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글라스 회사에 조향사가?…‘3년 만에 4배 성장’ 젠틀몬스터의 성공 비결
입력 2019-07-16 09:25:06
수정 2019-07-16 09:25:06
[트랜드]
- ‘갤러리 같은 쇼룸’ 열고 공간 마케팅 올인
- ‘힙한 브랜드’ 명성 쌓이자 해외서 러브콜 쏟아져
[한경비즈니스=김영은 기자] 아무도 가지 않았던 길을 개척했다. 국내 토종 아이 웨어 브랜드로 시작한 아이아이컴바인드의 젠틀몬스터는 해외 법인 6개를 거느린 글로벌 브랜드로 성장했고 오프라인 공간으로 브랜드 가치와 철학을 전하는 ‘공간 마케팅’ 선구자로 떠올랐다.
독창적인 디자인과 철저한 브랜딩으로 글로벌 럭셔리 그룹인 루이비통 모에헤네시(LVMH)로부터 투자까지 이끌어 냈다.
2015년 573억원이었던 이 회사의 매출액은 2018년 2264억원으로 늘어났다. 2011년 5명으로 시작한 회사는 이제 전 세계 400여 명의 직원이 속한 기업이 됐다.
설립 8년 만에 글로벌 패션계와 소비자들 사이에서는 ‘힙’한 브랜드로, 다른 업계에서는 성공한 마케팅 전략의 대명사로 떠오른 젠틀몬스터의 브랜드 가치와 철학은 무엇일까.
토종 브랜드가 성공하기 어려운 패션업계에서 괴물 같은 존재감을 내뿜는 젠틀몬스터의 전략을 분석했다.
◆ 1. 미쳤다는 소리를 들어라
젠틀몬스터가 사업 초기부터 주목받았던 이유는 바로 독특한 공간 마케팅에 있다. 젠틀몬스터는 단순히 오프라인 매장을 깔끔하고 예쁘게 꾸미거나 사람들에게 선글라스와 안경 브랜드라는 이미지를 내세우지 않았다.
패브리커 등 다양한 디자인 그룹과 협업해 현대미술처럼 깊은 스토리텔링을 가진 하나의 예술을 펼쳤다. 지금은 오프라인 공간에서 제품을 파는 대신 경험과 가치를 제공하는 일이 흔해졌지만 2014년에는 상업 공간의 새로운 방향을 제시했다는 평을 받았다.
그 시작은 홍대 쇼룸에서 펼쳐진 ‘퀀텀 프로젝트’였다. 쇼룸이었지만 1층에 제품을 하나도 진열하지 않았다. 1층의 역할은 ‘매력적인’ 공간이었다. 심지어 25일에 한 번씩 테마를 변경해 전체 인테리어를 싹 갈아엎었다.
밖에서 보면 미디어 아트나 키네틱 아트를 전시하는 갤러리로 착각할 정도였다. 꽃이 테마일 때는 1층 바닥 전체를 생화로 뒤덮었고 ‘핑퐁’이 주제일 때는 컬러풀한 탁구장으로 변했다.
‘잼’이 주제일 때는 전시에 맞게 하루 종일 토스트를 구워 잼을 발라 방문객들에게 나눠 줬다. 다양한 아티스트와의 협업도 이뤄졌다. 이 같은 시도가 2년 5개월 동안 이어졌고 무려 36번의 프로젝트를 진행했다.
사람들은 미쳤다고 했다. 설립 4년 차인 스타트업이 도전하기 위해서는 과감한 투자가 필요한 일이었다. 실제 판매량 증가나 마케팅 실적으로 이어지는지도 의문이었다. 하지만 젠틀몬스터의 목적은 ‘미쳤다는 소리를 듣는 것’이었다.
“1층 쇼룸을 보며 지나가는 사람들의 이목을 끌기에 충분했습니다. 젠틀몬스터라는 브랜드는 늘 새로운 시도를 하고 소비자들이 예측할 수 없는 브랜드라는 것을 각인하는 게 목표였어요. 공간은 판매하는 하나의 채널이 아니라 우리 회사의 가치와 메시지와 감성을 전달하기 위한 창구였죠.”
