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억 지원·3년 휴직’ 파격 지원 힘입어 ‘제2 인생 스타트’

[COVER STORY]-한국수력원자력 벤처1·2팀…3D 프린팅 슬러지 제거 장비, 방호·방진 마스크 브랜드화 도전

[한경비즈니스=대전ㅣ안옥희 기자] 한국수력원자력(한수원)은 2018년 공기업 최초로 ‘발굴-육성-사업화-창업’에 이르는 단계별 실질적인 활동 여건을 보장하는 창업 지원형 사내 벤처의 포문을 열었다. 한수원 사내 벤처 제도는 사내 사업화 위주이거나 육성 단계가 없는 다른 공공기관 제도와 달리 파격적인 지원 제도로 유명하다.
직원들이 꼽는 가장 큰 혜택은 3억원의 연구·개발비 지원과 창업하면 3년의 창업 휴직을 보장한다는 점이다. 회사 특허에 대한 무상 실시권을 부여하고 개발 단계 특허와 연계된 창업 이후 취득한 지식재산권에 대한 소유권도 인정한다. 전폭적인 창업 지원으로 사내 벤처는 퇴직을 앞둔 임금피크제 직원들에게는 제2의 인생을 준비하는 기회의 장이 되고 있다.
한수원이 2017년 12월 창업 지원형 사내 벤처 제도를 도입한 배경은 고유의 창의적인 혁신 문화를 구축하고 신성장 동력을 확보하면서 일자리 창출 정책에도 부응하기 위해서다. 현재 한수원은 에너지 전환이라는 시대 흐름 속에서 종합 에너지 기업으로 재도약하기 위해 사업 포트폴리오 다각화를 통한 변화와 성장을 꾀하고 있다.
에너지 전환 정책을 추진 중인 정부가 국내에서 신규 원전을 짓지 않고 원전 수출을 적극적으로 독려하고 있는 상황에서 한수원은 재생에너지 사업과 원전 수출이라는 두 가지 과업을 달성해야 하는 과제를 안고 있다. 혁신 기조 속에서 진행된 1개월간의 사내 벤처 사업 계획 공모에 총 11개 팀이 지원했고 심사를 거쳐 한수원의 기술력과 직원 아이디어가 융합된 새로운 사업 아이템이 탄생했다.

최종 관문을 통과한 과제는 ‘3차원(3D) 프린팅 활용 증기 발생기 고형 슬러지 제거 장비(벤처1팀)’와 ‘드림(방호·방진) 마스크(벤처2팀)’ 개발이다. 고형 슬러지(침전물) 제거 장비와 마스크는 원자력발전소에서 필요한 제품이다. 두 제품 개발을 이끄는 과제 리더는 오랜 연구 경력과 현장에서 쌓은 실무 노하우를 보유한 정우태 대표(책임연구원)와 방극진 대표(시니어)다. 한수원 사내벤처팀은 2년 동안 별도 사무 공간을 지원받고 있다. 두 대표 모두 현재 경주 본사가 아닌 대전 중앙연구원 사내벤처팀에서 근무하고 있다. 사내 벤처를 통해 그동안 쌓은 역량을 활용해 성과 창출과 퇴직 이후 ‘시니어 창업’ 기반을 마련 중인 두 대표를 만나기 위해 3월 8일 대전 한수원 중앙연구원을 찾았다.
◆ 원전 필수품…해체 사업 장비 개발 계획도
기계공학을 전공한 정 대표는 한수원에서 증기 발생기 내부 이물질 검사 업무를 담당해 왔다. 그는 “고형화된 슬러지를 제거하는 기술과 장비가 아직은 국내에 없어 사내 벤처를 통해 선도적으로 준비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정 대표가 개발 중인 3D 프린팅 활용 증기 발생기 고형 슬러지 제거 장비는 발전소 사업 연장선에 있는 기술로 전문적인 영역에 속한다. 증기 발생기에 이물질이 들어가면 안전에 문제가 생기기 때문에 반드시 제거해야 하는데 원전 내부는 사람이 접근할 수 없다. 이때 활용할 수 있는 장비가 정 대표의 3D 프린팅을 활용한 증기 발생기 고형 슬러지 제거 장비다.
정 대표에 따르면 증기 발생기의 노후화로 업계에서 2차 계통 내부 고형 슬러지 제거 필요성이 증가하고 있다. 관련 국내 시장 규모는 연간 40억원 내외로 추산된다. 이번 장비 개발로 대당 10억원 내외의 비용 절감 효과가 기대된다. 정 대표는 “업무 특성상 오랜 경험과 노하우·지식이 필요한데 정년을 앞두고 기술 이어받을 사람을 찾지 못했다. 그래서 사내 벤처를 통해 기술을 이전하는 의미도 있다”고 말했다. 에너지 전환 정책 기조에 따라 원전 해체 시장을 겨냥한 추가적인 신규 장비 개발 계획도 가지고 있다. 그는 “해체 원전에서 발생하는 기기 방사능 오염 제거 장비 개발에도 관심이 있다”고 덧붙였다.

