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 머니=한용섭 편집장]야구를 좋아하는 분들에게 올 시즌 국내 프로야구팀 한화 이글스의 선전은 연일 화젯거리였습니다. ‘5·8·8·6·8·9·9·6·7·8’, 이는 2008년부터 지난해까지 10년 동안 하위권 바닥을 맴돌던 한화 이글스의 순위 성적입니다. 이처럼 우승보다는 탈꼴찌가 목표였던 팀이 올해 정규리그 3위로 포스트 시즌에 진출했으니 천지개벽 수준의 반전을 이룬 셈입니다.
한화 팬들은 ‘보살’로 불립니다. 그도 그럴 것이 10년 동안 바닥권 성적을 보이고 있음에도 팬심을 잃지 않고 애정을 보내고 있으니 말이죠. 올해 한화는 44번의 역전승(2위), 팀 도루 118개(1위) 등 만만치 않은 단단함과 끈기로 팬들에게 화답했습니다. 올해 한화 이글스 팀을 맡아 상위권 도약을 이끈 이는 한용덕 감독입니다. 이렇듯 약체 팀을 리빌딩 해내며 상위권 도약을 이끈 한 감독의 ‘형님 리더십’은 벌써부터 언론의 주목을 받고 있습니다. 앞서 3년간 팀을 이끌다 성적 부진으로 물러난 김성근 전 감독이 무안해질 정도로 말이죠.
사실 김성근 전 감독이야말로 리더십 열풍을 이끈 장본인이었습니다. 프로야구팀과 독립야구단 고양 원더스 등 감독 지휘봉만 7번 이상을 잡았고, 만년 꼴찌 쌍방울 레이더스를 1996년 리그 2위에, 하위권을 맴돌던 SK 와이번스를 세 차례 우승시키며 독보적인 승부사 기질과 리더십으로 야신(野神)이라는 별명까지 얻게 됐죠.
청와대, 삼성전자 등 이곳저곳에서 앞 다퉈 김 전 감독에게 리더십 강의를 요청했습니다. 2014년 11월 7일 청와대 대통령 비서실, 국가안보실 직원들을 대상으로 한 특강에서는 ‘사람들의 손가락질을 피한다는 것 자체가 리더가 될 자격이 없는 것’, ‘결과를 의식한 사람은 시작을 하지 못한다. 주춤함이 실패를 낳는다’, ‘리더는 존경받는 자리에 오르면 안 된다. 지나간 다음에 존경받는 자리에 서는 것이다’ 등의 명언을 남긴 바 있습니다.
특히 2015년 8월에는 평생교육 전문 기업 휴넷이 직장인 388명을 대상으로 진행한 ‘CEO 리더십 유형’에 대한 설문조사에서 답변자 59.0%가 김 전 감독을 ‘본인이 생각하는 이상적인 리더십과 일치한다’고 답변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성적 부진으로 감독직에서 물러나자 엄청난 비난에 직면했습니다. 한 스포츠 신문에서는 ‘김성근 감독은 실패한 지도자다’라는 파격적인 제목으로 기사를 냈고, 한 경제지는 ‘김성근의 실패와 제왕적 리더십’이라는 제목의 칼럼에서 “제왕적 리더십의 유통기한도 이미 끝났다”며 김 전 감독을 몰아세웠습니다. 그렇다면 김 전 감독의 리더십은 ‘그때는 맞고 지금은 틀린 걸까’요. 카리스마적인 리더십이 제왕적 리더십으로, 꼼꼼한 데이터 분석 야구가 지나친 승부욕으로 손바닥 뒤집히듯 평가가 바뀐 것은 무슨 연유일까요.
지난 4월 30일 일본 아사히신문은 텐세이진고(天聲人語) 칼럼에서 일본 소프트뱅크 호크스 구단의 초빙 코치로 선수 육성의 꿈을 이어가고 있는 김 전 감독의 근황을 전했습니다. 이 칼럼은 김 전 감독의 야구 철학에 대한 소개와 함께 ‘75세의 꿈과 여행은 계속된다’며 노장의 끊임없는 도전에 경의를 표했습니다. 이는 실패한 지도자로 몰아세웠던 국내 언론과 사뭇 다른 모습이기도 합니다. 물론 리더십의 트렌드는 시대에 따라 충분히 변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소통과 혁신, 좌절을 두려워하지 않는 리더십의 근간은 아직까지 유효합니다. 이는 머니가 11월호 빅 스토리 ‘리더를 코칭하다’에 담고 싶었던 화두이기도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