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황건호 초대 금융투자협회장 “과도한 규제로 ‘금융 빅뱅’ 취지 무색해져”

[커버스토리=자본시장법 10년…다시 그리는 ‘한국판 골드만삭스’의 꿈]
-“자본시장 발전 위해 규제의 패러다임 바꿔야”

[한경비즈니스=최은석 기자] 황건호(68) 서강대 경영학부 교수는 1976년 대우증권에 입사해 부사장까지 지낸 증권계 원로다. 1984년 대우증권 미국 뉴욕사무소장 시절 최초의 외국인 전용 투자 펀드인 ‘코리아펀드’를 뉴욕 증시에 상장했다. 대우증권 최연소 임원과 영업총괄 부사장을 지낸 뒤 1999년 메리츠증권 사장을 거쳐 2004년 한국증권업협회 회장에 당선됐다. 2009년 2월 자본시장법 시행과 함께 출범한 금융투자협회의 초대 회장에 선출됐다.

자본시장법 제정 과정에서 중추적 역할을 한 황 교수는 “자본시장법은 선진국에 견줘 열악한 국내 자본시장의 경쟁력 강화를 통한 ‘금융 빅뱅’을 유도하는 차원에서 정부와 업계가 의기투합해 제정한 법이지만 당초 취지와 달리 규제 체계는 여전히 후진적 행태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며 “영업 행위에 대한 책임은 일차적으로 금융회사에 맡겨 두고 금융 당국은 투자자 보호와 시장의 안정성을 위한 거시 건전성 규제에 중점을 두도록 규제 패러다임을 바꿔야 한다”고 조언했다.



▶2004년 증권업협회장에 취임하셨는데 당시 증시 상황은 어땠습니까.

“코스피지수가 760 수준이던 시절입니다. 외국인들이 시가총액의 44%를 쥐고 있던 때였어요. 은행 주식은 죄다 외국인이 가졌고 삼성전자 주식의 60% 이상을 보유하고 있었어요. 증시의 외국인 지분율 50% 돌파가 시간문제였죠. 국내에 엄청난 유동성이 있었음에도 국내 우량 기업의 주식을 모두 외국인이 가지고 있다는 게 문제였습니다.

증권업협회장에 취임하자마자 ‘주식으로 저축하자’ 캠페인을 기획해 9월부터 한국경제신문과 함께 대대적으로 알렸어요. 그 결과 외국인 지분 비율을 28%까지 떨어뜨렸고요. 코스피지수 ‘1000 시대’를 이끌어 냈습니다. 2003년 말 기준 국내 주식형 펀드(주식형 수익증권) 규모는 12조원이었습니다. 적립식 주식저축의 돌풍에 힘입어 2005년 그 규모가 144조원으로 치솟았습니다. 증권업계가 합심해 이뤄낸 결과물이었습니다.

그 덕분에 2008년 글로벌 금융 위기 때 외국인 지분이 그나마 덜 빠져나간 겁니다. 또 하나 문제는 당시 국민연금기금이 135조원대였습니다. 600조원 수준인 현재에 비하면 격세지감이죠.”

▶국민연금의 주식 투자 비율은 어느 정도였나요.

“당시 국민연금의 주식 보유율은 4.7%에 불과했어요. 세계적으로 이런 나라가 없었습니다. 국민연금이 기획예산처(현 기획재정부) 계획에 따라 매년 기계적으로 투자하던 시절이었습니다. 국민연금이 안전한 국채만 사고 있었어요. 결국 국채 금리가 시중금리와 달리 왜곡되는 문제가 발생했습니다. 세계적 저금리 기조에 자산 운용을 채권으로 운용해 수익이 날 수 없는 상황이었는데도 말이죠.

기금 운용의 자율성을 확대하기 위한 목적으로 기금관리기본법을 개정하는 청원을 해 취임 첫해에 성사시켰어요. 국민연금 자금이 주식시장에 들어오기 시작하니까 다른 연금들도 자연스레 들어오더라고요. 국민연금이 600조원 규모로 커진 데는 주식시장의 공이 컸습니다.”

▶자본시장법을 추진하게 된 배경은 뭡니까.

“이른바 ‘금융 빅뱅’을 위한 조치였습니다. 과거 증권법은 세분화한 전업주의에 입각한 규제법이었습니다. 영미법처럼 관습법이 아니었으니까요. 모든 관련 거래법을 하나하나 명시하도록 했어요.

예를 들어 증권업을 정의하고 증권 상품에 대한 구체적 설명 등을 나열하지 않으면 새로운 상품이 나오기 힘든 구조였죠. 시행규칙에 의거해 예외적으로 ‘기타 대통령이 정하는 금융 상품’에 해당하는 상품 하나를 도입하는 데 엄청난 노력을 기울여야만 했어요. 새로운 금융 상품에 대한 허가권을 전부 금융 당국이 가지고 있다 보니 그만큼 창의성이 떨어지는 거죠.

