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형 항공사 파산·LCC 약진…40년 전 미국 상황과 ‘닮은꼴’ 되나
입력 2019-04-24 19:06:39
수정 2019-04-24 19:06:39
[커버스토리=난기류 속 '항공 빅2']
-규제 완화 이후 신규 항공사 난립, 팬암·이스턴항공 등 줄도산
[한경비즈니스=이정흔 기자] 국내 항공업계를 주도해 온 대한항공과 아시아나항공이 위기를 맞고 있다. 무섭게 성장 중인 저비용 항공사(LCC)는 올해 3곳이 더 늘어났다. 국내 항공업계에 대규모 지각변동이 예고되고 있다.
최근 상황은 40년 전 미국 항공업계의 대격변을 떠올리게 한다. 미국은 1978년 항공 자유화 이후 수많은 항공사들이 탄생하고 사라지는 큰 변화를 겪었다. 이 과정에서 미국의 상징이라고 여겨졌던 거대 항공사들이 역사 속으로 사라지고 새로운 강자가 등장했다. 많은 전문가들이 최근 국내 항공업계의 변화를 두고 40년 전 미국의 항공업계와 유사하다고 말하는 이유다.
◆‘규제 완화’에 초대형 항공사들 파산
1978년 미국의 카터 정부는 ‘정부가 항공 산업에 개입하지 않는다’는 내용을 골자로 한 항공 규제 완화를 추진했다. 1978년 법안이 통과됐고 1980년부터 단계적으로 시행됐다. 결정적인 것은 1983년 규제를 담당해 온 민간항공위원회(CAB)의 폐지였다. CAB는 공공재로서 미국의 항공 산업을 관리하던 기관으로, 미국 항공 업체의 노선과 요금 등 모든 것을 관장했다. CAB 폐지로 미국 항공 산업은 ‘보호’도 ‘장벽’도 모두 다 사라진 것이다.
1978년 전까지만 해도 미국 항공 시장은 팬암항공·트랜스월드항공(TWA)·이스턴항공 등이 주름잡고 있었다. 팬암항공은 20세기 최대 항공사로, 전 지구를 커버하는 노선을 운영할 만큼 압도적인 규모를 자랑했다. CAB의 보호막이 걷히고 자유경쟁이 시작되면서 초대형 항공사들은 ‘달라진 게임의 룰’에 새롭게 적응해야 했다.
1973년 오일쇼크로 어려움을 겪던 초대형 항공사들은 CAB의 ‘항공 가격 제한 정책’이 사라지자 직격탄을 맞아야 했다. 규제 완화 전 미국의 항공사들은 정부에 의해 일정한 항공 요금을 보호받았던 만큼 ‘서비스 경쟁’에만 집중했다. ‘미 항공 산업의 황금기’라고 불리는 이 시기에 항공사들은 보잉747 등 대형 비행기 내에 잘 차려입은 부자 승객들을 위한 럭셔리 라운지를 설치할 정도로 화려함을 추구했다.
하지만 항공 자유화 이후 항공 산업 내 가격경쟁이 심화되기 시작했다. 팬암항공과 같은 초대형 항공사들로서는 최고급 서비스를 유지하기 위해 고가 가격정책이 필요했지만 더 이상 이를 유지할 수 없게 된 것이다. 더욱이 새로운 항공사들이 속속 시장에 진입하며 가격경쟁이 더욱 격화됐다.
초창기에는 ‘항공 요금 가격 인하’와 같은 장점들이 부각됐지만 문제는 갈수록 과열되는 시장 경쟁이었다. 치열한 경쟁 속에서 소비자들의 발길을 사로잡지 못하고 수익을 창출하지 못하는 항공사들이 서서히 파산하기 시작했다. 이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항공사들 간의 인수·합병(M&A)이 진행됐다. 1978년부터 1985년 사이 새롭게 생성된 신규 항공사만 118개였다. 하지만 이후 초과 공급으로 사라진 항공사는 모두 99개에 달했을 정도다.
한때 미국 항공업계 다섯 손가락 안에 들던 팬암항공·이스턴항공·TWA 등 초대형 항공사들도 규제 완화 이후 고전하다가 역사 속으로 사라지는 결과를 맞았다. 미국 국내선 시장의 강자로 군림하던 이스턴항공은 운항 횟수를 절반으로 줄이고 종업원 수도 3만여 명에서 1만5000여 명으로 줄이는 뼈아픈 구조조정을 감행했지만 결국 1991년 도산했다.
