뜨거운 감자로 떠오른 ‘연동형 비례대표제’

[지금 청치판에선]
-개헌보다 더 어렵다는 선거구제 개편 추진…의원 수 늘려야 하지만 국민 정서가 큰 부담




[김형호 한국경제 정치부 기자] “문재인 대통령과 이해찬 더불어민주당 대표 모두 연동형 비례대표제가 피할 수 없는 것을 알고 있지만 피하고 있다. 자유한국당은 의원 정수를 핑계로 선거제도 개혁을 피하고 있다.”

지난 11월 28일 국회 본청 2층 계단. 손학규 바른미래당, 정동영 민주평화당, 이정미 정의당 대표 등 야3당 대표와 의원·당직자 100명이 피켓을 들고 모였다. 평소 국회의원들이 본회의를 마치고 내려오던 빨간 카펫이 깔린 계단을 웅변대 삼은 이들은 더불어민주당과 자유한국당 등 거대 2당을 겨냥해 ‘기득권 양당은 결단하라’고 압박했다.

예산 국회가 한창인 요즘 이들 3야당의 관심은 온통 ‘연동형 비례대표제’에 쏠려 있다. 정치개혁특별위원회의 활동이 끝나는 연말까지 어떻게든 민주당과 한국당으로부터 연동형 비례대표제를 포함한 선거구제 개편에 대한 확답을 끌어내겠다는 심산이다. 특히 예산안 처리를 위해 이들 야당의 도움이 절실한 민주당을 향한 압박 수위가 그 어느 때보다 높다.



◆야3당, 연동형 비례대표제에 목매는 이유는

현재 국회의원 300명은 지역 1등을 뽑는 소선거구제 방식의 지역구 의원 253명과 정당 득표율로 뽑힌 47명의 비례대표 의원으로 구성돼 있다. 이들 야3당은 “현행 선거제는 거대 양당의 표를 과잉 대표해 다양한 국민의 표심을 왜곡하고 있다”며 연동형 비례대표제를 대안으로 제시하고 있다.

연동형 비례대표제는 정당 득표율에 따라 전체 의석수를 맞추는 제도다. 현재 300석을 기준으로 예를 들면 A당이 선거에서 지역구에서 120석을 차지하고 정당 득표율 35%를 얻었다고 하자. 연동형 비례대표제를 적용하면 300석의 35%인 105명이 A당이 몫인데 지역구에서 이미 120석을 차지했으므로 비례대표 할당은 0명이 된다. 반면 B정당이 지역구 선거에서는 단 3석을 이겼지만 정당득표율이 10%를 기록했다면 300명의 10%인 30석을 배정받는다. 지역구 당선 3석 외에 27석을 비례대표로 받게 되는 것이다.

2016년 실시된 20대 총선을 대입해 보면 왜 이들 야3당이 연동형 비례대표에 목을 매는지 파악할 수 있다. 지역구에서 115석을 얻은 민주당은 비례대표에선 정당 득표율 25.5%로 13석을 확보했다. 지역구 105석을 건진 한국당은 정당 득표율 33.5%로 17석을 가져갔다. 지역에선 25석을 이긴 국민의당은 정당 득표율에선 2위를 기록해 민주당과 같은 13석을 확보했다. 정의당은 지역구 2석에 그쳤지만 정당 득표율 7.2%로 비례대표 4석을 배정받았다. 정당 득표에 따른 비례대표 의석이 47석에 불과하다보니 지역 득표보다 정당 득표가 높은 군소 정당의 불만이 클 수밖에 없다.

선거 결과를 연동형 비례대표제로 적용하면 당시 국민의당과 정의당의 의석수는 각각 75석, 20석으로 대폭 늘어난다. 반면 민주당과 한국당은 110석, 105석으로 줄어든다. 최근 지지율 하락에 고전하는 바른미래당·평화당은 물론 나름 비례대표 득표력이 높은 정의당이 연동형 비례대표제에 사활을 거는 것도 이 때문이다.

다만 일각에서는 전면적 연동형 비례대표제가 도입되면 과거와 다른 정당 투표 행태를 보일 것이란 관측도 나온다. 지금까지 총선에서 유권자들은 지역구 의원엔 정파적 투표를 하지만 비례대표를 뽑는 정당 투표에는 ‘미래 투자’ 성격의 전략적 투표를 하는 경향을 보여 왔다. 하지만 연동형 비례대표제가 도입되면 이 같은 경향이 완화될 것이란 얘기다.

