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이브리드의 힘’…‘34세’ 그랜저를 왕좌에 올리다

- 전년 대비 45.56% 판매 증가
- 넥쏘 개발 김세훈 현대차 상무도 '엄지 척'



[한경비즈니스=차완용 기자] 아반떼(1985년)와 쏘나타(1985년)에 이은 현대자동차의 셋째 장수 모델 ‘그랜저(1986년)’의 질주가 무섭다. 흔히 요즘 젊은 세대 말로 ‘역주행’ 중이다.

그랜저는 지난 4월에만 1만135대(국내 판매 집계)가 팔리며 형들 쏘나타(8836대)와 아반떼(5774대)를 멀찌감치 따돌렸다. 승용·스포츠유틸리티차량(SUV)·친환경 부문 모든 모델이 그랜저보다 판매량이 밑이다.

이런 추세가 벌써 6개월 연속이다. 그랜저는 지난해 11월부터 올해 4월까지 6개월 연속으로 국내 자동차 시장에서 베스트 셀링카를 차지하고 있다. 그런데 엄밀히 말해 순수한 그랜저의 힘만은 아니다. 친환경이라는 라인업이 힘을 보태고 있다. 바로 2017년 출시한 ‘그랜저 하이브리드’다.

◆ 올해 1~4월에만 하이브리드 1만534대 팔려



사람 나이로 34세를 맞은 6세대(2016년 11월~현재) 그랜저(IG)가 SUV 시장 성장과 모델 노후화라는 악재를 딛고 내수 시장 1위를 질주하고 있다. 기존 내연기관차 모델이 주춤한 가운데 그랜저 하이브리드(2017년 3월~현재)가 이를 대체하며 판매를 견인하는 중이다.

지금 추세라면 3년 연속 국산차 판매 1위 자리를 노려볼 만하다는 관측이 나온다. 그랜저는 6세대인 IG 출시 이후 2017년, 2018년 2년 연속 베스트 셀링 모델 자리를 놓치지 않고 있다.

2017년에는 연간 13만2080대가 판매돼 월평균 판매량이 1만1007대에 달했다. 올해도 1~4월 판매량이 내수 시장 1위인 3만8463대, 월평균 판매량은 지난해보다 늘어난 9600여 대 수준이다.

그랜저의 질주는 다른 승용차와 비교하면 더욱 도드라진다. 현대차 승용차 제품군 중 올해 신차를 내놓은 쏘나타를 제외하면 나머지 승용차 판매는 모두 작년보다 감소했다.

친환경 브랜드 아이오닉이 66%로 가장 큰 감소 폭을 나타냈고 i30(-48.8%)·i40(-35.8%)·엑센트(-20.6%)·벨로스터(-11.8%)·아반떼(-6.6%)까지 줄줄이 마이너스 성장세를 기록했다. 그 결과 현대차의 지난 4월까지 승용차 판매는 전체 3.4% 줄었다.

반면 SUV 제품군의 판매는 37.8% 증가했다. 투싼이 올 들어 4월까지 18.6% 늘었고 수소연료전기차 넥쏘는 879%나 폭증했다. 작년 말 출시한 신차 팰리세이드는 수치 비교가 힘들지만 2만4632대가 팔리며 SUV 판매 확대에 힘을 보탰다. 올 들어 팰리세이드의 누적 판매는 SUV 제품군 중 싼타페에 이어 둘째로 높다.

그랜저는 이처럼 SUV 강세가 이어지고 있는 가운데 하이브리드를 앞세워 입지를 다지고 있다. 실제 그랜저 내연기관차의 올해 누계 판매 실적은 2만7929대로, 작년 같은 기간보다 12.31% 감소했다.

하지만 같은 기간 하이브리드는 45.56% 급증한 1만534대를 기록하며 내연기관차 감소세를 채웠다. 이에 따라 전체 판매에서 하이브리드가 차지하는 비율은 작년 18.52%에서 올해 27.39%로 증가했다.

현대차 그랜저는 이미 작년까지 2년 연속 국산차업계를 통틀어 판매 1위를 기록했던 차종이다. 작년 그랜저의 자리를 위협했던 싼타페와 격차는 올해 9449대로 벌려 놓아 여유로운 상황이다. 올해 기준 월평균 판매량 역시 그랜저가 9615대로, 7254대를 기록 중인 싼타페와 2000여 대나 차이가 난다.

그랜저 하이브리드가 인기를 끄는 가장 큰 이유는 연료 효율이다. 이 차는 준대형 세단임에도 불구하고 공인 복합 연비가 리터당 16.2km다. 경차인 모닝(리터당 15.4km)보다 효율이 더 뛰어난 셈이다. 여기에 그랜저 가솔린 모델에 버금가는 다이내믹한 주행 성능, 하이브리드답지 않은 공간 활용성이 인기 요인으로 꼽힌다.

