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G로 굴삭기 원격조종…가상공간에서 작업 현장 미리 예측하기도
[한경비즈니스=이명지 기자 ] 중국 상하이에서 조종한 굴삭기가 한국 인천에서 작동된다고? 880km 떨어진 곳에서도 원격제어 시스템을 통해 원격으로 굴삭기를 조종하는 기술이 지난해 11월 아시아 최대 규모의 건설기계 전시회 ‘바우마 차이나’에서 선보였다.
이 기술을 선보인 두산인프라코어에 따르면 가상 시뮬레이션이나 근거리 원격제어가 아니라 실제 장비로 국가 간 초장거리 원격제어를 시연한 것은 세계 최초다. 비밀은 5세대 이동통신(5G)이다. 통신업계를 넘어 산업군 전체를 바꿔 놓을 것으로 전망되는 5G가 보수적인 건설기계 시장에도 뿌리내리기 시작한 것이다.
5G뿐만이 아니다. 중장비업계는 인공지능(AI)·사물인터넷(IoT) 등 신기술을 건설 장비에 접목하는 데 시동을 걸고 있다. 첨단 건설 기기에 대한 수요가 증가하는 것은 물론 자칫하면 정보기술(IT)업계에 주도권을 빼앗길 수 있다는 우려에서다.
◆숙련된 작업자도 감탄한 ‘첨단 굴삭기’의 저력
글로벌 시장에서는 ‘첨단 굴삭기’에 대한 관심이 높아진 지 오래다. 북유럽·호주·북미·일본 둥은 비싼 인건비를 절감하기 위해 첨단 굴삭기로 시선을 돌리기 시작했다. 초기에는 정부의 규제나 보조금 지원책으로 성장했지만 현재는 첨단 굴삭기를 활용해 발생하는 여러 재무적 효율성 때문에 고객들이 먼저 관심을 보인다.
중국이나 신흥시장에서도 첨단 굴삭기의 수요는 꾸준히 증가하고 있다. 다만 이유는 조금 다르다. 하루 작업량을 개량된 수치로 확인해 현장 작업을 관리하고 장비나 광산의 귀금속 등의 도난을 방지하기 위해서다.
국내 건설기계 시장에 IT가 본격적으로 도입된 것은 2018년부터다. 한국이 ‘IT 강국’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다소 늦은 감이 있다. 이는 대규모 광산을 찾아볼 수 없고 시장 자체가 협소해 첨단 굴삭기에 대한 수요가 다소 적었기 때문이다.
두산인프라코어 관계자는 “국내 건설기계 업계가 IoT·IT에 소극적인 이유는 중장비 소유자가 직접 현장에서 장비를 운행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중장비 소유자들은 이미 숙련된 장비 운용사이기 때문에 장비 운용과 관리에 필요한 정보를 이미 파악하고 있어 IT를 통한 별도의 정보 제공 요구가 높지 않았다는 것이다.
하지만 최근 국내에서도 첨단 굴삭기를 보는 인식이 바뀌고 있다. 작업 현장의 효율성을 향상시키는 데 IT가 크게 기여하기 때문이다. 특히 건설기계 중에서 활용도가 높고 모든 건설의 기본 작업을 수행하는 굴삭기에 IT를 접목하고 있다.
굴삭기가 주로 사용되는 광산을 무대로 예로 들어보자. 먼저 굴삭기가 바위를 깨고 땅을 파헤친다. 휠로더는 토사물을 트럭에 옮겨 담고 트럭이 다른 장소로 토사물을 옮기는 것으로 작업이 이뤄진다.
이 중 단 하나의 과정, 단 한 곳의 기기에서 이상이 발생하면 전체 작업 과정이 멈추고 추가 비용이 발생한다. 공사 현장에서는 이를 미연에 방지하는 것이 중요하다. 이에 대한 대비책으로 IT가 각광받는 것이다.
작업 현장에서의 안전도 강화할 수 있다. 5G 통신망을 이용한 ‘텔레-오퍼레이션(tele-operation)’이 상용화된다면 위험한 작업 시 운전자가 탑승하지 않고 안전한 곳에서 장비를 원격제어해 사고를 예방할 수 있다.
