란 단순히 노후에 쓸 생활비를 마련하는 것뿐만 아니라 생활비와 비상 예비 자금(유동성 자금)을 구분해 준비해야 하는 것이라고 정의한다.
노후에 안정적인 생활을 보장하고 노후에 발생되는 의료비와 간병비 등을 준비해 혹시 모를 상황에 충분히 대비할 수 있도록 해야 하기 때문이다. 보험업계에 따르면 이를 위해 필요한 평균 금액은 은퇴 전 소득의 약 60~70%다. 문제는 은퇴 전 소득의 60~70%를 마련하는 게 쉽지 않다는 데 있다.
한경비즈니스가 설문 조사 업체인 오픈서베이와 함께 20~50대 각 100명씩 400명을 대상으로 ‘은퇴 후의 미래, 개인연금 실태 현황’을 설문 조사한 결과 ‘은퇴 후 경제적 대비 수준’을 묻는 질의에 전체 응답자 중 132명(33.0%)이 “전혀 준비돼 있지 않다’고 응답했다. ‘약간 부족하다(24.0%)’라는 부정적 응답을 더하면 응답자의 절반 이상이 은퇴 후 대비가 충분하지 않다고 답한 셈이다.
‘매우 충분하다’거나 ‘괜찮은 수준’이라고 응답한 이들은 각각 14명(3.5%), 47명(11.8%)으로 61명(%)에 그쳤다.
연령별로 보면 젊을수록 은퇴 후 대비에서 멀어졌다. 20대 100명 중 절반이 넘는 56명(56.0%)이 ‘전혀 준비돼 있지 않다’고 응답했고 ‘매우 충분하다’거나 ‘괜찮은 수준’이라고 응답한 이들은 13명(13.0%)에 그쳤다.
연령이 높다고 은퇴 후 대비 수준이 크게 나아진 것 또한 아니다. 40대는 100명 중 30명(30.0%)이 ‘전혀 준비돼 있지 않다’, 또 26명(26.0%)이 ‘약간 부족하다’고 응답해 은퇴가 머지않은 시기임에도 불구하고 경제적 대비가 충분하지 않았다.
은퇴 시기가 코앞에 닥친 50대는 100명 중 19명이 ‘전혀 준비돼 있지 않다’고 응답해 다른 연령대보다 상황이 나았지만 다소 부정적 응답인 ‘약간 부족하다’는 응답자 23명(23.0%)을 더하면 절반(42.0%)에 가까운 이들이 은퇴 준비에 미흡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유는 무엇일까. 이들은 최대 걸림돌로 낮은 소득수준에 따른 생활비 부족을 꼽았다. 전체 응답자 중 156명(39.0%)이다. 이어 자녀에 대한 경제적 지원(22.3%), 주택 자금 마련(18.5%) 등이 뒤를 이었다.
이 같은 설문 결과는 ‘초고령화’를 걷는 한국 사회에 경각심을 던진다. 통계청에 따르면 2018년 65세 이상 고령인구는 738만1000명으로 전체 인구 중 14.3%를 차지한다. 이후 지속적으로 증가해 2060년 41.0%로 치솟을 것으로 전망된다.
고령화 속도에 비해 ‘노후 대비’가 충분하지 않다 보니 한국 노인 인구의 상대적 빈곤율(소득수준이 중위소득 50% 미만인 인구의 비율, 2016년 기준)은 선진국의 2배가 넘는다.
유럽연합(EU) 27개국 중 노인의 상대적 빈곤율이 가장 높다고 평가받는 라트비아가 22.9%로 한국의 절반 수준이고 EU에서 상대적 빈곤율이 가장 낮은 덴마크는 1.4%로 한국과 40배 정도 차이가 난다.
은퇴 후를 대비하지 못해 노동을 쉽게 그만둘 수도 없다. 전체 설문 응답자 400명 중 134명(33.5%)은 은퇴 후의 노후 자금을 마련하기 위해 법정 정년인 60세를 넘어 61~65세까지 일해야 된다고 생각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66~70세를 선택한 응답자는 128명(32.0%)으로 65.5%에 달하는 응답자가 61~70세까지 정년 연장을 희망했다. 71세 이상에 표를 준 이들도 58명(14.6%)에 달했다.
