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셜 리포트]
- 신(新)남방정책 업고 국내 기업 진출 러시
- 인프라·세금·노동 등 환경 분석 ‘필수’
[한경비즈니스=차완용 기자] ‘포스트 차이나’로 부상하는 인도에 한국 기업들이 몰려든다. 미국과의 무역 전쟁, 성장률 둔화 때문에 투자 여건이 악화되고 있는 중국 대신 인도를 눈여겨보고 있는 것이다.
특히 지난해 중국 정부의 사드(고고도 미사일 방어 체계) 보복은 중국에 대한 기업들의 신뢰를 잃게 만든 결정타였다. 우리 정부도 ‘신(新)남방정책’의 거점으로 인도를 지목하고 문재인 대통령이 인도를 방문하는 등 양국 간 경제교류는 더욱 탄력을 받을 것으로 전망된다.
하지만 인도는 만만한 시장이 결코 아니다. 현지에서 성공할 가능성이 10% 미만이라는 말까지 나온다. 13억 인구의 구매력과 풍부한 자원만 믿고 투자했다가는 낭패를 볼 수 있다는 얘기다.
실제로 제너럴모터스(GM)·엔론·켈로그 등 유수의 글로벌 기업들을 비롯해 한국 최고의 철강 기업인 포스코마저 실패를 맛본 곳이 인도다. 2010년 인도 무드라 공장을 인수했던 이랜드는 7년간 고전하다가 지난해에서야 겨우 흑자 전환에 성공할 수 있었다.
이은홍 이랜드그룹 부사장(이랜드 아시아홀딩스 대표)은 “인도는 분명 내수시장·노동력·경제성장률 등 모든 면에서 매력적인 나라지만 외국 기업이 인도에 들어갈 때 열악한 인프라와 산업정책·노동법·노무관리 등으로 어려움을 겪을 수밖에 없다”며 “인도라는 나라에 적응하고 철저한 현지화 전략을 세우지 않으면 망하기 십상”이라고 말했다.
◆ 인구 13억, 연평균 GDP 성장률 7.4%
인도는 인구가 13억 명(세계 2위)에 달하고 국토는 한반도의 15배나 되는 거대한 나라다. 경제 규모도 세계 7위 약 2조6000억 달러가 넘는다. 더욱이 성장세도 가파르다. 최근 5년 연평균 국내총생산(GDP) 성장률은 무려 7.4%다.
원동력은 젊은 인력이다. 인구의 44%가 24세 이하로 생산가능인구(15~64세)가 2040년까지 계속 늘어날 전망이다. 향후 20년간 세계에서 가장 젊은 국가를 유지한다는 뜻이다.
당연히 내수 시장도 활기가 넘친다. 맥킨지 글로벌인스티튜트에 따르면 인도 중산층 인구는 2020년 2억 명에서 2030년 5억 명으로 급증할 전망이다.
특히 인도는 정보기술(IT) 산업에서 우수한 인재들을 배출하고 있다. 1991년 인도의 경제 개방 이후 북미와 유럽 기업들이 인도에 IT 서비스업을 위탁한 게 시작이었다. 영어 소통이 가능하고 인건비도 저렴했기 때문이다.
단순직을 도맡았던 인도 IT 인력들은 이제 세계 IT 산업의 중심인 미국 실리콘밸리를 주름잡고 있다. 구글의 순다르 피차이, 마이크로소프트의 사티아 나델라, 어도비의 샨타누 나라옌 등 굴지의 IT 기업 최고경영자(CEO)들이 인도 출신이다.
미국 과학자의 12%가 인도계라는 통계도 있다. 최근에는 하드웨어 투자도 집중되고 있다. 일례로 4년 전 2곳에 불과했던 휴대전화 공장이 현재는 120여 곳에 이른다.
삼성전자 역시 최근 8000억원을 투자해 인도 뉴델리 인근 노이다에 세계 최대 규모의 휴대전화 공장을 완공했다. 연간 생산 규모는 1억2000만 대에 달한다.
인도는 글로벌 기업들의 투자도 활발하다. 2013년 미국 아마존이 현지법인을 설립했고 중국 알리바바는 2015년 인도의 간편 결제 업체 페이TM에 거액을 투자했다. 일본 소프트뱅크도 2014년부터 전자 상거래와 물류 투자에 나서고 있다.
