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기업도 테스트베드로 활용…‘날개’ 단 크라우드 펀딩

[커버스토리 = 크라우드 펀딩으로 본 소비 트렌드 10]
-잇단 규제 완화로 꾸준한 성장세, 소비자 피드백 받고 추가 투자 유치할 수 있어




[한경비즈니스=김영은 기자] 2019년 크라우드 펀딩 시장의 출발이 좋다. 정부는 1월 크라우드 펀딩 활성화를 위해 모집 한도를 확대하는 등 규제를 완화했다.

투자 환경이 개선되면서 투자자들의 관심도 커지고 있다. 크라우드 펀딩 1위 기업 와디즈는 지난해 누적 펀딩액 1000억원을 넘어섰다. 다른 크라우드 펀딩 플랫폼도 완만한 성장세를 이어 가는 중이다.


크라우드 펀딩은 군중(crowd)과 자금 조달을 뜻하는 펀딩(funding)의 합성어다. 주로 자금력이 부족한 스타트업이 온라인 크라우드 펀딩 플랫폼을 통해 다수의 투자자로부터 자금을 모으는 펀딩 방법이다.


크라우드 펀딩 1위인 와디즈가 지난해 성사시킨 펀딩 금액은 601억원이다. 2017년(282억원)의 2배가 넘는다. 펀딩 건수는 지난해 3500건으로 2017년(1200건)의 약 3배에 달했다. 다른 기업들의 약진도 이어졌다.

카카오의 선주문 기반의 커머스 플랫폼인 카카오메이커스는 2018년 매출액 540억원을 기록했고 거래액과 매출액, 구매 고객 수 모두 전년 대비 2배 이상 증가했다.

이 밖에 영화·음악·미술 등 창작자 중심의 텀블벅은 지난해 약 300억원의 후원금을 달성했고 증권형 크라우드 펀딩의 성공률이 높은 크라우디는 지난해 약 60억원의 후원금을 기록했다. 이 네 기업의 후원 성사금만 합쳐도 지난해 크라우드 펀딩 시장에 몰린 돈은 1500억원을 넘어선다.


◆자금 조달에 마케팅 효과까지


크라우드 펀딩 서비스는 크게 리워드형(후원·기부)과 증권형(주식·채권)으로 나뉜다. 리워드형은 참여자들이 스타트업이 출시할 신제품에 투자하고 그 보상으로 싼값에 해당 제품을 받는 방식이다. 증권형은 기업이 투자자들에게 지분 증권을 발행해 자금을 모집하는 방식이다.


국내 크라우드 펀딩은 2016년부터 본격화됐다. 크라우드 펀딩이 소비자들에게 꽤나 익숙한 자금 조달 형태로 인식되면서 크라우드 펀딩의 외연도 확장되고 있다.

과거에는 신생 기업의 초기 자본금 조달을 위한 수단으로 인식됐다면 최근에는 자금 조달을 넘어 제품에 대한 시장 반응 조사, 소비자의 피드백 확보, 충성 고객 형성 등 마케팅을 위한 크라우드 펀딩 사례도 늘고 있다.

특히 상품을 선주문하는 리워드형은 양쪽 모두 최소 주문 수량에 도달해야 제품을 판매, 구매할 수 있기 때문에 판매자와 주문자 모두 제품 자체에 관여도가 높다.


실제 구매자들의 피드백이 제품의 개선으로까지 이어지는 것도 많다.
황인범 와디즈 이사는 “소비자들은 브랜드나 유통 채널보다 브랜드의 스토리와 상품의 생산 과정에 관심이 높고 그 과정에 자신들의 아이디어를 반영하는 데서 흥미를 느낀다”고 말했다.


스타트업뿐만 아니라 대기업도 시장조사와 트렌드를 파악하기 위해 크라우드 펀딩 플랫폼을 찾고 있다. 대기업 시스템에 맞게 돌아가는 유통 구조가 아니라 트렌드를 빠르게 읽어낼 수 있고 소비자들의 수요를 예측하는 테스트베드가 되기 때문이다.

신세계인터내셔날의 사내벤처인 FLIP(플립)은 지난해 실험적으로 구스다운(거위털) 패딩을 생산하면서 의류 소재 선정과 생산 과정 등을 공개했다. 그러자 16만원대의 패딩으로 2억5000만원의 펀딩액을 달성했다. 첫 펀딩이 성공하자 신세계인터내셔날의 대표 브랜드와 플립의 협업 제품도 와디즈를 통해 공개됐다.


식품 기업 대상웰라이프는 식사 대용 기능 식품 ‘마이밀’을 와디즈에 선공개하며 최대 45% 할인된 가격에 소비자들에게 제공했다. 기존 중증 환자들을 위한 식사 대용 기능 식품을 B2C로 풀기 위한 새로운 도전이었다.