지뢰 제거나 오염 지역 작업에서 유용하게 쓸 수 있을 것으로 전망된다. 볼보건설기계코리아가 출시한 ‘지능형 작업 시스템’을 이용하면 작업자가 캡 실내에서 확인할 수 없는 작업 현장의 깊이나 높이를 디스플레이를 통해 사전에 확인할 수 있어 사고를 막을 수 있다.
국내 굴삭기 시장에서는 두산인프라코어·현대건설기계·볼보건설기계코리아가 3강을 이루고 있다. 이들은 고객들의 다양한 니즈에 맞춰 기술 개발에 나서며 시장 확대를 꾀한다는 전략을 갖고 있다.
◆머신 가이던스부터 5G까지…다양한 굴삭기 선봬
굴삭기와 연결할 수 있는 기술 중 첫째는 ‘자동화’다. 궁극적 목표는 자동차와 같은 ‘완전 자율’이지만 건설 현장에서 특정한 목적을 수행해야 하는 굴삭기는 몇 단계의 과정을 거쳐야 한다.
작업 효율을 향상시키기 위한 초석은 운전자 작업 지원 시스템과 안전한 작업 수행을 위한 안전 지원 시스템이다. 그다음엔 원격제어 시스템과 자율 작업 시스템으로 이어져 무인화까지 발전할 것으로 전망된다.
둘째는 텔레매틱스를 이용한 ‘커넥티드 서비스’다. 실제 작업 현장에 투입한 건설기계 장비에서 보내는 각종 정보를 바탕으로 향상된 작업이 가능하다.
이러한 소프트웨어는 사전 고장 진단 등 개별 장비 관리부터 전체 작업 현장에 투입된 전 장비의 효율적 운영을 가능하게 한다.
5G는 원격제어 기술의 고도화에 크게 기여할 수 있다. 기존 롱텀에볼루션(LTE)이나 와이파이망으로는 영상 송출과 송수신에 시간 지연이 발생해 원격제어 기술에 한계가 있었다. 하지만 5G의 대용량 고속 통신망은 다양한 영상과 굴삭기 제어에 필요한 신호를 실시간으로 통신할 수 있어 원격제어 기술의 보편화를 촉진할 것으로 보인다.
최근 중장비 기업들이 앞다퉈 내놓은 시스템은 ‘머신 가이던스(machine guidance)’다. 무인 굴삭기의 전 단계 기술로 평가 받는 머신 가이던스는 굴삭기에 각종 센서와 제어기, 위성측위시스템(GNSS) 등을 탑재해 굴삭기의 실시간 상태를 운전자에게 알려준다.
현대건설기계 관계자는 “머신 가이던스는 AI 기술과 융합해 발전하면서 궁극적으로 자율 작업 굴삭기로 진화하는 형태”라고 설명한다.
자동차에서 내비게이션이 일반화된 후 AI 기술의 발전에 따라 자율주행 시대가 열리는 것처럼 굴삭기도 머신 가이던스와 같은 기술들을 토대로 운전자가 별도 측량자의 도움 없이 신속·정밀하게 작업할 수 있는 단계가 도래할 것이란 전망이다.
두산인프라코어는 지난해 9월 일산 킨텍스에서 열린 ‘국제자동화정밀기기전’에서 독자 기술로 개발한 ‘머신 가이던스’ 시스템을 처음 선보였다. 두산인프라코어의 머신 가이던스는 굴삭기의 붐·암·버킷 등 작업 부위와 본체에 부착된 4개의 센서를 통해 수집된 작업 정보를 조종석의 모니터를 통해 작업자에게 제공한다.
이 시스템을 사용하면 별도의 측량 작업 없이 진행 중인 굴삭 작업의 넓이와 깊이 등 각종 정보를 2cm 오차 범위 내에서 정밀하게 확인할 수 있다. 향후 두산인프라코어는 개발 중인 머신 컨트롤 기술을 연계해 스마트 솔루션을 고도해 나갈 계획이다.