젠틀몬스터 설립 초기부터 회사와 함께한 구진영 마케팅 파트장의 설명이다. 그는 홍대였기에 이런 발상이 먹혀들었다고 말했다. 젊고 역동적인 홍대 상권 특성상 25일마다 변하는 젠틀몬스터 쇼룸은 소비자들에게 이슈화됐다.
이 같은 공간 마케팅은 2015년 북촌의 가장 오래된 목욕탕을 개조한 쇼룸 ‘배쓰 하우스(Bath House)’로 이어졌다. 이 공간 역시 공간 업사이클링(오래된 공간을 새활용하는 것)의 대표적인 사례로 아직까지 회자된다.
젠틀몬스터가 출시하는 제품 컬렉션과 쇼룸의 전시 주제는 마치 현대미술 주제 같다. 공간 연출도 탁월한 스토리텔링을 가지고 이뤄진 하나의 놀이 공간을 연상시킨다. 이처럼 특별한 주제와 스토리는 제품에도 반영됐다.
얼굴 전체를 다 가리는 CD 모양의 선글라스, 헬멧 형태의 선글라스 등 독특하고 예측 불가능한 젠틀몬스터의 브랜드 정체성을 제품에도 담아냈다. 젠틀몬스터의 독특한 디자인은 안경과 선글라스를 패션 아이템으로 진화시켰다.
◆ 2. 창의력은 사람에게서 나온다
창의력은 사람에게서 나온다. 다양한 분야의 전문가가 모여 아이디어가 더해질수록 시너지가 나올 확률은 더 높다. 당연한 얘기지만 젠틀몬스터는 이를 가장 잘 활용하고 있는 기업이다.
선글라스 회사지만 미디어 아트나 음악을 다루는 아트 디렉터뿐만 아니라 조향사·파티시에·바리스타·소믈리에 등 다양한 직원들이 속해 있다.
젠틀몬스터에서 가장 많은 직원이 속한 직무는 공간팀이다. 본사 상주 직원 150여 명 중 무려 80여 명이 공간팀 소속이다. 내부 공간을 디렉팅하고 디자인하는 이들은 젠틀몬스터의 브랜드 가치를 만들어 가는 핵심 인력이다. 다양한 직군의 인재는 매번 새로운 프로젝트를 세상에 선보이는 원동력이다.
구진영 파트장은 “사람들이 예측할 수 없는 회사가 되기 위한 근간은 바로 사람”이라며 “다른 브랜드와의 협업이 수월하게 이뤄지고 다양한 프로젝트와 새로운 아이디어가 매번 탄생할 수 있는 이유는 디자인 전공자뿐만 아니라 새로운 사람들과의 협업에 있다”고 말했다.
지난 5월 글로벌 럭셔리 브랜드 펜디와 협업해 개장한 가로수길 팝업 카페 ‘더 가든’ 역시 젠틀몬스터 내부 인력만으로 진행했다. 독특하고 이국적인 공간은 공간팀이 연출하고 젠틀몬스터 소속 파티시에가 정원을 주제로 디자인한 디저트를 선보였다.
커피 역시 소속 바리스타가 메뉴를 개발했고 이탈리아에서 직접 제작한 젠틀펜디 아이스크림을 선보이며 단숨에 가로수길 핫 플레이스로 떠올랐다.
◆ 3. 구찌·애플 옆에 자리 잡는 이유
젠틀몬스터는 다른 브랜드와의 컬래버레이션으로도 유명하다. 펜디뿐만 아니라 미국의 디자이너 브랜드 알렉산더 왕, 중국 정보기술(IT) 기업 화웨이 등 다양한 기업과의 협업을 전개해 왔다.
지금까지 이뤄진 모든 협업 중 젠틀몬스터가 먼저 제안한 컬래버레이션은 없었다. 언제나 다른 브랜드에서 먼저 젠틀몬스터에 연락해 왔다. 펜디와의 협업도 로마 본사에서 먼저 연락해 왔다. 올 5월 프로젝트가 막을 열기까지 준비 기간만 2년이 걸렸다.