◆‘은퇴 후 자금원 1위’ 국민연금의 조기 고갈론
이처럼 은퇴 절벽에 시달리는 이들이 믿는 것은 바로 ‘국민연금’이다. 국민연금은 한국인들의 노후 대책의 최전선이자 마지막 보루다. 설문 응답자 400명 중 188명(47.0%)이 은퇴 후 주요 생활 자금 자금원으로 국민연금을 꼽을 만큼 압도적이다. 특히 40대 응답률이 54.0%로 타 집단 대비 높다.
하지만 최근 불거진 국민연금의 ‘고갈론’은 은퇴 절벽을 더 가파르게 만든다. 2018년 현재 생산가능인구 5.1명이 65세 이상 고령자 1명을 부양하고 있지만 2060년에는 생산가능인구 1.2명이 65세 이상 고령자 1명을 짊어져야 할 것으로 전망된다. 현행 국민연금 제도의 조정이 불가피한 상황이다. 응답자 중 255명(63.8%)이 국민연금의 한계로 ‘연금 고갈 우려’를 꼽았다.
정부는 최근 국민연금의 연금 수령 개시 연령을 68세까지 늦추는 등의 개편안을 준비하고 있다.
하지만 이 역시 국민연금을 노후 대비의 마지막 보루로 여겨 왔던 가입자들에게는 가슴 철렁할 소식이다. 법정 정년이 연장되지 않는 한 은퇴 후 국민연금을 수령하기 전까지의 소득 공백기가 늘어나 은퇴 절벽을 더욱 가파르게 할 수 있기 때문이다.
현재 국민연금의 수령 개시 연령은 60세이지만 지급 연령이 높아져 2033년부터는 65세부터 지급받을 수 있게 될 가능성이 높다. 1969년 이후 출생자를 기준으로 국민연금의 개시 시점은 65세다. 이렇게 되면 60세에 퇴직하면 5년간 ‘국민연금 사각지대’가 발생한다.
법정 정년보다 더 일찍 은퇴 시기가 찾아온다면 국민연금 사각지대는 10년 이상도 벌어질 수 있다(※국민연금 수령 개시 연령을 앞당길 수도 있지만 조기 수령 시 기본 연금액의 최대 70%만 지급된다).
5~10년의 사각지대를 지나 국민연금을 수령하는 시기가 찾아오더라도 수령 금액은 턱없이 적다. 연금보험률은 현행 월소득의 9%이며, 소득대체율은 45%다. 설문에 따르면 은퇴 후 월평균 적정 생활비로 200만~249만원(현 물가수준으로 책정)을 꼽은 이들이 전체의 29.7%로 가장 많았다.
하지만 희망 금액과 달리 은퇴 후를 대비하기 위한 투자 규모는 크지 않았다. 전체 응답자의 143명(35.8%)은 은퇴 후 대비를 위해 ‘월소득의 1~5%’를 지출한다고 밝혔다. ‘월소득의 6~10%’는 86명(21.5%), ‘11~15%’는 69명(17.3%) 순이다.
실제 상황은 어떨까. 통계청이 밝힌 연금 수령 현황에 따르면 지난 1년간(2017년) 55~79세 고령자가 공적연금(국민연금·사학연금·군인연금 등)과 기초연금·개인연금 등을 합쳐 받은 연금 수령액은 월평균 57만원에 불과했다. 성별로 보면 남자는 76만원, 여자는 37만원이다. 퇴직금 등 기업 연금이 제외된 수치인 점을 감안해도 ‘월평균 적정 생활비(희망)’에 한참 미치지 못한다. 국민연금 외에 ‘제3의 은퇴 후 소득 보전 수단’을 마련해야 하는 이유다.