머신 컨트롤은 숙련된 굴삭기 조종사가 아니더라도 설정된 작업 궤적에 따라 어려운 작업을 쉽게 할 수 있도록 돕는 기술이다. 굴삭기의 움직임이 입력한 작업 범위에서 어긋나면 자동으로 장비를 제어해 준다.
현대건설기계는 지난 2월 굴삭기의 작업 장치 자세와 ‘버킷’의 위치를 인식해 운전자에게 알려주는 ‘머신 가이던스’ 기술을 상용화했다.
이 기술에 기반해 특정 작업에 대해 반자동화가 가능한 ‘머신 컨트롤’ 기술을 내년 초 상용화할 예정이다. 머신 가이던스는 공사 현장에서 지면의 높이 기준점을 알리는 머신 레이저 수신기를 프리미엄 옵션으로 올해 하반기 추가 출시할 계획이다.
현대건설기계 관계자는 “머신 가이던스와 머신 컨트롤 기술은 작업 과정에서 측량 작업과 불필요한 조작을 제거해 공사비용과 시간을 절감할 수 있다”며 “작업 장치가 지정된 영역 밖으로 움직이는 것을 제한해 안전사고도 예방해 준다”고 말했다.
볼보건설기계코리아는 지난해 3월 ‘볼보 지능형 작업 시스템’을 출시했다. EW140E 모델에 우선적으로 선보인 볼보 지능형 작업 시스템은 중장비 작업 지원 시스템 ‘볼보 코 파일럿’이 적용된 첫째 한국 시판 사례다.
코 파일럿은 10인치 대형 터치스크린 디스플레이로 운전자는 이를 통해 실제 작업을 수행하기 전 굴삭 깊이와 작업 영역을 사전에 지정할 수 있다. 굴삭 작업을 수행할 때 계측 기능 지원에 한정됐던 기존 시스템보다 더욱 확장된 기능을 제공한다.
이러한 ‘첨단 굴삭기’는 향후 더 각광받을 것으로 보인다. 나날이 강화되는 환경 규제에도 친환경 굴삭기가 큰 역할을 수행할 수 있다. 북미와 유럽을 중심으로 유해 물질의 배출을 제한하는 엔진 배기 규제가 강화되고 있다.
◆건설기계업계, “머뭇거리면 IT에 주도권 뺏긴다”
첨단 굴삭기의 수요가 많은 북유럽 노르웨이·스웨덴, 미국 동서부 지역에서는 각 나라 정부의 친환경 정책이 굴삭기 시장에 큰 영향을 미치고 있다.
특히 노르웨이 오슬로, 스웨덴 스톡홀름, 영국 런던, 프랑스 파리는 지구온난화 방지를 위한 세계 40개 도시 연합단체인 ‘C40’의 회원이자 환경을 보전하기 위해 첨단 굴삭기를 구매하는 도시다.
친환경 굴삭기를 향한 업계의 관심도 높다. 양성모 볼보그룹코리아 대표는 “건설기계업계는 지난 10년간 꾸준히 디젤엔진의 배기가스 저감을 위한 기술 개발을 진행해 왔다”고 말한다.
이를 위해 건설기계업계는 전기 동력에 관심을 기울이고 있는데 현재는 전기 배터리의 용량과 사이즈 제한으로 소형 굴삭기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양 대표는 “향후 기술이 발전한다면 중대형 굴삭기의 전기 동력화 모델 출시도 가능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고객들 또한 건설 장비 업체를 선정하는 데 IT 기술력을 중요한 기준으로 삼기 시작했다. 지난 1월 두산인프라코어는 싱가포르와 홍콩 등 신흥시장에서 굴절식 덤프트럭(ADT)을 연이어 수주했다.
두산인프라코어는 싱가포르 최대 건설토목 회사인 KTC에 올해 ADT를 30대 공급했는데, 이는 ADT 단일 수주 건 중 최대 판매 기록이다.
또 홍콩에서도 신공항 건설 프로젝트에 사용될 ADT 10대를 현지 건설회사 ‘루엔야우’에 공급한다. 이 업체들은 건설 장비를 원격으로 모니터링할 수 있는 텔레매틱스 서비스 ‘두산커넥트’에 높은 점수를 준 것으로 알려졌다.
