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의 암호화폐 채굴 금지, 시장 성숙 계기 될 것

[비트코인 A to Z]
-전기료 싼 서부지역에 채굴 시설 집중…헐값 채굴 사라지고 가격 정상화 기대


(사진) 중국 쓰촨성에서 가동 중인 비트코인 채굴 장비들

[오태민 마이지놈박스 블록체인 연구소장] 중국 정부가 암호화폐 채굴을 금지할 계획이다. 중국 관영 매체 글로벌타임스와 블룸버그통신이 4월 10일 보도한 바에 따르면 중국의 국가발전개혁위원회는 ‘2019년 산업 구조조정 지도 방침’에서 암호화폐 채굴 산업을 ‘도태 산업’으로 지정했다. 5월까지 여론을 청취해 결정할 계획이지만 시설 폐쇄로 방향이 정해진 것으로 알려졌다. 환경오염과 에너지 낭비가 심각하다는 것이 금지 이유다. 중국에서는 전기료가 매우 싼 서부 쓰촨성과 윈난성, 북부 내몽골자치구 등에 비트코인 채굴 시설이 집중된 것으로 알려졌다.

언론은 암호화폐 채굴에서 70% 이상을 차지하는 중국이 채굴을 금지하면 암호화폐 산업 전체에 큰 타격을 줄 것으로 예상했다. 하지만 뉴스가 발표된 날 가격 폭락은 없었다. 뉴스가 터졌을 때 암호화폐 가격은 느리게 반응하기도 하고 예상과 다른 방향으로 전개되는 경우도 많다. 중국 채굴 금지 뉴스에 암호화폐 가격이 폭락하지 않았다고 해서 영향이 없다고 단정 지을 수는 없다. 하지만 암호화폐의 채굴을 둘러싼 담론들은 가장 오해가 많은 부분이며 채굴 금지가 암호화폐 가격에 타격을 준다는 단순한 논리도 오해의 산물일 가능성이 높다.

암호화폐에서 채굴(minning)은 역사 기록권을 둘러싼 경쟁을 일컫는다. 널리 알려진 바와 같이 비트코인은 은행같이 신뢰받는 중재자에게 의지하지 않는다. 그 대신 비트코인 거래는 블록이라는 기록 저장소에 포함되고 이 블록들을 연결하면서 기록의 역사를 구성한다. 한 번 역사로 기록되면 그 기록 전체를 파괴하지 않고서는 개별 기록을 바꿀 수 없게 된다. 누구나 역사를 기록하지만 정사(正史)로 채택되는 것은 딱 하나이고 비트코인의 10년 장부는 57만여 개의 정사들로 구성돼 있다.

채굴은 10분마다 역사를 기록하는 경쟁에서 승자에게 주어지는 보상에 무게를 둔 명칭이고 시스템 전체로 보면 거래를 승인하기 위해 정사를 선택하는 작업이다. 중앙 권위가 없는 상태에서 수평적인 노드들 간에 우열을 가리는 일이기도 하다. 그러면서도 이 경쟁에서 이긴 노드가 시스템 전체의 이익에 반해 사익을 추구하거나 시스템 전체를 파괴하려는 의도가 없다는 것을 확인해 줘야 한다.

비트코인의 창시자 사토시 나카모토가 제시한 기준은 비용이다. 비용을 가장 많이 투입한 컴퓨터에 역사 기록 권한을 부여한다. 시스템의 성패에 이해가 걸려 있으니 이 컴퓨터는 시스템을 파괴하려는 동기가 작다.

게다가 게임은 10분마다 갱신되기 때문에 게임 이론에서 말하는 반복 게임의 원리가 작동한다. 반복 게임에서는 특별한 보호 장치가 없어도 참여자들이 호혜적으로 행동할 가능성이 높다. 동네의 밥집이 뜨내기손님을 상대하는 관광지 식당보다 믿을 만한 이유도 상대를 속이면 다음 게임에서 응징당할 수 있기 때문이다. 게임의 반복이라는 조건에서 투입하는 비용에 비례해 거래의 기록권을 부여한다. 하지만 이것만으로는 무결성을 보증하지 못한다.

기록권을 부여받음으로써 얻는 이익이 권한을 위해 투입한 비용보다 크게 높지 않아야 한다. 즉 이익과 비용이 같아야 한다. 만약 투입한 비용과 이익의 차이가 크다면 그만큼의 차액을 누군가 제시하고 권한을 매수해 손쉽게 시스템을 파괴할 수 있다. 쉽게 말해 10분마다 채굴권을 확보해 얻는 12.5BTC의 비트코인 가격이 이 권한을 위해 투입하는 비용보다 현격하게 높으면 거대한 자본을 가진 누군가가 조금 더 높은 비용을 투입해 채굴권을 그러모을 수 있으므로 그는 채굴 시스템을 지배하고 권한을 남용할 수 있다. 이는 로널드 코스라는 경제학자가 오래전에 정리한 이론이 가리키는 귀결이다.