◆“은퇴 전 소득의 최대 70% 확보해야”
전문가들은 은퇴 후 여유로운 생활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국가가 만든 사회보험제도인 ‘국민연금’과 노사 합의에 따라 기업이 제공하는 ‘퇴직연금’에 더해 개인이 자발적으로 별도의 소득 보전 수단을 마련할 필요가 있다고 조언한다. 이른바 ‘3층 연금(국민·퇴직·개인)’ 체계다.
정홍주 성균관대 경영전문대학원 교수(한국보험학회 회장)는 “일반적으로 국민연금의 소득대체율은 은퇴 전 소득의 35~40% 수준이며 퇴직연금은 (오래 근무한다면) 최대 15~20%까지 대체(커버)가 가능하다”고 말했다.
정 교수는 “하지만 월평균 적정 생활 자금으로 은퇴 전 소득의 60~70%를 기준으로 삼고 있기 때문에 나머지 0~20% 정도는 개인연금을 통해 채우는 것이 최상의 포트폴리오”라고 덧붙였다(※각 비율은 개인별로 상이).
최적의 연금 포트폴리오를 구성하기 위해 연금 시장에서 개인연금 부문 또한 빠른 속도로 비율을 높이고 있다. 국민연금을 통한 노후 보장의 한계가 가시화되면서 개인연금을 적극적으로 활용하려는 이들이 늘고 있는 것이다.
설문 결과 전체 응답자 400명 중 개인연금에 가입한 이들은 175명(43.8%)으로 비가입자(56.3%)보다 적었지만 그 격차가 13.0%포인트에 그쳤다. 개인연금 가입자 중에서는 상대적으로 은퇴 시기가 얼마 남지 않은 50대 응답자 비율이 65명(65.0%)으로 가장 많았다.
직업별로 보면 퇴직연금이 따로 없는 자영업자들의 가입률이 62.1%로 가장 높았고 뒤를 이어 세제 혜택이 직접적으로 적용되는 사무·관리직의 가입 비율이 각각 54.8%, 56.7%였다.
특히 여러 상품에 가입하면 그 상품별 세제 혜택 등의 수익을 누릴 수 있는 개인연금의 특성상 ‘중복 가입’의 비율도 높았다. 가입자 175명 중 2개 이상 가입자가 79명(45.1%)으로 집계됐다. 특히 은퇴 시기가 머지않은 50대 가입자의 중복 가입률이 절반을 넘었다.
이들의 가입 동기는 국민연금을 통한 노후 보장의 한계가 가시화되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대목이기도 하다. 개인연금 가입 동기로 가입자 175명 중 110명(62.9%)이 ‘노후 대비’를 선택했고 국민연금에 대한 신뢰 부족이 62명(35.4%)으로 뒤를 이었다.
세대별 간극도 뚜렷했다. 30대와 40대의 국민연금에 대한 신뢰 부족 응답이 42.2%와 41.8%로 매우 높은 반면 상대적으로 국민연금의 혜택이 높고 기금 고갈 가능성이 적은 50대는 30.8%로 낮았다.
정승희 하나금융연구소 연구위원은 “국내 가계의 노후 대비는 미흡해 노후 보장 수단의 필요성이 크게 부각되고 있는 상황”이라며 “2022년 개인연금 시장 규모는 600조원을 웃도는 수준으로 성장할 전망”이라고 말했다. 2017년 기준 국내 개인연금 자산은 344조7000억원 규모다.
그렇다면 응답자들은 어떤 개인연금에 가입했을까. 개인연금은 상품 유형에 따라 나눠볼 수 있다. 개인연금은 세제 혜택 선호 유형에 따라 크게는 연금저축과 연금보험으로 구분된다.
세액공제 후 연금 수령 시 과세한다면 연금저축, 세액공제 혜택이 없는 대신 연금 수령 시 보험 차익이 비과세된다면 연금보험이다.
