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영전략]
‘비즈니스’ 협상 시 ‘대가 없는 양보’ 대신 양보에 ‘가치’를 부여해야
[한경비즈니스 칼럼=이태석 IGM 세계경영연구원 교수] 비즈니스 협상에 임하는 사람들은 누구나 고민하는 부분이 있다. 상대에게 어떻게 제안하고 어느 정도 양보해야 협상에서 실익을 얻을 수 있느냐다. 먼저 제안할 것인가, 상대 제안을 기다릴 것인가. 내가 먼저 제안하는 것이 유리한가, 아니면 상대 제안을 기다리는 것이 유리한가.
여러분은 어떻게 생각하는가. 이 질문을 던지면 대부분 먼저 제안해서는 안 된다고 주장한다. 상대방이 먼저 제안하도록 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래야 정보를 얻을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상대의 의중을 파악할 수 있다는 논리다. 반대로 어떤 사람은 자신이 먼저 제안하는 것이 낫다고 주장한다. 그 이유는 협상의 주도권을 쥐면서 원하는 방향으로 이끌 수 있다는 것이다.
어느 것이 맞을까. 정답은 ‘상황에 따라 다르다’다. 그러면 그 ‘상황’이라는 것은 어떤 것일까. 그것은 협상에 대한 정보와 수집된 자료가 충분한지 또는 그렇지 못한지에 따라 좌우된다. 즉, 당신이 수집한 정보와 자료가 충분하다면 먼저 치고 들어가는 것이 유리하다. 먼저 제안함으로써 얻을 수 있는 가장 큰 이점은 기선을 잡을 수 있다는 것이다. 기선을 잡게 되면 당연히 유리해진다. 반면 기선을 제압당하는 쪽은 상대적으로 불리해질 수밖에 없다. 따라서 먼저 제시하는 쪽이 대개 협상 분위기를 이끌게 된다.
또 다른 장점은 소위 ‘닻 내림 효과(anchoring effect)’다. 가격 협상이든 다른 조건 협상이든 초반에는 양측이 눈치를 보게 된다. 이때 누군가 구체적 금액이나 조건을 제시하면 협상은 그 지점에서부터 시작된다는 것이다. 거기서 양측이 ‘밀당’을 하다 보면 결국 협상의 결과도 그 주변에서 맴돌기마련이다.
다만 충분한 정보 없이 먼저 제안하게 되면 엉뚱한 결과로 이어질 수 있다. 예를 들어보자. 어떤 여행객이 인도에서 재래시장을 재미있게 구경하던 중 마음에 드는 물건을 보게 됐다. 페르시안 문양의 카펫인데 만져 보니 실크처럼 촉감이 너무 좋다. 물건을 파는 아주머니에게 가격을 물었다. 아주머니는 100달러라고 했다. 그 정도 가격이면 큰 부담이 없지만 그래도 깎아 보기로 하고 50달러에 달라고 했다.
그랬더니 그 아주머니가 바로 ‘오케이’ 하는 것이 아닌가. 그런데 어째 기분이 묘하다. 돈을 지불하고 카펫을 가져 오는 마음이 영 개운하지 않다. 왠지 모르게 바가지를 썼다는 생각도 든다. ‘좀 더 가격을 알아보고 살 걸’ 하는 후회가 들기도 한다. 이런 결과를 가져오게 된 원인은 무엇 때문일까. 바로 정보가 충분하지 않은 상황에서 자신이 먼저 제안했기 때문이다.
이처럼 협상에서 누가 먼저 제안할 것인지에 대해서는 신중히 생각해야 한다. 수집된 정보가 불충분하고 확신이 없을 때는 먼저 제안하지 말고 차라리 상대가 제안하도록 유도하라. 상대 제안을 듣고 나서 당신이 역제안하는 것이 더 현명할 수도 있다.
