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에서 사라진 화장품 가게…‘위기의 K뷰티’ 긴급 점검

[스페셜리포트Ⅱ: 중국 시장에서도 점유율 급락, 중소 브랜드와 ODM 기업이 성장 이끄는 중]




[한경비즈니스=김영은 기자] K뷰티를 견인하던 로드숍의 하락세가 심상치 않다. 한 집 건너 한 집 있던 화장품 가게의 감소율이 철물점이나 목욕탕이 없어지던 추세와 비슷하다.

올 7월 발간된 국세통계에 따르면 최근 1년 동안 화장품 가게 감소율은 마이너스 3.0%로 철물점(-2.6%)보다 컸고 목욕탕(-3.2%)과 비슷했다.

업계에서는 로드숍의 몰락이 곧 K뷰티 위기의 신호탄이 아니냐고 우려한다. 내수경기 침체뿐만 아니라 화장품 최대 수출국이었던 중국 시장에서의 입지도 위태롭기 때문이다.


국내 화장품 업체는 2016년만 해도 중국 시장점유율이 30%를 넘으며 미국과 유럽 브랜드의 뒤를 쫓았지만 지난해 19.5%로 하락했다.

여기에 국내 대표 화장품 기업인 아모레퍼시픽의 실적 악화도 K뷰티 위기론에 힘을 더한다. 아모레퍼시픽의 3분기 영업이익은 847억원으로 36%나 감소했다.


국내 상위 10개 로드숍 브랜드의 매출총액은 2016년 3조3613억원을 기록한 것을 정점으로 지난해는 2조8242억원으로 쪼그라들었다. 올해는 더 위축될 전망이다.

‘1세대 로드숍’의 대표 주자였던 스킨푸드가 기업회생절차(법정관리)에 돌입했고 업계 1, 2위인 이니스프리와 더페이스샵도 몸집 줄이기에 나섰다.

지난 3월 이후 입국자가 늘어나는 추세임에도 불구하고 화장품 소비지표는 지지부진하다. 하지만 로드숍의 몰락 원인이 단순히 중국인 관광객 감소에만 있는 것은 아니다.

전문가들은 로드숍이 온라인 채널로의 유통 구조 변화와 다양한 소비 트렌드 변화에 대응하지 못해 소비자의 외면을 받았다고 입을 모았다.


화장품 로드숍의 위기는 수치로 확인할 수 있다. 더페이스샵·이니스프리·네이처리퍼블릭·미샤·토니모리·스킨푸드 등 주요 로드숍 브랜드의 매장 수는 2015년 말 4868개에서 2016년 말 4834개로 1.4% 증가했다. 하지만 2017년에는 4775개로 3.2% 감소했다.

올 들어서는 로드숍 감소 속도가 한층 빨라졌다. 올 3분기 말 현재 이들 업체의 매장 수는 4000~4100개로 추정된다.


실적 악화도 이어지고 있다. 국내 로드숍 브랜드 1위인 이니스프리와 2위 더페이스샵의 성장세가 꺾였다. 이니스프리의 올 상반기 매출은 전년 동기 대비 8.4% 줄었고 더페이스샵은 전년 대비 13% 감소했다.


또 국내 최초 로드숍 미샤를 보유한 에이블씨엔씨는 2012년 4523억원의 매출을 기록했지만 올 상반기 64억4800만원의 영업손실을 기록하며 적자로 전환됐다. 여기에 토니모리, 아모레퍼시픽그룹의 에뛰드하우스, 잇츠스킨(잇츠한불)도 줄줄이 영업손실을 기록했다.




◆새로운 트렌드 변화 읽어야


하지만 전문가들은 여전히 화장품 시장 전반의 성장세는 견고하다고 분석한다. 유러모니터에 따르면 전 세계 화장품 시장은 연평균 5~6% 성장률로 꾸준히 성장했고 한국 화장품 시장도 연평균 7~8%의 글로벌 시장 대비 높은 성장이 지속돼 왔다.

지난해 한국의 화장품 수출액은 5조5652억원을 기록했다. 올해(1~9월) 화장품의 수출 증가율은 31.2%로 반도체(38.1%)·석유제품(34.1%)과 어깨를 나란히 한다.


다만 온라인과 신규 브랜드를 중심으로 시장이 재편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화장품 유통 구조가 오프라인에서 온라인으로 급격히 변화되는 점은 로드숍 실적 부진의 주요한 요인으로 꼽힌다.

실제로 통계청 자료를 보면 올해 온라인몰에서의 화장품 구매는 전년 대비 20% 정도 증가했다. 해외 온라인몰에서의 K뷰티 구매액도 가파르게 증가하고 있다.

