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버스토리=기업가 정신이 희망이다] 2부 재도약의 성장 엔진 '기업가 정신'
-김범석 대표, 대학 때 첫 창업…‘치과의사’ 이승건 대표, ‘B급 감성 디자이너’ 김봉진 대표
[한경비즈니스=이명지 기자] 창업 생태계가 얼마나 활성화됐는지 파악하는 지표로 ‘유니콘(비상장 스타트업 중 기업 가치가 1조원을 돌파한 곳)’의 탄생을 잣대로 삼곤 한다.
한국은 지난해 두 곳의 스타트업이 새로 유니콘 대열에 합류했다. 정부도 최근 ‘제2의 벤처 붐’을 조성하기 위해 4년간 12조원 규모의 대형 전용 펀드 조성 등 지원책을 내놓으며 2020년까지 유니콘 기업 20곳을 육성하겠다고 밝혔다.
하지만 유니콘은 투자만으로 키워낼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번뜩이는 아이디어로 생활 속 불편을 해결하고 잠재력이 큰 시장을 선점하는 순발력도 필요하다. 김범석 쿠팡 대표, 이승건 비바리퍼블리카 대표, 김봉진 우아한형제들 대표는 ‘칠전팔기’의 정신으로 유니콘 기업을 키워 냈다. 이들은 벤처 1세대에 이어 한국 스타트업계에 성공 DNA를 전파하고 있다.
◆쿠팡 김범석, 과감한 투자로 ‘한국의 아마존’ 키운다
대기업 주재원이었던 아버지를 따라 유년 시절을 외국에서 보낸 김범석 대표는 미국 하버드대 재학 시절 대학생 잡지 ‘커런트’를 만들어 미국 시사 주간지 뉴스위크에 매각했다. 하버드대를 졸업한 김 대표는 보스턴컨설팅그룹에 입사했지만 곧 회사를 그만두고 다시 한 번 창업에 뛰어들었다. 2004년 명문대 출신 독자들을 위한 월간지 ‘빈티지미디어’를 설립한 김 대표는 4년간 경영에 매진하다가 다시 매각했다.
김 대표가 쿠팡을 설립한 것은 2010년이다. 김 대표는 하버드비즈니스스쿨(MBA)에서 공부하던 중 미국 그루폰과 같은 회사를 만들겠다는 목표를 안고 MBA를 중퇴한 후 한국으로 돌아왔다.
미국 그루폰은 쿠팡의 초기 모델이었던 소셜 커머스의 원조로 여겨진다. 모바일을 매개체로 삼을 수 있는 창업을 고민하던 김 대표에게 그루폰의 성공 사례는 한국에서 꼭 한번 시도해 보고 싶은 아이템이었다.
초창기 쿠팡은 그루폰처럼 소셜 커머스에 주력했다. 레스토랑 할인 티켓부터 미술관 입장권까지 공동구매를 통해 할인 혜택을 제공하며 입소문을 탔다. 그 결과 쿠팡은 설립 2년 만에 손익분기점을 넘어서고 설립 6년 만에 거래 규모가 약 300배 이상 증가했다. 2015년에는 기업 가치 1조원을 넘어서며 옐로모바일에 이어 국내 둘째로 유니콘으로 등극했다.
하지만 소셜 커머스는 초기 자본이 많이 필요하지 않고 진입 장벽이 낮아 다수의 경쟁 업체가 난립할 수 있다는 약점이 있다. 이에 따라 쿠팡은 2017년 2월 소셜 커머스가 아닌 이커머스로 전환할 것이라고 선언했다.
쿠팡의 ‘로켓배송’은 쿠팡을 성장시킨 동력이자 발목을 잡고 있는 요소다. 밤 12시 이전에 주문하면 그 다음 날 배송해 주는 ‘로켓배송’은 유통업계의 배송 전쟁에 불을 지폈다. 여기에 쿠팡은 자체 배송 인력 ‘쿠팡맨’에게 배송을 맡김으로써 서비스의 질을 향상시켰다.
하지만 자체 인력 채용과 거점 물류센터 운영 등 천문학적인 투자비용으로 쿠팡의 적자는 좀처럼 줄어들 기미가 보이지 않고 있다.
이러한 위기에도 불구하고 김 대표는 “쿠팡을 매각하는 일은 절대 없다”며 지금의 영업 적자가 신규 투자 과정에 따른 계획된 적자라고 연일 강조하고 있다. 지난해 11월 손정의 소프트뱅크 회장으로부터 20억 달러(약 2조2600억원)의 투자 유치를 성공시킴으로써 한숨을 돌릴 수 있게 됐다.