KTC는 이번 공급 물량을 포함해 두산인프라코어의 ADT를 총 73대 운용 중인데, 2017년부터 두산커넥트를 전체 ADT에 기본 품목으로 탑재해 사용 중이다.
건설기계업계 내부에서도 더 이상 IT 도입을 주저해서는 안 된다는 경각심이 커지고 있다. AI·IoT·빅데이터 등에 강점을 갖고 있는 IT업계가 건설·중장비 시장에 발을 들여놓으면 이들에게 시장 주도권을 빼앗길 수 있다는 우려에서다.
마치 IT 기업이 금융시장에 진출해 ‘핀테크 열풍’을 일으킨 것처럼 말이다. 따라서 중장비업계는 축적해 온 빅데이터와 현장 경험을 활용해 건설기계 시장의 ‘4차 산업혁명’의 선두에 서겠다는 각오를 다지고 있다.
양성모 대표는 “과거 중장비는 굴뚝산업의 제품이라고 여겨졌지만 지금의 건설기계 산업은 4차 산업혁명과 AI·환경보호 등 다양한 기술과 정책 변화를 적극적으로 받아들이고 있어 첨단 산업으로 꼽기에 손색이 없다”고 말했다.
[돋보기 : 볼보건설기계의 R&D 심장, 창원 ‘첨단기술개발센터’]
건설 시장의 ‘4차 산업혁명’을 이끌기 위해 건설기계업계가 아낌없는 투자에 나서고 있다. 이 중 볼보건설기계코리아는 약 150억원을 투자한 ‘첨단기술센터’로 굴삭기에 적용되는 여러 신기술을 시연하고 있다.
창원공장에 들어선 첨단기술센터는 2006년 10월 준공됐다. 굴삭기 부문에서 세계 최초로 가상 체험 기술을 활용한 성능 검증으로 품질을 획기적으로 향상시키고 있다. 300여 명이 넘는 연구·개발(R&D) 인력은 최고의 굴삭기 설계를 위해 R&D에 매진 중이다.
이곳에는 90톤급 굴삭기의 제어장치들을 점검할 수 있는 대형 실험실, 소음 측정을 위해 항온·항습이 유지되는 무향실, 각종 시험 데이터를 바탕으로 현실에서 실현하기 어려운 상황을 가상으로 재현하는 가상 시뮬레이션 시험실 등 총 14개의 시험실이 설치됐다.
이 중에서 ‘가상 장비 시뮬레이션 시스템’은 볼보건설기계코리아의 기술력이 집약된 곳으로 불린다. 이 시스템은 2014년 2월 발표된 국내 최초의 기술로, 가상 굴삭기에 운전자가 탑승해 제품의 성능을 테스트할 수 있다.
운전자가 시뮬레이터 운전석에 탑승해 작업 명령을 내리면 정교한 스크린을 통해 작업이 수행되는 과정을 지켜볼 수 있다. 지면과 굴삭기 버킷의 동력을 정확히 계산해 장비의 유압 동력, 엔진 사운드를 실제 장비에서와 똑같이 실시간으로 재생하고 계측한다.
실제 지면의 반응도 계산해 굴삭기 운전자의 사용 느낌을 그대로 전달한다. 이를 통해 운전자의 작업 행동 패턴을 정확하게 파악하고 제품 개발에 반영할 수 있다.
볼보건설기계코리아 관계자는 “가상 시뮬레이션 시험실은 각종 시험 데이터를 통합해 만든 여러 가상 환경을 적용해 실제와 똑같은 형태의 가상 굴삭기를 시험할 수 있어 각각의 상황에 맞는 보다 정확하고 세밀한 시험이 가능하다”고 밝혔다.
현재 운영 가능한 시뮬레이터 모델은 유럽연합의 배기가스 배출 기준인 ‘티어(Tier) 4’를 적용한 48톤급 신형 굴삭기 제품 모델로, 향후 적용 모델도 점차 확대할 예정이다.
mjlee@hankyung.com
[본 기사는 한경비즈니스 제 1219호(2019.04.08 ~ 2019.04.14) 기사입니다.]