연금저축은 또 금융권별로 은행의 연금저축신탁, 자산 운용사의 연금저축펀드, 보험사(생보사·손보사)의 연금저축보험 등 3개의 종류로 구분된다. 유형마다 납입 방식, 적용 금리, 연금 수령 방식, 원금 보장과 예금자 보호 여부에 따라 약간의 차이가 있다.
상품 종류가 다양하다 보니 가입자들도 어떤 상품에 투자할 것인지 결정해야 한다. 납입 기간이나 세제 혜택, 투자성향 등이 선택을 좌우할 것이라는 기대와 달리 개인연금 가입자의 49명(28.0%)이 금융사의 이미지와 안정성(신뢰도)을 골랐다. 이어 연금 수령 방식(23.4%), 세제 혜택(22.3%) 순이다.
금융사의 이미지와 안정성을 보는 연령은 30대의 응답률이 33.3%로 다른 연령대 대비 높았고 연금 수령 방식을 선택한 이들은 50대 응답률이 26.9%로 상대적으로 높은 것으로 집계됐다.
◆“안정형 연금저축보험 1위, 가입 희망은 신탁”
3개의 연금저축과 연금보험 등 총 4개의 상품 유형 중 응답자들에게 가장 높은 인기를 얻은 것은 ‘연금저축보험’이다. 가입자 175명 중 119명(68.0%)이 연금저축보험에 가입했다고 밝혔다(중복 응답 가능).
연금저축보험은 정기납 방식으로 원금 보장과 예금자 보호가 가능해 안정적인 수익 추구가 가능한 것이 특징이다. 이어 연금보험 52명(29.7%), 연금저축신탁 49명(28.0%), 연금저축펀드 31명(17.7%) 순이다.
현재 가입한 상품 외에 또 개인연금에 가입한다면 어떤 상품을 선택할까. 전체 응답자 400명 중 132명(33.0%)이 연금저축신탁을 1위로 골랐다. 특히 20대 응답자의 43명(43%)이 연금저축신탁을 선택해 최다 응답률을 기록했다.
연금저축신탁은 2017년까지 가입한 고객은 원금을 보장했지만 2018년부터 원금을 보장하지 않는다. 이에 따라 ‘고위험·고수익’군으로 분류되는 상품이다.
정 교수는 “아직 노후 대비를 할 기간이 많이 남은 젊은 층은 주식 등의 고위험·고수익 상품에 투자하는 펀드나 신탁 등의 연금 유형이 나을 수 있다”며 “하지만 기간이 얼마 남지 않은 장년층은 유동성 확보가 중요하기 때문에 원금 보장과 예금자 보호가 되는 상품 등으로 개인연금 가입을 신중히 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이번 설문조사는 한경비즈니스와 오픈서베이가 공동 조사했으며 2018년 10월 17일 하루 동안 20~50대 각 100명씩 총 400명 대상으로 실시했다. 표본오차는 ±4.90%, 신뢰수준은 95%다.
poof34@hankyung.com
[본 기사는 한경비즈니스 제 1195호(2018.10.22 ~ 2018.10.28) 기사입니다.]
-20~50대 400명 개인 연금 설문 조사
-출구전략은 탄탄한 ‘3층 연금’
[한경비즈니스=정채희 기자] 100세 시대, 평균수명이 지속적으로 늘어나면서 가장 크게 뒤따라오는 걱정은 바로 은퇴 후의 미래, 즉 ‘노후 대비’다.
우리는 ‘은퇴 후의 나’를 위해 무엇을, 어떻게, 얼마나 투자하고 있을까. 전문가들은 국민연금과 퇴직연금으로 기본 보장을 받는 동시에 은퇴 후 평균 30~40년을 대비하기 위해서는 개인연금에 투자해 미래를 준비해야 한다고 조언한다. 이른바 ‘3층 연금 체계’다.
한경비즈니스가 20~50대 각 100명씩 400명을 대상으로 ‘은퇴 후의 미래, 개인연금 실태 현황’을 조사했다.
