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랙록’ 래리 핑크 회장의 연례 서신…“‘목적’ 있는 기업이 성공한다”

[머니]
-투자 기업 CEO들에게 새로운 리더십 주문, “기업, 사회적 가치 만들어 내야”




[한경비즈니스=이정흔 기자] 6조 달러(약 6200조원)가 넘는 자산을 운용하는 블랙록은 전 세계 최대의 자산운용사다. 블랙록의 공동 창업자인 래리 핑크 회장은 해마다 투자 기업들의 최고경영자(CEO)에게 서신을 보낸다. 글로벌 금융시장 최대의 ‘큰손’을 이끄는 CEO의 서신에 해마다 많은 기업과 투자자들의 관심이 쏟아지는 것은 당연하다. 올 한 해 블랙록이 어떤 기업들에 관심을 갖고 투자할 것인지에 대한 힌트를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올해는 래리 핑크 회장의 진짜 서신이 공기되기 하루 전 ‘가짜 서신 소동’이 벌어지기도 했다. “파리 기후협약을 준수하지 않는 석탄 관련 업체 등에 더 이상 투자하지 않겠다”는 내용이었다. 파이낸셜타임스를 비롯한 언론사들이 이를 진짜 서신으로 착각해 보도하며 월가를 술렁이게 만들었을 정도다.


1월 17일 공개된 핑크 회장의 실제 서신이 강조하는 바는 분명했다. 먼저 공개된 가짜 서신처럼 급진적인 어조는 아니었지만 강조하는 바는 비슷했다. “양극화·환경 등 사회적인 문제들을 해결하는 데 기업이 보다 주도적인 역할을 해야 하며 이와 같은 ‘사회적 목적’이 분명한 기업들이 장기적인 관점에서 더 높은 이익을 창출할 수 있다”는 메시지다. 핑크 회장의 서신에 담긴 ‘2019 투자 키워드’를 뜯어봤다.


◆우울한 2019 전망, ‘장기 성장 전략’ 중요


“2019년에 들어서며 기업의 장기적인 성장 전략이 그 어느 때보다 중요해지고 있습니다. 글로벌 경기는 그 어느 때보다 취약해지고 있고 이에 따라 ‘단기적 성과’를 좇는 기업과 정부의 행동 전략의 중요성은 점점 더 떨어지고 있습니다. 시장의 불확실성은 그 어느 때보다 만연하고 자신감도 떨어지고 있습니다. 미국의 ‘경기 사이클 후반부’에 접어들면서 많은 이들이 우려의 목소리를 나타내고 있습니다. 전 세계적으로 정체된 임금과 기술의 발달이 노동시장에 미칠 영향 그리고 미래에 대한 불확실성에 막연한 두려움을 느낍니다. 이와 같은 두려움은 우리 사회에 분노와 국수주의 그리고 제노포비아(이방인에 대한 혐오)를 불러일으킵니다. 이미 몇몇 국가에서는 민주주의가 무너지고 정치 기능이 제대로 작동하지 못한 상태에서 이와 같은 대중의 공포를 부추기고 있습니다. 다자주의와 국제기관에 대한 믿음은 망가졌습니다.”


서신에 담긴 핑크 회장의 2019년 경제 전망은 생각보다 부정적으로 보인다. 실제로 최근 들어 미국의 경제 기관들은 미국과 글로벌 경기 전망치를 앞다퉈 하향 조정하고 있다. 국제통화기금(IMF)은 지난해 10월 세계경제 성장률 전망치를 기존 3.9%에서 3.7%로 내렸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도 지난해 11월 세계 경제성장률 전망치를 기존 3.7%에서 3.5%로 하향 조정했다. 이처럼 글로벌 경기에 대한 우려가 높아지는 상황에서 핑크 회장은 기업들이 ‘장기적인 성장 전략’에 집중해야 한다고 강한 어조로 말하고 있다.


“글로벌 경제의 펀더멘털이 악화되고 정부 또한 사회적 문제에 대한 해결책을 제시하지 못하는 상항에서 우리 사회는 이와 같은 경제와 사회적 문제를 해결하는 데 기업들이 보다 적극적인 역할을 해주길 기대하고 있습니다. 기업들이 살펴봐야 할 사회적 문제들은 매우 광범위합니다. 환경을 보호하고 은퇴 후의 노후 생활에 대한 불안감을 해소하고 인종과 성별의 불평등을 해결하는 것 등이 포함됩니다.”


이와 같은 맥락에서 그가 강조하는 것은 ‘기업의 목적과 이익(purpose & profit)’이다. 이는 2019년 핑크 회장이 보낸 연례 서신의 제목이기도 하다. 이 서신을 통틀어 ‘목적(purpose)’이란 단어만 무려 21번 반복된다.


사실 핑크 회장이 연례 서신을 통해 ‘기업의 목적’을 강조한 것은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2017년 서한에서 처음 기업이 추구하는 ‘사회적 가치’와 같은 맥락에서 ‘기업의 목적(purpose)’이란 용어를 사용했고 2018년 서신엔 아예 제목을 ‘기업의 목적의식(the sense of purpose)’으로 달았었다. 하지만 지난해까지만 하더라도 ‘기업의 목적’이 구체적으로 무엇을 의미하는지 다소 불명확했던 게 사실이다. 이에 비해 올해는 이에 대한 핑크 회장의 설명이 보다 구체적이고 뚜렷해졌다.