펜디는 젠틀몬스터와의 협업을 통해 젊은 힙스터들의 관심을 끌며 오래된 명품 브랜드 이미지를 벗을 수 있었고 젠틀몬스터는 펜디를 통해 럭셔리 이미지를 제고할 수 있었다. 젠틀몬스터는 현재 내년 7월까지의 컬렉션과 다른 기업과의 협업 계획이 마무리된 상태다.
이처럼 글로벌 브랜드와 로컬 브랜드와의 협업은 젠틀몬스터가 해외시장 판로를 넓히는 데 큰 힘이 됐다. 화웨이와의 협업을 통해 중국 시장에 이름을 알릴 수 있었고 펜디나 알렉산더 왕과의 협업을 통해 유럽과 미국 시장에서 브랜드 가치를 제고할 수 있었다.
젠틀몬스터는 중국 베이징과 상하이 매장을 시작으로 미국 뉴욕과 로스앤젤레스·대만·싱가포르·홍콩·런던·두바이 등 전 세계 40여 개 이상의 직영 매장을 보유하고 있다. 특히 최근 오픈한 두바이 매장은 두바이몰의 상징이라고 할 수 있는 애플스토어 옆에 자리 잡고 있다.
구 파트장은 “한국에서는 국내 브랜드로서 백화점 1층에 자리한 중심 매장을 차지하는 게 쉽지 않지만 해외에서는 오히려 명품 매장 옆자리에 입점 제안이 들어온다”며 “바로 옆 매장에 샤넬·구찌·애플스토어가 자리 잡고 있는 핵심 위치에 331㎡(100평) 이상의 크기로만 입점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 같은 유통 채널 선점은 해외 소비자들에게 젠틀몬스터가 럭셔리 브랜드라는 인식을 심어줄 수 있었다.
브랜드 가치가 상승하자 글로벌 기업의 투자도 이어졌다. 2017년 젠틀몬스터는 LVMH그룹 계열 PEF인 엘캐터톤아시아로부터 600억원을 투자받으며 글로벌 네트워크를 확대했다. 이 역시 LVMH에서 먼저 접촉해 왔다.
구 파트장은 “LVMH투자를 통해 우리가 만날 수 없었던 다양한 브랜드와의 접선이 이뤄졌다”며 “이를 통해 국내 기업이 해외에서 패션 브랜드를 전개해 나갈 때 가질 수 있는 약점을 극복해 나갈 수 있었다”고 말했다.
◆ 4. 목표는 살아남는 것
젠틀몬스터는 패션과 전혀 관련이 없던 김한국 대표가 탄생시켰다. 김 대표는 2000년대 중반 대기업 계열 금융회사에서 사내 홍보·마케팅 업무를 맡아 왔다. 2008년 좀 더 창의적인 일을 해보고 싶다는 생각에 2008년 ‘영어 캠프’를 운영하는 영어 교육 업체에 들어갔다.
하지만 각종 영어 교육 규제와 맞물려 사업이 어려워졌고 출산율이 떨어지면서 교육 트렌드도 빠르게 변하고 있었다. 영어 회사는 내부 공모전을 통해 신사업을 도모했고 김 대표의 아이디어였던 안경 브랜드가 발탁됐다.
김 대표는 2011년 스눕바이(현 아이아이컴바인드)라는 이름으로 법인을 설립하고 그해 4월 젠틀몬스터를 세상에 내놓았다. 세 달째 수익은 없었다. 당연히 직원 5명의 월급도 챙겨주지 못했다. 목표는 ‘살아남는 것’이었다.
하지만 세상에 처음 탄생한 브랜드를 알리기 위해 과감한 투자를 아끼지 않았다. 김 대표가 원래 몸 담고 있던 영어교육회사 씨케이글로벌파트너스가 이를 지원했다.
씨케이글로벌파트너스는 여전히 아이아이컴바인드의 최대 주주다. 김 대표는 디자인 인력을 보충하며 제품의 질을 끌어올렸고 공간 마케팅으로 브랜드 정체성을 소비자들에게 각인했다.
