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환경’ 시대 이끌 3대 소비 트렌드…‘제로 웨이스트·컨셔스 패션·비거니즘’

[스페셜 리포트 Ⅲ ]-환경 생각하는 소비는 ‘선택’ 아닌 ‘필수’, 참여의식 높은 밀레니얼 세대가 주도


[한경비즈니스=이정흔 기자] 지난해 4월 대한민국을 덮쳤던 ‘쓰레기 대란’은 환경문제가 우리 일상에 얼마나 직접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는지 경종을 울리는 계기가 됐다. 코에 빨대를 꽂은 채 죽은 바다거북의 사진이나 멸종 위기에 처한 고래가 비닐봉지 80개를 삼킨 채 죽음을 맞았다는 소식이 연이어 들려온다.

‘친환경’으로는 부족하다. 이제는 ‘필(必)환경’의 시대다. 김난도 서울대 교수는 2019년 주목할 만한 트렌드 중 하나로 ‘필환경(Green Survival)’을 제시했다. 환경문제가 심각해지면서 인간과 지구의 생명을 위협하는 징후들이 곳곳에서 포착된다. 일상생활과 소비에서도 환경은 ‘챙기면 더 좋은’ 것이 아니라 ‘생존을 위해 챙겨야만 하는’ 필수 사항이 됐다는 의미다.
◆대세로 떠오른 ‘그린 컨슈머리즘’

2018년 6월 유엔환경계획(UNEP)이 내놓은 ‘일회용 플라스틱-지속 가능한 미래를 위한 로드맵’이 큰 반향을 불러일으켰다. 보고서에 따르면 세계적으로 해마다 생산되는 플라스틱의 양은 4억 톤 정도다. 그중 가장 많은 비율을 차지하는 것이 ‘플라스틱 포장 용기’로 36%의 비율을 차지한다. 문제는 이 플라스틱 포장 용기의 대부분이 일회용이라는 데 있다. 2015년을 기준으로 전체 버려지는 플라스틱 쓰레기는 3억 톤 정도다. 이 중 플라스틱 포장 용기가 차지하는 비율은 47%에 달한다. 이 플라스틱 쓰레기가 분해되는 데 족히 100년이 넘는 시간이 필요하다.
쓰레기로 인해 환경에 미치는 영향은 우리의 예상보다 훨씬 심각하다. 보고서에 따르면 2050년까지 바다 조류의 99%가 미세 플라스틱을 섭취할 것으로 분석됐다. 거대한 섬을 이룬 해양 쓰레기는 600종 이상의 바다 생물의 생존을 위협할 것이다. 플라스틱은 해양 생물의 생존만 위협하는 것이 아니다. 일회용 플라스틱 제품을 생산하는 데 활용되는 독성 화학물질은 해양 생물을 포함한 동물을 통해 결국은 인간의 생존까지 위협할 수 있다.



경제적인 피해도 막심하다. 아시아·태평양 지역의 플라스틱 쓰레기로 인해 관광업과 어업에 받는 타격은 한 해 13억 달러(약 1조5000억원) 정도로 추산된다. 학계에 따르면 플라스틱 쓰레기로 인해 해양 경제에 미치는 손해는 적어도 해마다 130억 달러(약 14조6000억원)가 될 것으로 계산된다. UNEP는 2050년까지 지금과 같은 상황을 지속하고 아무런 조치도 취하지 않는다면 지구상의 플라스틱 쓰레기는 120억 톤에 달할 것이라고 경고한다. 이를 막으려면 플라스틱 사용을 규제하거나 과징금을 부과하는 등의 대책이 필요하다.

실제로 이 보고서가 발표되고 한 달 뒤인 2018년 7월 유럽연합 집행위원회는 2030년까지 EU 회원국에서 모든 플라스틱 용기를 재활용하는 내용을 담은 대응 전략을 발표했다. 한국도 지난해 5월 ‘재활용 폐기물 관리 종합 대책’을 마련하고 2030년까지 플라스틱 용기의 재활용률을 70%까지 높이고 플라스틱 쓰레기를 50% 이상 줄이기 위한 계획을 진행 중이다.

이처럼 환경문제에 대한 경각심이 커지면서 환경 규제에 민감해지는 정부 정책 등 모든 분위기가 ‘필환경 시대’로 향하고 있다. 그중에서도 ‘그린 컨슈머리즘’의 부상을 이끄는 가장 강력한 동력은 새로운 소비의 주력으로 떠오른 ‘밀레니얼 세대’의 등장이다.

