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버스토리 = 2019 대한민국 100대 싱크탱크]
정부 영향 받는 국책 연구소 중심 여전, 독립형 ‘작은 연구소’ 더 늘어나야
[한경비즈니스=이현주 기자] 싱크탱크의 시작은 전략가들의 모임이었다.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미국의 국방 전문가들이 국방 전략을 논의(think)하던 공간(tank)이라고 해서 싱크탱크(think tank)라고 부르면서 통용되기 시작했다. 주로 전문 지식을 겸비한 자문가 그룹이 싱크탱크라고 칭해졌다. 현재는 주요 정책 연구 기관을 가리킨다.
미국과 독일 등이 싱크탱크의 선진국이라고 할 수 있다. 한국의 싱크탱크도 진화를 거듭해 왔다. 조선시대의 집현전까지 거슬러가지 않더라도 현대적 의미에서의 싱크탱크 개념은 1970년을 전후해 도입됐다. 한국 경제의 양적 성장과 산업구조 변화에 따라 세계경제 순환에 대한 정확한 예측과 정책 개발의 필요성이 제기되면서다.
브루킹스연구소·헤리티지재단·미국기업연구소(AEI) 등으로 대표되는 미국형 싱크탱크는 시장 중심형으로 분류된다. 이와 다른 한국의 특징은 국책형이다. 싱크탱크 도입을 정부가 적극 주도했다는 데 차이가 있다. 국내 최초의 국책 연구 기관인 1966년 설립된 한국과학기술원(KIST) 이후 1971년 한국개발연구원(KDI), 1976년 한국산업연구원, 1965년 외교연구원 등이 연이어 설립됐다.
그로부터 50여 년. 한국 싱크탱크는 어디쯤 와 있을까. 시대에 따라 뜨고 지는 트렌드가 있는 가운데 변하지 않는 핵심은 ‘정책 지식’ 생산이라는 싱크탱크 본연의 기능에 있다. 그동안 전문화된 싱크탱크 출현을 위한 양적 성장을 도모했다면 이제는 싱크탱크를 ‘지식산업 생태계’ 촉진 차원으로 바라봐야 한다는 목소리에 힘이 실린다.
한경비즈니스가 2008년부터 11년째 대한민국 100대 싱크탱크를 선정하고 있다. 매해 설문 조사의 뚜껑을 열어보면 대동소이한 결과가 나온다. 다시 말해 생태계의 가장 큰 특징인 ‘순환’이 잘되지 않고 있다는 것이다. 한국형 싱크탱크는 어떻게 키워야 할까. 질문을 조금 바꿔봤다. 한국형 싱크탱크는 왜 잘 뿌리내리지 못했을까. 이 물음을 따라가다 보면 싱크탱크의 어제와 오늘이 보인다.
시기마다 특정 유형의 연구소 생겨나
100대 싱크탱크의 설립 연도를 살펴보면 흥미롭다. 1970, 1990년대 설립된 연구소가 26개로 가장 많았고 2000년 이후 설립 25개, 1980년대 설립 23개 순이다. 설립 연도를 보는 것은 특정 시기마다 뚜렷한 트렌드가 엿보여서다. 주로 1970년대 세워진 연구소들은 정부 출연 연구소가 대세를 이룬다. 1980년대에 들어서면 대기업을 중심으로 기업이 설립한 경제연구소들이 생겨나기 시작한다. 1990년대에는 시민사회단체나 비정부기구(NGO) 연구소들이 급증했다. 2000년대 이후로는 대학 연구소의 전성시대가 펼쳐졌다. 한국 싱크탱크는 크게 보면 정부·기업·시민사회·대학 등의 중심축을 가지고 있는 셈이다.
박인휘 이화여대 국제학부 교수는 “한국형 싱크탱크는 국가 주도 성장과 연결되면서 국책형 싱크탱크로 시작했고 2000년대 전후 민간에서도 많이 생겨났지만 규모나 숫자 등에서 지금도 대부분은 국책 연구소라는 특징을 갖는다”며 “임명권·재정·예산 등에서 정부 의존형이다 보니 규모는 커졌지만 연구 결과물에서 기관별 큰 차이가 없고 또 상상력이나 창의력을 발휘하는 연구는 잘하지 않는 경향이 있다”고 말했다.
