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트코인 A to Z]
-블록체인에 생체 DNA 담아 음식료 유통 혁신 가능… ‘가짜 음식’ 퇴출 노력
[오태민 크립토비트코인연구소장, ‘스마트콘트랙 : 신뢰혁명’ 저자] 비트코인과 블록체인이 10주년을 맞았다. 사토시 나카모토의 유명한 ‘백서’가 2008년 10월 세상에 나왔고 최초의 비트코인 블록은 그보다 두 달 뒤 만들어졌다. 첫째 블록의 유닉스 시간은 1231006505이다. 이를 그리니치 천문 시간으로 환산하면 2009년 1월 3일 오후 6시 15분 5초다. 만약 사토시 나카모토가 일본이나 한국에서 첫째 블록을 생성했다면 1월 4일 새벽 3시다. 하지만 발명자가 일본 이름을 사용했음에도 3일로 간주하는 게 대세다.
왜냐하면 역사에 기리 남을 최초 블록에 사토시 나카모토 자신이 날짜와 관련한 메시지를 남겨 놓았기 때문이다. 2008년 리먼브러더스 사태 이후 전 세계 금융권이 몸살을 앓고 있던 와중에 사토시 나카모토는 영국 신문의 헤드라인과 날짜를 첫째 블록에 새겨 넣었다. “더 타임즈 2009년 1월 3일자, 영국 재무장관이 은행들의 두 번째 구제금융에 내몰렸다(The Times 03/Jan/2009 Chancellor on brink of second bailout for banks).”
탄생 10년을 바라보는 비트코인
날짜를 남기는 뜻도 있었겠지만 은행 제도가 얼마나 쉽게 정치적으로 휘둘릴 수 있는지를 상기시키고자 했던 것 같다. 동일한 데이터를 기록하고 저장하는 전 세계 1만 개의 노드가 동시에 이 문구를 삭제하기로 하지 않는 한 이 기록은 영원히 남을 것이다. 어떤 사람들은 이 문구를 새겨 넣은 창시자의 의도를 달리 해석한다. 자신이 영원히 남는 기록 판을 만들었다는 사실 그 자체를 알리는 데 목적이 있었다는 것이다.
비트코인 정도의 분산성을 확보한 블록체인은 기록을 원본 그대로 박제할 수 있다. 시간이 가도 훼손되지 않을 뿐만 아니라 오히려 더 확고부동해진다. 국가 기록이나 재산권·계약·신원정보를 블록체인에 기록하면 분실이나 위변조를 막을 수 있다. 어쩌면 위변조를 막는다는 사실 그 자체보다 막을 수 있다는 지식의 공유에서 파생되는 신뢰가 더 중요할지 모른다.
식품의 공급 사슬망은 조밀한 네트워크를 이루고 있다. 그래서 소수 일탈자들의 탐욕만으로도 전 세계가 공포에 휩싸일 수 있다. 1년에 40만 명 정도가 가짜 식품 때문에 목숨을 잃는다고 한다. 농산물 이력을 블록체인으로 관리하면 기업을 믿지 않아도 된다.
월마트는 2016년부터 IBM과 협력해 블록체인의 식품 유통 추적 능력을 시험해 왔다. IBM과 월마트는 중국 내 돼지고기 유통망을 블록체인에 올리는 실험을 완료했다. 돼지 10만 마리를 도살했는데 돼지족발이 50만 개가 나온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 중국의 돼지고기 유통은 베일에 싸여 있다. 돼지가 태어나자마자 블록체인에 등록된다면 돼지와 연결되지 않은 족발은 블록체인에 올라갈 수 없다. 구입할 때 블록체인에 족보가 있는 족발인지만 확인하면 된다. 돼지족발은 도살할 때 생긴다는 통념은 더 이상 통하지 않는다. 생물학적으로 족발은 태어날 때 가지고 나오며 블록체인도 그렇게 인식한다. 한 발 더 나아가 월마트와 샘스클럽은 2019년부터 상추나 시금치 등 녹색 채소를 IBM의 블록체인 기술을 이용해 추적한다고 발표했다. 농장에서 마트까지의 흐름을 실시간으로 살피겠다는 것이다.
중국 알리바바의 설립자 마윈 역시 가짜 식품은 ‘명예’가 달린 사안이라고 말했다. 알리바바는 뉴질랜드산 쇠고기에 대해 블록체인 추적 시스템을 적용하는 실험을 시작했다.
영국의 프로브넌스는 인도네시아에서 잡히는 참치를 영국의 소비지까지 블록체인으로 추적하는 시스템을 구축했다. 한 해양 단체의 DNA 테스트에 의하면 미국에서 유통되는 참치 중 60%가 다른 생선이었다.