“4년 뒤 은퇴를 앞두고 있는 50대 회사원 A입니다. 퇴직금에 국민연금도 있고 아파트도 있으니 이 정도면 넉넉히 은퇴 후 삶을 즐길 수 있을 것 같았는데, 최근 ‘국민연금 고갈’과 관련한 뉴스를 보면 걱정이 이만저만 아닙니다. 아직 아들도 고3이고 갚아야 할 빚도 있습니다. 노후 자금을 생각하면 늘 마음이 조급해집니다. 어떻게 해야 은퇴 후에도 잘 살 수 있을까요.”
◆한국 노인 상대적 빈곤율 ‘최고’
최근 A 씨와 같은 고민을 하는 이들이 늘고 있다. 퇴근 후 친구들과 술잔을 부딪치며 “인생은 50부터”라는 말을 우스갯소리처럼 던지지만 은퇴하면 만 54세, 그 이후 남은 생을 살아가기에 모아둔 자금은 턱없이 부족하기만 하다.
노후라고 어디 돈 들어갈 곳이 없겠는가. 전문가들은 노후 준비란 단순히 노후에 쓸 생활비를 마련하는 것뿐만 아니라 생활비와 비상 예비 자금(유동성 자금)을 구분해 준비해야 하는 것이라고 정의한다.
노후에 안정적인 생활을 보장하고 노후에 발생되는 의료비와 간병비 등을 준비해 혹시 모를 상황에 충분히 대비할 수 있도록 해야 하기 때문이다. 보험업계에 따르면 이를 위해 필요한 평균 금액은 은퇴 전 소득의 약 60~70%다. 문제는 은퇴 전 소득의 60~70%를 마련하는 게 쉽지 않다는 데 있다.
한경비즈니스가 설문 조사 업체인 오픈서베이와 함께 20~50대 각 100명씩 400명을 대상으로 ‘은퇴 후의 미래, 개인연금 실태 현황’을 설문 조사한 결과 ‘은퇴 후 경제적 대비 수준’을 묻는 질의에 전체 응답자 중 132명(33.0%)이 “전혀 준비돼 있지 않다’고 응답했다. ‘약간 부족하다(24.0%)’라는 부정적 응답을 더하면 응답자의 절반 이상이 은퇴 후 대비가 충분하지 않다고 답한 셈이다.
‘매우 충분하다’거나 ‘괜찮은 수준’이라고 응답한 이들은 각각 14명(3.5%), 47명(11.8%)으로 61명(%)에 그쳤다.
연령별로 보면 젊을수록 은퇴 후 대비에서 멀어졌다. 20대 100명 중 절반이 넘는 56명(56.0%)이 ‘전혀 준비돼 있지 않다’고 응답했고 ‘매우 충분하다’거나 ‘괜찮은 수준’이라고 응답한 이들은 13명(13.0%)에 그쳤다.
연령이 높다고 은퇴 후 대비 수준이 크게 나아진 것 또한 아니다. 40대는 100명 중 30명(30.0%)이 ‘전혀 준비돼 있지 않다’, 또 26명(26.0%)이 ‘약간 부족하다’고 응답해 은퇴가 머지않은 시기임에도 불구하고 경제적 대비가 충분하지 않았다.
은퇴 시기가 코앞에 닥친 50대는 100명 중 19명이 ‘전혀 준비돼 있지 않다’고 응답해 다른 연령대보다 상황이 나았지만 다소 부정적 응답인 ‘약간 부족하다’는 응답자 23명(23.0%)을 더하면 절반(42.0%)에 가까운 이들이 은퇴 준비에 미흡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유는 무엇일까. 이들은 최대 걸림돌로 낮은 소득수준에 따른 생활비 부족을 꼽았다. 전체 응답자 중 156명(39.0%)이다. 이어 자녀에 대한 경제적 지원(22.3%), 주택 자금 마련(18.5%) 등이 뒤를 이었다.