글로벌 하늘길을 장악했던 팬암항공은 미국의 대표적인 항공사라는 이미지로 곧잘 테러의 타깃이 됐다. 1988년 영국 스코틀랜드 상공에서의 공중 폭파 사건 등 몇 번의 큰 사고를 거치며 팬암항공은 ‘안전하지 못한 항공사’라는 이미지가 굳어지며 나락으로 떨어지기 시작했다. 재정 상태가 악화되기 시작하면서 팬암항공의 경영진은 아시아·태평양 노선과 유럽 노선 등 주요 항공 노선을 유나이티드항공 등 경쟁사에 팔고 뉴욕 본사 빌딩까지 매각하는 등 안간힘을 썼지만 1991년 파산을 피하지 못했다.
당시까지 가장 오랫동안 운항한 항공사로, ‘미국 항공 산업의 산증인’이라고 일컬어지던 TWA는 규제 완화 전부터 조금씩 적자가 심화되던 상태였다. 이 와중에 규제 완화는 치명타가 됐다. 1984년 기업을 공개시장에 매각하는 등 다양한 자구책을 내놓았지만 재정 상태는 악화 일로를 걸었고 1988년 이후 수익을 내 본 적이 한 번도 없을 만큼 적자에 시달리다가 2001년 아메리칸항공에 인수되며 오랜 역사의 막을 내렸다.
◆ 오픈 스카이 정책, 항공사들 ‘동맹’ 강화
이와 함께 1990년 이후 전 세계적으로 확대되기 시작한 항공 노선 개방(오픈 스카이) 정책도 큰 변화를 가져오는 요인이 됐다. ‘오픈 스카이’는 1992년 미국 교통부 장관이었던 앤드루 카드에 의해 처음 등장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기본적으로 자유로운 시장 경쟁을 통한 항공 산업 생태계를 만드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국가 양자 간 혹은 다자간 협정 형식으로 체결하는데 오픈 스카이 협정이 체결되면 해당 국가의 모든 지역을 자유롭게 운항할 수 있고 운항 노선·횟수, 운항 기종 등에 대한 규제도 모두 폐지된다.
오픈 스카이 개방정책 결과 글로벌 항공 시장은 ‘무한 경쟁’ 세계로 접어들었다. 수익성이 좋은 노선에는 미국뿐만 아니라 전 세계 시장에서 여러 항공사들이 몰려들기 시작했다. 규제 완화 이후 이미 미국의 항공사들은 ‘가격정책’과 스튜어디스를 비롯한 임직원들의 ‘생산성 강화’를 경영 성과를 높이기 위한 핵심 전략으로 강조하고 있었다. 이와 같은 상황에서 전 세계의 주요 노선을 모두 커버하기 위해서는 ‘규모의 경제’가 절대적으로 강조될 수밖에 없었다. 당시 미국뿐만 아니라 전 세계적으로 항공사들 간의 M&A가 증가한 배경이다.
미국은 1978년 규제 완화 이후 항공사들 간의 M&A가 지속되고 있었다. 2008년 미국 델타항공이 라이벌이었던 노스웨스트항공을 사들인 것이 대표적인 예다. 2010년에는 미국 콘티넨털항공과 유나이티드항공이 합병해 세계 최대 민간 항공사가 됐다.
유럽은 1987년부터 1997년까지 4단계에 걸쳐 항공 자유화를 진행했는데, 이후 유럽 내 항공사들 간의 M&A를 통한 업계 재편이 본격화됐다. 2003년 프랑스 에어프랑스와 네덜란드 KLM이 합병하며 유럽 최대 항공사인 ‘에어프랑스-KLM그룹’으로 재탄생했다. 유럽 2위 항공사인 독일의 루프트한자는 2008년 오스트리아 국영 항공사인 오스트리아항공의 지분을 인수한 데 이어 2009년 브뤼셀항공과 영국 브리티시미들랜드항공을 인수하며 몸집을 불렸다.
미국·유럽 외의 항공사들도 M&A 대열에 동참했다. 라틴아메리카 최대 항공사인 란에어는 2010년 브라질의 탐항공을 인수했다. 아시아에선 2009년 중국 3위 항공사였던 둥팡항공이 상하이항공을 인수해 2위 항공사로 부상했다.