[한경비즈니스=이명지 기자 ] 중국 상하이에서 조종한 굴삭기가 한국 인천에서 작동된다고? 880km 떨어진 곳에서도 원격제어 시스템을 통해 원격으로 굴삭기를 조종하는 기술이 지난해 11월 아시아 최대 규모의 건설기계 전시회 ‘바우마 차이나’에서 선보였다.
이 기술을 선보인 두산인프라코어에 따르면 가상 시뮬레이션이나 근거리 원격제어가 아니라 실제 장비로 국가 간 초장거리 원격제어를 시연한 것은 세계 최초다. 비밀은 5세대 이동통신(5G)이다. 통신업계를 넘어 산업군 전체를 바꿔 놓을 것으로 전망되는 5G가 보수적인 건설기계 시장에도 뿌리내리기 시작한 것이다.
5G뿐만이 아니다. 중장비업계는 인공지능(AI)·사물인터넷(IoT) 등 신기술을 건설 장비에 접목하는 데 시동을 걸고 있다. 첨단 건설 기기에 대한 수요가 증가하는 것은 물론 자칫하면 정보기술(IT)업계에 주도권을 빼앗길 수 있다는 우려에서다.
◆숙련된 작업자도 감탄한 ‘첨단 굴삭기’의 저력
글로벌 시장에서는 ‘첨단 굴삭기’에 대한 관심이 높아진 지 오래다. 북유럽·호주·북미·일본 둥은 비싼 인건비를 절감하기 위해 첨단 굴삭기로 시선을 돌리기 시작했다. 초기에는 정부의 규제나 보조금 지원책으로 성장했지만 현재는 첨단 굴삭기를 활용해 발생하는 여러 재무적 효율성 때문에 고객들이 먼저 관심을 보인다.
중국이나 신흥시장에서도 첨단 굴삭기의 수요는 꾸준히 증가하고 있다. 다만 이유는 조금 다르다. 하루 작업량을 개량된 수치로 확인해 현장 작업을 관리하고 장비나 광산의 귀금속 등의 도난을 방지하기 위해서다.
국내 건설기계 시장에 IT가 본격적으로 도입된 것은 2018년부터다. 한국이 ‘IT 강국’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다소 늦은 감이 있다. 이는 대규모 광산을 찾아볼 수 없고 시장 자체가 협소해 첨단 굴삭기에 대한 수요가 다소 적었기 때문이다.
두산인프라코어 관계자는 “국내 건설기계 업계가 IoT·IT에 소극적인 이유는 중장비 소유자가 직접 현장에서 장비를 운행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중장비 소유자들은 이미 숙련된 장비 운용사이기 때문에 장비 운용과 관리에 필요한 정보를 이미 파악하고 있어 IT를 통한 별도의 정보 제공 요구가 높지 않았다는 것이다.
하지만 최근 국내에서도 첨단 굴삭기를 보는 인식이 바뀌고 있다. 작업 현장의 효율성을 향상시키는 데 IT가 크게 기여하기 때문이다. 특히 건설기계 중에서 활용도가 높고 모든 건설의 기본 작업을 수행하는 굴삭기에 IT를 접목하고 있다.
굴삭기가 주로 사용되는 광산을 무대로 예로 들어보자. 먼저 굴삭기가 바위를 깨고 땅을 파헤친다. 휠로더는 토사물을 트럭에 옮겨 담고 트럭이 다른 장소로 토사물을 옮기는 것으로 작업이 이뤄진다.
이 중 단 하나의 과정, 단 한 곳의 기기에서 이상이 발생하면 전체 작업 과정이 멈추고 추가 비용이 발생한다. 공사 현장에서는 이를 미연에 방지하는 것이 중요하다. 이에 대한 대비책으로 IT가 각광받는 것이다.
작업 현장에서의 안전도 강화할 수 있다. 5G 통신망을 이용한 ‘텔레-오퍼레이션(tele-operation)’이 상용화된다면 위험한 작업 시 운전자가 탑승하지 않고 안전한 곳에서 장비를 원격제어해 사고를 예방할 수 있다.