기술 개발 과정에서 가장 고려한 부분은 안전성이다. 정 대표는 “원자력의 특성상 안전이 최우선이다. 최대한 안전한 장비를 개발해 회사 경영에 기여하는 것이 목표”라고 설명했다. 장비 수요층은 발전소를 운영하는 국내외 기업이다. 한수원이 한국전력공사 등과 아랍에미리트(UAE)에 짓고 있는 바라카 원전을 포함해 해외 원전 사업에서도 활용할 수 있다. 그는 “UAE 원전에도 동일한 증기 발생기가 사용되므로 국내에 장비를 먼저 공급하고 향후 UAE 진출도 추진할 것”이라고 말했다.
방 대표는 착용감이 불편했던 기존 산업용 방독면을 개량한 산업용 마스크를 개발하고 있다. 그동안 원전 작업자들은 안전을 고려해 방독면 형태의 마스크를 사용해 왔다. 하지만 기존 방독면은 착용감이 불편하고 김 서림이 발생해 작업 효율성을 떨어뜨린다는 지적이 많았다. 업계에선 취급하기 쉬우면서도 품질이 우수한 산업용 마스크에 대한 요구가 있었다. 방 대표는 현재 개발에 속도를 내는 ‘드림(방호·방진) 마스크’가 작업 현장에서 안전성과 착용감, 작업 효율성을 충족하면서 시장에서도 호응을 얻을 것으로 보고 있다.
방 대표가 개발 중인 마스크는 발전소 작업 환경에서 방사성 핵종을 제거하는 최초의 안면부 여과식 마스크다. 원전과 주변 지역, 병원·공장 등이 주요 수요층이다. 그는 “드림 마스크는 가동 원전과 해체 원전 작업장, 주변 지역에 보급할 수 있다. 바라카 원전을 시작으로 해외 수출도 추진할 예정이다. 1단계 제품 이후 신상품을 개발해 글로벌 마스크로 브랜드화할 것”이라고 말했다.
◆ “사내 벤처로 꿈 실현…자율성 보장해야”
풍부한 아이디어로 ‘발명 제안왕’이라는 별명을 가진 방 대표는 평소 현장 필수품인 마스크 사업화에 관심이 많았다. 그리고 그 꿈을 한수원 사내 벤처 제도로 실현 중이다. 그는 “마스크 개발 과제는 원자력발전소의 공기정화계통 특성과 일반 공기청정기 원리를 결합한 기술융합 작품이다. 평소 발전소 현장에서 느낀 문제점을 해소하기 위해 사내 벤처에 응모했고 결과적으로 한수원 사내 벤처 과제로 선정되며 아이디어 특화 가치를 인정받았다”고 설명했다. 또한 “산업용 마스크를 개발한 기술을 바탕으로 품질을 높인 차별화된 보건용 마스크를 개발하겠다는 꿈을 사내 벤처로 실현하고 있다”고 말했다.

미세먼지가 일상화되면서 마스크 성능에 대한 대중의 관심도 높아지고 있어 보건용 마스크 시장은 더욱 커질 것으로 보인다. 업계에 따르면 국내 황사용 마스크 시장은 약 700억원 규모로 고농도 미세먼지가 사계절 내내 기승을 부리면서 더욱 성장할 것으로 전망된다.
방 대표는 단순한 수익 창출보다 사회공헌 가치 실현이 궁극적인 목표다. 공기업 사내 벤처로 출발하는 만큼 사회공헌을 선도하기 위해 추후 취약 계층에 우선 보급하는 것을 원칙으로 삼았다. 그는 “보건용 마스크는 미세먼지로 인한 국민 건강 지킴이로 브랜드화할 예정이고 일자리 창출은 물론 열악한 작업 환경 개선을 통한 사회적 가치 창출이 목표”라고 말했다.
최근 정부가 ‘제2 벤처 붐’ 확산 전략을 내놓고 있는 상황에서 공기업 사내 벤처에 가장 필요한 지원책에 대한 두 대표의 생각도 들어봤다. 정 대표는 “공기업 벤처는 수익 창출에만 몰두하지 않아도 되고 실패에 대한 완충장치가 있어 리스크가 작은 것이 장점이다. 하지만 벤처 조직의 특징인 근무 자율성 보장 측면에선 아쉬운 점이 있다. 상품성 제고를 위한 소요 기간이 필요하므로 지원 기간도 기존 2년 이내에서 3년 이내로 상향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방 대표도 “처음 도입하는 사내 벤처이다 보니 사업성과보다는 연구 과제 중심의 부대 업무가 많아 집중도가 떨어지는 점도 개선힐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이어 “정부가 초기 벤처 붐을 일으켰다면 이제는 내실 있는 특화된 벤처 브랜드를 만들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선 사내 벤처 창업 이후 초기 사내 벤처 특화 제품은 우선 사내 자체 조달이 가능하도록 유통 구조를 개선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ahnoh05@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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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기사는 한경비즈니스 제 1216호(2019.03.18 ~ 2019.03.24)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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