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영전략]
-돈과 사람 모여야 기회 생겨…‘산업’의 틀로 재단하면 생태계 위축
[한경비즈니스 칼럼=박찬희 중앙대 경영학부 교수] 초등학교 사회 시간에 전국의 산업단지를 외우면서 ‘쭉쭉 성장하는 우리나라’를 공부한 시절이 있었다. 곳곳에 들어서는 대형 건물이나 상가들을 분양만 하면 돈이 되던 시절의 얘기다.
반면 최근에는 지방 곳곳에 고객이 없어 쩔쩔매는 한산한 상가가 늘고 있고 심지어 서울 강남 한복판에도 임차인을 찾는 광고가 곳곳에 붙어 있다. 자리 좋은 곳에 만든 대형 쇼핑몰도 어떻게든 고객과 입주 업체를 찾으려고 무진 애를 쓰고 있다.
역사책에 나오는 유서 깊은 상업도시들도 같은 고민을 했다. 돈이 되는 거점들을 장악하기 위해 숱한 전쟁을 벌였다. 시대가 바뀌어 돈과 사람의 흐름이 달라지면 번성하던 지역이 몰락하고 새로운 상업과 생산의 거점들이 등장했다.
청해진·벽란도·신라방 등 국사책에 나오는 지명들도 크게 다르지 않다.
상권과 도시를 번성하게 만드는 비결은 없을까. 이미 경제 지리(economic geography)에는 훌륭한 연구 성과들이 있지만 전략 경영의 지혜로 조금 다른 각도에서 생각해 보자.
◆‘산업 분류’는 제품 시장 경쟁을 생각
경영학에는 특정 제품과 서비스의 시장 범위를 전제하는 ‘산업’의 관점에서 전략을 얘기할 때가 많다. 거시경제 전반의 정책이 아니라 특정한 부문을 지원하거나 규제하는 정책들 역시 주로 제품 시장에서의 경쟁에 초점을 둔다.
산업 진흥 정책, 공정거래 정책이 대표적인 예다. 이런 산업 중심의 생각은 분명히 나름의 장점이 있지만 적어도 다양한 사업이 맞물려 만들어 내는 가치를 이해하는 데는 한계가 있다.
마이클 포터 하버드대 비즈니스스쿨 석좌교수의 ‘경쟁전략(Competitive Strategy)’은 산업의 구조적 성격을 근거로 사업성을 분석한다. 사업 기회가 아무리 좋아도 능력이 있어야 잡을 수 있다는 ‘핵심 역량(core competence)’ 유형의 주장도 산업의 틀을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잘 알지도 못하는 사업을 잔뜩 벌이다가 회사를 망가뜨린 사례는 어디에나 있어 관련성이 낮은 사업들에 진출하는 ‘비관련 다각화’가 실익이 없다는 연구들이 제법 있다. 이들 역시 제품과 서비스의 시장 범위를 정리한 산업분류표를 근거로 하는데, 한국에서는 ‘문어발식 경영’을 비판하는 근거로 사용된다.
그런데 이런 ‘산업’의 틀이 과연 절대적 기준이 될 수 있을까. 여러 사업을 벌여 덩치를 키우면 이해관계인들에게 힘이 생기고 함부로 망하게 둘 수도 없는 ‘정치적 현실’도 있다. 하지만 사업하는 사람들은 가치가 생기니까 모이고 함께 일하려면 지분 관계도 서로 엮여야 하는데 무작정 산업의 틀로만 재단해 떼어놓거나 혹은 억지로 모이게 해 아까운 기회를 없애 버리는 경우도 있다.
제품 시장경쟁을 전제로 산업을 분류하는 관행은 산업경제학의 틀을 따랐을 뿐 사업하는 사람들의 현실과는 거리가 있다. 여기에 맞춰 돈이 된다는 보장이 없는데 그 거리는 점점 더 벌어지고 있다. 다양한 사용자와 사업자가 모여 가치가 만들어지는 세상에는 별로 소용이 없다.
하물며 인터넷과 모바일로 전 세계적 범위에서 연결되는 현실에서는 더욱 그렇다.