기회는 우연히 찾아왔다. 2014년 배우 전지현 씨가 드라마 ‘별에서 온 그대’에 젠틀몬스터를 착용하고 나오면서 아시아 지역 인지도가 급상승했다. PPL이 아니라 단순히 제품을 선물한 협찬이었지만 당시 전지현 씨가 모델로 있던 럭셔리 브랜드 선글라스보다 이슈가 됐다.
구 파트장은 “한국 사람이 디자인하고 만들었기 때문에 아시아인의 두상에는 글로벌 럭셔리 브랜드보다 더 잘 맞아보였다”고 말했다.
젠틀몬스터는 아시아인 두상에 맞춘 아시안 핏을 내세우며 다양한 디자인을 선보였다. 이후 선글라스와 안경을 기능을 위한 소비가 아닌 하나의 패션 아이템으로 정착시키는 데 일조했다.
선글라스업계 최초로 쇼룸을 선보이며 면세점이나 안경점에서 안경과 선글라스를 사던 한국인들의 소비 패턴을 변화시켰다. 브랜드의 대표 모델도 따로 없다. 남들이 하지 않은 것을 해야 한다는 브랜드 철학을 지키기 위해서다.
젠틀몬스터의 시도는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최근에는 업계 최초로 아이들을 위한 ‘키즈 컬렉션’을 선보였다. 20만원대 유아용 선글라스가 팔릴지 내부에서도 고민이 많았지만 모든 제품이 거의 완판됐다.
하지만 젠틀몬스터의 목표는 여전히 생존이다. 구 파트장은 “지금까지 아이 웨어계의 한 획을 긋겠다는 마음으로 모든 직원들이 전념해 왔다”며 “대기업이 아니기 때문에 하루하루를 전투적으로 살아왔다.
브랜드 근간이 어느 정도 다져지고 해외에서도 좋은 반응이 오고 있어 파리·일본·동남아 등 다양한 시장으로 넓혀 앞으로의 10년도 성장하는 것이 목표”라고 말했다.
kye0218@hankyung.com
[본 기사는 한경비즈니스 제 1233호(2019.07.15 ~ 2019.07.21) 기사입니다.]
- ‘갤러리 같은 쇼룸’ 열고 공간 마케팅 올인
- ‘힙한 브랜드’ 명성 쌓이자 해외서 러브콜 쏟아져
[한경비즈니스=김영은 기자] 아무도 가지 않았던 길을 개척했다. 국내 토종 아이 웨어 브랜드로 시작한 아이아이컴바인드의 젠틀몬스터는 해외 법인 6개를 거느린 글로벌 브랜드로 성장했고 오프라인 공간으로 브랜드 가치와 철학을 전하는 ‘공간 마케팅’ 선구자로 떠올랐다.
독창적인 디자인과 철저한 브랜딩으로 글로벌 럭셔리 그룹인 루이비통 모에헤네시(LVMH)로부터 투자까지 이끌어 냈다.
2015년 573억원이었던 이 회사의 매출액은 2018년 2264억원으로 늘어났다. 2011년 5명으로 시작한 회사는 이제 전 세계 400여 명의 직원이 속한 기업이 됐다.
설립 8년 만에 글로벌 패션계와 소비자들 사이에서는 ‘힙’한 브랜드로, 다른 업계에서는 성공한 마케팅 전략의 대명사로 떠오른 젠틀몬스터의 브랜드 가치와 철학은 무엇일까.
토종 브랜드가 성공하기 어려운 패션업계에서 괴물 같은 존재감을 내뿜는 젠틀몬스터의 전략을 분석했다.
◆ 1. 미쳤다는 소리를 들어라
젠틀몬스터가 사업 초기부터 주목받았던 이유는 바로 독특한 공간 마케팅에 있다. 젠틀몬스터는 단순히 오프라인 매장을 깔끔하고 예쁘게 꾸미거나 사람들에게 선글라스와 안경 브랜드라는 이미지를 내세우지 않았다.