글로벌 항공사들은 한편으로 ‘덩치 키우기’에 몰두하며 다른 한편으로는 다른 항공사들과의 ‘연합’을 구축하고 확대하는데 심혈을 기울였다. 세계 최대 규모 항공 동맹체인 ‘스타얼라이언스’와 ‘스카이팀’ 등이 탄생한 것도 이즈음이다. 1997년 창설된 스타얼라이언스는 국내 항공사인 아시아나항공이 속해 있고 대한항공은 2000년 델타항공·에어프랑스 등과 함께 스카이팀 창설을 주도했다. 이 밖에 1999년 아메리칸항공의 주도 아래 창설된 항공 동맹체 ‘원월드’가 현재 세계 3대 항공 동맹체로 일컬어진다.
무엇보다 ‘항공 동맹’ 체제는 특히 당시 글로벌 항공사들의 항공 노선을 구성하는 주요 형태였던 ‘허브 앤드 스포크(hub and spoke)’ 전략과도 딱 들어맞았다.
‘허브 앤드 스포크’는 각 나라 혹은 지역의 대표 도시(공항)만 메인 거점으로 운항하고 그 메인 거점 공항을 중심으로 다시 운항 노선을 구성하는 방식을 말한다. 허브 공항을 중심으로 자전거 바큇살처럼 펼쳐진 모양이라고 해서 허브 앤드 스포크 형태라고 부른다. 쉽게 말해 대형 비행기로 많은 승객을 한 번에 허브 공항으로 수송한 뒤 서브 공항으로 환승하는 시스템으로 이해할 수 있다.
고유가와 항공사들 간의 가격경쟁 등으로 고민이 깊어지던 글로벌 항공사들로서는 항공 운항 요금을 적정 수준에서 유지하면서도 가장 효율적으로 생산성을 높일 수 있는 전략이었던 셈이다.
◆ 글로벌 LCC의 부상…새 강자 등극
이처럼 항공업계가 변화하는 틈바구니를 비집고 새롭게 부상하고 있는 이들이 글로벌 저비용 항공사(LCC)들이다. 글로벌 항공업계 LCC의 부상은 소비자들의 항공사 이용 패턴의 변화와 맥을 같이한다. 항공 소비자들은 더 이상 ‘높은 가격’을 지불하고 좋은 서비스를 추구하지 않는다. 서비스의 질에 대한 기대를 낮추더라도 ‘낮은 가격’으로 효율성을 추구하는 이들이 늘고 있다.
이와 함께 LCC 항공사들의 ‘포인트 투 포인트’ 항공 노선 전략도 대형 항공사들과 비교해 LCC들의 경쟁력으로 부각되고 있다. ‘포인트 투 포인트’는 글로벌 대형 항공사들의 ‘허브 앤드 스포크’ 형태 운항 노선과 대비되는 전략으로, 지역과 지역을 직접 연결하는 방식을 말한다. 환승 없이 공항과 공항을 직접 연결한다. 이와 같은 트렌드의 변화는 ‘2018 공항 산업 연결성 보고서’에도 잘 나타난다. 이에 따르면 지난 10년간 유럽의 주요 공항이 36.5% 성장할 때 서브 공항의 성장률은 74%에 달했다.
이와 같은 변화를 뒷받침한 것이 보잉에서 개발한 B787과 같은 ‘고연비 중형기’의 발달이다. LCC들이 소형기뿐만 아니라 중형기를 속속 도입하며 단거리 노선에서 벗어나 중장거리 노선까지 진출할 수 있는 발판을 마련한 것이다.
이와 같은 트렌드의 변화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것이 지난 3월 에어버스의 A380 단종 결정이다. 기존 대형 항공사들의 ‘허브 앤드 스포크’ 전략 아래에서는 에어버스의 A380과 같은 초대형 여객기가 필요하다. 한 번에 500명의 탑승이 가능해 세계 최대 여객기로 불렸던 A380은 최근 항공 산업의 트렌드의 변화 속에서 글로벌 항공사들의 연이은 주문 취소로 결국 지난 3월 단종을 결정했다.