◆분명한 제안과 모호한 제안
제안할 때는 명확하고 딱 부러지게 해야 한다. 모호한 제안은 제안하지 않은 것과 같다. 청소기 부품을 구매하는 최 모 대리는 납품 업체로부터 견적서를 받은 다음 부장에게 결과 보고를 했다. 부장은 “원가를 절감해야 하니 10% 인하하라”는 지시를 내렸다.
최 대리는 업체를 다시 불러 “부장이 단가를 일률적으로 인하하라고 지시했다”며 “10% 정도 깎아주면 안 될까요”라고 모호하게 제안했다. 최 대리는 적극적으로 인하를 요구하지도 않았고 납품 업체에서도 이 요구를 정식 제안이 아닌 부탁쯤으로 받아들였다. 납품 업체는 “마진이 별로 없어 단가 인하는 어렵지만 대리님을 생각해 2.5% 깎아 드리겠다”고 했고 결국 그 선에서 결정됐다.
납품 업체는 최 대리의 제안 내용과 태도로 볼 때 구매부장의 ‘10%’ 인하 지시는 부서 전체의 ‘10%’이지 개별 부품은 해당되지 않는 것으로 해석했던 것이다. 왜 그런 것일까. 상대는 제안을 받을 때 당신의 태도·말투·구체성에 따라 대응 태도가 달라진다. 모호한 제안은 정식 제안으로 받아들이지 않는 경향이 있다. 심지어 두루뭉술한 제안은 협상에 임하는 당신의 가치를 깎아내리기도 한다. 그렇지 않아도 웬만하면 당신의 제안을 수락하고 싶지 않은 것이 상대 마음이다. 모호한 제안은 때로는 당신을 우습게 만든다.
상대에게 조건을 제시하면서 상대가 바로 수락할 것이라고 기대하는 사람은 없다. 자신이 제시한 조건에 대해 상대가 수정 제안할 것이기 때문이다. 그 점을 감안해 제안하기 때문에 언제나 첫 제안은 높게 나온다. 그렇다면 어느 정도 높이는 것이 적정할까. 이 질문에 딱 부러지게 대답할 사람은 없다. 그것은 협상 상황에 따라 다르기 때문이다.
상황은 구체적으로 무엇일까. 그것은 자신이 지금 하고 있는 협상이 이익 중심의 협상인지 아니면 관계 중심의 협상인지에 따라 달라진다. 두 협상을 구분할 수 있는 기준은 ‘다음에 또 협상할 일이 있느냐 없느냐’로 나눌 수 있다. 즉 두 번 다시 만날 일이 없는 상대라면 그 협상은 이익 중심의 협상이다. 지속적으로 만나 협상해야 하는 상대라면 관계 중심의 협상이라고 할 수 있다.
앞의 인도 재래시장에서 카펫을 파는 아주머니와는 아마도 다시 만날 일이 없을 것이다. 그렇다면 카펫 가격 협상은 이익 중심의 협상이라고 볼 수 있기 때문에 철저하게 본인의 이익 위주로 협상할 것이다. 판매자는 최대한 높은 가격을 부를 것이고 구매자는 최대한 낮은 가격을 고집하면서 심지어 원가 이하까지 밀어붙일 것이다. 이런 협상에서 협상가 사이의 관계는 더 이상 고려 대상이 아니다. 따라서 첫 제안은 이익 극대화를 위해 높게 나오게 된다.
하지만 만약 카펫을 사려는 사람이 지나가는 단체 관광객이 아니라 관광객을 인솔해 재래시장을 찾는 투어 가이드라면 어떨까. 카펫을 파는 아주머니가 투어 가이드에게 바가지를 씌울 수 있을까. 그렇지 못할 것이다. 매주 관광객을 인솔해 가게를 찾는 가이드이기 때문에 원가 이하로도 팔 수 있을 것이다. 이러한 협상이 관계 중심의 협상이다. 지속적 관계를 고려해 이익을 적게 남기게 되는 것이다. 이때는 첫 제안을 높게 불러서는 안 된다.