패브리커 등 다양한 디자인 그룹과 협업해 현대미술처럼 깊은 스토리텔링을 가진 하나의 예술을 펼쳤다. 지금은 오프라인 공간에서 제품을 파는 대신 경험과 가치를 제공하는 일이 흔해졌지만 2014년에는 상업 공간의 새로운 방향을 제시했다는 평을 받았다.
그 시작은 홍대 쇼룸에서 펼쳐진 ‘퀀텀 프로젝트’였다. 쇼룸이었지만 1층에 제품을 하나도 진열하지 않았다. 1층의 역할은 ‘매력적인’ 공간이었다. 심지어 25일에 한 번씩 테마를 변경해 전체 인테리어를 싹 갈아엎었다.
밖에서 보면 미디어 아트나 키네틱 아트를 전시하는 갤러리로 착각할 정도였다. 꽃이 테마일 때는 1층 바닥 전체를 생화로 뒤덮었고 ‘핑퐁’이 주제일 때는 컬러풀한 탁구장으로 변했다.
‘잼’이 주제일 때는 전시에 맞게 하루 종일 토스트를 구워 잼을 발라 방문객들에게 나눠 줬다. 다양한 아티스트와의 협업도 이뤄졌다. 이 같은 시도가 2년 5개월 동안 이어졌고 무려 36번의 프로젝트를 진행했다.
사람들은 미쳤다고 했다. 설립 4년 차인 스타트업이 도전하기 위해서는 과감한 투자가 필요한 일이었다. 실제 판매량 증가나 마케팅 실적으로 이어지는지도 의문이었다. 하지만 젠틀몬스터의 목적은 ‘미쳤다는 소리를 듣는 것’이었다.
“1층 쇼룸을 보며 지나가는 사람들의 이목을 끌기에 충분했습니다. 젠틀몬스터라는 브랜드는 늘 새로운 시도를 하고 소비자들이 예측할 수 없는 브랜드라는 것을 각인하는 게 목표였어요. 공간은 판매하는 하나의 채널이 아니라 우리 회사의 가치와 메시지와 감성을 전달하기 위한 창구였죠.”
젠틀몬스터 설립 초기부터 회사와 함께한 구진영 마케팅 파트장의 설명이다. 그는 홍대였기에 이런 발상이 먹혀들었다고 말했다. 젊고 역동적인 홍대 상권 특성상 25일마다 변하는 젠틀몬스터 쇼룸은 소비자들에게 이슈화됐다.
이 같은 공간 마케팅은 2015년 북촌의 가장 오래된 목욕탕을 개조한 쇼룸 ‘배쓰 하우스(Bath House)’로 이어졌다. 이 공간 역시 공간 업사이클링(오래된 공간을 새활용하는 것)의 대표적인 사례로 아직까지 회자된다.
젠틀몬스터가 출시하는 제품 컬렉션과 쇼룸의 전시 주제는 마치 현대미술 주제 같다. 공간 연출도 탁월한 스토리텔링을 가지고 이뤄진 하나의 놀이 공간을 연상시킨다. 이처럼 특별한 주제와 스토리는 제품에도 반영됐다.
얼굴 전체를 다 가리는 CD 모양의 선글라스, 헬멧 형태의 선글라스 등 독특하고 예측 불가능한 젠틀몬스터의 브랜드 정체성을 제품에도 담아냈다. 젠틀몬스터의 독특한 디자인은 안경과 선글라스를 패션 아이템으로 진화시켰다.
◆ 2. 창의력은 사람에게서 나온다
창의력은 사람에게서 나온다. 다양한 분야의 전문가가 모여 아이디어가 더해질수록 시너지가 나올 확률은 더 높다. 당연한 얘기지만 젠틀몬스터는 이를 가장 잘 활용하고 있는 기업이다.
선글라스 회사지만 미디어 아트나 음악을 다루는 아트 디렉터뿐만 아니라 조향사·파티시에·바리스타·소믈리에 등 다양한 직원들이 속해 있다.