◆ 인도로 향하는 한국 기업들
한국 기업들 역시 인도에 적극적인 투자에 나서고 있다. 인도는 한국의 7위 교역국이다. 지난해 대(對)인도 수출은 151억 달러로 전년 대비 29.8% 증가했다. 수입은 18.1% 증가한 49억 달러를 기록했다.
향후 교역 규모는 크게 확대될 것으로 보인다. 문재인 대통령과 나렌드라 모디 총리는 정상회담을 통해 2030년까지 양국 교역액을 현재의 2.5배인 500억 달러로 늘리기로 합의했다. 또 포괄적경제동반자협정(CEPA) 개정 협상을 조속히 타결하는 데도 뜻을 모았다.
정상회담 직후 김현종 통상교섭본부장은 “7년 뒤 인구 최대 국가로 올라설 인도의 성장은 이제 시작”이라며 “인도를 하루빨리 4강 수준의 경제 파트너로 격상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하기도 했다.
이미 한국의 주요 대기업들은 일찌감치 인도에 생산기지를 마련했다. 삼성전자는 1996년 제품 현지화를 위한 벵갈루루연구소를 시작으로 노이다와 첸나이에 휴대전화·가전제품 공장을 설립했다.
이번에 문 대통령이 방문했던 노이다공장은 2016년 삼성이 6억5000만 달러를 들여 증설한 인도 최대의 스마트폰 공장이다. LG전자 역시 노이다와 푸네 등에 스마트폰과 가전 공장을 가동 중이다.
현대차 등 자동차업계는 첸나이 지역에 주로 진출해 있다. 포스코는 마하라슈트라에 자동차용 강판 등 냉연 공장을 가지고 있다. 롯데제과는 첸나이와 델리에서 초코파이를 생산한다.
최근에는 중소기업도 인도 시장을 주목하고 있다. 중소기업연구원이 내놓은 보고서에 따르면 지난해 신뢰할 만한 해외 바이어의 구매 오퍼(수입 희망 제품에 대한 문의)가 가장 많은 국가가 인도였다.
보고서는 “인도는 세계 3위권의 내수시장을 가진 데다 적극적인 제조업 육성 정책으로 ‘세계의 공장’을 지향하고 있고 세계에서 가장 많은 이민자를 갖고 있어 중동과 아프리카 등을 향한 교두보가 될 수 있을 것”이라고 평가했다.
세계적인 IT 기업들의 아웃소싱이 인도에서 이뤄질 정도로 IT 기술력이 앞선 점도 매력 포인트다. 한국무역협회 국제무역연구원은 인도 진출에 유망한 진출 분야로 건설·사물인터넷(IoT)·웰빙 식품을 꼽았다.
건설업엔 정부와 민간투자가 급증하고 있다. 인도 정부는 올해 도로 건설 예산을 7054억 루피(약 11조4700억 원)로 책정해 지난해에 비해 13.9% 늘렸고 철도에는 12.9% 증가한 1조4800억 루피(약 24조648억원)를 배정했다.
외국인 투자 지분 한도 확대, 최소 투자 기준 완화 등 투자 환경도 좋아지고 있다. IoT는 세계 2위의 인터넷 사용자 수와 ‘디지털 인디아’, ‘IoT 발전 생태계 구축’ 등 인도 정부의 4차 산업혁명 육성 정책 덕에 2020년까지 연평균 28% 성장할 것으로 전망된다.
특히 칼로리 소모, 심박 수, 운동량 등을 측정하는 건강 관련 웨어러블 제품 수요가 늘고 있다. 소득 증가와 건강에 대한 관심이 늘면서 웰빙 포장식품 수요도 커지고 있다. 인도 웰빙 포장식품 시장은 2021년 1조 루피(약 16조2600억원)를 넘어설 것으로 보인다.
다만 인도에 대한 전문 지식이 부족하고 품질보다 가격이 중요시되는 인도 시장 특성상 가격 경쟁력을 확보해야 하는 것은 국내 기업이 풀어야 할 과제다.
조이현 중소기업연구원 수석연구위원은 “인도는 영토가 넓고 인구가 많을 뿐만 아니라 민족·종교·문화 등이 다양하고 복잡한데 정부와 공공기관이 제공하는 정보는 포괄적이고 일반적인 수준”이라며 “현지 저가 제품과 한국 우수 제품의 차이를 인도 소비자들이 제대로 인식하지 못한다는 점도 유념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 쉽지만은 않은 인도 진출, 대기업들도 ‘혼쭐’
실제로 인도에 들어갔다가 혼쭐이 난 기업들이 여럿이다. 중소기업은 말할 것도 없고 글로벌 시장을 움켜쥐고 있는 대기업들도 고전하는 시장이다.