참치는 주로 인도네시아나 아프리카 해안에서 잡히지만 북미·유럽·동아시아에서 소비된다. 잡히고 나서 먼 거리를 이동하는 동안 일어날 수 있는 일이 많을 수밖에 없다. 참치가 블록체인에 올라오면 잡힌 장소와 시간, 잡은 사람, 가공 방법과 부위 등이 꼼꼼하게 기록되므로 소비자는 바코드에 스마트폰을 대기만 하면 꼭 알아야 할 사건들을 확인할 수 있다.
하지만 블록체인이 만능은 아니다. 애초에 틀린 정보가 입력된다면 블록체인은 오류를 쉽게 고칠 수 있는 전통적인 데이터베이스보다 더 위험할 수도 있다. 블록체인은 등록된 정보가 변하지 않았다는 것을 보장하는 시스템일 뿐 입력된 정보가 진실한지는 확인해 주지 않는다. 거짓된 정보가 입력됐다고 하더라고 블록체인은 이 정보가 변경되지 않도록 보호한다. 블록체인은 현실과 만나는 접점에서 가장 취약하다. 하지만 농산물엔 강력한 해결책이 있다. 바로 DNA 테스트다.
유전체는 그 자체가 빅데이터다. 하지만 어떤 동물이나 식물의 종을 확인해 주는 유전자 마커는 많은 용량을 차지하지 않는다. 검사비용, 검사 시간, 데이터 용량 부담이 크지 않다는 말이다. 참치인지아닌지 확인하는 것보다 특별한 종류의 참치를 확인하는 DNA 테스트는 더 비싸고 정교해야 하는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기술의 발달로 유전자 검사는 빠르게 저렴해지고 있다. 또 유전자 정보가 모일수록 정확도가 올라가고 비용은 더 내려간다. 소인지 아닌지 확인하는 수준에서 시작하더라도 시장이 호응한다면 기술 관련 투자가 일어나 한우인지 아닌지를 간단하게 확인할 수 있게 될 것이다. 더 나아가 특별한 돌연변이를 찾아 생산된 지역까지 파악할 수 있게 될 것이다.
기록의 원본성을 보장하는 블록체인이 날로 발달하고 있는 유전체학과 만나면 생명체의 식별에서 인류는 막강한 해결책을 손에 쥐게 될 것이다. 폭리에 눈이 먼 생산자나 유통업자 때문에 목숨을 걸고 음식을 섭취하는 시절이 과거의 역사로 남게 된다. 다만 블록체인만큼이나 유전체학도 기술보다 규제가 ‘병목 지점’이다. 이 문제를 해결하는 데 한국은 믿을 만한 선도자가 아니라는 사실이 우리가 직면한 진정한 문제 상황이다.
[돋보기] 여고생의 아이디어에서 출발한 음식 DNA 테스트
DNA 테스트로 음식이 라벨과 같은지를 확인하는 아이디어는 미국 뉴욕의 두 여고생이 원작자다. 2008년 명문 대학 입시를 준비하던 그들은 방과 후 활동의 하나로 맨해튼의 고급 스시집을 돌며 참치를 채취했고 이를 한 대학 연구소에 보냈다. 표본이 적어 통계적으로 유의하다고는 할 수 없었지만 4분의 1이 참치가 아닌 싸구려 생선이었다.
그들의 연구는 세계적으로 보도됐고 다음해에는 원하던 대학에 진학했다. 그로부터 10여 년이 지난 2017년 스위스의 스위스디코드(SwissDeCode)는 할랄 음식을 확인하는 DNA 키트를 출시했다. 할랄 음식은 유대교와 이슬람 신도들이 종교적으로 허용된 음식을 가리키는 데 대표적으로 돼지고기가 들어가지 않아야 한다. 미국에서 할랄 음식 시장은 2010년 이후 33%나 성장했다. 하지만 어떻게 라벨을 믿는가의 문제가 남는다. 결국 할랄 음식의 공급 사슬망 곳곳에 돼지가 들어 있지 않은지 테스트 하는 이들이 있어야 한다. 키트 한 세트가 100만원에 달하고 한 번 쓰면 더 이상 사용할 수 없는 데다 결과를 알 때까지 30분 정도 기다려야 한다.
음식물의 DNA 테스트는 10년 만에 대학의 연구소에서 공장이나 창고의 검사실로 옮겨온 셈이다. 조만간 주방과 레스토랑에서 십여 초 만에 라벨에 적힌 게 사실인지 알 수 있게 될 것이다. 과학적인 도구로 무장하고 매의 눈으로 감시하는 이들이 곳곳에 있으니 엉터리 라벨을 붙이는 업자들의 위험이 지나치게 증가할 것은 틀림없는 사실이다.
[본 기사는 한경비즈니스 제 1198호(2018.11.12 ~ 2018.11.18) 기사입니다.]