젠틀몬스터에서 가장 많은 직원이 속한 직무는 공간팀이다. 본사 상주 직원 150여 명 중 무려 80여 명이 공간팀 소속이다. 내부 공간을 디렉팅하고 디자인하는 이들은 젠틀몬스터의 브랜드 가치를 만들어 가는 핵심 인력이다. 다양한 직군의 인재는 매번 새로운 프로젝트를 세상에 선보이는 원동력이다.
구진영 파트장은 “사람들이 예측할 수 없는 회사가 되기 위한 근간은 바로 사람”이라며 “다른 브랜드와의 협업이 수월하게 이뤄지고 다양한 프로젝트와 새로운 아이디어가 매번 탄생할 수 있는 이유는 디자인 전공자뿐만 아니라 새로운 사람들과의 협업에 있다”고 말했다.
지난 5월 글로벌 럭셔리 브랜드 펜디와 협업해 개장한 가로수길 팝업 카페 ‘더 가든’ 역시 젠틀몬스터 내부 인력만으로 진행했다. 독특하고 이국적인 공간은 공간팀이 연출하고 젠틀몬스터 소속 파티시에가 정원을 주제로 디자인한 디저트를 선보였다.
커피 역시 소속 바리스타가 메뉴를 개발했고 이탈리아에서 직접 제작한 젠틀펜디 아이스크림을 선보이며 단숨에 가로수길 핫 플레이스로 떠올랐다.
◆ 3. 구찌·애플 옆에 자리 잡는 이유
젠틀몬스터는 다른 브랜드와의 컬래버레이션으로도 유명하다. 펜디뿐만 아니라 미국의 디자이너 브랜드 알렉산더 왕, 중국 정보기술(IT) 기업 화웨이 등 다양한 기업과의 협업을 전개해 왔다.
지금까지 이뤄진 모든 협업 중 젠틀몬스터가 먼저 제안한 컬래버레이션은 없었다. 언제나 다른 브랜드에서 먼저 젠틀몬스터에 연락해 왔다. 펜디와의 협업도 로마 본사에서 먼저 연락해 왔다. 올 5월 프로젝트가 막을 열기까지 준비 기간만 2년이 걸렸다.
펜디는 젠틀몬스터와의 협업을 통해 젊은 힙스터들의 관심을 끌며 오래된 명품 브랜드 이미지를 벗을 수 있었고 젠틀몬스터는 펜디를 통해 럭셔리 이미지를 제고할 수 있었다. 젠틀몬스터는 현재 내년 7월까지의 컬렉션과 다른 기업과의 협업 계획이 마무리된 상태다.
이처럼 글로벌 브랜드와 로컬 브랜드와의 협업은 젠틀몬스터가 해외시장 판로를 넓히는 데 큰 힘이 됐다. 화웨이와의 협업을 통해 중국 시장에 이름을 알릴 수 있었고 펜디나 알렉산더 왕과의 협업을 통해 유럽과 미국 시장에서 브랜드 가치를 제고할 수 있었다.
젠틀몬스터는 중국 베이징과 상하이 매장을 시작으로 미국 뉴욕과 로스앤젤레스·대만·싱가포르·홍콩·런던·두바이 등 전 세계 40여 개 이상의 직영 매장을 보유하고 있다. 특히 최근 오픈한 두바이 매장은 두바이몰의 상징이라고 할 수 있는 애플스토어 옆에 자리 잡고 있다.
구 파트장은 “한국에서는 국내 브랜드로서 백화점 1층에 자리한 중심 매장을 차지하는 게 쉽지 않지만 해외에서는 오히려 명품 매장 옆자리에 입점 제안이 들어온다”며 “바로 옆 매장에 샤넬·구찌·애플스토어가 자리 잡고 있는 핵심 위치에 331㎡(100평) 이상의 크기로만 입점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 같은 유통 채널 선점은 해외 소비자들에게 젠틀몬스터가 럭셔리 브랜드라는 인식을 심어줄 수 있었다.
브랜드 가치가 상승하자 글로벌 기업의 투자도 이어졌다. 2017년 젠틀몬스터는 LVMH그룹 계열 PEF인 엘캐터톤아시아로부터 600억원을 투자받으며 글로벌 네트워크를 확대했다. 이 역시 LVMH에서 먼저 접촉해 왔다.