◆‘완전 경쟁 시장’에 가까운 채굴

비트코인의 채굴은 미시경제학이 가정하는 완전 경쟁 시장에 가깝다. 따라서 채굴을 위해 투입하는 한계비용과 비트코인의 시장가격은 수렴하므로 권한을 매집해 시스템을 파괴할 가능성은 거의 없다.

비트코인의 시장가격이 채굴에 들어가는 전기료보다 높으면 업자들은 채굴기를 더 틀어 놓는 것만으로도 위험 없이 손쉽게 이익을 취할 수 있다. 비트코인의 채굴 보상은 경쟁과 무관하게 고정돼 있으므로 채굴업자에게는 경쟁만 치열해지는 셈이다.

만약 이런 과정을 거쳐 전기료가 이익보다 커진다면 어떨까. 채굴업자들은 전기 스위치를 차단해 손실을 줄이려고 할 것이다. 경쟁은 완화되고 결국 투입비용과 채굴 보상이 같아지는 지점에서 균형을 이루게 된다. 이 지점을 경제학에서는 한계비용과 한계수익의 수렴 점, 즉 균형이라고 한다.

경제학에서의 균형은 역동적이다. 중력과 같이 끌어당기는 힘이지 정체 상태로 간주해서는 안 된다. 인류는 중력을 거슬러 산에 오르고 비행기를 띄운다. 하지만 그런 현상이 중력의 존재를 반박하지 못하듯이 채굴기를 돌려 이익을 취하는 업자들의 존재가 채굴비용과 코인 가격의 수렴이라는 균형 이론을 반박하지는 못한다.

중국의 채굴 금지가 암호화폐 가격에 미칠 영향은 균형 이론의 관점에서 살펴볼 필요가 있다. 일단 중국의 전기료는 정책적으로 책정되는 경우가 많은데다 관리가 부실해 전기 절도도 흔하다. 중국의 전기료는 수요 공급의 법칙을 따르지 않는다. 따라서 중국의 채굴 비중이 높을수록 암호화폐 가격의 불확실성이 높아지고 가격은 저평가되는 경향이 생긴다.

중국 채굴업자들이 다른 나라의 채굴업자들보다 헐값에 채굴하고 있다면 그들은 코인을 싼값에 처분해도 막대한 이익을 남긴다. 중국의 전기 가격정책을 남용하는 채굴업들이 소수라면 그들은 전체 시장에 영향을 미치지 않으면서도 초과 이윤을 챙길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들의 비중이 높다면 전체 시장은 변칙적인 중국 채굴업자들의 비용에 맞춰 재편될 수밖에 없다. 중국이라는 규모 때문에 중국에서 발생하는 비정상은 글로벌 시스템에서는 정상으로 귀결된다.

미세먼지 일상화라는 형태로 우리는 ‘중국발 비정상의 정상화’를 일상적으로 체험하고 있다. 결론적으로 말해 중국이 자국의 암호화폐 채굴을 효과적으로 금지해 준다면 암호화폐의 ‘중국발 비정상의 정상화’도 퇴조한다. 암호화폐의 시장가격과 채굴업은 시스템이 의도한 대로 서로가 서로를 견인하며 좀 더 예측 가능한 방향으로 성숙할 것이다.


[돋보기] 마이닝 풀과 중국의 비율

중국의 채굴 금지를 보도하는 언론들은 중국의 비트코인 채굴 비율이 70%에 이른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이는 상당히 과장됐다. 비트코인 채굴의 국가 비율 같은 통계는 없다. 다만 채굴이 몇몇 거대 마이닝 풀들의 과점 체제로 진행되는 것은 사실이다. 언론에서 말하는 채굴 비율은 중국에 근거지를 둔 마이닝 풀들의 채굴 성공 비율을 단순하게 적용한 것이다.

마이닝 풀은 기업이 운영하는 채굴 공장이 아니다. 채굴 업자들은 자신의 컴퓨터로 직접 채굴하는 방식을 꺼린다. 그 대신 유력한 채굴 집단에 해시 값만 전송하는 방식으로 안정적으로 수익을 추구한다. 비트코인 채굴은 확률적이지만 전기료나 채굴 기계의 구입 같은 비용은 꾸준히 지불해야 하기 때문이다.

중국에서 시작된 마이닝 풀들이 일찌감치 과점에 진입했기 때문에 캐나다에서 값싼 수력발전 전기를 이용하는 채굴업자도 중국 마이닝 풀들에 해시를 제공해 보상을 얻는 경우가 흔하다. 업자들은 채굴 기계의 아이피를 바꾸는 단순한 작업으로 마이닝 풀을 교체할 수 있다. 따라서 마이닝 풀이 채굴업자들에게 지배권을 가지고 있다는 발상도 현실과 거리가 멀다. 마이닝 풀의 과점 체제를 놓고 중국의 채굴 비율이나 특정 채굴업자의 시스템 지배력을 언급하는 것은 틀릴 뿐만 아니라 위험하다.


글 = 오태민 마이지놈박스 블록체인 연구소장



[본 기사는 한경비즈니스 제 1220호(2019.04.15 ~ 2019.04.21)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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