국내 싱크탱크의 한계점이 드러나는 대목이다. 특히 정권에 따라 연구 과제가 연동되면서 한국을 대표하는 연구소들이 장기 청사진을 내놓는 지식 창구 역할을 하지 못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지금은 싱크탱크도 글로벌 경쟁의 시대다. 단기 현안에 매몰되는 사이 전 세계 싱크탱크 사이에서 글로벌 이슈를 선점하는 굵직한 목소리와 의미 있는 대안을 내지 못하고 있다는 점도 한계로 지적된다.
박 교수는 “중거리 핵무기 미사일 협정 파기 등과 같은 글로벌 이슈들을 확인하기 위해 브루킹스연구소나 헤리티지재단과 같은 미국 연구소 자료를 참고하는 학생들이 많다”며 “일본은 기업 연구소 가운데 노무라연구소에서 굵직한 이슈를 다루고 100% 정부 주도형 싱크탱크인 중국에서도 사회과학연구소가 중동 에너지 문제나 아프리카 난민 문제 등을 다루려는 노력을 많이 하는 것과 비교하면 국내 싱크탱크의 글로벌 경쟁력은 한참 뒤져 있는 셈”이라고 말했다.
이와 함께 부처별 칸막이도 여전히 존재한다. 정부 출연 연구 기관은 많은 경우 특정 부처를 지원하는 역할을 한다. 한국노동연구원은 노동부,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은 보건복지부, 산업연구원은 산업통상자원부 등과 밀접한 관계에 있다. 부처의 이슈를 넘어서는 연구 과제나, 최근 중요성이 커지는 ‘융합형’ 연구 과제를 수행하는 데 어려움이 있다. 또 상황이 이렇다 보니 부처에 반하는 목소리를 내기 어려운 게 현실이다. 연구 기관의 중요한 가치인 ‘중립성’이 훼손될 가능성이 제기된다.
이러한 문제 제기에 대해 나름의 조치를 취한 결과가 경제·인문사회연구회다. 연구회 체제는 1999년 각 부처에 소속돼 있던 43개 정부 출연 연구 기관을 임무와 기능에 따라 5개 연구회에 소속시키면서 출범됐다. 2005년 7월 경제·인문사회 부문 2개 연구회를 경제·인문사회연구회로 통합해 운영하기 시작했다. 흩어져 있던 연구 기관을 국무총리 산하의 공공기관으로 두고 이사회를 통해 융합 연구를 시도한다는 취지다.
대안적 움직임…키워드는 ‘미래’
싱크탱크의 주요한 임무인 ‘정책 지식’은 일종의 시장이 형성될 때 더 풍성해진다. 건강한 경쟁을 통해 전문가들 사이에서 정책 개발 경쟁이 일상화된다. 민간 싱크탱크가 성장하기 어려운 이유도 여기에 있다. 전문가 집단의 정책 지식이 하나의 상품으로 채택되고 국정 정책으로 전환된다면 일종의 시장 기능이 살아나면서 싱크탱크 역량 증대로 이어질 수 있다. 하지만 현재의 구조에서는 요원한 일로 보인다.
최근 기업 연구소들은 외부 창구를 닫는 추세에 있다. 한때 정부의 ‘경제 조언자’ 역할을 했던 삼성경제연구소는 2013년 10월 이후 홈페이지 문을 닫았다. 대외적으로 발표하던 경제성장률·금리·환율 등 전망 지표도 사라졌다. 기업의 전략을 구상하는 ‘인하우스’ 역할만 수행하고 있다. LG경제연구원도 3년 전 주간 보고서인 ‘비즈니스인사이트’를 폐간하는 등 외부 활동을 줄이는 중이다. ‘한국판 노무라연구소’를 표방해 출범한 삼성경제연구소의 변화는 의미하는 바가 짙다.
박진 국회미래연구원장은 “과거에는 기업 연구소들이 공공 연구와 정책 연구를 적지 않게 하고 실제 영향력도 컸지만 최근 5~6년 사이 정부 정책에 관여하는 것에 대해 부정적인 경험을 쌓아가면서 방침을 완전히 바꿨다”며 “기업 내부 역량을 강화하고 미래 먹을거리를 발굴하는 것만으로도 큰 과제이기 때문에 기업 연구소들의 변신을 부정적으로 바라볼 수만은 없다”고 말했다.