특히 올 3분기 ‘해외 직접판매(역직구)’ 규모는 6740억원으로 전년 대비 18.3% 증가했다. 중국인들이 온라인몰을 통해 K뷰티 제품을 구매한 액수는 지난해까지 매년 2.5~3배씩 증가했다.


소비 트렌드의 변화도 중요한 요인이다. 로드숍이 부진한 반면 국내 중소 화장품 브랜드의 약진과 화장품 제조업체들의 성장은 이어졌다.

다양한 브랜드를 한눈에 비교할 수 있는 헬스&뷰티(H&B) 스토어와 온라인이 화장품의 핵심 유통 채널로 자리 잡았기 때문이다.

올해 상반기 국내 대표 제조업자개발생산(ODM) 업체인 한국콜마와 코스맥스의 매출은 전년 동기 대비 47.5%, 36.5% 늘었다. 영업이익 역수 두 자릿수 성장을 이어 갔다.


높은 기술력을 보유한 국내 ODM 업체를 등에 업은 중소 브랜드의 성장도 눈에 띄었다. 온라인 구매와 소셜 미디어를 통한 마케팅의 힘이 커지고 소비자들이 새로운 브랜드에 대한 경계심이 사라지면서 중소 브랜드의 마케팅력과 국내 ODM 업체의 기술력이 상부상조하며 함께 성장하고 있다.


올 상반기 기존 인기 브랜드였던 닥터자르트(헤브엔비)·AHC(카버코리아)·파파레서피(코스토리)의 고성장이 지속됐고 VT코스메틱·JM솔루션·에이프릴스킨·미미박스·투쿨포스쿨·3CE·TS샴푸 등 온라인과 소셜 미디어를 통해 유명해진 브랜드가 눈에 띄는 매출을 올렸다.


특히 글로벌 대기업의 중소 브랜드 인수·합병(M&A)이 이어지면서 오히려 현지에서 유통 채널을 빠르게 확보하고 있다.

글로벌 대기업은 중소 브랜드의 강점인 ‘패스트 뷰티’ 역량을 강화할 수 있고 중소 브랜드는 글로벌 기업의 자본력을 등에 업고 현지 유통 채널을 장악할 수 있기 때문이다. 아이크림으로 유명한 국내 중소 브랜드 AHC는 지난해 유니레버에 매각되면서 유니레버가 가지고 있던 현지 유통 채널을 빠르게 확보하며 성장했다.


양지혜 메리츠종금증권 애널리스트는 “국내 중소 브랜드를 인수한 글로벌 기업의 실적이 좋아지는 중”이라며 “화장품 유통 채널과 글로벌 기업, 납품 ODM 업체 모두 성장하는데 정작 한국 브랜드가 K뷰티의 수혜를 받지 못하는 중”이라고 말했다.



◆K뷰티 덕 보는 글로벌 브랜드


한국 화장품이 주춤하는 사이 중국 시장에서는 중국의 로컬 브랜드가 독보적인 위치에 올라섰다. 중국은 코스맥스·한국콜마 등 기술력을 지닌 ODM 업체를 통해 생산력을 높이고 있다.


바이췌링은 2010년 온라인을 통해 판매를 시작해 지난해 티몰에서 화장품 매출 1위를 기록했다. 바이췌링은 한국 코스맥스를 통해 제조한 화장품을 판매한다.


일본 화장품 브랜드들의 약진도 이어졌다. 엔저의 영향으로 중국인들이 일본으로 발길을 돌렸고 이를 통해 자연스럽게 일본 화장품의 인기도 올라갔다. 특히 시세이도는 지난해 중국 시장에서 제품 가격을 20% 낮추면서 매출액이 늘었다.


양 애널리스트는 “중·일 관계가 회복되고 마케팅과 온라인 채널에 대한 대응이 보수적이던 일본 브랜드가 최근 적극적인 대응을 펼치면서 중국 럭셔리 시장에서 일본 브랜드의 입지가 커졌다”고 말했다.


중국뿐만 아니라 글로벌 시장에서 J뷰티의 위상도 높아지고 있다. KOTRA 자료에 따르면 2018년 상반기 일본의 화장품 대미 수출은 한국의 절반 수준에도 미치지 못하지만 수출 증가율은 한국을 앞서며 급성장하고 있는 상황이다.


전문가들은 사드(고고도 미사일 방어 체계) 보복 사태로 거품이 꺼지면서 K뷰티가 성공과 쇠퇴의 기로에 서있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김주덕 성신여대 뷰티산업학과 교수는 “시세이도 등 일본 기업은 꾸준한 연구·개발과 과학적인 데이터를 가지고 기술력을 입증하면서 입지를 다져가고 있다”며 “새로운 원료에 대한 연구와 글로벌 시장이 원하는 아이디어 상품 개발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kye0218@hankyung,com
[본 기사는 한경비즈니스 제 1200호(2018.11.26 ~ 2018.12.02)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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