◆돈과 사람이 모이는 이유
인생을 걸고 죽을힘을 다해 사업하는 사람들이 무의미하게 모이고 아무 곳에서나 사업을 할 이유는 없다. 고객들도 애써 번 돈을 아무데나 가서 쓸 리가 없다. 물론 개인 고객도 사업하는 사람으로서 또 다른 얼굴이 있고 모든 사업자는 사실 고객이기도 하므로 이들이 모이면 상권이 형성되고 도시가 발달한다.
제조업이 많이 모이면 산업단지로 진화하기도 한다. 지형·기후·물길이 더해지면 항구나 오아시스 같은 교역의 거점이 된다. 사람들이 좀 더 잘 모이게 자치 기구를 만들어 치안과 위생을 개선할 수 있고 원활하고 안전한 거래를 위한 규약을 만들 수도 있다.
역사에 보면 사업자들의 안전과 이익을 보호하기 위해 독자적 무장력을 갖추기도 하고 유흥업을 키워 사람과 돈이 더 잘 모이게 만들기도 했다.
세계의 상업도시들은 이렇게 진화한 결과다. 한국도 마찬가지다. 곳곳에 있는 재래시장이나 더 큰 규모로 진화한 동대문시장이 대표적 예다.
정치권력이 개입해 더 빨리 더 크게 진화하도록 도울 수는 있지만 억지로 모이게 할 수는 없다. 곳곳에 자리한 공업단지는 인위적으로 모이게 한 사례이지만 모여서 가치가 나오는 곳에 잘 만들었기 때문에 역할을 하고 남아 있는 것이다.
가치가 발생하지 않는 곳에 무리하게 만들다 보면 행정력은 고사하고 총칼로도 계속 돌아가게 할 수 없다. 일부 지역에 있는 애물단지 공항을 보면 알 수 있다.
시장이나 도시는 사람이 많이 모여야 장사가 된다. 서로 거래할 기회가 커질 뿐만 아니라 인간적 교류도 넓어진다. 경제학에서는 이를 ‘네트워크 효과(network effect)’라고 한다.
사람이 많이 모이면 이들을 대상으로 하는 좋은 상점들이 생기고 관련 서비스도 생긴다. 배송·보험·금융·수선 등의 사업이 대표적 예다.
제품에 필요한 부품이나 유지·보수 서비스도 생긴다. 이렇게 다른 사업들이 사용자와 연결되면서 가치가 만들어지는 것을 ‘교차 네트워크 효과(cross-side network effect)’라고 한다.
좋은 시장이나 도시를 만들기 위해 의도적으로 먼저 좋은 사업자를 파격적 조건으로 유치하기도 한다. 새로 여는 쇼핑몰이나 백화점이 어떻게든 샤넬을 입점시켜 부유한 고객 집단을 끌어보려는 노력과 마찬가지다.
이렇게 가치가 만들어지고 그 가치가 커지고 알려지면 돈과 사람이 더 모인다. 경제 지리 분야에서는 예전부터 다룬 내용이지만 사업들 사이의 관계가 만드는 가치를 조금 더 정확히 보여준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이런 진화의 과정은 한번 탄력이 붙으면 점점 확대되는 선순환(positive reinforcement)이 시작되고 한번 뒤처지면 따라잡기 어려워진다.
과거에는 지리적 조건이나 교통수단, 인구와 거주 여건 등의 제약 때문에 앞선 시장이나 도시가 무한히 커질 수 없었다. 반면 인터넷과 모바일로 연결되는 세상에서 유리한 지위를 차지한 거래 공동체는 훨씬 더 빠른 시간에 더 넓은 범위로 영역을 확대할 수 있다. 이른바 ‘승자 독식(winner takes all)’ 현상이다.
인터넷과 모바일로 연결되는 세상에서 새롭게 등장한 유통의 강자인 오픈 마켓을 생각해 보자.
아마존의 우월한 지위는 더욱 강력해지고 있다. 단순히 구매자와 판매자를 이어 주는 ‘안정적이고 신뢰성 있는 사이트’라는 원래의 성격을 넘어 직접 구매자의 생활 속에서 정보를 파악하고 구매를 만들어 내고 판매자의 제품 개발을 이끌어 내기도 한다.