-블록체인에 생체 DNA 담아 음식료 유통 혁신 가능… ‘가짜 음식’ 퇴출 노력
[오태민 크립토비트코인연구소장, ‘스마트콘트랙 : 신뢰혁명’ 저자] 비트코인과 블록체인이 10주년을 맞았다. 사토시 나카모토의 유명한 ‘백서’가 2008년 10월 세상에 나왔고 최초의 비트코인 블록은 그보다 두 달 뒤 만들어졌다. 첫째 블록의 유닉스 시간은 1231006505이다. 이를 그리니치 천문 시간으로 환산하면 2009년 1월 3일 오후 6시 15분 5초다. 만약 사토시 나카모토가 일본이나 한국에서 첫째 블록을 생성했다면 1월 4일 새벽 3시다. 하지만 발명자가 일본 이름을 사용했음에도 3일로 간주하는 게 대세다.
왜냐하면 역사에 기리 남을 최초 블록에 사토시 나카모토 자신이 날짜와 관련한 메시지를 남겨 놓았기 때문이다. 2008년 리먼브러더스 사태 이후 전 세계 금융권이 몸살을 앓고 있던 와중에 사토시 나카모토는 영국 신문의 헤드라인과 날짜를 첫째 블록에 새겨 넣었다. “더 타임즈 2009년 1월 3일자, 영국 재무장관이 은행들의 두 번째 구제금융에 내몰렸다(The Times 03/Jan/2009 Chancellor on brink of second bailout for banks).”
탄생 10년을 바라보는 비트코인
날짜를 남기는 뜻도 있었겠지만 은행 제도가 얼마나 쉽게 정치적으로 휘둘릴 수 있는지를 상기시키고자 했던 것 같다. 동일한 데이터를 기록하고 저장하는 전 세계 1만 개의 노드가 동시에 이 문구를 삭제하기로 하지 않는 한 이 기록은 영원히 남을 것이다. 어떤 사람들은 이 문구를 새겨 넣은 창시자의 의도를 달리 해석한다. 자신이 영원히 남는 기록 판을 만들었다는 사실 그 자체를 알리는 데 목적이 있었다는 것이다.
비트코인 정도의 분산성을 확보한 블록체인은 기록을 원본 그대로 박제할 수 있다. 시간이 가도 훼손되지 않을 뿐만 아니라 오히려 더 확고부동해진다. 국가 기록이나 재산권·계약·신원정보를 블록체인에 기록하면 분실이나 위변조를 막을 수 있다. 어쩌면 위변조를 막는다는 사실 그 자체보다 막을 수 있다는 지식의 공유에서 파생되는 신뢰가 더 중요할지 모른다.
식품의 공급 사슬망은 조밀한 네트워크를 이루고 있다. 그래서 소수 일탈자들의 탐욕만으로도 전 세계가 공포에 휩싸일 수 있다. 1년에 40만 명 정도가 가짜 식품 때문에 목숨을 잃는다고 한다. 농산물 이력을 블록체인으로 관리하면 기업을 믿지 않아도 된다.
월마트는 2016년부터 IBM과 협력해 블록체인의 식품 유통 추적 능력을 시험해 왔다. IBM과 월마트는 중국 내 돼지고기 유통망을 블록체인에 올리는 실험을 완료했다. 돼지 10만 마리를 도살했는데 돼지족발이 50만 개가 나온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 중국의 돼지고기 유통은 베일에 싸여 있다. 돼지가 태어나자마자 블록체인에 등록된다면 돼지와 연결되지 않은 족발은 블록체인에 올라갈 수 없다. 구입할 때 블록체인에 족보가 있는 족발인지만 확인하면 된다. 돼지족발은 도살할 때 생긴다는 통념은 더 이상 통하지 않는다. 생물학적으로 족발은 태어날 때 가지고 나오며 블록체인도 그렇게 인식한다. 한 발 더 나아가 월마트와 샘스클럽은 2019년부터 상추나 시금치 등 녹색 채소를 IBM의 블록체인 기술을 이용해 추적한다고 발표했다. 농장에서 마트까지의 흐름을 실시간으로 살피겠다는 것이다.
중국 알리바바의 설립자 마윈 역시 가짜 식품은 ‘명예’가 달린 사안이라고 말했다. 알리바바는 뉴질랜드산 쇠고기에 대해 블록체인 추적 시스템을 적용하는 실험을 시작했다.
영국의 프로브넌스는 인도네시아에서 잡히는 참치를 영국의 소비지까지 블록체인으로 추적하는 시스템을 구축했다. 한 해양 단체의 DNA 테스트에 의하면 미국에서 유통되는 참치 중 60%가 다른 생선이었다.