밀레니얼 세대는 기존 세대와 비교해 ‘환경문제’에 대한 의식이 뚜렷하다. 미국 시장조사 업체 글로벌웹인덱스에 따르면 세대별로 물건 값을 추가로 지불하더라도 친환경 제품을 소비하겠다는 비율을 살펴보면 이와 같은 흐름이 뚜렷하게 나타난다. 55세부터 64세까지 베이비부머는 46%가 비싸더라도 ‘친환경’ 제품을 따져 소비를 결정한다고 답했고 36세부터 54세까지의 X세대는 55%가 긍정적으로 답했다. 22세부터 35세까지의 밀레니얼 세대는 이 비율이 61%로 압도적으로 높아진다. 16세부터 21세까지의 Z세대는 58%로 밀레니얼 세대보다 응답률이 낮지만 이들 또한 이제 막 사회에 진입해 소비의 주력으로 부상할 세대라는 점에서 앞으로 이 비율은 더욱 높아질 것으로 보인다.

특히 이미 상당수의 소비자들이 미래의 환경보호를 위해 자신들의 소비 패턴을 바꾸기 시작했다는 점을 눈여겨봐야 한다. 글로벌웹인덱스는 미국과 영국 소비자들을 대상으로 미래 환경을 보호할 책임이 누구에게 있느냐는 질문을 한 결과 70%가 ‘개인·소비자’에게 있다고 답했다. 52%는 플라스틱 제품을 생산하거나 활용하는 기업에 있다고 답했다. 일회용 플라스틱을 아무런 문제의식 없이 사용하고 ‘버리는 문화’를 바꿔야 한다는 사회적 압력이 그만큼 거세진 것이다. 62%의 소비자들이 ‘친환경 제품’이 자신들의 건강에도 더 좋다는 인식을 가지고 있다는 결과 역시 필환경 시대로의 전환을 가속화하는 요인 중 하나다.

이는 기업들에도 보다 실질적인 압력으로 작용하고 있다. 친환경적인 생산방식을 앞세움으로써 더 많은 고객을 확보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이제는 근본적으로 ‘친환경적인 생산방식’으로 바뀌지 않으면 고객들을 ‘잃을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글로벌 기업들을 중심으로 이미 많은 기업들이 필환경 시대로의 전환에 적극적으로 움직이고 있다.

대표적인 예가 유니레버다. 세계 최대 소비재 기업인 유니레버의 폴 폴먼 최고경영자(CEO)는 “회사에 닥쳐 올 가장 큰 위기는 밀레니얼 세대와의 연결점을 잃어버리는 것”이라고 말한 바 있다. 유니레버가 밀레니얼 세대와의 연결고리를 되찾기 위해 선택한 키워드는 다름 아닌 ‘친환경’이다. 유니레버는 2016년 미국의 친환경 생활용품 기업인 세븐스제너레이션을 인수하고 친환경 시장 공략을 본격화했다. 2018년에는 20년 만에 처음으로 신제품을 출시했는데 친환경 샴푸와 샤워젤 시리즈다. 특히 이와 같은 친환경 생활용품은 다른 사업 부문과 비교해 매우 가파른 성장세를 보이며 유니레버 매출 성장에 70% 이상을 기여하고 있다.
◆‘필환경’ 시대를 주도하는 핵심 트렌드

제로 웨이스트, 컨셔스 패션, 비거니즘, 원헬스 원웰페어 운동, 크루얼티 프리…. 최근 친환경과 관련해 새롭게 등장한 용어들이다. 필환경 시대를 주도하는 대표적인 트렌드 세 가지를 소개한다.
❶제로 웨이스트

제로 웨이스트(zero waste)는 환경을 위해 쓰레기 생산을 최소화하는 생활 습관을 강조하는 사회적 운동이다. 쓰레기 배출을 최소화하기 위한 개인의 노력이 강조되지만 기업들도 이와 같은 소비자들의 요구에 맞춰 빠르게 변화하고 있다. 식료품 업체들이 포장지를 친환경 제품으로 바꾸는 것 등이 대표적이다.



최근 2~3년 사이 단순히 포장지를 친환경 제품으로 바꾸는 것을 넘어 ‘포장 없는 식료품 가게’들도 등장하고 있다. 미국 샌프란시스코의 레인보 그로서리나 캐나다 밴쿠버에 자리 잡은 나다 그로서리가 대표적이다. 소비자들은 집에서 미리 가져온 장바구니를 이용하거나 아니면 매장 한쪽에 놓인 ‘재활용 용기’를 활용해 물건을 구매할 수 있다. 국내에도 이와 같은 포장 없는 식료품점이 등장했다. 서울 성수동에 있는 카페 겸 식품점인 ‘더 피커’, 동작구에 자리한 제로웨이스트샵 지구 등도 조용한 입소문을 타고 있다.