그렇다면 ‘정부 의존형 국책 연구소’, ‘인하우스 기업 연구소’라는 현재의 싱크탱크 지형에서 어떻게 한국형 모델을 키울 수 있을까. 최근 불어오는 또 하나의 싱크탱크 트렌드에서 찾아본 키워드는 ‘독립’ 그리고 ‘미래’에 있다.
charis@hankyung.com
정부·기업·시민사회·대학 등의 싱크탱크 유형에서 새롭게 추가된 바가 있다면 ‘독립형 민간 싱크탱크’다. 이는 2010년 전후 생겨난 흐름이다. 정부·기업·시민단체·대학에 의존하는 형태가 아닌 독립적인 형태로 운영되는 연구소가 속속 생겨나고 있는 것. 희망제작소·여시재·랩2050 등이 대표적이다. 일례로 여시재는 기업의 창업자가 출연해 설립됐지만 기업과 무관하며 특히 미래 연구에 몰두하고 있다. 랩2050은 정책 실험을 통해 미래 의제를 얘기하는 곳이다. 현재의 당면 과제들에 대한 대안이 아닌 먼 미래에 대한 상상력을 기반으로 현재 문제를 해결한다는 새로운 시도를 하고 있다. 또 새로운 사회를 위한 연구원은 독립 연구자들의 네트워크 형태로, 다양한 분야의 전문가들이 느슨한 연대로 연구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다.
민간 연구소는 아니지만 미래에 집중하는 융합 연구를 시도하는 국회 미래연구원도 주목된다. 국회가 출연해 지난해 5월 개원한 신생 연구 기관으로, 경제·외교·사회·과학기술·외교안보 등 전 분야를 아우르는 연구를 하고 있다. KDI 교수와 미래전략연구원장을 거쳐 국회 미래연구원장이 된 박진 원장은 “연구 기관이 지향해야 3대 가치라면 융합성·중립성·미래지향성이며 그중에서도 미래 연구의 중요성이 날로 커지고 있다”며 “정부의 정책 결정을 돕는 것과 함께 중요한 역할은 미래의 방향성에 대해 ‘자명종’ 역할을 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지금 이대로 가면 미래에 어떠한 일들이 벌어지는지, 바꾸지 않으면 어떤 위험이 닥치는지, 어떻게 바꿀 것인지 등에 대해 현실감 있게 보여주는 미래 연구가 한국형 싱크탱크의 내일을 그리는 핵심이 될 것이라는 의견에 귀추가 주목된다.
[본 기사는 한경비즈니스 제 1213호(2019.02.25 ~ 2019.03.03) 기사입니다.]
정부 영향 받는 국책 연구소 중심 여전, 독립형 ‘작은 연구소’ 더 늘어나야
[한경비즈니스=이현주 기자] 싱크탱크의 시작은 전략가들의 모임이었다.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미국의 국방 전문가들이 국방 전략을 논의(think)하던 공간(tank)이라고 해서 싱크탱크(think tank)라고 부르면서 통용되기 시작했다. 주로 전문 지식을 겸비한 자문가 그룹이 싱크탱크라고 칭해졌다. 현재는 주요 정책 연구 기관을 가리킨다.
미국과 독일 등이 싱크탱크의 선진국이라고 할 수 있다. 한국의 싱크탱크도 진화를 거듭해 왔다. 조선시대의 집현전까지 거슬러가지 않더라도 현대적 의미에서의 싱크탱크 개념은 1970년을 전후해 도입됐다. 한국 경제의 양적 성장과 산업구조 변화에 따라 세계경제 순환에 대한 정확한 예측과 정책 개발의 필요성이 제기되면서다.
브루킹스연구소·헤리티지재단·미국기업연구소(AEI) 등으로 대표되는 미국형 싱크탱크는 시장 중심형으로 분류된다. 이와 다른 한국의 특징은 국책형이다. 싱크탱크 도입을 정부가 적극 주도했다는 데 차이가 있다. 국내 최초의 국책 연구 기관인 1966년 설립된 한국과학기술원(KIST) 이후 1971년 한국개발연구원(KDI), 1976년 한국산업연구원, 1965년 외교연구원 등이 연이어 설립됐다.
그로부터 50여 년. 한국 싱크탱크는 어디쯤 와 있을까. 시대에 따라 뜨고 지는 트렌드가 있는 가운데 변하지 않는 핵심은 ‘정책 지식’ 생산이라는 싱크탱크 본연의 기능에 있다. 그동안 전문화된 싱크탱크 출현을 위한 양적 성장을 도모했다면 이제는 싱크탱크를 ‘지식산업 생태계’ 촉진 차원으로 바라봐야 한다는 목소리에 힘이 실린다.