지뢰 제거나 오염 지역 작업에서 유용하게 쓸 수 있을 것으로 전망된다. 볼보건설기계코리아가 출시한 ‘지능형 작업 시스템’을 이용하면 작업자가 캡 실내에서 확인할 수 없는 작업 현장의 깊이나 높이를 디스플레이를 통해 사전에 확인할 수 있어 사고를 막을 수 있다.
국내 굴삭기 시장에서는 두산인프라코어·현대건설기계·볼보건설기계코리아가 3강을 이루고 있다. 이들은 고객들의 다양한 니즈에 맞춰 기술 개발에 나서며 시장 확대를 꾀한다는 전략을 갖고 있다.
◆머신 가이던스부터 5G까지…다양한 굴삭기 선봬
굴삭기와 연결할 수 있는 기술 중 첫째는 ‘자동화’다. 궁극적 목표는 자동차와 같은 ‘완전 자율’이지만 건설 현장에서 특정한 목적을 수행해야 하는 굴삭기는 몇 단계의 과정을 거쳐야 한다.
작업 효율을 향상시키기 위한 초석은 운전자 작업 지원 시스템과 안전한 작업 수행을 위한 안전 지원 시스템이다. 그다음엔 원격제어 시스템과 자율 작업 시스템으로 이어져 무인화까지 발전할 것으로 전망된다.
둘째는 텔레매틱스를 이용한 ‘커넥티드 서비스’다. 실제 작업 현장에 투입한 건설기계 장비에서 보내는 각종 정보를 바탕으로 향상된 작업이 가능하다.
이러한 소프트웨어는 사전 고장 진단 등 개별 장비 관리부터 전체 작업 현장에 투입된 전 장비의 효율적 운영을 가능하게 한다.
5G는 원격제어 기술의 고도화에 크게 기여할 수 있다. 기존 롱텀에볼루션(LTE)이나 와이파이망으로는 영상 송출과 송수신에 시간 지연이 발생해 원격제어 기술에 한계가 있었다. 하지만 5G의 대용량 고속 통신망은 다양한 영상과 굴삭기 제어에 필요한 신호를 실시간으로 통신할 수 있어 원격제어 기술의 보편화를 촉진할 것으로 보인다.
최근 중장비 기업들이 앞다퉈 내놓은 시스템은 ‘머신 가이던스(machine guidance)’다. 무인 굴삭기의 전 단계 기술로 평가 받는 머신 가이던스는 굴삭기에 각종 센서와 제어기, 위성측위시스템(GNSS) 등을 탑재해 굴삭기의 실시간 상태를 운전자에게 알려준다.
현대건설기계 관계자는 “머신 가이던스는 AI 기술과 융합해 발전하면서 궁극적으로 자율 작업 굴삭기로 진화하는 형태”라고 설명한다.
자동차에서 내비게이션이 일반화된 후 AI 기술의 발전에 따라 자율주행 시대가 열리는 것처럼 굴삭기도 머신 가이던스와 같은 기술들을 토대로 운전자가 별도 측량자의 도움 없이 신속·정밀하게 작업할 수 있는 단계가 도래할 것이란 전망이다.
두산인프라코어는 지난해 9월 일산 킨텍스에서 열린 ‘국제자동화정밀기기전’에서 독자 기술로 개발한 ‘머신 가이던스’ 시스템을 처음 선보였다. 두산인프라코어의 머신 가이던스는 굴삭기의 붐·암·버킷 등 작업 부위와 본체에 부착된 4개의 센서를 통해 수집된 작업 정보를 조종석의 모니터를 통해 작업자에게 제공한다.
이 시스템을 사용하면 별도의 측량 작업 없이 진행 중인 굴삭 작업의 넓이와 깊이 등 각종 정보를 2cm 오차 범위 내에서 정밀하게 확인할 수 있다. 향후 두산인프라코어는 개발 중인 머신 컨트롤 기술을 연계해 스마트 솔루션을 고도해 나갈 계획이다.