인도 진출 실패 기업 중에는 미국의 에너지 기업 엔론을 들 수 있다. 엔론은 1992년 인도 서부 마하라슈트라 주의 다브홀에 천연가스 발전소를 짓겠다고 발표했다. 투자 규모가 30억 달러에 달해 당시 기준으로 인도 최대의 외국인 투자 프로젝트였다.
다브홀 발전소 인근에는 9만여 명의 주민이 살고 있었다. 주로 농업이나 어업에 종사하는 이들이었다. 그런데 발전소가 지어진 후 인근 해수 온도가 오르면서 어획량이 줄고 농사에 필요한 물이 부족해지기 시작했다.
시민들은 시위에 나섰고 인도 내에서 엔론에 대한 부정적인 여론이 높아졌다. 그러자 돌연 인도 정부는 엔론과의 계약을 재검토했고 결국 2001년 6월 계약을 파기하기에 이른다. 설상가상으로 그해 말 대규모 회계 부정이 밝혀지면서 엔론은 파산 신청을 하게 된다.
다브홀 프로젝트 실패가 엔론 파산의 직접적인 원인은 아니었지만 엔론이 인도 진출 실패로 날린 돈만 10억 달러에 달했다.
세계적인 간편식 브랜드 ‘콘플레이크’로 유명한 켈로그도 인도 시장에서 어려움을 겪었다. 켈로그는 1994년 6500만 달러를 투자해 인도에 생산설비를 마련하고 대대적인 시리얼 판매에 나섰다.
하지만 좀처럼 성과가 나지 않았다. 인도의 식습관을 고려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인도인들은 도사(인도식 팬케이크) 같은 전통음식을 아침식사로 즐긴다.
더욱이 인도에서는 우유를 따뜻하게 데워 마시기 때문에 과자처럼 생긴 시리얼에 찬 우유를 부어 먹는 것이 낯설 수밖에 없었다. 시리얼 가격이 인도의 전통적인 아침 식사보다 세 배 이상 비싼 것도 문제였다.
이후 켈로그는 인도인의 기호에 맞는 제품을 내놓으며 전략을 수정했고 지금은 인도 시장에 안착했다.
포스코도 인도에서 쓴맛을 봤다. 포스코는 2005년 오디샤 주정부와 양해각서(MOU)를 체결하고 오디샤 주 파라딥 해변에 연산 1200만 톤의 일관 제철소 투자에 나섰다. 이 프로젝트를 위해 120억 달러를 투자할 계획이었다.
하지만 지역주민들의 반발이 거세지면서 공사는 시작도 하지 못했다. 지역주민들은 생활 터전을 지키겠다며 공사 현장으로 들어가는 진입로를 막았다. 경찰이 시위대를 진압하는 과정에서 지역주민이 총상을 입기도 했다.
표류하는 일관 제철소 건설을 위해 한국 정부가 나섰지만 허사였다. 2010년 이명박 당시 대통령이 인도 총리를 만나 지원을 요청했지만 지역주민들의 반발을 꺾을 수 없었다.
인도 중앙정부와 주정부의 대립도 문제였다. 인도에서는 중앙정부와 주정부의 세금 정책이나 산업정책이 다른 경우가 있기 때문에 포스코처럼 현지 진출 과정에서 어려움을 겪는 일이 종종 발생한다.
◆ 수많은 인구·종교·문화에 감춰진 ‘가시’
인도는 다양한 인종·종교·문화가 어우러진 나라다. 사람들마다, 도시마다 성격이 다르다. 일례로 인도의 공용어는 힌두어와 영어지만 정부가 공식적으로 인정한 언어만 22개나 된다.
인도 지폐에도 대표적인 언어 17개가 등장한다. 힌두·자이나·시크·불교 등 4개 종교의 발생지이며 개인이 종교가 없다는 것을 이해하지 못할 만큼 종교가 삶에 밀착돼 있다.
현지에서 통신 기기 제조 사업을 하고 있는 임 모 사장은 “직원들의 종교가 3~5개인데 미리 교통정리가 되지 않으면 특정 종교를 가진 사람들이 몽땅 결석할 때가 있다”며 “이런 문제가 워낙 빈번해 항상 생산에 차질을 빚고 있다”고 말했다.