글로벌 LCC들의 약진 속에 대표적인 성공 모델로 일컬어지는 항공사는 사우스웨스트항공(SWA)이다. SWA는 1971년 세계시장에 처음 저가 항공을 띄운 곳이다. 1978년 규제 완화법 도입 당시만 해도 그저 소형사로 미국 항공 시장에서 존재감이 크지 않았다. 하지만 이후 LCC 시장을 새롭게 개척, 글로벌 항공 시장의 변화와 성장을 이끌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SWA는 글로벌 대형 항공사들이 동맹을 강화해 가는 와중에도 꾸준히 지방 공항들의 직항 노선을 중심으로 한 ‘포인트 투 포인트’를 핵심 전략으로 고수했다. 지정 좌석제 없이 선착순 좌석제를 도입하고 항공기 자판기를 통해 발권할 수 있도록 시스템을 구비했으며 수하물과 기내식 서비스를 철회했다. 승객들의 탑승 또한 15분 내에 완료하도록 제한했다.
이처럼 승객 서비스를 제한적으로 제공하며 항공 요금을 낮추면서도 동시에 승객에게 ‘재미를 주는 항공사’로 이미지를 구축하는 데 힘썼다. 기내 안전수칙을 랩으로 방송하거나 천편일률적 기장의 안내 방송 대신 “담배를 피우실 때는 언제든 날개 위의 테라스를 이용하라”는 식의 유머 코드를 섞어 화제가 됐다. 기내식은 간단한 스낵류로 대체했다.
이와 같은 전략 덕분에 SWA는 1990년대 대형 항공사들이 도산하는 와중에도 흑자를 낼 만큼 높은 실적을 거둘 수 있었다. 같은 시기 고유가로 미국적 6대 항공사들이 60억 달러의 적자를 본 것과는 대조되는 성과다. 현재는 세계 최대의 LCC 항공사로 글로벌 대형 항공사들의 가장 강력한 경쟁자로 손꼽히고 있다.
vivajh@hankyung.com
[난기류 속 '항공 빅2' 커버스토리 기사 인덱스]
-항공업 세대교체…미래 건 ‘베팅’이 시작됐다
-‘기장’ 바뀐 대한항공, 경영권 안정이 최우선 과제
-결국 새 주인에게 팔리는 아시아나항공…예상 가격 ‘1조원’
-양대 항공사 체제 무너뜨린 ‘LCC 파워’
-대형 항공사 파산·LCC 약진…40년 전 미국 상황과 ‘닮은꼴’ 되나
-한눈에 보는 항공업
-공사 인수해 대한항공 ‘첫발, 1990년대 항공업 ‘전성기’
[본 기사는 한경비즈니스 제 1221호(2019.04.22 ~ 2019.04.28) 기사입니다.]
-규제 완화 이후 신규 항공사 난립, 팬암·이스턴항공 등 줄도산
[한경비즈니스=이정흔 기자] 국내 항공업계를 주도해 온 대한항공과 아시아나항공이 위기를 맞고 있다. 무섭게 성장 중인 저비용 항공사(LCC)는 올해 3곳이 더 늘어났다. 국내 항공업계에 대규모 지각변동이 예고되고 있다.
최근 상황은 40년 전 미국 항공업계의 대격변을 떠올리게 한다. 미국은 1978년 항공 자유화 이후 수많은 항공사들이 탄생하고 사라지는 큰 변화를 겪었다. 이 과정에서 미국의 상징이라고 여겨졌던 거대 항공사들이 역사 속으로 사라지고 새로운 강자가 등장했다. 많은 전문가들이 최근 국내 항공업계의 변화를 두고 40년 전 미국의 항공업계와 유사하다고 말하는 이유다.
◆‘규제 완화’에 초대형 항공사들 파산
1978년 미국의 카터 정부는 ‘정부가 항공 산업에 개입하지 않는다’는 내용을 골자로 한 항공 규제 완화를 추진했다. 1978년 법안이 통과됐고 1980년부터 단계적으로 시행됐다. 결정적인 것은 1983년 규제를 담당해 온 민간항공위원회(CAB)의 폐지였다. CAB는 공공재로서 미국의 항공 산업을 관리하던 기관으로, 미국 항공 업체의 노선과 요금 등 모든 것을 관장했다. CAB 폐지로 미국 항공 산업은 ‘보호’도 ‘장벽’도 모두 다 사라진 것이다.
1978년 전까지만 해도 미국 항공 시장은 팬암항공·트랜스월드항공(TWA)·이스턴항공 등이 주름잡고 있었다. 팬암항공은 20세기 최대 항공사로, 전 지구를 커버하는 노선을 운영할 만큼 압도적인 규모를 자랑했다. CAB의 보호막이 걷히고 자유경쟁이 시작되면서 초대형 항공사들은 ‘달라진 게임의 룰’에 새롭게 적응해야 했다.