이 같은 설문 결과는 ‘초고령화’를 걷는 한국 사회에 경각심을 던진다. 통계청에 따르면 2018년 65세 이상 고령인구는 738만1000명으로 전체 인구 중 14.3%를 차지한다. 이후 지속적으로 증가해 2060년 41.0%로 치솟을 것으로 전망된다.
고령화 속도에 비해 ‘노후 대비’가 충분하지 않다 보니 한국 노인 인구의 상대적 빈곤율(소득수준이 중위소득 50% 미만인 인구의 비율, 2016년 기준)은 선진국의 2배가 넘는다.
유럽연합(EU) 27개국 중 노인의 상대적 빈곤율이 가장 높다고 평가받는 라트비아가 22.9%로 한국의 절반 수준이고 EU에서 상대적 빈곤율이 가장 낮은 덴마크는 1.4%로 한국과 40배 정도 차이가 난다.
은퇴 후를 대비하지 못해 노동을 쉽게 그만둘 수도 없다. 전체 설문 응답자 400명 중 134명(33.5%)은 은퇴 후의 노후 자금을 마련하기 위해 법정 정년인 60세를 넘어 61~65세까지 일해야 된다고 생각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66~70세를 선택한 응답자는 128명(32.0%)으로 65.5%에 달하는 응답자가 61~70세까지 정년 연장을 희망했다. 71세 이상에 표를 준 이들도 58명(14.6%)에 달했다.
◆‘은퇴 후 자금원 1위’ 국민연금의 조기 고갈론
이처럼 은퇴 절벽에 시달리는 이들이 믿는 것은 바로 ‘국민연금’이다. 국민연금은 한국인들의 노후 대책의 최전선이자 마지막 보루다. 설문 응답자 400명 중 188명(47.0%)이 은퇴 후 주요 생활 자금 자금원으로 국민연금을 꼽을 만큼 압도적이다. 특히 40대 응답률이 54.0%로 타 집단 대비 높다.
하지만 최근 불거진 국민연금의 ‘고갈론’은 은퇴 절벽을 더 가파르게 만든다. 2018년 현재 생산가능인구 5.1명이 65세 이상 고령자 1명을 부양하고 있지만 2060년에는 생산가능인구 1.2명이 65세 이상 고령자 1명을 짊어져야 할 것으로 전망된다. 현행 국민연금 제도의 조정이 불가피한 상황이다. 응답자 중 255명(63.8%)이 국민연금의 한계로 ‘연금 고갈 우려’를 꼽았다.
정부는 최근 국민연금의 연금 수령 개시 연령을 68세까지 늦추는 등의 개편안을 준비하고 있다.
하지만 이 역시 국민연금을 노후 대비의 마지막 보루로 여겨 왔던 가입자들에게는 가슴 철렁할 소식이다. 법정 정년이 연장되지 않는 한 은퇴 후 국민연금을 수령하기 전까지의 소득 공백기가 늘어나 은퇴 절벽을 더욱 가파르게 할 수 있기 때문이다.
현재 국민연금의 수령 개시 연령은 60세이지만 지급 연령이 높아져 2033년부터는 65세부터 지급받을 수 있게 될 가능성이 높다. 1969년 이후 출생자를 기준으로 국민연금의 개시 시점은 65세다. 이렇게 되면 60세에 퇴직하면 5년간 ‘국민연금 사각지대’가 발생한다.
법정 정년보다 더 일찍 은퇴 시기가 찾아온다면 국민연금 사각지대는 10년 이상도 벌어질 수 있다(※국민연금 수령 개시 연령을 앞당길 수도 있지만 조기 수령 시 기본 연금액의 최대 70%만 지급된다).
5~10년의 사각지대를 지나 국민연금을 수령하는 시기가 찾아오더라도 수령 금액은 턱없이 적다. 연금보험률은 현행 월소득의 9%이며, 소득대체율은 45%다. 설문에 따르면 은퇴 후 월평균 적정 생활비로 200만~249만원(현 물가수준으로 책정)을 꼽은 이들이 전체의 29.7%로 가장 많았다.