인도는 노동력이 풍부하고 임금이 낮지만 노동생산성이 매우 낮은 나라로 꼽힌다. 현지 채용 근무자 대부분이 근로의식이 부족해 약간의 돈이 모이면 생산지를 무단 이탈하는 사례가 자주 발생한다.
또한 인도는 노동자들의 자존심이 강하기로도 유명하며 파업 등 집단행동에도 노동자들의 단합이 잘 이뤄진다.
실제로 2012년 일본이 스즈키가 운영하는 마네사르 공장에서는 3000여 명의 노동자가 파업에 들어갔다. 공장 내 일본인들의 영향력이 확대되면서 인도인들이 느끼는 이질감과 박탈감으로 노동자들이 자제심을 잃고 집단 반발행동에 나선 것이다.
즉 관리자들의 엄격한 규율에 반기를 든 셈이다. 이 사태로 스즈키는 결국 300명 이상의 현지 인력을 해고했고 사태가 완전히 진압될 때까지 공장 가동을 수개월간 멈추기도 했다.
인도에 들어온 기업들 중 어려움을 토로하는 것 중 하나는 세금이다. 세금 구조가 복잡해 세무공무원들의 재량권이 많다는 점이 어려움으로 꼽힌다. 세법을 잘아는 변호사나 세무공무원의 도움이 필요한 셈이다.
또 인도 상인의 상술은 유명하다. 가격에 민감하고 적은 수량을 주문하면서도 이것저것 물어보거나 요구하는 예도 많다. 당연히 지불해야 하는 대금을 지연하다가 사기를 치기도 한다. 인도 기업들과 거래해 본 기업들이나 인도 전문가들은 외상거래를 절대 하지 말라고 충고한다.
협상할 때도 결정권을 가진 사람인지 여부를 확인하는 것이 중요하다. 인도의 유명한 기업 그룹에 속해 있는 기업이더라도 해당 그룹과의 연결 고리가 없어 사업상 문제가 발생해도 이를 문제 삼을 수 없는 경우가 있다.
인도에서 사업은 자기가 속한 자띠(같은 직업을 가진 카스트)의 이익을 최선으로 한다는 목적 아래 이뤄진다.
따라서 같은 자띠에 속한 구성원들에게 사업하기를 권유해 상대방이 자신의 이름을 도용하는 것을 눈감아 준다. 문제가 발생하면 도마뱀 꼬리 자르듯이 모른다고 해 대응할 방법을 찾기가 쉽지 않다.
◆ KOTRA·수출입銀 적극 활용 현지인에 행정절차 맡겨야
인도에서 성공한 국내 기업들의 공통점은 철저한 시장조사와 현지인 경영이다. 다른 나라와 달리 단독 투자가 많은 것이 특징이다. 인도 현지 파트너와의 갈등으로 사업이 문제점에 봉착할 때도 많아 인도 전문가들은 단독 투자를 추천한다.
인도 상업·자원부에는 산업정책·진흥국(www.dipp.nic.in)이 있다. 여기에 외국인 직접투자(FDI)에 대한 매뉴얼이 있다. 이곳에서는 매월 SIA 뉴스레터를 발간한다. 외국인 직접투자에 대한 각종 통계나 정부의 투자 유인 정책 등이 담겨 있는 만큼 이를 참고할 필요가 있다.
매년 2월 28일 발표되는 인도 예산안 내용도 꼼꼼히 살펴봐야 한다. 인도 정부가 정책적으로 발전시키려는 사업, 각종 세금 정책 등이 담긴다.
대기업과 달리 정보나 인력면에서 많이 뒤지는 중소기업은 KOTRA나 한국수출입은행의 도움을 받거나 인도산업연맹(CII)의 자료를 이용하는 것도 한 방법이다.
CII는 인도 전역에 55개의 지점을 갖고 있고 700여 명이 일하고 있다. 전국경제인연합회와 양해각서를 체결했고 한국 기업의 투자 유치에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다.
수출입은행은 중소기업을 위해 국제 팩토링 제도를 운영하고 있다. 수출입은행이 인도의 17개 은행과 계약해 수출업체가 받을 외상 수출 대금을 약간의 수수료만 제외하고 미리 받아주는 방식이다.
수출 계약에 앞서 팩토링을 신청, 수입 업자의 신용도 등을 인도 은행을 통해 확인할 수 있다는 것도 한 방법이다. 인도 은행들은 인도 내 다른 기관들에 비해 투명하고 안정적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cwy@hanyung.com
[본 기사는 한경비즈니스 제 1198호(2018.11.12 ~ 2018.11.18) 기사입니다.]