1973년 오일쇼크로 어려움을 겪던 초대형 항공사들은 CAB의 ‘항공 가격 제한 정책’이 사라지자 직격탄을 맞아야 했다. 규제 완화 전 미국의 항공사들은 정부에 의해 일정한 항공 요금을 보호받았던 만큼 ‘서비스 경쟁’에만 집중했다. ‘미 항공 산업의 황금기’라고 불리는 이 시기에 항공사들은 보잉747 등 대형 비행기 내에 잘 차려입은 부자 승객들을 위한 럭셔리 라운지를 설치할 정도로 화려함을 추구했다.
하지만 항공 자유화 이후 항공 산업 내 가격경쟁이 심화되기 시작했다. 팬암항공과 같은 초대형 항공사들로서는 최고급 서비스를 유지하기 위해 고가 가격정책이 필요했지만 더 이상 이를 유지할 수 없게 된 것이다. 더욱이 새로운 항공사들이 속속 시장에 진입하며 가격경쟁이 더욱 격화됐다.
초창기에는 ‘항공 요금 가격 인하’와 같은 장점들이 부각됐지만 문제는 갈수록 과열되는 시장 경쟁이었다. 치열한 경쟁 속에서 소비자들의 발길을 사로잡지 못하고 수익을 창출하지 못하는 항공사들이 서서히 파산하기 시작했다. 이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항공사들 간의 인수·합병(M&A)이 진행됐다. 1978년부터 1985년 사이 새롭게 생성된 신규 항공사만 118개였다. 하지만 이후 초과 공급으로 사라진 항공사는 모두 99개에 달했을 정도다.
한때 미국 항공업계 다섯 손가락 안에 들던 팬암항공·이스턴항공·TWA 등 초대형 항공사들도 규제 완화 이후 고전하다가 역사 속으로 사라지는 결과를 맞았다. 미국 국내선 시장의 강자로 군림하던 이스턴항공은 운항 횟수를 절반으로 줄이고 종업원 수도 3만여 명에서 1만5000여 명으로 줄이는 뼈아픈 구조조정을 감행했지만 결국 1991년 도산했다.
글로벌 하늘길을 장악했던 팬암항공은 미국의 대표적인 항공사라는 이미지로 곧잘 테러의 타깃이 됐다. 1988년 영국 스코틀랜드 상공에서의 공중 폭파 사건 등 몇 번의 큰 사고를 거치며 팬암항공은 ‘안전하지 못한 항공사’라는 이미지가 굳어지며 나락으로 떨어지기 시작했다. 재정 상태가 악화되기 시작하면서 팬암항공의 경영진은 아시아·태평양 노선과 유럽 노선 등 주요 항공 노선을 유나이티드항공 등 경쟁사에 팔고 뉴욕 본사 빌딩까지 매각하는 등 안간힘을 썼지만 1991년 파산을 피하지 못했다.
당시까지 가장 오랫동안 운항한 항공사로, ‘미국 항공 산업의 산증인’이라고 일컬어지던 TWA는 규제 완화 전부터 조금씩 적자가 심화되던 상태였다. 이 와중에 규제 완화는 치명타가 됐다. 1984년 기업을 공개시장에 매각하는 등 다양한 자구책을 내놓았지만 재정 상태는 악화 일로를 걸었고 1988년 이후 수익을 내 본 적이 한 번도 없을 만큼 적자에 시달리다가 2001년 아메리칸항공에 인수되며 오랜 역사의 막을 내렸다.
◆ 오픈 스카이 정책, 항공사들 ‘동맹’ 강화
이와 함께 1990년 이후 전 세계적으로 확대되기 시작한 항공 노선 개방(오픈 스카이) 정책도 큰 변화를 가져오는 요인이 됐다. ‘오픈 스카이’는 1992년 미국 교통부 장관이었던 앤드루 카드에 의해 처음 등장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기본적으로 자유로운 시장 경쟁을 통한 항공 산업 생태계를 만드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국가 양자 간 혹은 다자간 협정 형식으로 체결하는데 오픈 스카이 협정이 체결되면 해당 국가의 모든 지역을 자유롭게 운항할 수 있고 운항 노선·횟수, 운항 기종 등에 대한 규제도 모두 폐지된다.