최근에는 대형 식료품 체인점들도 이와 같은 ‘제로 웨이스트’ 열풍에 동참하고 있다. 미국의 대형 식료품 체인점인 크로거와 월마트 등도 2025년까지 전 매장에서 제로 웨이스트를 달성하겠다는 계획을 진행 중이다. 플라스틱 포장지를 재활용 포장지 등으로 바꾸고 물건 판매뿐만 아니라 생산과 물류 등 전 과정에서 플라스틱 쓰레기를 줄여 나가고 있다.

식료품 체인뿐만 아니라 음식 포장재도 빠르게 ‘친환경화’되고 있다. 음료회사 펩시는 소나무 껍데기와 옥수수 껍질 등으로 만든 100% 미생물 분해가 가능한 용기를 선보였다. 코카콜라는 2030년까지 자사의 제품에 사용되는 병과 캔을 전부 수집해 재활용하겠다고 선언했다. 국내에서도 이와 같은 트렌드는 점점 더 거세지고 있다. 당장은 비용이 비싸지더라도 친환경 포장을 도입하는 업체들이 늘고 있다.

CJ오쇼핑은 2018년 6월 홈쇼핑업계 최초로 종이 포장재 도입을 선언했다. 포장용 비닐(플라스틱) 테이프를 종이 재질 테이프로 변경하고 부직포 행어 의류 포장재를 종이 행어 박스로 대체했다. 비닐 에어캡(뽁뽁이)과 스티로폼을 사용하는 대신 완충재를 도입한다. ‘착한 경영’으로 소비자들의 눈도장을 찍은 오리온은 2014년부터 환경보호를 위한 포장 개선과 친환경 포장지 개발을 지속해 왔다. 초코파이·포카칩을 비롯해 총 12개 제품에 적용하며 제과업계 최초로 환경부의 녹색인증을 획득하기도 했다.
❷컨셔스 패션

패션업계에서는 ‘컨셔스(conscious) 패션’이 화두다. ‘환경을 의식하는(eco-conscious)’ 소비자들이 늘어나면서 패션 기업들 역시 이들이 원하는 패션 트렌드를 선보이고 있다. 사실 패션은 오랫동안 환경오염의 주범이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다른 제품과 비교해 트렌드가 시시각각 변화하는 만큼 짧은 시간 안에 대량의 쓰레기를 생산하는데다 염색 등 공정 과정에서의 환경오염도 문제였다. 하지만 ‘컨셔스 패션’이 패션업계의 주요 트렌드로 떠오르면서 패션 업체들도 더 이상 옷을 생산하는 과정에서 ‘친환경적인 요소’를 배제하기 어려워졌다. 옷을 생산하고 제작하고 버려진 옷을 처리하는 모든 과정에서 친환경적인 요소를 연구하고 적용하며 이를 소비자들에게 공개한다.

컨셔스 패션의 원조는 글로벌 아웃도어 브랜드인 ‘파타고니아(Patagonia)’라고 할 수 있다. 파타고니아는 2011년 블랙 프라이데이에 ‘이 재킷을 사지 마세요(Don’t buy this jacket)’라는 광고를 내보냈다. 의류 제품 하나를 만들 때마다 환경 파괴가 일어나고 있으니 정말 필요한 경우에 한해 ‘생각하는 소비’를 부탁한다는 내용이었다. 이를 통해 친환경 패션이라는 이미지를 확실하게 대중에게 각인시킨 파타고니아는 이후 브랜드 인지도를 올리는 것은 물론 매출도 크게 늘릴 수 있었다. 최근에도 파타고니아는 ‘리서클 컬렉션’을 선보이며 컨셔스 패션 트렌드를 주도하고 있다. 새로운 옷을 제작하는 데 재생 가능한 나무나 생산과정에서 사용하고 남은 자투리 면 조각을 활용하는 것이다.



국내에서는 코오롱FnC가 이와 같은 컨셔스 패션 트렌드에서 앞서가고 있다. 2012년부터 업사이클링 브랜드 ‘래;코드(RE;CODE)’를 운영하고 있다. 의류 제품들은 3년 차가 되면 소각되는데 이러한 제품들을 해체해 새로운 패션으로 탈바꿈시켜 소비자에게 다시 선보인다. 특히 이와 같은 제품들은 소량만 생산되는데다 같은 디자인이어도 디테일이 조금씩 다르기 때문에 독특한 취향을 중요시하는 밀레니얼 세대의 눈길을 사로잡는 데도 안성맞춤이다.