김 대표가 그리는 최종 모델은 ‘한국의 아마존’이다. 이미 쿠팡의 기업 가치는 10조원에 육박했지만 눈덩이처럼 불어나는 적자는 여전한 고민거리다. 향후 김 대표가 이어 갈 쿠팡의 행보가 더욱 주목받는 이유다.
◆비바리퍼블리카 이승건, 의사 직업 버리고 칠전팔기 끝 ‘유니콘 등극’
안정적인 치과의사 직업을 버리고 과감히 ‘창업’의 길을 택했다. 창업 3년 만에 기업체를 1조원의 가치로 끌어올렸다. 이승건 비바리퍼블리카 대표는 최근 언론의 주목을 가장 많이 받는 최고경영자(CEO)다.
서울대 치대를 졸업한 이승건 대표는 삼성의료원에서 전문의로 일하다가 창업 전선에 뛰어들었다. 한국 사회에서 최고로 선망 받는 ‘의사’라는 직업을 그만두고 창업을 시작했다는 점에서 그의 이력은 더욱 주목받는다. 하지만 그가 처음부터 성공 가도를 달린 것은 아니었다. 2011년 야심차게 시작한 신개념 소셜 네트워크 서비스(SNS) ‘울라블라’는 결국 실패로 돌아갔다.
실패를 경험한 이 대표는 창업 아이템을 찾을 때 ‘생활 속의 불편’을 해결하는 것에 초점을 맞췄다. 그러던 이 대표의 눈에 인터넷 송금이 들어왔다. 인터넷 송금은 각종 공인인증서와 보안카드로 십여 분이 넘는 시간 동안 휴대전화를 붙잡고 있어야만 가능했다.
이 대표는 2013년 ‘비바리퍼블리카’를 설립한 후 간편 결제 서비스 ‘토스’를 출시했다. 보안카드나 공인인증서가 없어도 상대방의 전화번호만 알면 송금이 가능한 이 서비스는 핀테크의 한 획을 그으며 성공 가도를 달리기 시작했다. 이 대표의 ‘칠전팔기’가 드디어 꽃을 피운 것이다.
‘토스’는 더치페이 문화에 익숙한 2030 젊은 층의 탄탄한 지지로 성장했다. 비바리퍼블리카에 따르면 토스 가입자의 45%는 20대, 21%는 30대다. 대한민국 20대 전체 인구의 약 60%는 토스를 쓰고 있는 셈이다. 2019년 2월 기준 토스의 누적 송금액은 33조원을 돌파했다.
비바리퍼블리카는 간편 송금을 넘어 계좌·카드·신용·보험 등 각종 조회 서비스와 적금, 대출, 금융 상품 개설, 해외 주식 등 다양한 투자 서비스로 플랫폼을 넓혔다.
비바리퍼블리카는 지난해 12월 글로벌 투자사 클라이너퍼킨스·리빗캐피털과 기존 투자사들로부터 총 8000만 달러(약 900억원)의 투자를 유치하며 기업 가치를 12억 달러(1조3000억원)로 인정받았다. 가장 성공한 핀테크 기업에 이어 유니콘 반열에까지 오른 비바리퍼블리카는 2월 인터넷 전문은행 사업에 뛰어들 것을 공식 선언했다.
◆우아한형제들 김봉진, 배달 앱 넘어 ‘푸드테크’로 진화 중
어느덧 국내 스타트업계의 맏형으로 자리 잡은 김봉진 우아한형제들 대표는 디자이너 출신의 IT 기업 CEO다. 서울예술전문대를 졸업하고 네이버 등에서 디자이너로 10년간 일하던 김 대표는 2011년 ‘음식점 전단지를 모바일로 옮겨 오겠다’는 발상을 갖고 우아한형제들을 창업했다.
천 리 길도 한 걸음부터다. 전단지를 모바일로 옮겨 놓는 작업을 위해선 아이로니컬하게도 전단지 수거가 선행돼야 했다. 김 대표를 포함한 우아한형제들의 초기 멤버들은 길거리를 돌아다니며 전단지를 주웠다. 이렇게 모은 음식점 5만 개의 전화번호를 모바일로 정리했다.
