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트라이트]
-민간 출신 한전 사장들의 잔혹사…요금 현실화 추진하다 정부 압박에 번번이 낙마
[한경비즈니스=안옥희 기자] 김종갑 한국전력공사(이하 한전) 사장이 전기요금 누진제 개편안을 둘러싸고 정부와 마찰을 빚으면서 민간 출신 한전 사장들의 전철을 밟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전임 민간 출신 수장들 역시 정부와 전기요금 문제로 대립각을 세우면서 임기를 채우지 못하고 중도 사퇴한 전례가 있기 때문이다. 17대 김쌍수, 18대 김중겸 한전 사장 얘기다.
◆ 민간 출신 사장들, 전기료 문제로 정부와 충돌
김쌍수 한전 전 사장은 LG전자 부회장 출신으로 2011년 임기 만료를 며칠 앞두고 한전을 떠났다. 전기요금을 현실화하지 못했다는 이유로 주주들로부터 2조8000억원의 손해배상 소송을 당한 것이 사임의 결정적인 배경이었다.
후임인 김중겸 전 사장은 현대건설 사장을 역임한 민간 출신 전문 경영인 최고경영자(CEO)로, 전기요금 현실화를 추진했다가 정부와 충돌한 바 있다.
김중겸 전 사장은 특히 전력을 비싸게 사들여 싸게 파는 시스템을 바꾸기 위해 전력 매입 가격에 영향을 주는 조정계수 산정 방식의 불합리성을 지적하고 그로 인해 한전이 4조4000억원의 손실을 봤다며 전력 시장 운영 기관인 전력거래소와 비용평가위원회를 상대로 손해배상 소송 방침까지 밝혔다.
급기야 당시 주무 부처인 지식경제부(현 산업통상자원부)가 한전에 사실상 ‘경질’ 성격이 짙은 경고 공문을 보내면서 김중겸 전 사장은 결국 임기를 끝마치지 못하고 중도 사퇴하게 됐다.
경영 효율화를 추구하는 민간 기업 출신의 수장들과 공기업 책무를 강조하는 정부 사이에 시각차를 좁히지 못했기 때문에 벌어진 일이었다.
현재 한전을 이끄는 김종갑 사장은 관료와 민간 조직을 두루 경험한 인물이다. 산업부 제1차관을 끝으로 공직 생활을 마무리하고 하이닉스반도체 사장, 효성그룹 사외이사, 한국지멘스 회장을 거쳐 2018년 4월 제20대 한전 사장에 취임했다.
오랜 세월 공직 생활 경험과 국내외 기업을 이끌며 관료와 민간 기업의 경험을 두루 갖췄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하지만 김 사장 역시 현재 전기요금 문제로 골머리를 앓고 있어 역대 민간 출신 수장들처럼 중도 낙마할 가능성이 제기된다.
한전은 서울 서초동 한전아트센터에서 지난 6월 21일 이사회를 열고 민·관 합동 태스크포스(TF)가 제시한 전기요금 개편 최종 권고안을 토대로 심의를 진행했지만 결론을 내지 못했다.
한전 이사회가 이 안건을 두고 의결을 보류하면서 추가적인 논의가 필요하다는 결론을 내린 것이다. 이사회는 김 사장을 포함한 상임이사 7명과 김태유 의장(서울대 공과대학 명예교수), 최승국 태양과바람에너지협동조합 이사 등 비상임이사 8명으로 구성돼 있다.
정부 지분이 51%가 넘는 전력 공기업의 이사회가 정부에 반기를 든 배경은 정책 추진에 따른 재무 건전성 악화가 불 보듯 뻔한 상황에서 정부가 손실을 보전할 구체적이고 장기적인 대책을 제시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사회는 집행부와 정부 측에 한전의 손실을 최소화할 수 있는 안을 내라고 요구한 것으로 알려졌다. 앞서 박찬기 산업부 전력시장과장은 올해 6월 TF가 주최한 토론회 등을 통해 “소요 재원 일부를 재정으로 지원하는 방안을 검토하겠다”고 여러 차례 밝혔지만 구체적인 안은 아직 제시하지 않은 상태다.
이 같은 상황에서 정부 정책에 따른 3000억원의 비용을 상장 공기업이 오롯이 떠안게 되는 것은 배임이라는 소액주주들의 반발이 이사회 보류 결정에 영향을 준 것으로 분석된다.
소액주주들은 한전이 눈덩이 적자에 대규모 비용이 필요한 한전공대 설립까지 밀어붙이자 집단행동에 돌입, 본사 앞에서 규탄 집회를 열며 한전을 압박하고 있다.
이들의 집단행동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소액주주들은 2011년 “전기요금을 올리지 못하게 해 손해를 봤다”며 국가와 한전 사장을 상대로 7조원대의 손해배상 청구 소송을 냈지만 패소했다.
