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과 북한의 ‘비핵화’는 서로 다른 개념입니다”

-한국군사문제연구원·한국경제매거진 ‘2018 KIMA 국방 정책 세미나’ 공동 개최



[한경비즈니스 = 이홍표 기자] “우리 정부가 수십년 동안 지속해 온 ‘비핵화 외교’는 결국 실패했습니다. 새로운 방식의 접근이 필요합니다.”(전성훈 전 통일연구원장)
“그렇다고 평화적 비핵화 해결이 중단돼서는 안 됩니다. 한국의 외교력을 키워야 합니다.”(조화순 연세대 교수)

지난 10월 23일 서울 용산 전쟁기념관에선 ‘북한 비핵화와 한·미 동맹의 미래’를 주제로 한국 외교·안보 분야의 석학들이 열띤 토론을 벌였다. 이 자리는 한국군사문제연구원(KIMA)과 한국경제매거진이 공동 주최한 ‘KIMA 국방 정책 세미나’였다. 세미나에는 국방 정책 전문가, 안보군사학과 교수, 예비역 등 150여 명이 참석했다.

주제 발표는 전성훈 박사(전 통일연구원장·전 청와대안보전략비서관)와 우정엽 세종연구소 안보전략연구실장이 맡았다. 조화순 연세대 정치외교학과 교수와 김열수 KIMA 안보전략실장은 토론자로 참여했다. 사회는 허남성 KIMA 석좌연구위원이 맡았다.

오창환 KIMA 원장은 “이번 세미나를 통해 우리의 북한 비핵화 전략에 대해 성찰해 보고 한·미 동맹의 미래 방향을 예측해 봄으로써 한반도 안보에 기여하는 계기가 됐으면 한다”고 말했다.



◆전성훈 “비핵화 외교는 ‘실패’다”

전성훈 박사의 발표 주제는 ‘실패한 비핵화 외교의 대안 : 남북한 상호 핵 군축’이었다. 전 박사는 ‘비핵화(denuclearization)’를 ‘실패’라고 규정했다.

핵심은 두 가지다. 하나는 결국 북한의 핵 보유를 막지 못한 것이다. 다른 하나는 비핵화 외교를 추진하면서 북한의 국가 전략에 말려든 것이다. 전 박사는 “지금까지 북한의 수를 따라가며 대응하던 수세적인 자세에서 벗어나 우리의 카드를 만들어야 한다”며 “이 카드를 가지고 문제 해결의 주도권을 잡는 공세적이고 적극적인 자세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전 박사는 발표에 앞서 올해 3월 열린 1차 남북정상회담의 에피소드를 소개했다. 당시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비핵화는 선대의 유훈’이라고 말했다. 이를 한국은 물론 세계 언론이 대서특필했다.

하지만 전 박사는 “김 위원장이 말하는 비핵화는 우리가 생각하는 ‘북한의 핵 폐기’가 아니라 1950년대부터 북한이 주장해 온 ‘조선반도 비핵지대화’의 의미”라고 해석했다. 북한은 미국이 한반도에 전술핵을 배치한 1950년대부터 ‘조선반도 비핵지대화’를 국가 전략으로 삼았다. 조선반도 비핵지대화 전략은 남한 내 모든 핵무기의 즉시 철수를 위한 공동 노력, 핵무기의 생산·구입 금지, 핵무기를 적재한 외국 비행기와 함선의 한반도 출입 통과·금지를 뜻한다. 전 박사는 “북한은 1991년 남북 고위급 회담을 거치며 ‘조선반도 비핵지대화’란 용어를 한국이 사용하는 ‘비핵화’라는 표현으로 바꿨다”며 “한국과 미국은 이를 ‘북한 핵 포기’로 받아들여 협상을 진행해 왔고 현재에 이르렀다”고 주장했다.

전 박사는 “그 결과 북한은 결국 핵무기를 개발했거나 그에 준하는 능력을 갖추게 됐고 한국과 미국은 결국 이를 막지 못하며 수십 년간 계속해 온 외교적 노력이 실패로 돌아갔다”고 평가했다. 그는 “북한과 한국의 협상은 이미 북한이 우위에 섰고 한국은 계속 끌려갈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전 박사 그 예로 든 것은 1990년대부터 2007년까지 남북 간 혹은 다자간 합의 문건에서 나온 ‘보상’이란 단어의 수를 추적한 것이다. 1991년 남북 비핵화 공동 선언에선 ‘보상’이란 단어가 102건에 불과했지만 2007년 10·3 합의에선 ‘보상’이란 단어가 360건까지 늘어났다.