여기에 배송과 물류의 체제를 포함해 하나의 ‘아마존 세상’을 만들고 있다.
실크로드의 교역 거점인 사마르칸트 상인들이 수천 년에 걸쳐 만들어 내던 상권과 거래의 체제를 몇 년 동안 더 넓은 범위에서 구현해 버렸다.
우리의 시장 진흥 정책이 가진 상인들에 대한 금융 지원, 시설 개선 지원 같은 수단들로 무엇을 할 수 있을까. 공정거래 정책으로 온라인 오픈 마켓의 확장을 막을 수 있을까. 막아서 고객과 판매자가 더 잘사는 세상이 될까.
◆연결과 변화에서 기회를 찾다
다양한 사업자들이 맞물려 가치가 만들어지면 새로운 기회는 연결과 변화에서 나온다. 제품과 서비스의 시장 범위를 중심으로 산업을 정의하고 경쟁력을 생각하는 방식으로는 기회를 잡을 수 없고 그렇게 기회를 만들려는 사업자들을 이해할 수도 없다.
리타 맥그래스 컬럼비아대 교수는 사업 무대(arena)의 개념으로 돈과 사람이 모이는 원리를 설명한다. 다양한 분야의 사업이 맞물려 연결되는 상황에서 경영자는 특정 고객 집단(customer segment)과 이들을 상대로 제공되는 제품과 서비스(offer), 이들이 만나는 장소(place)로 이뤄진 무대(arena)를 먼저 생각하고 거기에서 일어나는 다양한 경쟁과 협력 관계 속에서 사업 기회를 만들어 내야 한다.
무대에서 벌어지는 다양한 사업자의 연결은 시시각각 변화하므로 특정한 영역에서 갖는 우위는 일시적(transient) 성격을 가질 수밖에 없다. 연결과 변화를 빨리 읽고 대응하기 위해서는 다양한 실험적 시도를 계속해야 한다. 새로운 무대를 찾거나 만드는 노력도 해야 한다.
스마트폰의 성능을 높이고 관련된 기초 기술 능력을 키우는 일도 중요하지만 스마트폰을 매개로 연결되는 통신서비스와 관련 장비, 애플리케이션의 전반적 생태계의 연결과 변화를 읽어 보안·인증·원격진료 등의 사업 기회를 찾는 노력도 필요하다.
개인 미디어(personal media)로서의 스마트폰을 생각한다면 보고 듣고 즐기는 콘텐츠의 제작과 유통이 대중의 생활 속에서 어떻게 전개되는지 이해해야 한다.
애플은 아이폰을 단순한 통신 기기를 넘어 개인 미디어의 개념으로 확장해 아이폰을 중심으로 한 새로운 문화로 만들어내 정보통신의 판을 바꿨다.
먹고 놀고 쉬는 시간이 늘면 미디어의 역할과 사업으로서의 가치는 더욱 커진다. 새롭게 열리는 공간에서 돈과 사람의 흐름을 제대로 만들고 있을까.
지하철에서 신문을 사서 보는 사람은 거의 찾아보기 힘들다. 스포츠 신문의 영화를 누리던 사람들은 다 어디 갔을까. 1980년대 지하철과 버스를 장악했던 신문의 위상이나 인터넷 초기 몇몇 신문사 홈페이지의 힘을 생각해 보면 좀 더 일찍 이런 연결과 변화를 포착했다면 지금쯤 미디어 세상은 전혀 다른 모습일 것이다.
온 국민이 얘기하는 ‘한류 콘텐츠’는 저작권·출연료·모델료를 넘어 어떤 가치를 만들고 있을까.
고객과 사업자들은 가치가 만들어지는 흐름을 따라 자석에 끌리듯 서로 모인다. 인터넷과 모바일로 연결되는 세상은 더 넓은 범위에서 더 다양한 기회를 만들어 준다. 제품 시장경쟁이라는 산업경제학의 색 바랜 전통에만 얽매이면 달라진 세상을 따라잡지 못한다.
[본 기사는 한경비즈니스 제 1197호(2018.11.05 ~ 2018.11.11) 기사입니다.]