◆ 전기료 할인, 한전에 연 3000억 적자 폭탄
한전은 2018년 12월부터 산업부와 함께 ‘전기요금 누진제 TF’를 꾸리고 전기요금 누진제 개선안을 논의해 왔다. 최근 민·관 합동 전기요금 누진제 TF가 3가지 개편안 가운데 여름철 누진 구간을 확장해 한시적으로 전기요금 부담을 줄여주는 안을 최종 권고안으로 내놓았다.
이 권고안을 적용하면 누진 구간 확대를 통해 1629만 가구(2018년 사용량 기준)가 월 1만142원씩 할인받게 된다. 이에 따라 한전이 부담해야 할 비용은 총 2847억원으로 예상된다.
한전은 2년 전만 해도 7조원이 넘는 순이익을 냈지만 2018년 1조원이 넘는 순손실을 내면서 6년 만에 적자 전환됐다. 올해 1분기에도 6000억원이 넘는 사상 최대 분기별 적자를 내는 등 재정 부담이 가중되는 상황이다.
여름철 누진제 완화에 따른 손실까지 한전이 전부 떠안게 된다면 소액주주들은 한전 이사진을 상대로 ‘배임’ 소송까지 불사하겠다는 방침이다. 김 사장은 취임 이후 줄곧 전기요금 현실화를 주장해 왔지만 최대 주주인 정부가 2022년까지 전기요금 인상이 없다고 못 박으면서 물거품이 됐다.
전기요금 문제로 정부·주주와 충돌했던 역대 수장들처럼 공기업이면서 주식회사라는 현실의 벽에 부닥쳤다. 올해 한전의 적자 예상액은 2조4000억원으로 추정된다. 한전 관계자는 “사장 취임 때부터 비상 경영을 선포한 상태여서 예산을 줄일 수 있는 부분을 찾으며 적자 개선을 위해 노력 중”이라고 말했다.
ahnoh05@hankyung.com
[한전 누진제 개편안 ‘진통 끝 통과’ 기사 인덱스]
-‘정부와 주주 사이’ 전기요금 싸움으로 기로에 선 김종갑 사장
-누진제 개편안 수용하고 전기료 인상 카드 꺼낸 한전
-“에너지 복지는 복지정책으로…한전 적자 부담 줄여야”
[본 기사는 한경비즈니스 제 1231호(2019.07.01 ~ 2019.07.07) 기사입니다.]
-민간 출신 한전 사장들의 잔혹사…요금 현실화 추진하다 정부 압박에 번번이 낙마
[한경비즈니스=안옥희 기자] 김종갑 한국전력공사(이하 한전) 사장이 전기요금 누진제 개편안을 둘러싸고 정부와 마찰을 빚으면서 민간 출신 한전 사장들의 전철을 밟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전임 민간 출신 수장들 역시 정부와 전기요금 문제로 대립각을 세우면서 임기를 채우지 못하고 중도 사퇴한 전례가 있기 때문이다. 17대 김쌍수, 18대 김중겸 한전 사장 얘기다.
◆ 민간 출신 사장들, 전기료 문제로 정부와 충돌
김쌍수 한전 전 사장은 LG전자 부회장 출신으로 2011년 임기 만료를 며칠 앞두고 한전을 떠났다. 전기요금을 현실화하지 못했다는 이유로 주주들로부터 2조8000억원의 손해배상 소송을 당한 것이 사임의 결정적인 배경이었다.
후임인 김중겸 전 사장은 현대건설 사장을 역임한 민간 출신 전문 경영인 최고경영자(CEO)로, 전기요금 현실화를 추진했다가 정부와 충돌한 바 있다.
김중겸 전 사장은 특히 전력을 비싸게 사들여 싸게 파는 시스템을 바꾸기 위해 전력 매입 가격에 영향을 주는 조정계수 산정 방식의 불합리성을 지적하고 그로 인해 한전이 4조4000억원의 손실을 봤다며 전력 시장 운영 기관인 전력거래소와 비용평가위원회를 상대로 손해배상 소송 방침까지 밝혔다.
급기야 당시 주무 부처인 지식경제부(현 산업통상자원부)가 한전에 사실상 ‘경질’ 성격이 짙은 경고 공문을 보내면서 김중겸 전 사장은 결국 임기를 끝마치지 못하고 중도 사퇴하게 됐다.
경영 효율화를 추구하는 민간 기업 출신의 수장들과 공기업 책무를 강조하는 정부 사이에 시각차를 좁히지 못했기 때문에 벌어진 일이었다.
현재 한전을 이끄는 김종갑 사장은 관료와 민간 조직을 두루 경험한 인물이다. 산업부 제1차관을 끝으로 공직 생활을 마무리하고 하이닉스반도체 사장, 효성그룹 사외이사, 한국지멘스 회장을 거쳐 2018년 4월 제20대 한전 사장에 취임했다.