제안을 주고받은 다음 원만한 합의를 위해서는 양보가 필요하다. 양보는 상대에게 성취감을 주고 당신이 관대하다는 인상을 줄 수 있다. 그런데 양보는 매우 기술적 영역에 속한다. 똑같은 양보라고 하더라도 당신이 어떻게 양보했느냐에 따라 상대의 인식이 바뀐다. 목표 가격 5만원짜리 원피스를 높게 쳐서 5만9000원에 제안했다고 하자. 상대는 분명히 당신의 양보를 요구할 것이고 당신도 내심 9000원을 양보할 생각이다. 이때 양보하는 방법에 여러 가지가 있을 수 있지만 3개 패턴으로 한정해 보자.
만약 당신이라면 어떤 양보 방법을 택하겠는가. 우선 1안의 양보 방법은 좀 위험할 수 있다. 상대가 양보를 요구할 때마다 그 폭이 커지기 때문이다. 2000원, 3000원, 4000원 식으로 점점 커지는 것을 볼 수 있다. 물론 현실에서 이런 식의 양보는 있을 수 없다. 하지만 이를 지켜보는 상대의 생각을 읽어야 한다. 상대는 도대체 어떤 가격이 제대로 된 가격인지 의혹이 커질 수밖에 없다. 혹자는 막판에 통 큰 양보를 하는 것 아니냐고 우기기도 한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생기는 상대의 의혹은 어떻게 감당할 것인가.
2안의 양보 방법은 어처구니가 없다. 우리는 이런 식의 양보를 ‘자판기식 양보’라고 한다. 한 번 양보를 요구할 때마다 똑같은 금액으로 양보한다면 어디까지 갈 수 있는지 알 수 없고 상대는 계속 양보를 요구할 것이다.
3안은 조금 다르다. 첫째 양보에서 4000원, 그다음 3000원, 그리고 2000원을 양보하는 방법이다. 그 폭이 점점 줄어드는 것을 알 수 있다. 이런 방법을 ‘깔때기식 양보’라고 한다. 이렇게 양보하면 상대는 ‘바닥까지 왔다’거나 ‘더 이상 양보의 여지가 없겠다’는 생각을 갖게 된다. 바로 그 점을 노리는 것이다.
표에서 보듯이 1안, 2안, 3안의 양보 총액은 동일하다. 하지만 상대가 느끼는 점은 다르다. 깔때기식 양보는 한계점에 왔다는 인식을 하게 된다. 협상은 결국 인식의 싸움이다. 같은 양보 폭이더라도 상대의 인식이 변한다는 점을 고려하자.
양보 전략에 또 다른 포인트가 있다. 그것은 공짜 양보를 하지 말라는 것이다.
당신의 양보에 대해 가치를 만들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상대가 양보를 얻기 위해 노력하게 하면 된다. 그 노력은 금전적 노력도 좋고 시간적 노력도 괜찮다. 상대는 거래 조건을 개선하기 위해 다양한 논리와 압박을 할 것이다. 이때 많은 협상가가 서둘러 많이 그리고 일찍 줘버리기 때문에 손해를 본다. 이는 ‘미숙한 양보’다. 마음이 급하다 보니 협상을 빨리 마무리지어야 한다는 생각에 사로잡히기 때문이다. 당연히 상대방에게 유리하게 돌아간다.
◆양보에도 순서가 있다
협상을 하다 보면 안건이 한두 가지로 끝날 때는 드물다. 양보해야 하는 요소도 여러 가지다. 쉬운 양보가 있고 어려운 양보가 있다. 당신이 가진 양보 보따리를 한꺼번에 풀어서는 안 된다. 당신의 또 다른 양보가 있다는 것을 상대가 눈치 채게 해서도 안 된다. 상대를 탐색하면서 양보할 수 있는 요소를 정리하고 각 요소마다 중요도와 우선순위를 매겨 두면 효과적이다. 양보의 순서는 우선순위가 낮은 것부터 하나씩 해가면 된다.