-돈과 사람 모여야 기회 생겨…‘산업’의 틀로 재단하면 생태계 위축
[한경비즈니스 칼럼=박찬희 중앙대 경영학부 교수] 초등학교 사회 시간에 전국의 산업단지를 외우면서 ‘쭉쭉 성장하는 우리나라’를 공부한 시절이 있었다. 곳곳에 들어서는 대형 건물이나 상가들을 분양만 하면 돈이 되던 시절의 얘기다.
반면 최근에는 지방 곳곳에 고객이 없어 쩔쩔매는 한산한 상가가 늘고 있고 심지어 서울 강남 한복판에도 임차인을 찾는 광고가 곳곳에 붙어 있다. 자리 좋은 곳에 만든 대형 쇼핑몰도 어떻게든 고객과 입주 업체를 찾으려고 무진 애를 쓰고 있다.
역사책에 나오는 유서 깊은 상업도시들도 같은 고민을 했다. 돈이 되는 거점들을 장악하기 위해 숱한 전쟁을 벌였다. 시대가 바뀌어 돈과 사람의 흐름이 달라지면 번성하던 지역이 몰락하고 새로운 상업과 생산의 거점들이 등장했다.
청해진·벽란도·신라방 등 국사책에 나오는 지명들도 크게 다르지 않다.
상권과 도시를 번성하게 만드는 비결은 없을까. 이미 경제 지리(economic geography)에는 훌륭한 연구 성과들이 있지만 전략 경영의 지혜로 조금 다른 각도에서 생각해 보자.
◆‘산업 분류’는 제품 시장 경쟁을 생각
경영학에는 특정 제품과 서비스의 시장 범위를 전제하는 ‘산업’의 관점에서 전략을 얘기할 때가 많다. 거시경제 전반의 정책이 아니라 특정한 부문을 지원하거나 규제하는 정책들 역시 주로 제품 시장에서의 경쟁에 초점을 둔다.
산업 진흥 정책, 공정거래 정책이 대표적인 예다. 이런 산업 중심의 생각은 분명히 나름의 장점이 있지만 적어도 다양한 사업이 맞물려 만들어 내는 가치를 이해하는 데는 한계가 있다.
마이클 포터 하버드대 비즈니스스쿨 석좌교수의 ‘경쟁전략(Competitive Strategy)’은 산업의 구조적 성격을 근거로 사업성을 분석한다. 사업 기회가 아무리 좋아도 능력이 있어야 잡을 수 있다는 ‘핵심 역량(core competence)’ 유형의 주장도 산업의 틀을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잘 알지도 못하는 사업을 잔뜩 벌이다가 회사를 망가뜨린 사례는 어디에나 있어 관련성이 낮은 사업들에 진출하는 ‘비관련 다각화’가 실익이 없다는 연구들이 제법 있다. 이들 역시 제품과 서비스의 시장 범위를 정리한 산업분류표를 근거로 하는데, 한국에서는 ‘문어발식 경영’을 비판하는 근거로 사용된다.
그런데 이런 ‘산업’의 틀이 과연 절대적 기준이 될 수 있을까. 여러 사업을 벌여 덩치를 키우면 이해관계인들에게 힘이 생기고 함부로 망하게 둘 수도 없는 ‘정치적 현실’도 있다. 하지만 사업하는 사람들은 가치가 생기니까 모이고 함께 일하려면 지분 관계도 서로 엮여야 하는데 무작정 산업의 틀로만 재단해 떼어놓거나 혹은 억지로 모이게 해 아까운 기회를 없애 버리는 경우도 있다.
제품 시장경쟁을 전제로 산업을 분류하는 관행은 산업경제학의 틀을 따랐을 뿐 사업하는 사람들의 현실과는 거리가 있다. 여기에 맞춰 돈이 된다는 보장이 없는데 그 거리는 점점 더 벌어지고 있다. 다양한 사용자와 사업자가 모여 가치가 만들어지는 세상에는 별로 소용이 없다.
하물며 인터넷과 모바일로 전 세계적 범위에서 연결되는 현실에서는 더욱 그렇다.