머신 컨트롤은 숙련된 굴삭기 조종사가 아니더라도 설정된 작업 궤적에 따라 어려운 작업을 쉽게 할 수 있도록 돕는 기술이다. 굴삭기의 움직임이 입력한 작업 범위에서 어긋나면 자동으로 장비를 제어해 준다.
현대건설기계는 지난 2월 굴삭기의 작업 장치 자세와 ‘버킷’의 위치를 인식해 운전자에게 알려주는 ‘머신 가이던스’ 기술을 상용화했다.
이 기술에 기반해 특정 작업에 대해 반자동화가 가능한 ‘머신 컨트롤’ 기술을 내년 초 상용화할 예정이다. 머신 가이던스는 공사 현장에서 지면의 높이 기준점을 알리는 머신 레이저 수신기를 프리미엄 옵션으로 올해 하반기 추가 출시할 계획이다.
현대건설기계 관계자는 “머신 가이던스와 머신 컨트롤 기술은 작업 과정에서 측량 작업과 불필요한 조작을 제거해 공사비용과 시간을 절감할 수 있다”며 “작업 장치가 지정된 영역 밖으로 움직이는 것을 제한해 안전사고도 예방해 준다”고 말했다.
볼보건설기계코리아는 지난해 3월 ‘볼보 지능형 작업 시스템’을 출시했다. EW140E 모델에 우선적으로 선보인 볼보 지능형 작업 시스템은 중장비 작업 지원 시스템 ‘볼보 코 파일럿’이 적용된 첫째 한국 시판 사례다.
코 파일럿은 10인치 대형 터치스크린 디스플레이로 운전자는 이를 통해 실제 작업을 수행하기 전 굴삭 깊이와 작업 영역을 사전에 지정할 수 있다. 굴삭 작업을 수행할 때 계측 기능 지원에 한정됐던 기존 시스템보다 더욱 확장된 기능을 제공한다.
이러한 ‘첨단 굴삭기’는 향후 더 각광받을 것으로 보인다. 나날이 강화되는 환경 규제에도 친환경 굴삭기가 큰 역할을 수행할 수 있다. 북미와 유럽을 중심으로 유해 물질의 배출을 제한하는 엔진 배기 규제가 강화되고 있다.
◆건설기계업계, “머뭇거리면 IT에 주도권 뺏긴다”
첨단 굴삭기의 수요가 많은 북유럽 노르웨이·스웨덴, 미국 동서부 지역에서는 각 나라 정부의 친환경 정책이 굴삭기 시장에 큰 영향을 미치고 있다.
특히 노르웨이 오슬로, 스웨덴 스톡홀름, 영국 런던, 프랑스 파리는 지구온난화 방지를 위한 세계 40개 도시 연합단체인 ‘C40’의 회원이자 환경을 보전하기 위해 첨단 굴삭기를 구매하는 도시다.
친환경 굴삭기를 향한 업계의 관심도 높다. 양성모 볼보그룹코리아 대표는 “건설기계업계는 지난 10년간 꾸준히 디젤엔진의 배기가스 저감을 위한 기술 개발을 진행해 왔다”고 말한다.
이를 위해 건설기계업계는 전기 동력에 관심을 기울이고 있는데 현재는 전기 배터리의 용량과 사이즈 제한으로 소형 굴삭기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양 대표는 “향후 기술이 발전한다면 중대형 굴삭기의 전기 동력화 모델 출시도 가능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고객들 또한 건설 장비 업체를 선정하는 데 IT 기술력을 중요한 기준으로 삼기 시작했다. 지난 1월 두산인프라코어는 싱가포르와 홍콩 등 신흥시장에서 굴절식 덤프트럭(ADT)을 연이어 수주했다.
두산인프라코어는 싱가포르 최대 건설토목 회사인 KTC에 올해 ADT를 30대 공급했는데, 이는 ADT 단일 수주 건 중 최대 판매 기록이다.
또 홍콩에서도 신공항 건설 프로젝트에 사용될 ADT 10대를 현지 건설회사 ‘루엔야우’에 공급한다. 이 업체들은 건설 장비를 원격으로 모니터링할 수 있는 텔레매틱스 서비스 ‘두산커넥트’에 높은 점수를 준 것으로 알려졌다.