참치는 주로 인도네시아나 아프리카 해안에서 잡히지만 북미·유럽·동아시아에서 소비된다. 잡히고 나서 먼 거리를 이동하는 동안 일어날 수 있는 일이 많을 수밖에 없다. 참치가 블록체인에 올라오면 잡힌 장소와 시간, 잡은 사람, 가공 방법과 부위 등이 꼼꼼하게 기록되므로 소비자는 바코드에 스마트폰을 대기만 하면 꼭 알아야 할 사건들을 확인할 수 있다.
하지만 블록체인이 만능은 아니다. 애초에 틀린 정보가 입력된다면 블록체인은 오류를 쉽게 고칠 수 있는 전통적인 데이터베이스보다 더 위험할 수도 있다. 블록체인은 등록된 정보가 변하지 않았다는 것을 보장하는 시스템일 뿐 입력된 정보가 진실한지는 확인해 주지 않는다. 거짓된 정보가 입력됐다고 하더라고 블록체인은 이 정보가 변경되지 않도록 보호한다. 블록체인은 현실과 만나는 접점에서 가장 취약하다. 하지만 농산물엔 강력한 해결책이 있다. 바로 DNA 테스트다.
유전체는 그 자체가 빅데이터다. 하지만 어떤 동물이나 식물의 종을 확인해 주는 유전자 마커는 많은 용량을 차지하지 않는다. 검사비용, 검사 시간, 데이터 용량 부담이 크지 않다는 말이다. 참치인지아닌지 확인하는 것보다 특별한 종류의 참치를 확인하는 DNA 테스트는 더 비싸고 정교해야 하는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기술의 발달로 유전자 검사는 빠르게 저렴해지고 있다. 또 유전자 정보가 모일수록 정확도가 올라가고 비용은 더 내려간다. 소인지 아닌지 확인하는 수준에서 시작하더라도 시장이 호응한다면 기술 관련 투자가 일어나 한우인지 아닌지를 간단하게 확인할 수 있게 될 것이다. 더 나아가 특별한 돌연변이를 찾아 생산된 지역까지 파악할 수 있게 될 것이다.
기록의 원본성을 보장하는 블록체인이 날로 발달하고 있는 유전체학과 만나면 생명체의 식별에서 인류는 막강한 해결책을 손에 쥐게 될 것이다. 폭리에 눈이 먼 생산자나 유통업자 때문에 목숨을 걸고 음식을 섭취하는 시절이 과거의 역사로 남게 된다. 다만 블록체인만큼이나 유전체학도 기술보다 규제가 ‘병목 지점’이다. 이 문제를 해결하는 데 한국은 믿을 만한 선도자가 아니라는 사실이 우리가 직면한 진정한 문제 상황이다.
[돋보기] 여고생의 아이디어에서 출발한 음식 DNA 테스트
DNA 테스트로 음식이 라벨과 같은지를 확인하는 아이디어는 미국 뉴욕의 두 여고생이 원작자다. 2008년 명문 대학 입시를 준비하던 그들은 방과 후 활동의 하나로 맨해튼의 고급 스시집을 돌며 참치를 채취했고 이를 한 대학 연구소에 보냈다. 표본이 적어 통계적으로 유의하다고는 할 수 없었지만 4분의 1이 참치가 아닌 싸구려 생선이었다.
그들의 연구는 세계적으로 보도됐고 다음해에는 원하던 대학에 진학했다. 그로부터 10여 년이 지난 2017년 스위스의 스위스디코드(SwissDeCode)는 할랄 음식을 확인하는 DNA 키트를 출시했다. 할랄 음식은 유대교와 이슬람 신도들이 종교적으로 허용된 음식을 가리키는 데 대표적으로 돼지고기가 들어가지 않아야 한다. 미국에서 할랄 음식 시장은 2010년 이후 33%나 성장했다. 하지만 어떻게 라벨을 믿는가의 문제가 남는다. 결국 할랄 음식의 공급 사슬망 곳곳에 돼지가 들어 있지 않은지 테스트 하는 이들이 있어야 한다. 키트 한 세트가 100만원에 달하고 한 번 쓰면 더 이상 사용할 수 없는 데다 결과를 알 때까지 30분 정도 기다려야 한다.
음식물의 DNA 테스트는 10년 만에 대학의 연구소에서 공장이나 창고의 검사실로 옮겨온 셈이다. 조만간 주방과 레스토랑에서 십여 초 만에 라벨에 적힌 게 사실인지 알 수 있게 될 것이다. 과학적인 도구로 무장하고 매의 눈으로 감시하는 이들이 곳곳에 있으니 엉터리 라벨을 붙이는 업자들의 위험이 지나치게 증가할 것은 틀림없는 사실이다.
[본 기사는 한경비즈니스 제 1198호(2018.11.12 ~ 2018.11.18)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