같은 요소라고 해도 상대와 우선순위가 다를 수 있다. 당신에게 가격은 매우 중요하지만 상대에게는 가격보다 납기일이 더 중요할 수 있다. 예를 들어 상대 생산 공정에 문제가 생겨 원자재 수급이 급박하게 돌아간다면 가격도 물론 중요하지만 더 중요한 것이 납품 일정이다.
이럴 때 당신의 납기일 준수와 상대의 가격에서 양보와 교환이 이뤄질 수 있다. 당신에게 납기일이 덜 중요하다고 해서 상대방보다 먼저 양보해서는 안 된다. 순서와 해당 요소의 조건에 따라 기분 좋게 만들면서 양보하면 된다.
협상에서 양보는 기술적 영역이다. 상대가 원하는 양보는 내주되 기술적으로 하라. 전략적인 각을 가지고 양보해야 한다. 그래야 실익을 챙길 수 있다.
협상 초기에 다소 무리한 요구로 시작해 조금씩 양보하는 전략이 잘 먹히는 이유가 있다. 첫째, 자신의 결정에 대한 책임감이다. 몇 번의 줄다리기 끝에 최종 결과가 나오게 되면 뭔가 책임감이 느껴진다. 상대의 무리한 요구를 성공적으로 설득해 그 요구를 일정 부분 포기하도록 만들었기 때문이다. 그러다 보니 스스로 약속을 충실히 이행하게 된다.
둘째, 합의 사항에 대한 만족감이다. 초기 무리한 제의에 대해 상대는 양보를 요구했고 드디어 어렵사리 양보를 받아냈다. 힘든 양보를 받아낸 만큼 승리감과 함께 결과에 대한 만족감을 느끼게 된다.
성공적 협상을 원하는가. 스마트한 제안과 영리한 양보를 통해 실익을 챙기고 동시에 상대에게 만족감을 주도록 노력하라.
[본 기사는 한경비즈니스 제 1201호(2018.12.03 ~ 2018.12.09) 기사입니다.]
‘비즈니스’ 협상 시 ‘대가 없는 양보’ 대신 양보에 ‘가치’를 부여해야
[한경비즈니스 칼럼=이태석 IGM 세계경영연구원 교수] 비즈니스 협상에 임하는 사람들은 누구나 고민하는 부분이 있다. 상대에게 어떻게 제안하고 어느 정도 양보해야 협상에서 실익을 얻을 수 있느냐다. 먼저 제안할 것인가, 상대 제안을 기다릴 것인가. 내가 먼저 제안하는 것이 유리한가, 아니면 상대 제안을 기다리는 것이 유리한가.
여러분은 어떻게 생각하는가. 이 질문을 던지면 대부분 먼저 제안해서는 안 된다고 주장한다. 상대방이 먼저 제안하도록 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래야 정보를 얻을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상대의 의중을 파악할 수 있다는 논리다. 반대로 어떤 사람은 자신이 먼저 제안하는 것이 낫다고 주장한다. 그 이유는 협상의 주도권을 쥐면서 원하는 방향으로 이끌 수 있다는 것이다.
어느 것이 맞을까. 정답은 ‘상황에 따라 다르다’다. 그러면 그 ‘상황’이라는 것은 어떤 것일까. 그것은 협상에 대한 정보와 수집된 자료가 충분한지 또는 그렇지 못한지에 따라 좌우된다. 즉, 당신이 수집한 정보와 자료가 충분하다면 먼저 치고 들어가는 것이 유리하다. 먼저 제안함으로써 얻을 수 있는 가장 큰 이점은 기선을 잡을 수 있다는 것이다. 기선을 잡게 되면 당연히 유리해진다. 반면 기선을 제압당하는 쪽은 상대적으로 불리해질 수밖에 없다. 따라서 먼저 제시하는 쪽이 대개 협상 분위기를 이끌게 된다.