삼성전자의 사내벤처 ‘C-랩’도 와디즈의 단골 판매자다. 벨트에 건강관리 기능을 도입한 스마트벨트 브랜드 ‘웰트’를 와디즈를 통해 처음 출시했다. 또 다른 브랜드 ‘어헤드’는 헬맷에 부착하는 무선 헤드셋을 와디즈를 통해 판매했고 두 번의 펀딩을 통해 1억3000만원을 모집했다.


◆‘날개’ 단 증권형 크라우드 펀딩

증권형 크라우드 펀딩은 올해 더 급격한 성장이 예상된다. 지난해 수제 자동차인 ‘모헤닉 게라지스’와 전시회인 ‘샤갈의 러브앤라이프전’ 등은 ‘흥행 대박’을 터뜨렸지만 연간 모집 한도가 7억원에 불과해 7억원까지만 펀딩할 수 있었다.

하지만 올해부터 ‘자본시장법 시행령 개정안’이 시행되면서 창업 벤처기업이 크라우드 펀딩을 통해 1년 동안 모집할 수 있는 금액이 15억원으로 늘어났다. 상품과 서비스 구매가 함께 이뤄지는 ‘리워드형’에는 금액 제한이 없지만 신생 기업의 지분 투자 등을 위한 ‘증권형’도 활발하게 한다는 취지다.


박혜진 자본시장연구원 연구위원은 “크라우드 펀딩은 일반 공모에 비해 기업의 투자 유치 등록 절차가 간소화돼 있어 창업 기업의 자금 조달에 편의성과 접근성이 향상되는 효과가 있다”며 “기존 전문 투자자에게 한정돼 있던 벤처 투자의 기회가 일반 대중에게 확대되는 등 긍정적인 효과가 있다”고 말했다.


시장은 규제 완화에 즉각 반응했다. 개정안이 시행된 다음 날인 1월 16일 프로젝트가 개설된 축제 프로젝트인 ‘그린플러그드 서울 2019’는 하루 만에 8억원을 돌파했다. 이 프로젝트는 6개월 만기 채권 형태로 티켓 판매 실적에 따라 최대 25%까지 수익을 낼 수 있는 채권 투자형 프로젝트다.

이어 1월 17일 프로젝트를 개설한 디지털 자산 관리 서비스인 로보어드바이저 ‘불리오’를 개발한 두물머리가 개설 3일 만에 펀딩 금액 10억원을 넘어섰다.


크라우드 펀딩을 통해 소비자들의 선택을 받으면 외부의 후속 투자도 이어진다. 바이오 스타트업인 쿼럼바이오는 세균 변성이나 병의 발현을 억제하는 쿼럼센싱 기술을 기반으로 내놓은 프리미엄 치약으로만 지난해 3500만원 이상을 모금했다.

모금액은 많지 않았지만 후속 투자가 이어졌다. 개인 엔젤 투자 등을 포함하면 30억원에 가까운 투자금 유치에 성공했다. 크라우디를 통해 펀딩에 나선 반려동물 용품 배달 서비스 ‘펫프렌즈’는 펀딩 이후 50억원의 후속 투자를 유치하기도 했다.

세계 최초 벽화 그리는 로봇을 개발한 로보프린트는 크라우디에서 2번의 크라우드 펀딩을 통해 약 10억원을 조달했다. 투자 경쟁이 치열해 청약 경쟁을 하던 벤처캐피털이 개인 투자자들의 물량 때문에 배정에서 탈락되기도 했다. 크라우드 펀딩 이후 2018 평창 동계올림픽, GS건설, LH공사 프로젝트를 수주하는 등 의미 있는 성과가 이어졌다.


글로벌 기업도 한국 시장 진출 전 소비자들의 반응과 시장 수요를 직접 예측하기 위해 크라우드 펀딩의 문을 두드린다. 중국 패드메이트의 무선 이어폰 ‘파뮤’는 첫 펀딩에서 5억4000만원의 펀딩액을 달성하며 한국 시장에서의 성공 가능성을 봤다.


크라우드 펀딩의 성장세가 뚜렷해지고 있지만 아직 국내시장은 태동기라고 할 수 있다. 향후 시장 성장을 위해서는 정보 제공의 객관성이 확보돼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크라우드 펀딩 플랫폼에서 제공하는 기업 정보를 투자자들이 전적으로 믿고 투자하는 만큼 객관적이고 검증된 정보를 제공해야 한다는 이유다.


김주원 크라우디 공동대표는 “영국과 미국은 크라우드 펀딩이 국가 국내총생산(GDP) 대비 0.5% 이상의 시장을 형성하고 있는데 한국에 이를 적용하면 아직 10배 이상 성장할 가능성이 남아 있다”며 “다양한 플랫폼 간의 옥석 가리기가 일어날 것이고 누가 정확한 공시와 사실관계를 객관적으로 공시하고 적절한 프로젝트를 시장에 제공하는지가 관건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kye0218@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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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기사는 한경비즈니스 제 1211호(2019.02.11 ~ 2019.02.17)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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