오픈 스카이 개방정책 결과 글로벌 항공 시장은 ‘무한 경쟁’ 세계로 접어들었다. 수익성이 좋은 노선에는 미국뿐만 아니라 전 세계 시장에서 여러 항공사들이 몰려들기 시작했다. 규제 완화 이후 이미 미국의 항공사들은 ‘가격정책’과 스튜어디스를 비롯한 임직원들의 ‘생산성 강화’를 경영 성과를 높이기 위한 핵심 전략으로 강조하고 있었다. 이와 같은 상황에서 전 세계의 주요 노선을 모두 커버하기 위해서는 ‘규모의 경제’가 절대적으로 강조될 수밖에 없었다. 당시 미국뿐만 아니라 전 세계적으로 항공사들 간의 M&A가 증가한 배경이다.
미국은 1978년 규제 완화 이후 항공사들 간의 M&A가 지속되고 있었다. 2008년 미국 델타항공이 라이벌이었던 노스웨스트항공을 사들인 것이 대표적인 예다. 2010년에는 미국 콘티넨털항공과 유나이티드항공이 합병해 세계 최대 민간 항공사가 됐다.
유럽은 1987년부터 1997년까지 4단계에 걸쳐 항공 자유화를 진행했는데, 이후 유럽 내 항공사들 간의 M&A를 통한 업계 재편이 본격화됐다. 2003년 프랑스 에어프랑스와 네덜란드 KLM이 합병하며 유럽 최대 항공사인 ‘에어프랑스-KLM그룹’으로 재탄생했다. 유럽 2위 항공사인 독일의 루프트한자는 2008년 오스트리아 국영 항공사인 오스트리아항공의 지분을 인수한 데 이어 2009년 브뤼셀항공과 영국 브리티시미들랜드항공을 인수하며 몸집을 불렸다.
미국·유럽 외의 항공사들도 M&A 대열에 동참했다. 라틴아메리카 최대 항공사인 란에어는 2010년 브라질의 탐항공을 인수했다. 아시아에선 2009년 중국 3위 항공사였던 둥팡항공이 상하이항공을 인수해 2위 항공사로 부상했다.
글로벌 항공사들은 한편으로 ‘덩치 키우기’에 몰두하며 다른 한편으로는 다른 항공사들과의 ‘연합’을 구축하고 확대하는데 심혈을 기울였다. 세계 최대 규모 항공 동맹체인 ‘스타얼라이언스’와 ‘스카이팀’ 등이 탄생한 것도 이즈음이다. 1997년 창설된 스타얼라이언스는 국내 항공사인 아시아나항공이 속해 있고 대한항공은 2000년 델타항공·에어프랑스 등과 함께 스카이팀 창설을 주도했다. 이 밖에 1999년 아메리칸항공의 주도 아래 창설된 항공 동맹체 ‘원월드’가 현재 세계 3대 항공 동맹체로 일컬어진다.
무엇보다 ‘항공 동맹’ 체제는 특히 당시 글로벌 항공사들의 항공 노선을 구성하는 주요 형태였던 ‘허브 앤드 스포크(hub and spoke)’ 전략과도 딱 들어맞았다.
‘허브 앤드 스포크’는 각 나라 혹은 지역의 대표 도시(공항)만 메인 거점으로 운항하고 그 메인 거점 공항을 중심으로 다시 운항 노선을 구성하는 방식을 말한다. 허브 공항을 중심으로 자전거 바큇살처럼 펼쳐진 모양이라고 해서 허브 앤드 스포크 형태라고 부른다. 쉽게 말해 대형 비행기로 많은 승객을 한 번에 허브 공항으로 수송한 뒤 서브 공항으로 환승하는 시스템으로 이해할 수 있다.
고유가와 항공사들 간의 가격경쟁 등으로 고민이 깊어지던 글로벌 항공사들로서는 항공 운항 요금을 적정 수준에서 유지하면서도 가장 효율적으로 생산성을 높일 수 있는 전략이었던 셈이다.
◆ 글로벌 LCC의 부상…새 강자 등극
이처럼 항공업계가 변화하는 틈바구니를 비집고 새롭게 부상하고 있는 이들이 글로벌 저비용 항공사(LCC)들이다. 글로벌 항공업계 LCC의 부상은 소비자들의 항공사 이용 패턴의 변화와 맥을 같이한다. 항공 소비자들은 더 이상 ‘높은 가격’을 지불하고 좋은 서비스를 추구하지 않는다. 서비스의 질에 대한 기대를 낮추더라도 ‘낮은 가격’으로 효율성을 추구하는 이들이 늘고 있다.