◆돈과 사람이 모이는 이유
인생을 걸고 죽을힘을 다해 사업하는 사람들이 무의미하게 모이고 아무 곳에서나 사업을 할 이유는 없다. 고객들도 애써 번 돈을 아무데나 가서 쓸 리가 없다. 물론 개인 고객도 사업하는 사람으로서 또 다른 얼굴이 있고 모든 사업자는 사실 고객이기도 하므로 이들이 모이면 상권이 형성되고 도시가 발달한다.
제조업이 많이 모이면 산업단지로 진화하기도 한다. 지형·기후·물길이 더해지면 항구나 오아시스 같은 교역의 거점이 된다. 사람들이 좀 더 잘 모이게 자치 기구를 만들어 치안과 위생을 개선할 수 있고 원활하고 안전한 거래를 위한 규약을 만들 수도 있다.
역사에 보면 사업자들의 안전과 이익을 보호하기 위해 독자적 무장력을 갖추기도 하고 유흥업을 키워 사람과 돈이 더 잘 모이게 만들기도 했다.
세계의 상업도시들은 이렇게 진화한 결과다. 한국도 마찬가지다. 곳곳에 있는 재래시장이나 더 큰 규모로 진화한 동대문시장이 대표적 예다.
정치권력이 개입해 더 빨리 더 크게 진화하도록 도울 수는 있지만 억지로 모이게 할 수는 없다. 곳곳에 자리한 공업단지는 인위적으로 모이게 한 사례이지만 모여서 가치가 나오는 곳에 잘 만들었기 때문에 역할을 하고 남아 있는 것이다.
가치가 발생하지 않는 곳에 무리하게 만들다 보면 행정력은 고사하고 총칼로도 계속 돌아가게 할 수 없다. 일부 지역에 있는 애물단지 공항을 보면 알 수 있다.
시장이나 도시는 사람이 많이 모여야 장사가 된다. 서로 거래할 기회가 커질 뿐만 아니라 인간적 교류도 넓어진다. 경제학에서는 이를 ‘네트워크 효과(network effect)’라고 한다.
사람이 많이 모이면 이들을 대상으로 하는 좋은 상점들이 생기고 관련 서비스도 생긴다. 배송·보험·금융·수선 등의 사업이 대표적 예다.
제품에 필요한 부품이나 유지·보수 서비스도 생긴다. 이렇게 다른 사업들이 사용자와 연결되면서 가치가 만들어지는 것을 ‘교차 네트워크 효과(cross-side network effect)’라고 한다.
좋은 시장이나 도시를 만들기 위해 의도적으로 먼저 좋은 사업자를 파격적 조건으로 유치하기도 한다. 새로 여는 쇼핑몰이나 백화점이 어떻게든 샤넬을 입점시켜 부유한 고객 집단을 끌어보려는 노력과 마찬가지다.
이렇게 가치가 만들어지고 그 가치가 커지고 알려지면 돈과 사람이 더 모인다. 경제 지리 분야에서는 예전부터 다룬 내용이지만 사업들 사이의 관계가 만드는 가치를 조금 더 정확히 보여준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이런 진화의 과정은 한번 탄력이 붙으면 점점 확대되는 선순환(positive reinforcement)이 시작되고 한번 뒤처지면 따라잡기 어려워진다.
과거에는 지리적 조건이나 교통수단, 인구와 거주 여건 등의 제약 때문에 앞선 시장이나 도시가 무한히 커질 수 없었다. 반면 인터넷과 모바일로 연결되는 세상에서 유리한 지위를 차지한 거래 공동체는 훨씬 더 빠른 시간에 더 넓은 범위로 영역을 확대할 수 있다. 이른바 ‘승자 독식(winner takes all)’ 현상이다.
인터넷과 모바일로 연결되는 세상에서 새롭게 등장한 유통의 강자인 오픈 마켓을 생각해 보자.
아마존의 우월한 지위는 더욱 강력해지고 있다. 단순히 구매자와 판매자를 이어 주는 ‘안정적이고 신뢰성 있는 사이트’라는 원래의 성격을 넘어 직접 구매자의 생활 속에서 정보를 파악하고 구매를 만들어 내고 판매자의 제품 개발을 이끌어 내기도 한다.