전 박사는 북한의 핵 포기를 실현할 수 있는 방안으로 세 가지를 제시했다. 첫째, 북한의 비핵화 전략을 수용하고 비핵화의 전제 조건과 요구 사항을 모두 들어주는 것이다. 둘째, 전면전을 각오하고 핵시설에 군사 공격을 하는 것이다. 셋째, 북핵 폐기를 목표로 두고 핵 억지력 강화와 핵군축 협상을 병행하면서 체제 변화를 유도하는 것이다. 전 박사는 “첫째와 둘째는 사실상 현실 가능성이 없고 셋째가 가장 최선으로 보이는데 이를 실현하기 위해선 한국도 핵을 보유하는 수밖에 없다”고 주장했다.

우정엽 세종연구소 안보전략실장의 주제 발표는 ‘한국의 안보와 한미동맹의 미래’였다. 그는 한·미 동맹의 미래는 한·미 동맹을 강화하는 방향으로 작용하는 구심력과 한·미 동맹을 약화시키는 방향으로 작용하는 원심력이 어떠한 균형 상태를 가져오느냐에 달려 있다고 규정했다.

우 실장은 한·미 동맹의 원심력과 구심력이 크게 세 가지 변수에 의해 영향을 받는다고 평가했다. 우선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동맹에 대한 인식이다. 우 실장은 “트럼프 대통령은 한국을 방문할 때 평택 미군 기지를 방문하고서도 ‘비용’에 대해 이야기할 정도로 이 문제에 대해 과거 미국 대통령과 전혀 다르게 접근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또 다른 변수는 대북 문제에 대한 미국의 접근법이다. 여기서 문제가 되는 것은 과거 우리가 ‘단일 행위자’로 봤던 미국의 대북 정책이 현재는 트럼프 대통령과 관료 두 명(마이크 폼페이오 국무장관과 존 볼턴 국가안보회의 보좌관) 등 세 인물의 역학 관계에 의해 이뤄지고 있다는 것이다.

마지막은 미국의 정치 상황 변화가 미국의 대북 문제에 어떤 영향을 미칠 것인지의 문제다. 우 실장은 “가장 중요한 것은 하원이 민주당으로 넘어갔다는 것”이라며 “대북 문제에 관해서는 민주당이 공화당에 비해 인권 문제 등과 관련해 더욱 강경한 면을 가지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중간선거가 끝났고 민주당이 하원을 차지해 정치적 압박이 거세지면 트럼프 대통령의 의사 결정 테이블에서 ‘북한’은 좀 더 뒤로 물러날 것”이라고 말했다. 우 실장은 “특히 미국은 북한이 미사일 도발을 또다시 하지 않는다면 트럼프 대통령은 ‘그것만으로도 본인의 업적’인 상황이기 때문에 ‘무리한 합의’ 등을 하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우정엽 “미국은 북한에 더 이상 ‘무리’하지 않는다”

전 박사와 우 실장의 주제 발표를 바탕으로 조화순 연세대 정치외교학과 교수와 김열수 KIMA 안보전략실장이 토론했다. 조 교수는 “비핵화 외교의 성과가 사실상 실패인 것은 맞다”며 “이 때문에 과거와 달리 가시적 성과가 없는 ‘비핵화’와 북한에 대한 무조건적인 지원은 국민의 강력한 저항을 받을 수 있다는 것을 정책 당국자들이 유념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그면서도 그는 “전 박사가 주장한 전술핵 배치는 사실상 어렵다”고 말했다. 조 교수는 “이 때문에 한·미 공조를 중심으로 중국·일본·러시아 등 주변국들의 지지를 얻는 ‘외교력’을 키우는 게 가장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김 실장은 트럼프 대통령의 세계관을 좀 더 자세히 설명했다. 그는 “트럼프 대통령은 과거 대통령과 달리 ‘이데올로기·가치·동맹·국제질서’ 등에 전혀 ‘관심이 없는 사람’”이라고 규정했다. 김 실장은 “이 때문에 한국도 트럼프 대통령과의 관계를 맺을 때 다른 무엇보다 ‘우리가 이만큼이나 미국과 당신에게 도움이 된다’고 어필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조언했다.
hawlling@hankyung.com


[본 기사는 한경비즈니스 제 1201호(2018.12.03 ~ 2018.12.09)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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