블랙야크가 운영하는 친환경 의류 브랜드 나우(nau)는 화학비료와 살충제를 일절 배제한 면을 활용해 옷을 제작한다. 또 청바지를 염색하는 과정에서 버려지는 방대한 양의 폐수를 줄이는 데도 노력하고 있다. 통상적으로 청바지 한 벌을 만들기 위해서는 4인 가족이 6일 동안 사용할 수 있는 생활용수가 버려지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블랙야크는 원단을 염색한 뒤 옷을 만드는 것이 아니라 만들어진 옷을 염색함으로써 염색 과정에서 배출되는 물을 최소로 줄이고 정수 처리를 거쳐 오염을 최소화한 청바지를 생산하고 있다.

스포츠 브랜드 아이다스도 2016년부터 폐기물을 재활용하는 업사이클 제품을 선보이고 있다. 해양 환경보호 단체인 ‘팔리포더오션’과 파트너십을 맺고 해양 정화 작업 도중 수거된 플라스틱 폐기물을 활용해 제품을 생산 중이다. 대표적으로 ‘울트라부스트 팔리’ 러닝화에는 11개의 플라스틱 병이 사용됐다.
❸비거니즘

‘채식주의자’를 뜻하는 비건(vegan)은 이제 일상생활에서 꽤 친숙하게 들려오는 용어가 됐다. 오히려 최근에는 단순히 육식을 피하는 식생활을 넘어 생활 전반을 아우르는 ‘비거니즘(veganism)’으로 진화하고 있다. 생활 속에서 불편함을 감수하고 플라스틱의 사용을 줄이는 것을 넘어 조금 더 넓은 의미에서 ‘동물 보호’를 실천하는 삶의 방식이다. 동물의 털을 활용한 모피코트를 입지 않는다든지, 동물실험을 거치지 않는 ‘크루얼티 프리(cruelty free)’ 화장품을 찾아 사용하는 식이다. 이효리 씨와 나탈리 포트만 씨 등의 국내외 유명 스타들이 비건 라이프를 실천하는 것으로 알려지면서 더욱 화제를 모으고 있다.

이미 화장품업계에선 비건 인증과 동물실험 금지 캠페인에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다. 무엇보다 최근 미국과 유럽 시장 등에서 잇따라 뷰티 제품에 함유된 화학성분의 유해성이 지속적으로 경고되면서 ‘친환경 제품’이 강세를 보이는 흐름과도 무관하지 않다.



영국의 화장품 브랜드 ‘러쉬’는 생산 제품의 약 80%가 비건 제품이다. 동물실험을 하지 않는 것은 물론 매년 동물 대체 실험 연구에 이바지한 개인과 단체에 일정 기금을 기부하는 ‘러쉬 프라이즈’도 주최하고 있다. 미국 유기농 코스메틱 브랜드인 ‘닥터 브로너스’는 크루얼티 프리 인터내셔널이 인증해 주는 ‘리핑 버니(Leaping bunny)’ 인증을 전 제품에 획득한 것으로 유명하다. 리핑 버니는 제품을 생산하는 모든 과정에서 동물실험을 하지 않았다는 것을 나타낸다.
국내에서는 아모레퍼시픽의 이니스프리가 2018년 9월 자극적 화학 원료 대신 커피 찌꺼기 천연 원료를 사용한 앤트러사이트 커피 시리즈를 출시했다. 이 밖에 아모레퍼시픽의 프리미엄 브랜드 라네즈는 2018년 3월 영국비건협회에서 비건 인증 마크를 획득한 ‘뉴 워터뱅크 에센스’를 리뉴얼 출시했고 프리메라도 지난해 5월 비건 인증을 받는 ‘내추럴 스킨 메이크업’ 라인을 선보였다. 프리메라는 올해로 7년째 지구 생명 원천인 생태습지를 보호하고 중요성을 알리기 위한 사회공헌 캠페인을 펼치며 친환경 브랜드 이미지를 심는 데 집중하고 있다.

글로벌 화장품 제조업자개발생산(ODM) 전문 회사 코스맥스는 2018년 10월 프랑스 인증 기관(EVE)으로부터 아시아에서 처음으로 화장품 생산 설비에 대한 비건 인증을 받았고 국내 패밀리 홈케어 브랜드인 분코는 2018년 초 영국 비건소사이어티 인증을 거친 ‘비건 치약’과 ‘비건 주방 세제’ 등을 비롯한 생활용품을 선보여 눈길을 끌고 있다.
vivajh@hankyung.com





[본 기사는 한경비즈니스 제 1206호(2019.01.07 ~ 2019.01.13)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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