한 디자이너의 발상 전환은 전단지 위주의 배달 시장을 ‘배달 애플리케이션(앱)’으로 재편됐다. 여기에 디자이너 출신 김 대표가 전공을 발휘한 ‘B급 감성’의 디자인·광고·서체가 젊은 층에게 큰 반향을 일으켰다.
배달의 민족이 이끈 한국 배달 앱 시장의 규모는 2008년 10조원에서 2019년 20조원으로 급성장했다. 업계 1위를 달리고 있는 배달의 민족의 연간 거래액은 약 5조원이다. 배민 앱을 통한 주문 건수는 지난해 12월 기준으로 2700만 건을 돌파했다.
최근 우아한형제들의 사업 영역은 배달을 넘어서고 있다. 배달이 되지 않는 맛집의 음식을 배달해 주는 ‘배민라이더스’와 음식업 자영업자에게 배달 용품과 식자재를 합리적 가격에 제공하는 쇼핑몰 ‘배민상회’로 외형을 넓혔다.
특히 인공지능(AI)과 로봇 등 신기술을 접목하며 대한민국에 ‘푸드테크’라는 새로운 영역을 써내려 가고 있다. 지난해에는 푸드코트 배달 로봇 ‘딜리’와 식당 내 서빙을 대신하는 로봇 ‘딜리 플레이트’를 개발해 시연했다.
이런 성과에 힘입어 우아한형제들은 지난해 12월 공식적인 유니콘의 지위를 인정받았다. 힐하우스캐피탈·세콰이어캐피탈·싱가포르투자청으로부터 총 3억2000만 달러의 투자를 유치하며 기업 가치 3조원을 인정받은 것이다.
김 대표는 소상공인과의 상생에도 앞장서고 있다. 2015년 우아한형제들은 주문 건당 발생하는 중개 수수료를 전면 폐지했다. 당시만 해도 우아한형제들의 사업 모델에 대해 ‘수수료로 배불린다’는 곱지 않은 시선이 있던 때였다. 눈앞의 이익보다 상생을 추구한 김 대표의 과감한 결정으로 배달의 민족은 음식점과 소비자 모두의 마음을 사로잡으며 시장 1위로 자리 잡았다.
mjlee@hankyung.com
[커버스토리=기업가정신이 희망이다 인덱스]
①잊힌 ‘기업가 정신’을 찾아서
-"한국, 기업가 정신 쇠퇴" 56.4% "기업가 정신 교육 필요" 87.3%
-한강의 기적’을 만든 그들…기업가 정신 루트를 가다
-도전과 모험이 혁신을 부른다’…다시 읽는 슘페터와 드러커
②재도약의 성장 엔진 '기업가 정신'
-“CEO 되는 법이 아니라 실패해도 괜찮다는 걸 배웠어요”
-“누구나 창업해야 하는 시대, 지식만 가르치는 건 직무유기죠”
-스타트업 육성하는 벤처 1세대…언론 노출 꺼리지만 ‘멘토’ 자처
-‘기업 가치 1조’ 스타트업 성공 신화를 쓴 창업자들
③100년 기업을 키우자
-‘오너 경영’이 모든 문제의 근원일까?
-‘문 닫는 장수 기업들’…높은 상속세가 ‘발목
-“벤처·대기업 모두 차등의결권 허용해야”
④'제2 창업' 나선 기업들
-삼성, C랩 통해 스타트업 설립 지원…‘제2의 삼성전자’ 탄생 기대
-현대차, 반세기 달리며 ‘품질 경영’ 장착…미래차 게임 체인저로
-SK ‘직물 공장에서 글로벌 기업으로’…반도체·바이오에 공격 투자
-LG, 4대째 이어진 ‘연암정신’, 초일류 기업 만들다
-롯데, 기업 문화 혁신에 팔 걷어…유연근무제 도입·남성육아휴직 의무화
-포스코, 기업 시민 위한 ‘위드 포스코’ 새 비전…비철강 ‘강자’ 노린다
-한화, 과감한 투자·빅딜로 태양광 등 수직계열화…‘글로벌 한화’ 날개 편다
-신세계, ‘유통 혁신의 아이콘’…배송 경쟁력·스마트 초저가로 승부
-두산, 경영 혁신으로 ‘턴어라운드’ 성공…신사업 도전 나선다
-CJ, 창업 이념 ‘사업보국’ 정신, ‘K컬처’에 이어 ‘K푸드’로 확대
[본 기사는 한경비즈니스 제 1217호(2019.03.25 ~ 2019.03.31) 기사입니다.]