업계에서는 제가 협회장에 취임하기 전부터 자본시장 발전을 위한 새로운 형태의 법이 필요하다는 논의가 있었어요. 협회장 취임 이후 2005년부터 증권 관련 6개 법을 통합하는 논의를 정부·업계·학계가 본격적으로 시작했습니다. 자본시장만이라도 세분화한 전업주의의 칸막이를 헐어 국제 경쟁력을 키워 보자는 취지였죠. 우리가 글로벌 자본시장을 주도하는 플레이어가 되려면 세분화한 전업주의에서 벗어나야 한다는 데 정부와 업계가 의견을 모았습니다.

마침 호주가 1998년 이후 금융시장을 개혁하던 중이었습니다. 호주가 금융서비스법을 모델로 그때 도입했던 게 ‘슈퍼 애뉴에이션’입니다. 우리로 치면 기업연금법인데요, 그 슈퍼 애뉴에이션을 여러 차례 스터디했습니다. 결국 호주의 개방적 입법을 모델로 하고 영미법을 참조해 자본시장법 제정을 추진했습니다.”

▶추진 과정이 순탄치 않았을 것 같습니다.

“은행권의 반발이 굉장했어요. 예를 들어 자본시장법안에 지급 결제 부분이 있었는데 과거에는 증권사가 고객의 자산을 결제할 때 전부 은행에 가상 계좌를 만들어 은행을 통해야만 결제가 가능했어요. 1970년대에 배우던 화폐금융론의 내용을 토대로 지급 결제 업무는 상업은행의 고유 업무라고 생각하는 틀에 박힌 사람들의 반대가 심했죠. 증권업계 내부에서도 반대가 있었습니다. 이해관계가 얽혀 있었기 때문이죠.”

▶법안 통과 당일 에피소드도 있었다고요.

“당시 금융감독위원장이 윤증현 윤경제연구소장이었고 국회 법사위원장이 안상수 변호사였습니다. 국회 본회의 당일 해외 출장 뒤 귀국과 동시에 안 위원장을 급히 만났는데 당시 기재위에서 법안이 통과되고 금감원과 한국은행이 지급 결제 업무의 조사권을 가지고 팽팽하게 맞서고 있더라고요.

그런데 윤 전 위원장이 그나마 자본시장을 아는 분이라 금감원의 단독 조사권을 한은에 부분적으로 이양해 줬어요. 그 대신 조사 시 반드시 금감원과 한은이 같이 나가야 한다는 조항을 달았죠. 진통 끝에 합의한 후 안 위원장에게 법안 통과를 요청했고 2007년 7월 3일 국회 본회의에서 자본시장법 제정을 심의·의결했던 기억이 생생합니다. 새벽에 국회 본회의 통과 현장까지 쫓아갔던 게 기억에 남네요.”



▶법 시행 10년이 지났지만 지나친 규제가 여전하다는 주장이 있습니다.

“금융업이 일반 산업과 달리 규제 산업인 것은 맞습니다. 금융 안정과 투자자 보호가 중요하기 때문이죠. 규제하지 말자는 얘기가 아닙니다. 금융 규제를 큰 틀에서 보는 철학이 없다는 얘기예요. 금융시장의 안정을 위한 건전한 규제에는 찬성합니다. 금융 상품이 다양하고 복잡해지면서 금융 소비자를 보호하는 것은 세계적 추세입니다.

다만 우리 금융 규제의 상당 부분이 금융 행위에 대한 규제이자 사전적 규제라는 데 문제가 있습니다. 시장의 주체에게 맡겨 두고 책임은 사후에 물어도 되는데 모조리 개입하고 있다는 얘기죠. 모든 것을 규제 당국의 허가하에서만 움직이다보니 창의성이 제대로 발휘되지 못해요. 예대마진이 중요한 은행과 달리 자본시장은 새로운 시장과 상품을 개척하는 기업가 정신이 필요한 곳입니다.

30년간 업계에서 활동한 뒤 대학에서 금융시장에 대해 강의하는 저도 요즈음의 여러 파생상품 등에 대해 학생들에게 설명하기 위해 관련 서적을 읽다 보면 이해가 안 돼 머리에 쥐가 날 정도예요. 이렇게 팽팽 돌아가는 것을 규제 당국에 있는 사람들이 어떻게 다 이해한다는 것인지 모르겠어요.

창의성이 강조되는 자본시장에서 행위 규제를 사전적으로 촘촘히 해야 한다는 고정관념을 깨지 못하면 국내 금융 산업의 미래는 없다고 봅니다.”

▶구체적으로 어떤 철학이 필요할까요.