여기에 배송과 물류의 체제를 포함해 하나의 ‘아마존 세상’을 만들고 있다.
실크로드의 교역 거점인 사마르칸트 상인들이 수천 년에 걸쳐 만들어 내던 상권과 거래의 체제를 몇 년 동안 더 넓은 범위에서 구현해 버렸다.
우리의 시장 진흥 정책이 가진 상인들에 대한 금융 지원, 시설 개선 지원 같은 수단들로 무엇을 할 수 있을까. 공정거래 정책으로 온라인 오픈 마켓의 확장을 막을 수 있을까. 막아서 고객과 판매자가 더 잘사는 세상이 될까.
◆연결과 변화에서 기회를 찾다
다양한 사업자들이 맞물려 가치가 만들어지면 새로운 기회는 연결과 변화에서 나온다. 제품과 서비스의 시장 범위를 중심으로 산업을 정의하고 경쟁력을 생각하는 방식으로는 기회를 잡을 수 없고 그렇게 기회를 만들려는 사업자들을 이해할 수도 없다.
리타 맥그래스 컬럼비아대 교수는 사업 무대(arena)의 개념으로 돈과 사람이 모이는 원리를 설명한다. 다양한 분야의 사업이 맞물려 연결되는 상황에서 경영자는 특정 고객 집단(customer segment)과 이들을 상대로 제공되는 제품과 서비스(offer), 이들이 만나는 장소(place)로 이뤄진 무대(arena)를 먼저 생각하고 거기에서 일어나는 다양한 경쟁과 협력 관계 속에서 사업 기회를 만들어 내야 한다.
무대에서 벌어지는 다양한 사업자의 연결은 시시각각 변화하므로 특정한 영역에서 갖는 우위는 일시적(transient) 성격을 가질 수밖에 없다. 연결과 변화를 빨리 읽고 대응하기 위해서는 다양한 실험적 시도를 계속해야 한다. 새로운 무대를 찾거나 만드는 노력도 해야 한다.
스마트폰의 성능을 높이고 관련된 기초 기술 능력을 키우는 일도 중요하지만 스마트폰을 매개로 연결되는 통신서비스와 관련 장비, 애플리케이션의 전반적 생태계의 연결과 변화를 읽어 보안·인증·원격진료 등의 사업 기회를 찾는 노력도 필요하다.
개인 미디어(personal media)로서의 스마트폰을 생각한다면 보고 듣고 즐기는 콘텐츠의 제작과 유통이 대중의 생활 속에서 어떻게 전개되는지 이해해야 한다.
애플은 아이폰을 단순한 통신 기기를 넘어 개인 미디어의 개념으로 확장해 아이폰을 중심으로 한 새로운 문화로 만들어내 정보통신의 판을 바꿨다.
먹고 놀고 쉬는 시간이 늘면 미디어의 역할과 사업으로서의 가치는 더욱 커진다. 새롭게 열리는 공간에서 돈과 사람의 흐름을 제대로 만들고 있을까.
지하철에서 신문을 사서 보는 사람은 거의 찾아보기 힘들다. 스포츠 신문의 영화를 누리던 사람들은 다 어디 갔을까. 1980년대 지하철과 버스를 장악했던 신문의 위상이나 인터넷 초기 몇몇 신문사 홈페이지의 힘을 생각해 보면 좀 더 일찍 이런 연결과 변화를 포착했다면 지금쯤 미디어 세상은 전혀 다른 모습일 것이다.
온 국민이 얘기하는 ‘한류 콘텐츠’는 저작권·출연료·모델료를 넘어 어떤 가치를 만들고 있을까.
고객과 사업자들은 가치가 만들어지는 흐름을 따라 자석에 끌리듯 서로 모인다. 인터넷과 모바일로 연결되는 세상은 더 넓은 범위에서 더 다양한 기회를 만들어 준다. 제품 시장경쟁이라는 산업경제학의 색 바랜 전통에만 얽매이면 달라진 세상을 따라잡지 못한다.
[본 기사는 한경비즈니스 제 1197호(2018.11.05 ~ 2018.11.11)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