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버스토리=‘매년 40% 성장’ 전기차 배터리 삼성$LG$SK 글로벌 ‘원톱’ 경쟁]
-전기차 메가 프로젝트 본격 발주…기술력·수주 실적 앞선 한국 기업 글로벌 강자로
[한경비즈니스=이현주 기자] “현재 23%인 자동차 전지 사업 비율을 2024년까지 50%대까지 올릴 계획이다. 이를 통해 5년 후 매출 59조원, 글로벌 톱5 화학 기업으로 도약하겠다.”
신학철 LG화학 부회장이 7월 9일 서울 여의도 LG트윈타워에서 취임 후 첫 기자간담회에서 밝힌 ‘배터리 선언’이다. 그룹의 주력 사업이 배터리로 변화하는 중·장기 계획을 밝히면서 강한 자신감을 내비쳤다. 신 부회장의 자신감의 배경에는 전기차라는 무대가 있다.
LG화학뿐만이 아니다. 삼성SDI·SK이노베이션 등 국내에서 배터리를 생산하는 배터리 3사 모두 사활을 건 투자 경쟁을 예고한다. 전기차 시장이 급성장하면서 전기차의 ‘연료’인 배터리를 놓고 벌어지는 일들이다.
전기차 배터리 시장은 현재 ‘동 트기 직전’의 형국이다. ‘제2의 반도체’라는 별칭도 붙는다. 노트북과 스마트폰이 소비 시장의 주도권을 쥐고 메모리 반도체라는 열매를 맺었다면 이제 키는 자동차에 있다는 데 의견이 모인다. 자율주행차가 시스템 반도체의 미래를 터준다면 전기차는 배터리의 잠재력을 높인다.
배터리 글로벌 강자들은 ‘한국·중국·일본’에 몰려 있다. 한국은 후발 주자로 시작해 최고 수준의 경쟁력을 확보했다. 이미 소형 전지 시장에서는 2010년 이후 한국이 1등을 차지했다. 1등의 경험과 저력으로 이제 중대형 배터리, 곧 전기차 배터리를 공략한다. 중국의 특수 상황을 빼놓고 보면 글로벌 무대에서 싸울 국내 업체들의 기초 체력은 최고라는 의견이 나온다.
전기차 침투율은 아직 한 자릿수에 불과하다. 이제부터가 진짜 시작이다. 400조원 규모의 반도체 시장을 넘어설 수 있는 기대주로 떠오르는 배터리, 국내 배터리 3사는 막 오른 전기차 시대의 진정한 수혜주가 될 수 있을까. 전기차 시장을 둘러싼 다양한 기회 요인과 시장 재편의 움직임을 눈여겨볼 필요가 있다.
현존하는 최고의 2차전지, 리튬 이온 전지
한 번 쓰고 버리는 건전지가 아닌 충전해 다시 사용하는 2차전지가 등장한 이후 고성능의 배터리를 만드는 시도는 여러 차례 있었다. 대표적인 2차전지는 자동차 납전지다. 그런데 너무 무겁다. 납전지를 대체할 2차전지를 찾는 노력의 과정에서 현존하는 최고의 2차전지, 리튬 이온 전지가 나왔다.
1991년 일본 소니가 세계 최초로 상용화한 이후 국내에서도 2000년을 전후로 LG화학과 삼성SDI가 이 시장에 진입했다. 이후 SK이노베이션이 들어오면서 현재의 배터리 3강 구도를 형성했다. 코캄·EIG 등 비교적 작은 규모의 배터리 회사도 주인을 바꿔 가며 현재까지 존재하고 있다.
배터리가 상용화되기 위해서는 첫째, 가격이 싸고 둘째, 안전하며 셋째, 힘이 세야 한다. 리튬 이온 전지는 이 세 가지 조건을 가장 많이 충족하면서 전기차 배터리의 유력한 주자로 활약해 왔다. 여기에서 배터리가 세다는 것은 곧 오래 지속된다는 얘기다. 배터리의 수명은 에너지 밀도(부피÷중량)로 표현한다. 그래서 배터리 회사들은 싸고 안전하며 에너지 밀도가 높은 리튬 이온 전지를 만드는 데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
배터리는 비교적 단순한 구조를 이루고 있다. 200년 전 최초의 전지인 볼타 전지가 나온 뒤부터 모든 전지는 핵심 4가지 요소로 구성된다. 양극재·음극재·전해액·분리막이 그것이다. 서로 다른 두 개의 금속을 걸고 금속 간에 전기가 흐를 수 있는 전도체를 넣으면 된다. 여기에 전기 쇼트(short-circuit) 현상이 일어나지 않도록 금속 사이를 갈라놓는 분리막 등을 전지의 기본이자 4대 소재로 부르곤 한다.