또 다른 장점은 소위 ‘닻 내림 효과(anchoring effect)’다. 가격 협상이든 다른 조건 협상이든 초반에는 양측이 눈치를 보게 된다. 이때 누군가 구체적 금액이나 조건을 제시하면 협상은 그 지점에서부터 시작된다는 것이다. 거기서 양측이 ‘밀당’을 하다 보면 결국 협상의 결과도 그 주변에서 맴돌기마련이다.
다만 충분한 정보 없이 먼저 제안하게 되면 엉뚱한 결과로 이어질 수 있다. 예를 들어보자. 어떤 여행객이 인도에서 재래시장을 재미있게 구경하던 중 마음에 드는 물건을 보게 됐다. 페르시안 문양의 카펫인데 만져 보니 실크처럼 촉감이 너무 좋다. 물건을 파는 아주머니에게 가격을 물었다. 아주머니는 100달러라고 했다. 그 정도 가격이면 큰 부담이 없지만 그래도 깎아 보기로 하고 50달러에 달라고 했다.
그랬더니 그 아주머니가 바로 ‘오케이’ 하는 것이 아닌가. 그런데 어째 기분이 묘하다. 돈을 지불하고 카펫을 가져 오는 마음이 영 개운하지 않다. 왠지 모르게 바가지를 썼다는 생각도 든다. ‘좀 더 가격을 알아보고 살 걸’ 하는 후회가 들기도 한다. 이런 결과를 가져오게 된 원인은 무엇 때문일까. 바로 정보가 충분하지 않은 상황에서 자신이 먼저 제안했기 때문이다.
이처럼 협상에서 누가 먼저 제안할 것인지에 대해서는 신중히 생각해야 한다. 수집된 정보가 불충분하고 확신이 없을 때는 먼저 제안하지 말고 차라리 상대가 제안하도록 유도하라. 상대 제안을 듣고 나서 당신이 역제안하는 것이 더 현명할 수도 있다.
◆분명한 제안과 모호한 제안
제안할 때는 명확하고 딱 부러지게 해야 한다. 모호한 제안은 제안하지 않은 것과 같다. 청소기 부품을 구매하는 최 모 대리는 납품 업체로부터 견적서를 받은 다음 부장에게 결과 보고를 했다. 부장은 “원가를 절감해야 하니 10% 인하하라”는 지시를 내렸다.
최 대리는 업체를 다시 불러 “부장이 단가를 일률적으로 인하하라고 지시했다”며 “10% 정도 깎아주면 안 될까요”라고 모호하게 제안했다. 최 대리는 적극적으로 인하를 요구하지도 않았고 납품 업체에서도 이 요구를 정식 제안이 아닌 부탁쯤으로 받아들였다. 납품 업체는 “마진이 별로 없어 단가 인하는 어렵지만 대리님을 생각해 2.5% 깎아 드리겠다”고 했고 결국 그 선에서 결정됐다.
납품 업체는 최 대리의 제안 내용과 태도로 볼 때 구매부장의 ‘10%’ 인하 지시는 부서 전체의 ‘10%’이지 개별 부품은 해당되지 않는 것으로 해석했던 것이다. 왜 그런 것일까. 상대는 제안을 받을 때 당신의 태도·말투·구체성에 따라 대응 태도가 달라진다. 모호한 제안은 정식 제안으로 받아들이지 않는 경향이 있다. 심지어 두루뭉술한 제안은 협상에 임하는 당신의 가치를 깎아내리기도 한다. 그렇지 않아도 웬만하면 당신의 제안을 수락하고 싶지 않은 것이 상대 마음이다. 모호한 제안은 때로는 당신을 우습게 만든다.
상대에게 조건을 제시하면서 상대가 바로 수락할 것이라고 기대하는 사람은 없다. 자신이 제시한 조건에 대해 상대가 수정 제안할 것이기 때문이다. 그 점을 감안해 제안하기 때문에 언제나 첫 제안은 높게 나온다. 그렇다면 어느 정도 높이는 것이 적정할까. 이 질문에 딱 부러지게 대답할 사람은 없다. 그것은 협상 상황에 따라 다르기 때문이다.