-김범석 대표, 대학 때 첫 창업…‘치과의사’ 이승건 대표, ‘B급 감성 디자이너’ 김봉진 대표
[한경비즈니스=이명지 기자] 창업 생태계가 얼마나 활성화됐는지 파악하는 지표로 ‘유니콘(비상장 스타트업 중 기업 가치가 1조원을 돌파한 곳)’의 탄생을 잣대로 삼곤 한다.
한국은 지난해 두 곳의 스타트업이 새로 유니콘 대열에 합류했다. 정부도 최근 ‘제2의 벤처 붐’을 조성하기 위해 4년간 12조원 규모의 대형 전용 펀드 조성 등 지원책을 내놓으며 2020년까지 유니콘 기업 20곳을 육성하겠다고 밝혔다.
하지만 유니콘은 투자만으로 키워낼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번뜩이는 아이디어로 생활 속 불편을 해결하고 잠재력이 큰 시장을 선점하는 순발력도 필요하다. 김범석 쿠팡 대표, 이승건 비바리퍼블리카 대표, 김봉진 우아한형제들 대표는 ‘칠전팔기’의 정신으로 유니콘 기업을 키워 냈다. 이들은 벤처 1세대에 이어 한국 스타트업계에 성공 DNA를 전파하고 있다.
◆쿠팡 김범석, 과감한 투자로 ‘한국의 아마존’ 키운다
대기업 주재원이었던 아버지를 따라 유년 시절을 외국에서 보낸 김범석 대표는 미국 하버드대 재학 시절 대학생 잡지 ‘커런트’를 만들어 미국 시사 주간지 뉴스위크에 매각했다. 하버드대를 졸업한 김 대표는 보스턴컨설팅그룹에 입사했지만 곧 회사를 그만두고 다시 한 번 창업에 뛰어들었다. 2004년 명문대 출신 독자들을 위한 월간지 ‘빈티지미디어’를 설립한 김 대표는 4년간 경영에 매진하다가 다시 매각했다.
김 대표가 쿠팡을 설립한 것은 2010년이다. 김 대표는 하버드비즈니스스쿨(MBA)에서 공부하던 중 미국 그루폰과 같은 회사를 만들겠다는 목표를 안고 MBA를 중퇴한 후 한국으로 돌아왔다.
미국 그루폰은 쿠팡의 초기 모델이었던 소셜 커머스의 원조로 여겨진다. 모바일을 매개체로 삼을 수 있는 창업을 고민하던 김 대표에게 그루폰의 성공 사례는 한국에서 꼭 한번 시도해 보고 싶은 아이템이었다.
초창기 쿠팡은 그루폰처럼 소셜 커머스에 주력했다. 레스토랑 할인 티켓부터 미술관 입장권까지 공동구매를 통해 할인 혜택을 제공하며 입소문을 탔다. 그 결과 쿠팡은 설립 2년 만에 손익분기점을 넘어서고 설립 6년 만에 거래 규모가 약 300배 이상 증가했다. 2015년에는 기업 가치 1조원을 넘어서며 옐로모바일에 이어 국내 둘째로 유니콘으로 등극했다.
하지만 소셜 커머스는 초기 자본이 많이 필요하지 않고 진입 장벽이 낮아 다수의 경쟁 업체가 난립할 수 있다는 약점이 있다. 이에 따라 쿠팡은 2017년 2월 소셜 커머스가 아닌 이커머스로 전환할 것이라고 선언했다.
쿠팡의 ‘로켓배송’은 쿠팡을 성장시킨 동력이자 발목을 잡고 있는 요소다. 밤 12시 이전에 주문하면 그 다음 날 배송해 주는 ‘로켓배송’은 유통업계의 배송 전쟁에 불을 지폈다. 여기에 쿠팡은 자체 배송 인력 ‘쿠팡맨’에게 배송을 맡김으로써 서비스의 질을 향상시켰다.
하지만 자체 인력 채용과 거점 물류센터 운영 등 천문학적인 투자비용으로 쿠팡의 적자는 좀처럼 줄어들 기미가 보이지 않고 있다.
이러한 위기에도 불구하고 김 대표는 “쿠팡을 매각하는 일은 절대 없다”며 지금의 영업 적자가 신규 투자 과정에 따른 계획된 적자라고 연일 강조하고 있다. 지난해 11월 손정의 소프트뱅크 회장으로부터 20억 달러(약 2조2600억원)의 투자 유치를 성공시킴으로써 한숨을 돌릴 수 있게 됐다.