구 파트장은 “LVMH투자를 통해 우리가 만날 수 없었던 다양한 브랜드와의 접선이 이뤄졌다”며 “이를 통해 국내 기업이 해외에서 패션 브랜드를 전개해 나갈 때 가질 수 있는 약점을 극복해 나갈 수 있었다”고 말했다.
◆ 4. 목표는 살아남는 것
젠틀몬스터는 패션과 전혀 관련이 없던 김한국 대표가 탄생시켰다. 김 대표는 2000년대 중반 대기업 계열 금융회사에서 사내 홍보·마케팅 업무를 맡아 왔다. 2008년 좀 더 창의적인 일을 해보고 싶다는 생각에 2008년 ‘영어 캠프’를 운영하는 영어 교육 업체에 들어갔다.
하지만 각종 영어 교육 규제와 맞물려 사업이 어려워졌고 출산율이 떨어지면서 교육 트렌드도 빠르게 변하고 있었다. 영어 회사는 내부 공모전을 통해 신사업을 도모했고 김 대표의 아이디어였던 안경 브랜드가 발탁됐다.
김 대표는 2011년 스눕바이(현 아이아이컴바인드)라는 이름으로 법인을 설립하고 그해 4월 젠틀몬스터를 세상에 내놓았다. 세 달째 수익은 없었다. 당연히 직원 5명의 월급도 챙겨주지 못했다. 목표는 ‘살아남는 것’이었다.
하지만 세상에 처음 탄생한 브랜드를 알리기 위해 과감한 투자를 아끼지 않았다. 김 대표가 원래 몸 담고 있던 영어교육회사 씨케이글로벌파트너스가 이를 지원했다.
씨케이글로벌파트너스는 여전히 아이아이컴바인드의 최대 주주다. 김 대표는 디자인 인력을 보충하며 제품의 질을 끌어올렸고 공간 마케팅으로 브랜드 정체성을 소비자들에게 각인했다.
기회는 우연히 찾아왔다. 2014년 배우 전지현 씨가 드라마 ‘별에서 온 그대’에 젠틀몬스터를 착용하고 나오면서 아시아 지역 인지도가 급상승했다. PPL이 아니라 단순히 제품을 선물한 협찬이었지만 당시 전지현 씨가 모델로 있던 럭셔리 브랜드 선글라스보다 이슈가 됐다.
구 파트장은 “한국 사람이 디자인하고 만들었기 때문에 아시아인의 두상에는 글로벌 럭셔리 브랜드보다 더 잘 맞아보였다”고 말했다.
젠틀몬스터는 아시아인 두상에 맞춘 아시안 핏을 내세우며 다양한 디자인을 선보였다. 이후 선글라스와 안경을 기능을 위한 소비가 아닌 하나의 패션 아이템으로 정착시키는 데 일조했다.
선글라스업계 최초로 쇼룸을 선보이며 면세점이나 안경점에서 안경과 선글라스를 사던 한국인들의 소비 패턴을 변화시켰다. 브랜드의 대표 모델도 따로 없다. 남들이 하지 않은 것을 해야 한다는 브랜드 철학을 지키기 위해서다.
젠틀몬스터의 시도는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최근에는 업계 최초로 아이들을 위한 ‘키즈 컬렉션’을 선보였다. 20만원대 유아용 선글라스가 팔릴지 내부에서도 고민이 많았지만 모든 제품이 거의 완판됐다.
하지만 젠틀몬스터의 목표는 여전히 생존이다. 구 파트장은 “지금까지 아이 웨어계의 한 획을 긋겠다는 마음으로 모든 직원들이 전념해 왔다”며 “대기업이 아니기 때문에 하루하루를 전투적으로 살아왔다.
브랜드 근간이 어느 정도 다져지고 해외에서도 좋은 반응이 오고 있어 파리·일본·동남아 등 다양한 시장으로 넓혀 앞으로의 10년도 성장하는 것이 목표”라고 말했다.
kye0218@hankyung.com
[본 기사는 한경비즈니스 제 1233호(2019.07.15 ~ 2019.07.21)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