- 신(新)남방정책 업고 국내 기업 진출 러시
- 인프라·세금·노동 등 환경 분석 ‘필수’
[한경비즈니스=차완용 기자] ‘포스트 차이나’로 부상하는 인도에 한국 기업들이 몰려든다. 미국과의 무역 전쟁, 성장률 둔화 때문에 투자 여건이 악화되고 있는 중국 대신 인도를 눈여겨보고 있는 것이다.
특히 지난해 중국 정부의 사드(고고도 미사일 방어 체계) 보복은 중국에 대한 기업들의 신뢰를 잃게 만든 결정타였다. 우리 정부도 ‘신(新)남방정책’의 거점으로 인도를 지목하고 문재인 대통령이 인도를 방문하는 등 양국 간 경제교류는 더욱 탄력을 받을 것으로 전망된다.
하지만 인도는 만만한 시장이 결코 아니다. 현지에서 성공할 가능성이 10% 미만이라는 말까지 나온다. 13억 인구의 구매력과 풍부한 자원만 믿고 투자했다가는 낭패를 볼 수 있다는 얘기다.
실제로 제너럴모터스(GM)·엔론·켈로그 등 유수의 글로벌 기업들을 비롯해 한국 최고의 철강 기업인 포스코마저 실패를 맛본 곳이 인도다. 2010년 인도 무드라 공장을 인수했던 이랜드는 7년간 고전하다가 지난해에서야 겨우 흑자 전환에 성공할 수 있었다.
이은홍 이랜드그룹 부사장(이랜드 아시아홀딩스 대표)은 “인도는 분명 내수시장·노동력·경제성장률 등 모든 면에서 매력적인 나라지만 외국 기업이 인도에 들어갈 때 열악한 인프라와 산업정책·노동법·노무관리 등으로 어려움을 겪을 수밖에 없다”며 “인도라는 나라에 적응하고 철저한 현지화 전략을 세우지 않으면 망하기 십상”이라고 말했다.
◆ 인구 13억, 연평균 GDP 성장률 7.4%
인도는 인구가 13억 명(세계 2위)에 달하고 국토는 한반도의 15배나 되는 거대한 나라다. 경제 규모도 세계 7위 약 2조6000억 달러가 넘는다. 더욱이 성장세도 가파르다. 최근 5년 연평균 국내총생산(GDP) 성장률은 무려 7.4%다.
원동력은 젊은 인력이다. 인구의 44%가 24세 이하로 생산가능인구(15~64세)가 2040년까지 계속 늘어날 전망이다. 향후 20년간 세계에서 가장 젊은 국가를 유지한다는 뜻이다.
당연히 내수 시장도 활기가 넘친다. 맥킨지 글로벌인스티튜트에 따르면 인도 중산층 인구는 2020년 2억 명에서 2030년 5억 명으로 급증할 전망이다.
특히 인도는 정보기술(IT) 산업에서 우수한 인재들을 배출하고 있다. 1991년 인도의 경제 개방 이후 북미와 유럽 기업들이 인도에 IT 서비스업을 위탁한 게 시작이었다. 영어 소통이 가능하고 인건비도 저렴했기 때문이다.
단순직을 도맡았던 인도 IT 인력들은 이제 세계 IT 산업의 중심인 미국 실리콘밸리를 주름잡고 있다. 구글의 순다르 피차이, 마이크로소프트의 사티아 나델라, 어도비의 샨타누 나라옌 등 굴지의 IT 기업 최고경영자(CEO)들이 인도 출신이다.
미국 과학자의 12%가 인도계라는 통계도 있다. 최근에는 하드웨어 투자도 집중되고 있다. 일례로 4년 전 2곳에 불과했던 휴대전화 공장이 현재는 120여 곳에 이른다.
삼성전자 역시 최근 8000억원을 투자해 인도 뉴델리 인근 노이다에 세계 최대 규모의 휴대전화 공장을 완공했다. 연간 생산 규모는 1억2000만 대에 달한다.
인도는 글로벌 기업들의 투자도 활발하다. 2013년 미국 아마존이 현지법인을 설립했고 중국 알리바바는 2015년 인도의 간편 결제 업체 페이TM에 거액을 투자했다. 일본 소프트뱅크도 2014년부터 전자 상거래와 물류 투자에 나서고 있다.