민주당은 전면적 연동형 비례대표보다 전국 권역을 5~6개로 나눠 적용하는 연동형 비례대표를 적용하는 권역별 비례대표제를 선호한다. 한국당은 연동형 비례대표제에 대한 방침은 없지만 내부적으론 반대 기류가 강하다. 이해찬 민주당 대표는 “전국적 연동형 비례대표제를 도입하면 비례대표를 한 명도 배정받지 못하게 되고 이는 비례대표의 본래 취지인 전문 인재 확보와 소외 계층 반영 취지가 퇴색된다”고 밝혀 야3당의 반발을 샀다. 야당들은 이 대표의 발언을 빌미삼아 “여당이 되더니 주장이 바뀌었다”고 공격하고 있다. 다만 문재인 대통령이 11월 26일 해외 순방을 떠나면서 홍영표 민주당 원내대표에게 “선거제도 개편을 이번에 꼭 해야 한다”고 밝힌 사실이 알려지면서 당내 논의에 탄력이 붙는 모양새지만 여전히 권역별 비례대표제를 선호하는 기류가 강하다.

일부 전문가들도 연동형 비례대표의 전면적 도입에 조심스러운 반응이다. 최장집 고려대 교수는 “연동형 비례대표제는 여러 정파 간 정책적 연대 문화가 있는 독일에서는 가능하지만 제도적 합의 전통이 취약한 한국에서는 극좌나 극우 세력이 출현하고 다수의 정치적 책임이 약화될 수 있다”며 제한적 도입에 힘을 실어줬다.

한국당은 의원 정수 확대 불가를 고리로 선거제도 개편 논의에 가장 소극적이다. 김성태 한국당 원내대표는 “당론을 앞세우지 않고 협상하면서 상대의 의견을 반영하겠다. 비례성을 확대하자는 데는 과거보다 유연한 생각”이라면서도 구체적인 대안을 언급하지 않았다. 당내 정서는 국회의원 증원이 국민적 동의를 구하기 어렵고 지역구 의석을 줄여 비례대표를 늘리는 방안도 현실적으로 어렵다는 분위기다. 이면에는 연동형 비례대표제 도입에 따른 다당제보다 보수·진보 양당 체제가 정권 교체에 유리하다는 계산이 깔려 있다. 군소 야당들이 범진보 성향을 띠고 있는 반면 보수 진영에선 한국당이 주도권을 잡을 수 있을 것이란 판단에서다. 한국당이 반대하면 여야 5당의 이해관계를 일치시켜야 하는 선거구제 개편 논의는 어려울 수밖에 없다.



◆총론은 괜찮지만 각론이 문제

‘누가 고양이 목에 방울을 다나.’ 연동형 비례대표제의 본질은 국회의원 숫자다. 현 의석을 그대로 두고는 사실상 적용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20대 총선 결과를 기준으로 지역구 의석수 253석 중 85%를 민주당과 한국당이 가져갔다. 현재 지역구 숫자를 그대로 둔 채 정당 득표율에 따라 비례대표를 배정하기 위해서는 의석수를 늘려야 한다는 얘기다.

또 하나의 방법은 300석 전체 의석을 그대로 두고 지역구를 줄이는 것이다. 현재 253석인 지역구를 최소 30석 정도 줄여야 하는데 해당 의원들의 극심한 반발이 뻔하다. 그래서 바른미래당 등 야3당은 현재보다 60석 늘린 360석을 적정 의석으로 제시하고 있다.

이들은 현재 국회 의원 정수가 인구수 대비 다른 선진국에 비해 적다는 점을 논거로 제시하고 있다. 국회의장 직속 국민자문위원회가 2015년 발간한 보고서에 따르면 현재 한국 국회의원 1인당 유권자 수는 16만7400명으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34개국 가운데 31위에 그친다. OECD의 의원 1인당 평균 인구수(양원제 국가는 하원 의원 기준)는 9만9469명이다. 연동형 비례대표제의 모범 사례로 꼽히는 독일의 의원 1인당 유권자는 13만7299명이다.

이 같은 전문가들의 지적과 객관적 수치에도 국회의원 증원에 ‘알레르기성 반응’을 보이는 국민 정서를 돌파할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여론조사 기관 리얼미터가 지난 11월 7일 전국 성인 502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95% 신뢰수준에 표본 오차 ±4.4%포인트)에 따르면 국회의원 세비와 특권을 대폭 감축하는 것을 전제로 의원 정수를 일부 늘리는 방안에 대한 반대 의견이 59.9%에 달했다. 찬성 의견은 34.1%에 그쳤다.

정치권의 한 인사는 “선거구제 개편이 개헌보다 어렵다는 게 여의도 정치권의 일반적 정서”라며 “비례성 강화라는 총론에는 모두 동의하지만 각론으로 들어가면 각 정당, 개별 국회의원의 이해관계에 국민 정서까지 겹쳐 접점을 찾기 쉽지 않은 사안”이라고 말했다.chsan@hankyung.com



[본 기사는 한경비즈니스 제 1201호(2018.12.03 ~ 2018.12.09)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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