“지난해 나는 모든 기업들이 어려운 환경을 헤쳐 나가기 위한 ‘큰 틀(framework)’을 고민해야 하며 이는 회사의 사업 모델이나 기업 전략과 관련해 어떤 ‘목적’을 지니고 있는 것인지를 분명히 하는 데서부터 시작해야 한다고 썼습니다. 기업의 목적은 단순히 마케팅을 위한 캠페인이나 표어를 말하는 게 아닙니다. 기업의 목적은 회사가 사회적 가치를 만들어 내기 위해 매일매일 어떤 역할을 해야 하는지, 즉 ‘기업의 존재 이유’에 대한 것입니다. 단순히 더 많은 이익을 좇아가는 것을 넘어 이와 같은 존재 이유를 달성해 가기 위한 ‘살아 움직이는 힘’이나 마찬가지입니다.”


핑크 회장은 특히 ‘기업의 목적과 이익은 불가분의 관계’라고 강조한다. 분명한 사회적 목적을 추구하는 기업일수록 장기적인 관점에서 봤을 때 더 높은 이익을 창출할 수 있다는 믿음이다.


◆새로운 세대의 부상, 투자 선호도 변화


핑크 회장은 기업 경영인들에게 보내는 서신을 통해 ‘새로운 리더의 역할’을 강조하고 있다. 그는 특히 세 가지 부문에서 이와 같은 ‘리더’의 역할이 매우 중요하다고 짚었다. 사회의 양극화와 환경문제 그리고 노후 생활에 대한 불안감이다.


그중에서도 은퇴 후 노후의 불안을 해결하는 데 기업들이 ‘전통적’인 방식에서 벗어나 새로운 리더의 역할을 해야 한다는 것을 강조하고 있다.


“특히 은퇴 문제는 기업들이 전통적인 리더의 역할에서 벗어나 새로운 리더십을 창조해 가는 것이 절대적으로 필요합니다. 특히 미국만 하더라도 너무 많은 노동자들이 노후 준비가 부족한 채 직장을 떠납니다. 전 세계 대부분의 국가들에서 이와 같은 문제를 마주하고 있습니다. 기대수명이 늘어나는 만큼 은퇴 후 생존을 위해 감당해야 할 비용 역시 증가할 수밖에 없습니다.”


이는 블랙록이 최근 ‘은퇴 상품 투자에 집중하겠다’는 방향과도 맞아떨어지는 부분이다. 블랙록은 최근 전체 인력의 약 3%에 해당하는 인력의 구조조정을 진행한 바 있다. 이와 함께 사업 구조를 단순화했는데, ‘신기술, 은퇴 상품, 대체 투자’ 영역에 집중하기 위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핑크 회장은 이와 같은 투자의 중심축이 변해 가는 근거로 ‘새로운 세대’의 부상을 들었다.


“기업의 목적을 충실히 이행하고 사회적 책임을 다하는 기업들은 장기간에 걸쳐 안정적인 수익을 거둘 수 있습니다. 반면 이를 경시하는 기업들은 실패합니다. 이와 같은 흐름은 ‘밀레니얼 세대’가 부상하면서 더욱 명확한 기준으로 자리 잡아가고 있습니다. 전체 노동인구의 35%에 해당하는 밀레니얼 세대는 그들이 일하는 회사는 물론 투자할 때도 기업의 역할에 대한 ‘새로운 기대’를 명확하게 표현하고 있습니다. 기업이 좋은 인력을 채용하고 고용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명확한 사회적 목적’을 제시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최근 딜로이트의 조사에 따르면 63%의 밀레니얼 세대가 기업이 우선시해야 할 목적으로 ‘이익 창출’보다 ‘사회적 발전에 공헌’하는 것이라고 응답했습니다. 무엇보다 이와 같은 요소는 밀레니얼 세대와 혹은 그보다 더 넓은 세대들이 취업을 결정하는 것뿐만 아니라 투자를 결정하는 데도 중요한 요인이 되고 있습니다. 밀레니얼 세대가 우리 사회의 핵심 노동력으로 부상함에 따라 이미 24조 달러의 자금이 베이비부머 세대에서 밀레니얼 세대로 옮겨 갔습니다. 기업 가치를 평가하는 데 환경과 사회적 책임, 지배구조가 매우 결정적인 요소로 부각되고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핑크 회장은 2019년 블랙록의 투자 방향을 제시하고 있다. 스튜어드십 코드(기관투자가의 의결권 행사 지침)를 적극 이행하고 있는 블랙록은 투자를 결정할 때 우선시할 기준으로 다섯 가지를 들었다. 이사진이 얼마나 다양하게 구성돼 있는지 등을 포함한 지배구조, 회사의 전략과 자본 배분, 장기적인 관점에서 회사의 수익, 환경적 위험 요인과 기회 그리고 인적자본 관리다.


“저는 글로벌 금융시장과 투자자들의 미래, 기업의 장기적인 성장 전략에 대해 매우 낙관적입니다. 세계는 지금, 장기적인 성장 전략을 추구해 가는 리더의 역할이 그 어느 때보다 중요합니다. 당신의 리더십이 절대적으로 필요합니다.”


vivajh@hankyung.com
[본 기사는 한경비즈니스 제 1211호(2019.02.11 ~ 2019.02.17)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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