◆ 인도로 향하는 한국 기업들
한국 기업들 역시 인도에 적극적인 투자에 나서고 있다. 인도는 한국의 7위 교역국이다. 지난해 대(對)인도 수출은 151억 달러로 전년 대비 29.8% 증가했다. 수입은 18.1% 증가한 49억 달러를 기록했다.
향후 교역 규모는 크게 확대될 것으로 보인다. 문재인 대통령과 나렌드라 모디 총리는 정상회담을 통해 2030년까지 양국 교역액을 현재의 2.5배인 500억 달러로 늘리기로 합의했다. 또 포괄적경제동반자협정(CEPA) 개정 협상을 조속히 타결하는 데도 뜻을 모았다.
정상회담 직후 김현종 통상교섭본부장은 “7년 뒤 인구 최대 국가로 올라설 인도의 성장은 이제 시작”이라며 “인도를 하루빨리 4강 수준의 경제 파트너로 격상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하기도 했다.
이미 한국의 주요 대기업들은 일찌감치 인도에 생산기지를 마련했다. 삼성전자는 1996년 제품 현지화를 위한 벵갈루루연구소를 시작으로 노이다와 첸나이에 휴대전화·가전제품 공장을 설립했다.
이번에 문 대통령이 방문했던 노이다공장은 2016년 삼성이 6억5000만 달러를 들여 증설한 인도 최대의 스마트폰 공장이다. LG전자 역시 노이다와 푸네 등에 스마트폰과 가전 공장을 가동 중이다.
현대차 등 자동차업계는 첸나이 지역에 주로 진출해 있다. 포스코는 마하라슈트라에 자동차용 강판 등 냉연 공장을 가지고 있다. 롯데제과는 첸나이와 델리에서 초코파이를 생산한다.
최근에는 중소기업도 인도 시장을 주목하고 있다. 중소기업연구원이 내놓은 보고서에 따르면 지난해 신뢰할 만한 해외 바이어의 구매 오퍼(수입 희망 제품에 대한 문의)가 가장 많은 국가가 인도였다.
보고서는 “인도는 세계 3위권의 내수시장을 가진 데다 적극적인 제조업 육성 정책으로 ‘세계의 공장’을 지향하고 있고 세계에서 가장 많은 이민자를 갖고 있어 중동과 아프리카 등을 향한 교두보가 될 수 있을 것”이라고 평가했다.
세계적인 IT 기업들의 아웃소싱이 인도에서 이뤄질 정도로 IT 기술력이 앞선 점도 매력 포인트다. 한국무역협회 국제무역연구원은 인도 진출에 유망한 진출 분야로 건설·사물인터넷(IoT)·웰빙 식품을 꼽았다.
건설업엔 정부와 민간투자가 급증하고 있다. 인도 정부는 올해 도로 건설 예산을 7054억 루피(약 11조4700억 원)로 책정해 지난해에 비해 13.9% 늘렸고 철도에는 12.9% 증가한 1조4800억 루피(약 24조648억원)를 배정했다.
외국인 투자 지분 한도 확대, 최소 투자 기준 완화 등 투자 환경도 좋아지고 있다. IoT는 세계 2위의 인터넷 사용자 수와 ‘디지털 인디아’, ‘IoT 발전 생태계 구축’ 등 인도 정부의 4차 산업혁명 육성 정책 덕에 2020년까지 연평균 28% 성장할 것으로 전망된다.
특히 칼로리 소모, 심박 수, 운동량 등을 측정하는 건강 관련 웨어러블 제품 수요가 늘고 있다. 소득 증가와 건강에 대한 관심이 늘면서 웰빙 포장식품 수요도 커지고 있다. 인도 웰빙 포장식품 시장은 2021년 1조 루피(약 16조2600억원)를 넘어설 것으로 보인다.
다만 인도에 대한 전문 지식이 부족하고 품질보다 가격이 중요시되는 인도 시장 특성상 가격 경쟁력을 확보해야 하는 것은 국내 기업이 풀어야 할 과제다.
조이현 중소기업연구원 수석연구위원은 “인도는 영토가 넓고 인구가 많을 뿐만 아니라 민족·종교·문화 등이 다양하고 복잡한데 정부와 공공기관이 제공하는 정보는 포괄적이고 일반적인 수준”이라며 “현지 저가 제품과 한국 우수 제품의 차이를 인도 소비자들이 제대로 인식하지 못한다는 점도 유념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 쉽지만은 않은 인도 진출, 대기업들도 ‘혼쭐’
실제로 인도에 들어갔다가 혼쭐이 난 기업들이 여럿이다. 중소기업은 말할 것도 없고 글로벌 시장을 움켜쥐고 있는 대기업들도 고전하는 시장이다.