한경비즈니스가 2008년부터 11년째 대한민국 100대 싱크탱크를 선정하고 있다. 매해 설문 조사의 뚜껑을 열어보면 대동소이한 결과가 나온다. 다시 말해 생태계의 가장 큰 특징인 ‘순환’이 잘되지 않고 있다는 것이다. 한국형 싱크탱크는 어떻게 키워야 할까. 질문을 조금 바꿔봤다. 한국형 싱크탱크는 왜 잘 뿌리내리지 못했을까. 이 물음을 따라가다 보면 싱크탱크의 어제와 오늘이 보인다.
시기마다 특정 유형의 연구소 생겨나
100대 싱크탱크의 설립 연도를 살펴보면 흥미롭다. 1970, 1990년대 설립된 연구소가 26개로 가장 많았고 2000년 이후 설립 25개, 1980년대 설립 23개 순이다. 설립 연도를 보는 것은 특정 시기마다 뚜렷한 트렌드가 엿보여서다. 주로 1970년대 세워진 연구소들은 정부 출연 연구소가 대세를 이룬다. 1980년대에 들어서면 대기업을 중심으로 기업이 설립한 경제연구소들이 생겨나기 시작한다. 1990년대에는 시민사회단체나 비정부기구(NGO) 연구소들이 급증했다. 2000년대 이후로는 대학 연구소의 전성시대가 펼쳐졌다. 한국 싱크탱크는 크게 보면 정부·기업·시민사회·대학 등의 중심축을 가지고 있는 셈이다.
박인휘 이화여대 국제학부 교수는 “한국형 싱크탱크는 국가 주도 성장과 연결되면서 국책형 싱크탱크로 시작했고 2000년대 전후 민간에서도 많이 생겨났지만 규모나 숫자 등에서 지금도 대부분은 국책 연구소라는 특징을 갖는다”며 “임명권·재정·예산 등에서 정부 의존형이다 보니 규모는 커졌지만 연구 결과물에서 기관별 큰 차이가 없고 또 상상력이나 창의력을 발휘하는 연구는 잘하지 않는 경향이 있다”고 말했다.
국내 싱크탱크의 한계점이 드러나는 대목이다. 특히 정권에 따라 연구 과제가 연동되면서 한국을 대표하는 연구소들이 장기 청사진을 내놓는 지식 창구 역할을 하지 못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지금은 싱크탱크도 글로벌 경쟁의 시대다. 단기 현안에 매몰되는 사이 전 세계 싱크탱크 사이에서 글로벌 이슈를 선점하는 굵직한 목소리와 의미 있는 대안을 내지 못하고 있다는 점도 한계로 지적된다.
박 교수는 “중거리 핵무기 미사일 협정 파기 등과 같은 글로벌 이슈들을 확인하기 위해 브루킹스연구소나 헤리티지재단과 같은 미국 연구소 자료를 참고하는 학생들이 많다”며 “일본은 기업 연구소 가운데 노무라연구소에서 굵직한 이슈를 다루고 100% 정부 주도형 싱크탱크인 중국에서도 사회과학연구소가 중동 에너지 문제나 아프리카 난민 문제 등을 다루려는 노력을 많이 하는 것과 비교하면 국내 싱크탱크의 글로벌 경쟁력은 한참 뒤져 있는 셈”이라고 말했다.
이와 함께 부처별 칸막이도 여전히 존재한다. 정부 출연 연구 기관은 많은 경우 특정 부처를 지원하는 역할을 한다. 한국노동연구원은 노동부,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은 보건복지부, 산업연구원은 산업통상자원부 등과 밀접한 관계에 있다. 부처의 이슈를 넘어서는 연구 과제나, 최근 중요성이 커지는 ‘융합형’ 연구 과제를 수행하는 데 어려움이 있다. 또 상황이 이렇다 보니 부처에 반하는 목소리를 내기 어려운 게 현실이다. 연구 기관의 중요한 가치인 ‘중립성’이 훼손될 가능성이 제기된다.
이러한 문제 제기에 대해 나름의 조치를 취한 결과가 경제·인문사회연구회다. 연구회 체제는 1999년 각 부처에 소속돼 있던 43개 정부 출연 연구 기관을 임무와 기능에 따라 5개 연구회에 소속시키면서 출범됐다. 2005년 7월 경제·인문사회 부문 2개 연구회를 경제·인문사회연구회로 통합해 운영하기 시작했다. 흩어져 있던 연구 기관을 국무총리 산하의 공공기관으로 두고 이사회를 통해 융합 연구를 시도한다는 취지다.