하지만 희망 금액과 달리 은퇴 후를 대비하기 위한 투자 규모는 크지 않았다. 전체 응답자의 143명(35.8%)은 은퇴 후 대비를 위해 ‘월소득의 1~5%’를 지출한다고 밝혔다. ‘월소득의 6~10%’는 86명(21.5%), ‘11~15%’는 69명(17.3%) 순이다.
실제 상황은 어떨까. 통계청이 밝힌 연금 수령 현황에 따르면 지난 1년간(2017년) 55~79세 고령자가 공적연금(국민연금·사학연금·군인연금 등)과 기초연금·개인연금 등을 합쳐 받은 연금 수령액은 월평균 57만원에 불과했다. 성별로 보면 남자는 76만원, 여자는 37만원이다. 퇴직금 등 기업 연금이 제외된 수치인 점을 감안해도 ‘월평균 적정 생활비(희망)’에 한참 미치지 못한다. 국민연금 외에 ‘제3의 은퇴 후 소득 보전 수단’을 마련해야 하는 이유다.
◆“은퇴 전 소득의 최대 70% 확보해야”
전문가들은 은퇴 후 여유로운 생활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국가가 만든 사회보험제도인 ‘국민연금’과 노사 합의에 따라 기업이 제공하는 ‘퇴직연금’에 더해 개인이 자발적으로 별도의 소득 보전 수단을 마련할 필요가 있다고 조언한다. 이른바 ‘3층 연금(국민·퇴직·개인)’ 체계다.
정홍주 성균관대 경영전문대학원 교수(한국보험학회 회장)는 “일반적으로 국민연금의 소득대체율은 은퇴 전 소득의 35~40% 수준이며 퇴직연금은 (오래 근무한다면) 최대 15~20%까지 대체(커버)가 가능하다”고 말했다.
정 교수는 “하지만 월평균 적정 생활 자금으로 은퇴 전 소득의 60~70%를 기준으로 삼고 있기 때문에 나머지 0~20% 정도는 개인연금을 통해 채우는 것이 최상의 포트폴리오”라고 덧붙였다(※각 비율은 개인별로 상이).
최적의 연금 포트폴리오를 구성하기 위해 연금 시장에서 개인연금 부문 또한 빠른 속도로 비율을 높이고 있다. 국민연금을 통한 노후 보장의 한계가 가시화되면서 개인연금을 적극적으로 활용하려는 이들이 늘고 있는 것이다.
설문 결과 전체 응답자 400명 중 개인연금에 가입한 이들은 175명(43.8%)으로 비가입자(56.3%)보다 적었지만 그 격차가 13.0%포인트에 그쳤다. 개인연금 가입자 중에서는 상대적으로 은퇴 시기가 얼마 남지 않은 50대 응답자 비율이 65명(65.0%)으로 가장 많았다.
직업별로 보면 퇴직연금이 따로 없는 자영업자들의 가입률이 62.1%로 가장 높았고 뒤를 이어 세제 혜택이 직접적으로 적용되는 사무·관리직의 가입 비율이 각각 54.8%, 56.7%였다.
특히 여러 상품에 가입하면 그 상품별 세제 혜택 등의 수익을 누릴 수 있는 개인연금의 특성상 ‘중복 가입’의 비율도 높았다. 가입자 175명 중 2개 이상 가입자가 79명(45.1%)으로 집계됐다. 특히 은퇴 시기가 머지않은 50대 가입자의 중복 가입률이 절반을 넘었다.
이들의 가입 동기는 국민연금을 통한 노후 보장의 한계가 가시화되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대목이기도 하다. 개인연금 가입 동기로 가입자 175명 중 110명(62.9%)이 ‘노후 대비’를 선택했고 국민연금에 대한 신뢰 부족이 62명(35.4%)으로 뒤를 이었다.
세대별 간극도 뚜렷했다. 30대와 40대의 국민연금에 대한 신뢰 부족 응답이 42.2%와 41.8%로 매우 높은 반면 상대적으로 국민연금의 혜택이 높고 기금 고갈 가능성이 적은 50대는 30.8%로 낮았다.