인도 진출 실패 기업 중에는 미국의 에너지 기업 엔론을 들 수 있다. 엔론은 1992년 인도 서부 마하라슈트라 주의 다브홀에 천연가스 발전소를 짓겠다고 발표했다. 투자 규모가 30억 달러에 달해 당시 기준으로 인도 최대의 외국인 투자 프로젝트였다.
다브홀 발전소 인근에는 9만여 명의 주민이 살고 있었다. 주로 농업이나 어업에 종사하는 이들이었다. 그런데 발전소가 지어진 후 인근 해수 온도가 오르면서 어획량이 줄고 농사에 필요한 물이 부족해지기 시작했다.
시민들은 시위에 나섰고 인도 내에서 엔론에 대한 부정적인 여론이 높아졌다. 그러자 돌연 인도 정부는 엔론과의 계약을 재검토했고 결국 2001년 6월 계약을 파기하기에 이른다. 설상가상으로 그해 말 대규모 회계 부정이 밝혀지면서 엔론은 파산 신청을 하게 된다.
다브홀 프로젝트 실패가 엔론 파산의 직접적인 원인은 아니었지만 엔론이 인도 진출 실패로 날린 돈만 10억 달러에 달했다.
세계적인 간편식 브랜드 ‘콘플레이크’로 유명한 켈로그도 인도 시장에서 어려움을 겪었다. 켈로그는 1994년 6500만 달러를 투자해 인도에 생산설비를 마련하고 대대적인 시리얼 판매에 나섰다.
하지만 좀처럼 성과가 나지 않았다. 인도의 식습관을 고려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인도인들은 도사(인도식 팬케이크) 같은 전통음식을 아침식사로 즐긴다.
더욱이 인도에서는 우유를 따뜻하게 데워 마시기 때문에 과자처럼 생긴 시리얼에 찬 우유를 부어 먹는 것이 낯설 수밖에 없었다. 시리얼 가격이 인도의 전통적인 아침 식사보다 세 배 이상 비싼 것도 문제였다.
이후 켈로그는 인도인의 기호에 맞는 제품을 내놓으며 전략을 수정했고 지금은 인도 시장에 안착했다.
포스코도 인도에서 쓴맛을 봤다. 포스코는 2005년 오디샤 주정부와 양해각서(MOU)를 체결하고 오디샤 주 파라딥 해변에 연산 1200만 톤의 일관 제철소 투자에 나섰다. 이 프로젝트를 위해 120억 달러를 투자할 계획이었다.
하지만 지역주민들의 반발이 거세지면서 공사는 시작도 하지 못했다. 지역주민들은 생활 터전을 지키겠다며 공사 현장으로 들어가는 진입로를 막았다. 경찰이 시위대를 진압하는 과정에서 지역주민이 총상을 입기도 했다.
표류하는 일관 제철소 건설을 위해 한국 정부가 나섰지만 허사였다. 2010년 이명박 당시 대통령이 인도 총리를 만나 지원을 요청했지만 지역주민들의 반발을 꺾을 수 없었다.
인도 중앙정부와 주정부의 대립도 문제였다. 인도에서는 중앙정부와 주정부의 세금 정책이나 산업정책이 다른 경우가 있기 때문에 포스코처럼 현지 진출 과정에서 어려움을 겪는 일이 종종 발생한다.
◆ 수많은 인구·종교·문화에 감춰진 ‘가시’
인도는 다양한 인종·종교·문화가 어우러진 나라다. 사람들마다, 도시마다 성격이 다르다. 일례로 인도의 공용어는 힌두어와 영어지만 정부가 공식적으로 인정한 언어만 22개나 된다.
인도 지폐에도 대표적인 언어 17개가 등장한다. 힌두·자이나·시크·불교 등 4개 종교의 발생지이며 개인이 종교가 없다는 것을 이해하지 못할 만큼 종교가 삶에 밀착돼 있다.
현지에서 통신 기기 제조 사업을 하고 있는 임 모 사장은 “직원들의 종교가 3~5개인데 미리 교통정리가 되지 않으면 특정 종교를 가진 사람들이 몽땅 결석할 때가 있다”며 “이런 문제가 워낙 빈번해 항상 생산에 차질을 빚고 있다”고 말했다.