김 대표가 그리는 최종 모델은 ‘한국의 아마존’이다. 이미 쿠팡의 기업 가치는 10조원에 육박했지만 눈덩이처럼 불어나는 적자는 여전한 고민거리다. 향후 김 대표가 이어 갈 쿠팡의 행보가 더욱 주목받는 이유다.
◆비바리퍼블리카 이승건, 의사 직업 버리고 칠전팔기 끝 ‘유니콘 등극’
안정적인 치과의사 직업을 버리고 과감히 ‘창업’의 길을 택했다. 창업 3년 만에 기업체를 1조원의 가치로 끌어올렸다. 이승건 비바리퍼블리카 대표는 최근 언론의 주목을 가장 많이 받는 최고경영자(CEO)다.
서울대 치대를 졸업한 이승건 대표는 삼성의료원에서 전문의로 일하다가 창업 전선에 뛰어들었다. 한국 사회에서 최고로 선망 받는 ‘의사’라는 직업을 그만두고 창업을 시작했다는 점에서 그의 이력은 더욱 주목받는다. 하지만 그가 처음부터 성공 가도를 달린 것은 아니었다. 2011년 야심차게 시작한 신개념 소셜 네트워크 서비스(SNS) ‘울라블라’는 결국 실패로 돌아갔다.
실패를 경험한 이 대표는 창업 아이템을 찾을 때 ‘생활 속의 불편’을 해결하는 것에 초점을 맞췄다. 그러던 이 대표의 눈에 인터넷 송금이 들어왔다. 인터넷 송금은 각종 공인인증서와 보안카드로 십여 분이 넘는 시간 동안 휴대전화를 붙잡고 있어야만 가능했다.
이 대표는 2013년 ‘비바리퍼블리카’를 설립한 후 간편 결제 서비스 ‘토스’를 출시했다. 보안카드나 공인인증서가 없어도 상대방의 전화번호만 알면 송금이 가능한 이 서비스는 핀테크의 한 획을 그으며 성공 가도를 달리기 시작했다. 이 대표의 ‘칠전팔기’가 드디어 꽃을 피운 것이다.
‘토스’는 더치페이 문화에 익숙한 2030 젊은 층의 탄탄한 지지로 성장했다. 비바리퍼블리카에 따르면 토스 가입자의 45%는 20대, 21%는 30대다. 대한민국 20대 전체 인구의 약 60%는 토스를 쓰고 있는 셈이다. 2019년 2월 기준 토스의 누적 송금액은 33조원을 돌파했다.
비바리퍼블리카는 간편 송금을 넘어 계좌·카드·신용·보험 등 각종 조회 서비스와 적금, 대출, 금융 상품 개설, 해외 주식 등 다양한 투자 서비스로 플랫폼을 넓혔다.
비바리퍼블리카는 지난해 12월 글로벌 투자사 클라이너퍼킨스·리빗캐피털과 기존 투자사들로부터 총 8000만 달러(약 900억원)의 투자를 유치하며 기업 가치를 12억 달러(1조3000억원)로 인정받았다. 가장 성공한 핀테크 기업에 이어 유니콘 반열에까지 오른 비바리퍼블리카는 2월 인터넷 전문은행 사업에 뛰어들 것을 공식 선언했다.
◆우아한형제들 김봉진, 배달 앱 넘어 ‘푸드테크’로 진화 중
어느덧 국내 스타트업계의 맏형으로 자리 잡은 김봉진 우아한형제들 대표는 디자이너 출신의 IT 기업 CEO다. 서울예술전문대를 졸업하고 네이버 등에서 디자이너로 10년간 일하던 김 대표는 2011년 ‘음식점 전단지를 모바일로 옮겨 오겠다’는 발상을 갖고 우아한형제들을 창업했다.
천 리 길도 한 걸음부터다. 전단지를 모바일로 옮겨 놓는 작업을 위해선 아이로니컬하게도 전단지 수거가 선행돼야 했다. 김 대표를 포함한 우아한형제들의 초기 멤버들은 길거리를 돌아다니며 전단지를 주웠다. 이렇게 모은 음식점 5만 개의 전화번호를 모바일로 정리했다.