정승희 하나금융연구소 연구위원은 “국내 가계의 노후 대비는 미흡해 노후 보장 수단의 필요성이 크게 부각되고 있는 상황”이라며 “2022년 개인연금 시장 규모는 600조원을 웃도는 수준으로 성장할 전망”이라고 말했다. 2017년 기준 국내 개인연금 자산은 344조7000억원 규모다.
그렇다면 응답자들은 어떤 개인연금에 가입했을까. 개인연금은 상품 유형에 따라 나눠볼 수 있다. 개인연금은 세제 혜택 선호 유형에 따라 크게는 연금저축과 연금보험으로 구분된다.
세액공제 후 연금 수령 시 과세한다면 연금저축, 세액공제 혜택이 없는 대신 연금 수령 시 보험 차익이 비과세된다면 연금보험이다.
연금저축은 또 금융권별로 은행의 연금저축신탁, 자산 운용사의 연금저축펀드, 보험사(생보사·손보사)의 연금저축보험 등 3개의 종류로 구분된다. 유형마다 납입 방식, 적용 금리, 연금 수령 방식, 원금 보장과 예금자 보호 여부에 따라 약간의 차이가 있다.
상품 종류가 다양하다 보니 가입자들도 어떤 상품에 투자할 것인지 결정해야 한다. 납입 기간이나 세제 혜택, 투자성향 등이 선택을 좌우할 것이라는 기대와 달리 개인연금 가입자의 49명(28.0%)이 금융사의 이미지와 안정성(신뢰도)을 골랐다. 이어 연금 수령 방식(23.4%), 세제 혜택(22.3%) 순이다.
금융사의 이미지와 안정성을 보는 연령은 30대의 응답률이 33.3%로 다른 연령대 대비 높았고 연금 수령 방식을 선택한 이들은 50대 응답률이 26.9%로 상대적으로 높은 것으로 집계됐다.
◆“안정형 연금저축보험 1위, 가입 희망은 신탁”
3개의 연금저축과 연금보험 등 총 4개의 상품 유형 중 응답자들에게 가장 높은 인기를 얻은 것은 ‘연금저축보험’이다. 가입자 175명 중 119명(68.0%)이 연금저축보험에 가입했다고 밝혔다(중복 응답 가능).
연금저축보험은 정기납 방식으로 원금 보장과 예금자 보호가 가능해 안정적인 수익 추구가 가능한 것이 특징이다. 이어 연금보험 52명(29.7%), 연금저축신탁 49명(28.0%), 연금저축펀드 31명(17.7%) 순이다.
현재 가입한 상품 외에 또 개인연금에 가입한다면 어떤 상품을 선택할까. 전체 응답자 400명 중 132명(33.0%)이 연금저축신탁을 1위로 골랐다. 특히 20대 응답자의 43명(43%)이 연금저축신탁을 선택해 최다 응답률을 기록했다.
연금저축신탁은 2017년까지 가입한 고객은 원금을 보장했지만 2018년부터 원금을 보장하지 않는다. 이에 따라 ‘고위험·고수익’군으로 분류되는 상품이다.
정 교수는 “아직 노후 대비를 할 기간이 많이 남은 젊은 층은 주식 등의 고위험·고수익 상품에 투자하는 펀드나 신탁 등의 연금 유형이 나을 수 있다”며 “하지만 기간이 얼마 남지 않은 장년층은 유동성 확보가 중요하기 때문에 원금 보장과 예금자 보호가 되는 상품 등으로 개인연금 가입을 신중히 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이번 설문조사는 한경비즈니스와 오픈서베이가 공동 조사했으며 2018년 10월 17일 하루 동안 20~50대 각 100명씩 총 400명 대상으로 실시했다. 표본오차는 ±4.90%, 신뢰수준은 95%다.
poof34@hankyung.com
[본 기사는 한경비즈니스 제 1195호(2018.10.22 ~ 2018.10.28)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