◆ 연료·디자인·공간을 잡았다

실제로 차도 정말 잘 만들었다. 현대차그룹에서 수소차 개발을 담당하고 있는 김세훈 연료전지사업부장(상무)이 그랜저 하이브리드 칭찬을 입에 달고 다닐 정도다.

1년여 전 김 상무와 수소차 넥쏘에 대한 개발 인터뷰를 진행했을 당시에도 그랜저 하이브리드 칭찬을 빼놓지 않았다. 김 상무는 “그랜저 하이브리드 차는 정말 완성도가 높은 차”라면서 “지금까지 타 본 차 중 가장 훌륭한 차”라고 말했다. 김 상무는 여기에 덧붙여 본인의 차량이 그랜저 하이브리드라고 덧붙이기도 했다.

그랜저 하이브리드는 내연기관차와 비교해 어느 것 하나 빠지는 게 없다. 외관상으로도 첫눈에 가솔린·디젤 그랜저와 구별하기 힘들다. 하이브리드 공력 휠 외에는 외모가 가솔린 모델과 같기 때문이다.

현대차가 그랜저 하이브리드를 개발할 때 ‘가솔린 모델과 디자인 차이가 없었으면 좋겠다’는 소비자 의견을 적극 반영한 결과다.

전장×전폭×전고는 4930×1865×1470mm이고 실내 공간을 결정하는 휠베이스는 2845mm다. 기존 모델보다 보닛에 굴곡을 줘 입체감을 강조했다. 길어진 보닛과 날렵해진 헤드램프가 어우러진 앞모습은 먹이를 향해 돌진하는 맹수처럼 저돌적이다.

측면부는 앞으로 내리꽂는 쐐기형 라인 대신 갈매기 날개를 닮은 우아한 곡선의 캐릭터 라인으로 볼륨감을 살렸다. 후면부는 기존 그랜저 유전자를 물려받았다. 가로로 연결된 리어램프는 안정감과 함께 차체를 더 넓게 보이게 해준다.

내장도 하이브리드 전용 클러스터를 제외하면 사실상 그랜저와 같다. 다만 친환경 이미지를 살리기 위해 도어트림 가니시에 세계 최초로 코르크나무에서 채취한 리얼우드를 적용했다. 그랜저 모델과 거의 같은 외모는 장점이자 단점이 될 수 있다.

하이브리드차에 아직 거부감이 있는 소비자들을 끌어들일 수 있지만 반대로 ‘친환경’을 강조하고 싶은 소비자들의 구매 욕구를 감소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 트렁크 공간은 하이브리드 모델 같지 않다.

배터리를 트렁크 하단 스페어타이어 공간으로 이동해 적재 능력을 높였기 때문이다. 트렁크 용량은 426리터로 골프백 4개, 보스턴백 2개를 넣을 수 있다. 엔진 최고 출력은 159마력, 모터 최고 출력은 38kw, 최대 토크는 21kg·m이다. 복합 연비는 리터당 16.2km로 기존 모델보다 8% 이상 개선됐다.

그뿐만 아니라 판매 가격도 착하다. 내연기관을 단 그랜저와 큰 차이가 나지 않는다. 그랜저 하이브리드는 세제 혜택 시 트림(세부 모델)별로 3580만~3995만원에 구입할 수 있다. 그랜저의 판매 가격은 3105만~4330만원이다.

한편 현대차는 그랜저의 인기가 고공 행진을 보이는데 응답해 당초 내년으로 예정했던 그랜저 페이스리프트(부분 변경) 모델 출시 시점을 올 연말로 앞당길 계획을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현대차는 당초 내년 초 그랜저 페이스리프트 모델을 출시할 계획이었다.

올해는 대형 SUV 팰리세이드 판매에 주력하고 그랜저를 내년 주역으로 내놓기 위해서다. 하지만 지난 4월 홍남기 경제부총리가 올 6월에 끝나는 개별소비세 인하 연장에 대해 긍정적으로 검토하겠다고 밝히면서 출시 시점 조정에 나섰다.

개소세 인하 제도가 올 연말까지 연장되면 내년 초부터 시장이 급속도로 얼어붙어 신차 효과를 끌어내기 어렵기 때문이다. 그랜저 페이스리프트 모델은 현재 모델보다 고급스럽고 첨단 기술을 적용하는 것이 핵심이다. 외관 디자인뿐만 아니라 인테리어에도 큰 변화를 줄 것으로 알려졌다.

cwy@hankyung.com


[본 기사는 한경비즈니스 제 1227호(2019.06.03 ~ 2019.06.09)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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