한 디자이너의 발상 전환은 전단지 위주의 배달 시장을 ‘배달 애플리케이션(앱)’으로 재편됐다. 여기에 디자이너 출신 김 대표가 전공을 발휘한 ‘B급 감성’의 디자인·광고·서체가 젊은 층에게 큰 반향을 일으켰다.
배달의 민족이 이끈 한국 배달 앱 시장의 규모는 2008년 10조원에서 2019년 20조원으로 급성장했다. 업계 1위를 달리고 있는 배달의 민족의 연간 거래액은 약 5조원이다. 배민 앱을 통한 주문 건수는 지난해 12월 기준으로 2700만 건을 돌파했다.
최근 우아한형제들의 사업 영역은 배달을 넘어서고 있다. 배달이 되지 않는 맛집의 음식을 배달해 주는 ‘배민라이더스’와 음식업 자영업자에게 배달 용품과 식자재를 합리적 가격에 제공하는 쇼핑몰 ‘배민상회’로 외형을 넓혔다.
특히 인공지능(AI)과 로봇 등 신기술을 접목하며 대한민국에 ‘푸드테크’라는 새로운 영역을 써내려 가고 있다. 지난해에는 푸드코트 배달 로봇 ‘딜리’와 식당 내 서빙을 대신하는 로봇 ‘딜리 플레이트’를 개발해 시연했다.
이런 성과에 힘입어 우아한형제들은 지난해 12월 공식적인 유니콘의 지위를 인정받았다. 힐하우스캐피탈·세콰이어캐피탈·싱가포르투자청으로부터 총 3억2000만 달러의 투자를 유치하며 기업 가치 3조원을 인정받은 것이다.
김 대표는 소상공인과의 상생에도 앞장서고 있다. 2015년 우아한형제들은 주문 건당 발생하는 중개 수수료를 전면 폐지했다. 당시만 해도 우아한형제들의 사업 모델에 대해 ‘수수료로 배불린다’는 곱지 않은 시선이 있던 때였다. 눈앞의 이익보다 상생을 추구한 김 대표의 과감한 결정으로 배달의 민족은 음식점과 소비자 모두의 마음을 사로잡으며 시장 1위로 자리 잡았다.
mjlee@hankyung.com
[커버스토리=기업가정신이 희망이다 인덱스]
①잊힌 ‘기업가 정신’을 찾아서
-"한국, 기업가 정신 쇠퇴" 56.4% "기업가 정신 교육 필요" 87.3%
-한강의 기적’을 만든 그들…기업가 정신 루트를 가다
-도전과 모험이 혁신을 부른다’…다시 읽는 슘페터와 드러커
②재도약의 성장 엔진 '기업가 정신'
-“CEO 되는 법이 아니라 실패해도 괜찮다는 걸 배웠어요”
-“누구나 창업해야 하는 시대, 지식만 가르치는 건 직무유기죠”
-스타트업 육성하는 벤처 1세대…언론 노출 꺼리지만 ‘멘토’ 자처
-‘기업 가치 1조’ 스타트업 성공 신화를 쓴 창업자들
③100년 기업을 키우자
-‘오너 경영’이 모든 문제의 근원일까?
-‘문 닫는 장수 기업들’…높은 상속세가 ‘발목
-“벤처·대기업 모두 차등의결권 허용해야”
④'제2 창업' 나선 기업들
-삼성, C랩 통해 스타트업 설립 지원…‘제2의 삼성전자’ 탄생 기대
-현대차, 반세기 달리며 ‘품질 경영’ 장착…미래차 게임 체인저로
-SK ‘직물 공장에서 글로벌 기업으로’…반도체·바이오에 공격 투자
-LG, 4대째 이어진 ‘연암정신’, 초일류 기업 만들다
-롯데, 기업 문화 혁신에 팔 걷어…유연근무제 도입·남성육아휴직 의무화
-포스코, 기업 시민 위한 ‘위드 포스코’ 새 비전…비철강 ‘강자’ 노린다
-한화, 과감한 투자·빅딜로 태양광 등 수직계열화…‘글로벌 한화’ 날개 편다
-신세계, ‘유통 혁신의 아이콘’…배송 경쟁력·스마트 초저가로 승부
-두산, 경영 혁신으로 ‘턴어라운드’ 성공…신사업 도전 나선다
-CJ, 창업 이념 ‘사업보국’ 정신, ‘K컬처’에 이어 ‘K푸드’로 확대
[본 기사는 한경비즈니스 제 1217호(2019.03.25 ~ 2019.03.31)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