상황은 구체적으로 무엇일까. 그것은 자신이 지금 하고 있는 협상이 이익 중심의 협상인지 아니면 관계 중심의 협상인지에 따라 달라진다. 두 협상을 구분할 수 있는 기준은 ‘다음에 또 협상할 일이 있느냐 없느냐’로 나눌 수 있다. 즉 두 번 다시 만날 일이 없는 상대라면 그 협상은 이익 중심의 협상이다. 지속적으로 만나 협상해야 하는 상대라면 관계 중심의 협상이라고 할 수 있다.
앞의 인도 재래시장에서 카펫을 파는 아주머니와는 아마도 다시 만날 일이 없을 것이다. 그렇다면 카펫 가격 협상은 이익 중심의 협상이라고 볼 수 있기 때문에 철저하게 본인의 이익 위주로 협상할 것이다. 판매자는 최대한 높은 가격을 부를 것이고 구매자는 최대한 낮은 가격을 고집하면서 심지어 원가 이하까지 밀어붙일 것이다. 이런 협상에서 협상가 사이의 관계는 더 이상 고려 대상이 아니다. 따라서 첫 제안은 이익 극대화를 위해 높게 나오게 된다.
하지만 만약 카펫을 사려는 사람이 지나가는 단체 관광객이 아니라 관광객을 인솔해 재래시장을 찾는 투어 가이드라면 어떨까. 카펫을 파는 아주머니가 투어 가이드에게 바가지를 씌울 수 있을까. 그렇지 못할 것이다. 매주 관광객을 인솔해 가게를 찾는 가이드이기 때문에 원가 이하로도 팔 수 있을 것이다. 이러한 협상이 관계 중심의 협상이다. 지속적 관계를 고려해 이익을 적게 남기게 되는 것이다. 이때는 첫 제안을 높게 불러서는 안 된다.
제안을 주고받은 다음 원만한 합의를 위해서는 양보가 필요하다. 양보는 상대에게 성취감을 주고 당신이 관대하다는 인상을 줄 수 있다. 그런데 양보는 매우 기술적 영역에 속한다. 똑같은 양보라고 하더라도 당신이 어떻게 양보했느냐에 따라 상대의 인식이 바뀐다. 목표 가격 5만원짜리 원피스를 높게 쳐서 5만9000원에 제안했다고 하자. 상대는 분명히 당신의 양보를 요구할 것이고 당신도 내심 9000원을 양보할 생각이다. 이때 양보하는 방법에 여러 가지가 있을 수 있지만 3개 패턴으로 한정해 보자.
만약 당신이라면 어떤 양보 방법을 택하겠는가. 우선 1안의 양보 방법은 좀 위험할 수 있다. 상대가 양보를 요구할 때마다 그 폭이 커지기 때문이다. 2000원, 3000원, 4000원 식으로 점점 커지는 것을 볼 수 있다. 물론 현실에서 이런 식의 양보는 있을 수 없다. 하지만 이를 지켜보는 상대의 생각을 읽어야 한다. 상대는 도대체 어떤 가격이 제대로 된 가격인지 의혹이 커질 수밖에 없다. 혹자는 막판에 통 큰 양보를 하는 것 아니냐고 우기기도 한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생기는 상대의 의혹은 어떻게 감당할 것인가.
2안의 양보 방법은 어처구니가 없다. 우리는 이런 식의 양보를 ‘자판기식 양보’라고 한다. 한 번 양보를 요구할 때마다 똑같은 금액으로 양보한다면 어디까지 갈 수 있는지 알 수 없고 상대는 계속 양보를 요구할 것이다.
3안은 조금 다르다. 첫째 양보에서 4000원, 그다음 3000원, 그리고 2000원을 양보하는 방법이다. 그 폭이 점점 줄어드는 것을 알 수 있다. 이런 방법을 ‘깔때기식 양보’라고 한다. 이렇게 양보하면 상대는 ‘바닥까지 왔다’거나 ‘더 이상 양보의 여지가 없겠다’는 생각을 갖게 된다. 바로 그 점을 노리는 것이다.