오랜 세월 공직 생활 경험과 국내외 기업을 이끌며 관료와 민간 기업의 경험을 두루 갖췄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하지만 김 사장 역시 현재 전기요금 문제로 골머리를 앓고 있어 역대 민간 출신 수장들처럼 중도 낙마할 가능성이 제기된다.
한전은 서울 서초동 한전아트센터에서 지난 6월 21일 이사회를 열고 민·관 합동 태스크포스(TF)가 제시한 전기요금 개편 최종 권고안을 토대로 심의를 진행했지만 결론을 내지 못했다.
한전 이사회가 이 안건을 두고 의결을 보류하면서 추가적인 논의가 필요하다는 결론을 내린 것이다. 이사회는 김 사장을 포함한 상임이사 7명과 김태유 의장(서울대 공과대학 명예교수), 최승국 태양과바람에너지협동조합 이사 등 비상임이사 8명으로 구성돼 있다.
정부 지분이 51%가 넘는 전력 공기업의 이사회가 정부에 반기를 든 배경은 정책 추진에 따른 재무 건전성 악화가 불 보듯 뻔한 상황에서 정부가 손실을 보전할 구체적이고 장기적인 대책을 제시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사회는 집행부와 정부 측에 한전의 손실을 최소화할 수 있는 안을 내라고 요구한 것으로 알려졌다. 앞서 박찬기 산업부 전력시장과장은 올해 6월 TF가 주최한 토론회 등을 통해 “소요 재원 일부를 재정으로 지원하는 방안을 검토하겠다”고 여러 차례 밝혔지만 구체적인 안은 아직 제시하지 않은 상태다.
이 같은 상황에서 정부 정책에 따른 3000억원의 비용을 상장 공기업이 오롯이 떠안게 되는 것은 배임이라는 소액주주들의 반발이 이사회 보류 결정에 영향을 준 것으로 분석된다.
소액주주들은 한전이 눈덩이 적자에 대규모 비용이 필요한 한전공대 설립까지 밀어붙이자 집단행동에 돌입, 본사 앞에서 규탄 집회를 열며 한전을 압박하고 있다.
이들의 집단행동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소액주주들은 2011년 “전기요금을 올리지 못하게 해 손해를 봤다”며 국가와 한전 사장을 상대로 7조원대의 손해배상 청구 소송을 냈지만 패소했다.
◆ 전기료 할인, 한전에 연 3000억 적자 폭탄
한전은 2018년 12월부터 산업부와 함께 ‘전기요금 누진제 TF’를 꾸리고 전기요금 누진제 개선안을 논의해 왔다. 최근 민·관 합동 전기요금 누진제 TF가 3가지 개편안 가운데 여름철 누진 구간을 확장해 한시적으로 전기요금 부담을 줄여주는 안을 최종 권고안으로 내놓았다.
이 권고안을 적용하면 누진 구간 확대를 통해 1629만 가구(2018년 사용량 기준)가 월 1만142원씩 할인받게 된다. 이에 따라 한전이 부담해야 할 비용은 총 2847억원으로 예상된다.
한전은 2년 전만 해도 7조원이 넘는 순이익을 냈지만 2018년 1조원이 넘는 순손실을 내면서 6년 만에 적자 전환됐다. 올해 1분기에도 6000억원이 넘는 사상 최대 분기별 적자를 내는 등 재정 부담이 가중되는 상황이다.
여름철 누진제 완화에 따른 손실까지 한전이 전부 떠안게 된다면 소액주주들은 한전 이사진을 상대로 ‘배임’ 소송까지 불사하겠다는 방침이다. 김 사장은 취임 이후 줄곧 전기요금 현실화를 주장해 왔지만 최대 주주인 정부가 2022년까지 전기요금 인상이 없다고 못 박으면서 물거품이 됐다.
전기요금 문제로 정부·주주와 충돌했던 역대 수장들처럼 공기업이면서 주식회사라는 현실의 벽에 부닥쳤다. 올해 한전의 적자 예상액은 2조4000억원으로 추정된다. 한전 관계자는 “사장 취임 때부터 비상 경영을 선포한 상태여서 예산을 줄일 수 있는 부분을 찾으며 적자 개선을 위해 노력 중”이라고 말했다.
ahnoh05@hankyung.com
[한전 누진제 개편안 ‘진통 끝 통과’ 기사 인덱스]
-‘정부와 주주 사이’ 전기요금 싸움으로 기로에 선 김종갑 사장
-누진제 개편안 수용하고 전기료 인상 카드 꺼낸 한전
-“에너지 복지는 복지정책으로…한전 적자 부담 줄여야”
[본 기사는 한경비즈니스 제 1231호(2019.07.01 ~ 2019.07.07)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