인도는 노동력이 풍부하고 임금이 낮지만 노동생산성이 매우 낮은 나라로 꼽힌다. 현지 채용 근무자 대부분이 근로의식이 부족해 약간의 돈이 모이면 생산지를 무단 이탈하는 사례가 자주 발생한다.
또한 인도는 노동자들의 자존심이 강하기로도 유명하며 파업 등 집단행동에도 노동자들의 단합이 잘 이뤄진다.
실제로 2012년 일본이 스즈키가 운영하는 마네사르 공장에서는 3000여 명의 노동자가 파업에 들어갔다. 공장 내 일본인들의 영향력이 확대되면서 인도인들이 느끼는 이질감과 박탈감으로 노동자들이 자제심을 잃고 집단 반발행동에 나선 것이다.
즉 관리자들의 엄격한 규율에 반기를 든 셈이다. 이 사태로 스즈키는 결국 300명 이상의 현지 인력을 해고했고 사태가 완전히 진압될 때까지 공장 가동을 수개월간 멈추기도 했다.
인도에 들어온 기업들 중 어려움을 토로하는 것 중 하나는 세금이다. 세금 구조가 복잡해 세무공무원들의 재량권이 많다는 점이 어려움으로 꼽힌다. 세법을 잘아는 변호사나 세무공무원의 도움이 필요한 셈이다.
또 인도 상인의 상술은 유명하다. 가격에 민감하고 적은 수량을 주문하면서도 이것저것 물어보거나 요구하는 예도 많다. 당연히 지불해야 하는 대금을 지연하다가 사기를 치기도 한다. 인도 기업들과 거래해 본 기업들이나 인도 전문가들은 외상거래를 절대 하지 말라고 충고한다.
협상할 때도 결정권을 가진 사람인지 여부를 확인하는 것이 중요하다. 인도의 유명한 기업 그룹에 속해 있는 기업이더라도 해당 그룹과의 연결 고리가 없어 사업상 문제가 발생해도 이를 문제 삼을 수 없는 경우가 있다.
인도에서 사업은 자기가 속한 자띠(같은 직업을 가진 카스트)의 이익을 최선으로 한다는 목적 아래 이뤄진다.
따라서 같은 자띠에 속한 구성원들에게 사업하기를 권유해 상대방이 자신의 이름을 도용하는 것을 눈감아 준다. 문제가 발생하면 도마뱀 꼬리 자르듯이 모른다고 해 대응할 방법을 찾기가 쉽지 않다.
◆ KOTRA·수출입銀 적극 활용 현지인에 행정절차 맡겨야
인도에서 성공한 국내 기업들의 공통점은 철저한 시장조사와 현지인 경영이다. 다른 나라와 달리 단독 투자가 많은 것이 특징이다. 인도 현지 파트너와의 갈등으로 사업이 문제점에 봉착할 때도 많아 인도 전문가들은 단독 투자를 추천한다.
인도 상업·자원부에는 산업정책·진흥국(www.dipp.nic.in)이 있다. 여기에 외국인 직접투자(FDI)에 대한 매뉴얼이 있다. 이곳에서는 매월 SIA 뉴스레터를 발간한다. 외국인 직접투자에 대한 각종 통계나 정부의 투자 유인 정책 등이 담겨 있는 만큼 이를 참고할 필요가 있다.
매년 2월 28일 발표되는 인도 예산안 내용도 꼼꼼히 살펴봐야 한다. 인도 정부가 정책적으로 발전시키려는 사업, 각종 세금 정책 등이 담긴다.
대기업과 달리 정보나 인력면에서 많이 뒤지는 중소기업은 KOTRA나 한국수출입은행의 도움을 받거나 인도산업연맹(CII)의 자료를 이용하는 것도 한 방법이다.
CII는 인도 전역에 55개의 지점을 갖고 있고 700여 명이 일하고 있다. 전국경제인연합회와 양해각서를 체결했고 한국 기업의 투자 유치에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다.
수출입은행은 중소기업을 위해 국제 팩토링 제도를 운영하고 있다. 수출입은행이 인도의 17개 은행과 계약해 수출업체가 받을 외상 수출 대금을 약간의 수수료만 제외하고 미리 받아주는 방식이다.
수출 계약에 앞서 팩토링을 신청, 수입 업자의 신용도 등을 인도 은행을 통해 확인할 수 있다는 것도 한 방법이다. 인도 은행들은 인도 내 다른 기관들에 비해 투명하고 안정적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cwy@hanyung.com
[본 기사는 한경비즈니스 제 1198호(2018.11.12 ~ 2018.11.18)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