KTC는 이번 공급 물량을 포함해 두산인프라코어의 ADT를 총 73대 운용 중인데, 2017년부터 두산커넥트를 전체 ADT에 기본 품목으로 탑재해 사용 중이다.
건설기계업계 내부에서도 더 이상 IT 도입을 주저해서는 안 된다는 경각심이 커지고 있다. AI·IoT·빅데이터 등에 강점을 갖고 있는 IT업계가 건설·중장비 시장에 발을 들여놓으면 이들에게 시장 주도권을 빼앗길 수 있다는 우려에서다.
마치 IT 기업이 금융시장에 진출해 ‘핀테크 열풍’을 일으킨 것처럼 말이다. 따라서 중장비업계는 축적해 온 빅데이터와 현장 경험을 활용해 건설기계 시장의 ‘4차 산업혁명’의 선두에 서겠다는 각오를 다지고 있다.
양성모 대표는 “과거 중장비는 굴뚝산업의 제품이라고 여겨졌지만 지금의 건설기계 산업은 4차 산업혁명과 AI·환경보호 등 다양한 기술과 정책 변화를 적극적으로 받아들이고 있어 첨단 산업으로 꼽기에 손색이 없다”고 말했다.
[돋보기 : 볼보건설기계의 R&D 심장, 창원 ‘첨단기술개발센터’]
건설 시장의 ‘4차 산업혁명’을 이끌기 위해 건설기계업계가 아낌없는 투자에 나서고 있다. 이 중 볼보건설기계코리아는 약 150억원을 투자한 ‘첨단기술센터’로 굴삭기에 적용되는 여러 신기술을 시연하고 있다.
창원공장에 들어선 첨단기술센터는 2006년 10월 준공됐다. 굴삭기 부문에서 세계 최초로 가상 체험 기술을 활용한 성능 검증으로 품질을 획기적으로 향상시키고 있다. 300여 명이 넘는 연구·개발(R&D) 인력은 최고의 굴삭기 설계를 위해 R&D에 매진 중이다.
이곳에는 90톤급 굴삭기의 제어장치들을 점검할 수 있는 대형 실험실, 소음 측정을 위해 항온·항습이 유지되는 무향실, 각종 시험 데이터를 바탕으로 현실에서 실현하기 어려운 상황을 가상으로 재현하는 가상 시뮬레이션 시험실 등 총 14개의 시험실이 설치됐다.
이 중에서 ‘가상 장비 시뮬레이션 시스템’은 볼보건설기계코리아의 기술력이 집약된 곳으로 불린다. 이 시스템은 2014년 2월 발표된 국내 최초의 기술로, 가상 굴삭기에 운전자가 탑승해 제품의 성능을 테스트할 수 있다.
운전자가 시뮬레이터 운전석에 탑승해 작업 명령을 내리면 정교한 스크린을 통해 작업이 수행되는 과정을 지켜볼 수 있다. 지면과 굴삭기 버킷의 동력을 정확히 계산해 장비의 유압 동력, 엔진 사운드를 실제 장비에서와 똑같이 실시간으로 재생하고 계측한다.
실제 지면의 반응도 계산해 굴삭기 운전자의 사용 느낌을 그대로 전달한다. 이를 통해 운전자의 작업 행동 패턴을 정확하게 파악하고 제품 개발에 반영할 수 있다.
볼보건설기계코리아 관계자는 “가상 시뮬레이션 시험실은 각종 시험 데이터를 통합해 만든 여러 가상 환경을 적용해 실제와 똑같은 형태의 가상 굴삭기를 시험할 수 있어 각각의 상황에 맞는 보다 정확하고 세밀한 시험이 가능하다”고 밝혔다.
현재 운영 가능한 시뮬레이터 모델은 유럽연합의 배기가스 배출 기준인 ‘티어(Tier) 4’를 적용한 48톤급 신형 굴삭기 제품 모델로, 향후 적용 모델도 점차 확대할 예정이다.
mjlee@hankyung.com
[본 기사는 한경비즈니스 제 1219호(2019.04.08 ~ 2019.04.14)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