이와 함께 LCC 항공사들의 ‘포인트 투 포인트’ 항공 노선 전략도 대형 항공사들과 비교해 LCC들의 경쟁력으로 부각되고 있다. ‘포인트 투 포인트’는 글로벌 대형 항공사들의 ‘허브 앤드 스포크’ 형태 운항 노선과 대비되는 전략으로, 지역과 지역을 직접 연결하는 방식을 말한다. 환승 없이 공항과 공항을 직접 연결한다. 이와 같은 트렌드의 변화는 ‘2018 공항 산업 연결성 보고서’에도 잘 나타난다. 이에 따르면 지난 10년간 유럽의 주요 공항이 36.5% 성장할 때 서브 공항의 성장률은 74%에 달했다.
이와 같은 변화를 뒷받침한 것이 보잉에서 개발한 B787과 같은 ‘고연비 중형기’의 발달이다. LCC들이 소형기뿐만 아니라 중형기를 속속 도입하며 단거리 노선에서 벗어나 중장거리 노선까지 진출할 수 있는 발판을 마련한 것이다.
이와 같은 트렌드의 변화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것이 지난 3월 에어버스의 A380 단종 결정이다. 기존 대형 항공사들의 ‘허브 앤드 스포크’ 전략 아래에서는 에어버스의 A380과 같은 초대형 여객기가 필요하다. 한 번에 500명의 탑승이 가능해 세계 최대 여객기로 불렸던 A380은 최근 항공 산업의 트렌드의 변화 속에서 글로벌 항공사들의 연이은 주문 취소로 결국 지난 3월 단종을 결정했다.
글로벌 LCC들의 약진 속에 대표적인 성공 모델로 일컬어지는 항공사는 사우스웨스트항공(SWA)이다. SWA는 1971년 세계시장에 처음 저가 항공을 띄운 곳이다. 1978년 규제 완화법 도입 당시만 해도 그저 소형사로 미국 항공 시장에서 존재감이 크지 않았다. 하지만 이후 LCC 시장을 새롭게 개척, 글로벌 항공 시장의 변화와 성장을 이끌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SWA는 글로벌 대형 항공사들이 동맹을 강화해 가는 와중에도 꾸준히 지방 공항들의 직항 노선을 중심으로 한 ‘포인트 투 포인트’를 핵심 전략으로 고수했다. 지정 좌석제 없이 선착순 좌석제를 도입하고 항공기 자판기를 통해 발권할 수 있도록 시스템을 구비했으며 수하물과 기내식 서비스를 철회했다. 승객들의 탑승 또한 15분 내에 완료하도록 제한했다.
이처럼 승객 서비스를 제한적으로 제공하며 항공 요금을 낮추면서도 동시에 승객에게 ‘재미를 주는 항공사’로 이미지를 구축하는 데 힘썼다. 기내 안전수칙을 랩으로 방송하거나 천편일률적 기장의 안내 방송 대신 “담배를 피우실 때는 언제든 날개 위의 테라스를 이용하라”는 식의 유머 코드를 섞어 화제가 됐다. 기내식은 간단한 스낵류로 대체했다.
이와 같은 전략 덕분에 SWA는 1990년대 대형 항공사들이 도산하는 와중에도 흑자를 낼 만큼 높은 실적을 거둘 수 있었다. 같은 시기 고유가로 미국적 6대 항공사들이 60억 달러의 적자를 본 것과는 대조되는 성과다. 현재는 세계 최대의 LCC 항공사로 글로벌 대형 항공사들의 가장 강력한 경쟁자로 손꼽히고 있다.
vivajh@hankyung.com
[난기류 속 '항공 빅2' 커버스토리 기사 인덱스]
-항공업 세대교체…미래 건 ‘베팅’이 시작됐다
-‘기장’ 바뀐 대한항공, 경영권 안정이 최우선 과제
-결국 새 주인에게 팔리는 아시아나항공…예상 가격 ‘1조원’
-양대 항공사 체제 무너뜨린 ‘LCC 파워’
-대형 항공사 파산·LCC 약진…40년 전 미국 상황과 ‘닮은꼴’ 되나
-한눈에 보는 항공업
-공사 인수해 대한항공 ‘첫발, 1990년대 항공업 ‘전성기’
[본 기사는 한경비즈니스 제 1221호(2019.04.22 ~ 2019.04.28)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