“영업 행위의 책임은 금융회사가 지도록 맡겨 두고 금융 당국은 시장의 안정성과 투자자 보호에 주력해야 합니다. 자본시장법의 취지는 포괄주의인데 열거주의로 행위 규제를 해버리니까 문제가 되는 거죠. 엄청난 시중의 유동성이 경제 발전을 위해 쓰이려면 자본시장이 제 역할을 해야죠.

나라 경제에 도움이 안 되는 집값만 엄청나게 높이고 있는 이 유동성을 어떻게 할 겁니까. 또 최근 10년간 무역 흑자가 매월 60억~70억 달러씩 발생합니다. 그 엄청난 유동성을 4차 산업혁명과 연결할 수 있는 매개체가 자본시장이라는 얘기입니다.

정책에 신뢰성이 있어야죠. 자본시장에 종합 금융 투자 업무 허가를 내주기 위한 방안을 2016년 발표했으면 이를 실행해야 하고 2017년 정부가 필요에 의해 글로벌 초대형 투자은행(IB)을 만들어 자본시장의 투자 기능을 활성화하기로 했으면 그 약속을 지켜야죠. 발표 이후 상업어음 발행을 허용하는, 자금 조달 창구를 열어주는 조치를 한국투자증권·NH투자증권 두 곳에만 해줬는데 그것도 요즘 문제가 돼 금융감독원에서 조만간 한국투자증권에 대한 제재 심사를 한다는 얘기를 듣고 정말 답답했습니다.

우리 법률에 무죄 추정의 원칙이라는 게 있잖아요. 우선 허용해 주고 제대로 못하면 취소하면 됩니다. 그런데 규제 당국은 너무 고려 사항만 많고 철학이 없어요. 때로는 금융 규제 당국이 금융 산업 발전을 위한 약속을 지키기 위해 감사원이나 공정거래위원회에 할 얘기는 해야죠. 검찰이나 공정위가 지적하면 업계에 책임을 떠넘기고 정치권에 휘둘리는 규제 당국에 무슨 철학이 있겠습니까.”

▶그렇다면 자본시장에 대한 규제는 어떤 방향으로 나아가야 할까요.

“금융 선진국에는 규제 코스트라는 개념이 있습니다. 규제를 위한 불필요한 비용을 줄여야 한다는 거죠. 우선 금감원 조직이 너무 비대한 상황입니다. 제가 금감원 옴부즈만위원장을 맡으면서 조직도를 보고 깜짝 놀랐어요. 금융회사에 맡겨도 될 책임을 모두 떠안으려다 보니 조직이 비대해질 수밖에 없죠.

한번은 금감원 관계자에게 이런 얘기를 했습니다. 홍콩은 매일 대여섯 개 금융회사가 없어지고 대여섯 개 회사가 새로 생긴다고요. 그만큼 역동적인 시장이라고 설명했더니 우리 현실은 한 군데라도 잘못되면 국회와 언론에서 난리가 난다고 하더군요.

내가 뭘 보호해야 하고 규제해야 하는지에 대한 철학이 있으면 국회에 가서 당당하게 이야기할 수 있어요. 금융 안정을 위한 금융 시스템에 문제만 없다면 금융회사도 망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시장의 큰 흐름이 중요한 거죠. 결국 규제 당국도 전문성이 부족하다 보니 발생하는 현상이에요.

2009년 노벨 경제학상을 받은 올리버 윌리엄슨 캘리포니아대 교수는 사회적 총거래비용이 증가하지 않는 한 정부가 개입하지 않는 게 좋다고 말했죠. 우리의 규제에도 이러한 철학이 필요합니다. 기업이 총거래비용을 높이거나 약탈적 가격을 형성하지 않는 한 지나친 정부의 개입은 시장 발전을 저해할 뿐입니다. 한국거래소도 세계적으로 유례가 없는 공공기관으로 전락해 버렸습니다. 글로벌 경쟁에서 살아남기 힘든 구조죠.”

▶마지막으로 국내 자본시장이 발전하기 위해 우선해야 할 것은 무엇인지요.

“2009년 한국금융투자협회 초대 회장에 취임한 이후 3년간 국내 주식시장의 질적 수준을 높이기 위해 모건스탠리캐피털인터내셔널(MSCI) 선진국지수에 편입되는 방안을 추진했습니다. 이를 달성하지 못한 게 굉장히 아쉽습니다.

국제통화기금(IMF)과 영국 FTSE, 미국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 다우존스지수는 한국을 선진국으로 분류하고 있습니다. MSCI만 유일하게 한국을 신흥국 지수에 편입해 둔 상태죠. 중국·한국·인도·브라질 등 24개국이 MSCI 신흥국 지수에 묶여 있어요. 글로벌 인덱스 펀드가 투자 지표로 가장 많이 활용하는 것이 MSCI지수인 만큼 선진국지수에 편입돼 체급을 높일 필요가 있습니다.”

choies@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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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기사는 한경비즈니스 제 1209호(2019.01.28 ~ 2019.02.03)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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