대안적 움직임…키워드는 ‘미래’
싱크탱크의 주요한 임무인 ‘정책 지식’은 일종의 시장이 형성될 때 더 풍성해진다. 건강한 경쟁을 통해 전문가들 사이에서 정책 개발 경쟁이 일상화된다. 민간 싱크탱크가 성장하기 어려운 이유도 여기에 있다. 전문가 집단의 정책 지식이 하나의 상품으로 채택되고 국정 정책으로 전환된다면 일종의 시장 기능이 살아나면서 싱크탱크 역량 증대로 이어질 수 있다. 하지만 현재의 구조에서는 요원한 일로 보인다.
최근 기업 연구소들은 외부 창구를 닫는 추세에 있다. 한때 정부의 ‘경제 조언자’ 역할을 했던 삼성경제연구소는 2013년 10월 이후 홈페이지 문을 닫았다. 대외적으로 발표하던 경제성장률·금리·환율 등 전망 지표도 사라졌다. 기업의 전략을 구상하는 ‘인하우스’ 역할만 수행하고 있다. LG경제연구원도 3년 전 주간 보고서인 ‘비즈니스인사이트’를 폐간하는 등 외부 활동을 줄이는 중이다. ‘한국판 노무라연구소’를 표방해 출범한 삼성경제연구소의 변화는 의미하는 바가 짙다.
박진 국회미래연구원장은 “과거에는 기업 연구소들이 공공 연구와 정책 연구를 적지 않게 하고 실제 영향력도 컸지만 최근 5~6년 사이 정부 정책에 관여하는 것에 대해 부정적인 경험을 쌓아가면서 방침을 완전히 바꿨다”며 “기업 내부 역량을 강화하고 미래 먹을거리를 발굴하는 것만으로도 큰 과제이기 때문에 기업 연구소들의 변신을 부정적으로 바라볼 수만은 없다”고 말했다.
그렇다면 ‘정부 의존형 국책 연구소’, ‘인하우스 기업 연구소’라는 현재의 싱크탱크 지형에서 어떻게 한국형 모델을 키울 수 있을까. 최근 불어오는 또 하나의 싱크탱크 트렌드에서 찾아본 키워드는 ‘독립’ 그리고 ‘미래’에 있다.
charis@hankyung.com
정부·기업·시민사회·대학 등의 싱크탱크 유형에서 새롭게 추가된 바가 있다면 ‘독립형 민간 싱크탱크’다. 이는 2010년 전후 생겨난 흐름이다. 정부·기업·시민단체·대학에 의존하는 형태가 아닌 독립적인 형태로 운영되는 연구소가 속속 생겨나고 있는 것. 희망제작소·여시재·랩2050 등이 대표적이다. 일례로 여시재는 기업의 창업자가 출연해 설립됐지만 기업과 무관하며 특히 미래 연구에 몰두하고 있다. 랩2050은 정책 실험을 통해 미래 의제를 얘기하는 곳이다. 현재의 당면 과제들에 대한 대안이 아닌 먼 미래에 대한 상상력을 기반으로 현재 문제를 해결한다는 새로운 시도를 하고 있다. 또 새로운 사회를 위한 연구원은 독립 연구자들의 네트워크 형태로, 다양한 분야의 전문가들이 느슨한 연대로 연구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다.
민간 연구소는 아니지만 미래에 집중하는 융합 연구를 시도하는 국회 미래연구원도 주목된다. 국회가 출연해 지난해 5월 개원한 신생 연구 기관으로, 경제·외교·사회·과학기술·외교안보 등 전 분야를 아우르는 연구를 하고 있다. KDI 교수와 미래전략연구원장을 거쳐 국회 미래연구원장이 된 박진 원장은 “연구 기관이 지향해야 3대 가치라면 융합성·중립성·미래지향성이며 그중에서도 미래 연구의 중요성이 날로 커지고 있다”며 “정부의 정책 결정을 돕는 것과 함께 중요한 역할은 미래의 방향성에 대해 ‘자명종’ 역할을 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지금 이대로 가면 미래에 어떠한 일들이 벌어지는지, 바꾸지 않으면 어떤 위험이 닥치는지, 어떻게 바꿀 것인지 등에 대해 현실감 있게 보여주는 미래 연구가 한국형 싱크탱크의 내일을 그리는 핵심이 될 것이라는 의견에 귀추가 주목된다.
[본 기사는 한경비즈니스 제 1213호(2019.02.25 ~ 2019.03.03)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