표에서 보듯이 1안, 2안, 3안의 양보 총액은 동일하다. 하지만 상대가 느끼는 점은 다르다. 깔때기식 양보는 한계점에 왔다는 인식을 하게 된다. 협상은 결국 인식의 싸움이다. 같은 양보 폭이더라도 상대의 인식이 변한다는 점을 고려하자.
양보 전략에 또 다른 포인트가 있다. 그것은 공짜 양보를 하지 말라는 것이다.
당신의 양보에 대해 가치를 만들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상대가 양보를 얻기 위해 노력하게 하면 된다. 그 노력은 금전적 노력도 좋고 시간적 노력도 괜찮다. 상대는 거래 조건을 개선하기 위해 다양한 논리와 압박을 할 것이다. 이때 많은 협상가가 서둘러 많이 그리고 일찍 줘버리기 때문에 손해를 본다. 이는 ‘미숙한 양보’다. 마음이 급하다 보니 협상을 빨리 마무리지어야 한다는 생각에 사로잡히기 때문이다. 당연히 상대방에게 유리하게 돌아간다.
◆양보에도 순서가 있다
협상을 하다 보면 안건이 한두 가지로 끝날 때는 드물다. 양보해야 하는 요소도 여러 가지다. 쉬운 양보가 있고 어려운 양보가 있다. 당신이 가진 양보 보따리를 한꺼번에 풀어서는 안 된다. 당신의 또 다른 양보가 있다는 것을 상대가 눈치 채게 해서도 안 된다. 상대를 탐색하면서 양보할 수 있는 요소를 정리하고 각 요소마다 중요도와 우선순위를 매겨 두면 효과적이다. 양보의 순서는 우선순위가 낮은 것부터 하나씩 해가면 된다.
같은 요소라고 해도 상대와 우선순위가 다를 수 있다. 당신에게 가격은 매우 중요하지만 상대에게는 가격보다 납기일이 더 중요할 수 있다. 예를 들어 상대 생산 공정에 문제가 생겨 원자재 수급이 급박하게 돌아간다면 가격도 물론 중요하지만 더 중요한 것이 납품 일정이다.
이럴 때 당신의 납기일 준수와 상대의 가격에서 양보와 교환이 이뤄질 수 있다. 당신에게 납기일이 덜 중요하다고 해서 상대방보다 먼저 양보해서는 안 된다. 순서와 해당 요소의 조건에 따라 기분 좋게 만들면서 양보하면 된다.
협상에서 양보는 기술적 영역이다. 상대가 원하는 양보는 내주되 기술적으로 하라. 전략적인 각을 가지고 양보해야 한다. 그래야 실익을 챙길 수 있다.
협상 초기에 다소 무리한 요구로 시작해 조금씩 양보하는 전략이 잘 먹히는 이유가 있다. 첫째, 자신의 결정에 대한 책임감이다. 몇 번의 줄다리기 끝에 최종 결과가 나오게 되면 뭔가 책임감이 느껴진다. 상대의 무리한 요구를 성공적으로 설득해 그 요구를 일정 부분 포기하도록 만들었기 때문이다. 그러다 보니 스스로 약속을 충실히 이행하게 된다.
둘째, 합의 사항에 대한 만족감이다. 초기 무리한 제의에 대해 상대는 양보를 요구했고 드디어 어렵사리 양보를 받아냈다. 힘든 양보를 받아낸 만큼 승리감과 함께 결과에 대한 만족감을 느끼게 된다.
성공적 협상을 원하는가. 스마트한 제안과 영리한 양보를 통해 실익을 챙기고 동시에 상대에게 만족감을 주도록 노력하라.
[본 기사는 한경비즈니스 제 1201호(2018.12.03 ~ 2018.12.09)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