4대 소재에서도 맏형은 양극재다. 소재 원가를 100이라고 할 때 약 30~35%가 양극재에 해당한다. 그다음으로 분리막이 약 13~17% 사이를 차지한다. 음극재가 약 10~15%다. 전해질이 10% 이하 그리고 기타 등등이 있다. 국내 3대 배터리 업체들은 4대 소재를 기본적으로 외부에서 조달하는데, 특히 양극재는 자체 기술로 내재화하는 데 공통적인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4대 소재만으로는 전기차 배터리가 완성되지 않는다. 재료들을 통 안에 넣어 안전하게 싸매야 한다. 통은 크게 세 가지로 요약된다. 원통형·각형·파우치형이 그것이다. 원통형은 동그란 모양으로 크기가 작아 여러 개를 묶어 사용한다. 각형은 스마트폰에 들어가는 모양을 생각하면 이해하기가 쉽다. 파우치형은 일종의 과자 봉지에 비유할 수 있다. 특수한 알루미늄 포일을 겹쳐 만든 파우치형은 크게 만들 수 있는 장점이 있다.
2000년대 이후 국내 배터리 업체들은 먼저 소형 전지 시장에서 활약했다. 노트북, 휴대전화, 태블릿 PC, 무선 이어폰 등 정보기술(IT) 기기에 주로 사용됐다. 일본 소닉가 가장 먼저 시장을 열었다면 후발 주자로 시작한 삼성SDI·LG화학이 소형 전지 시장의 세계 최고 자리를 차지했다.
시장조사 업체 INI산업리처치에 따르면 현재 세계 전지 시장은 약 100조원 규모다. 리튬 이온 전지 시장은 30조원, 그중에서도 소형 전지 시장은 15조원 이하다. 나머지 15조원 이상은 중대형 전지가 차지한다. 중대형 전지에서 약 2%가 에너지 저장 장치(ESS), 나머지가 전기차 배터리 시장이다. 주목할 점은 이 전기차 배터리 시장이 매년 40% 이상 성장해 왔다는 점이다.
전기차가 이끄는 중대형 전지의 성장성 주목
배터리는 부품에 해당돼 그 자체로는 시장이 커지지 않는다. 배터리가 탑재되는 기기가 커지면 덩달아 커진다. 노트북과 휴대전화가 소형 전지 시장을 이끌어 왔지만 이제는 성장 정체를 맞았다. 전기차의 인기를 주도한 테슬라의 등장 이후 특히 중국과 유럽을 중심으로 전기차 시대가 도래하면서 향후의 먹거리는 전기차 배터리로 집중되고 있다.
전기차의 대수에 비례할 뿐만 아니라 전기차 한 대의 배터리 탑재량이 늘어나면서 실제로는 전기차의 증가 속도를 넘어서는 성장세를 보이는 게 전기차 배터리 시장의 특징이다. 전문가들은 전기차 배터리 시장이 2027년 메모리 반도체 시장을 뛰어넘을 것이라는 전망을 내놓는다( 참고). 한병화 유진투자증권 애널리스트는 “2018~2025년 글로벌 전기차 판매량은 연평균 29% 증가할 것으로 예상되며 글로벌 전기차 시장 성장이 가속화하는데 유럽 시장의 정책 지원 강화의 의미가 크다”고 말했다.
IT 기기가 매년 트렌드를 바꾸는 것에 비해 전기차는 5년 이상의 기간을 두고 등장한다. 2010년 전후로 1세대 전기차들이 세상에 나오기 시작한 이후 전기차는 지금까지 3세대의 진화 과정을 겪고 있다. INI리처치의 분류에 따르면 1세대 전기차는 16~24KWh, 2016년 이후 2세대 전기차는 30~55KWh, 2021년 이후 나오는 3세대 전기차는 50~100KWh의 배터리 용량을 자랑한다. 한 번 충전했을 때 얼마나 오래가는지를 판가름하는 배터리 용량이 세대가 진행될수록 급격히 커지고 있다.
물론 배터리를 많이 실으면 지금 당장에도 오래 달릴 수 있다. 그런데 가격이 문제다. 테슬라와 같은 고급차를 제외하면 현실적으로 어려운 방법이다. 그래서 배터리 업체들은 센 배터리를 만들기 위해 노력하고 반면 완성차 업체들은 가격을 낮추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지금까지 전기차 배터리 시장의 주도권은 완성차 업체가 쥐고 있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런데 최근 의미 있는 변화가 포착되고 있다. 전기차 배터리 업체들의 목소리가 커지면서 공급가격을 놓고 팽팽한 기싸움을 시작한 것이다. 전기차 3세대 시대를 맞이하면서 수요가 급증하자 배터리 회사들이 가격 인상을 요구하고 수익성 중심 운영 전략을 강화하고 나섰다.
시장의 판이 달라진 것이다. 특히 자동차 배터리 시장의 질적 변화를 부르는 두 개의 기회 요인이 있다. 첫째는 유럽발 호재다. 특히 2021년부터 유럽의 완성차 업체들의 메가 프로젝트가 줄줄이 대기 중이다. 또 하나는 중국에서 들려온 소식이다. 지금까지 중국은 빗장을 걸어둔 채 전기차 배터리 산업을 육성해 왔다. 자국의 제품에만 보조금을 지급하는 등 산업 육성 정책을 펴 오면서다. 그런데 내년부터 이 보조금 지급 정책이 폐지될 예정이다. 전기차 시장의 절반을 차지하는 중국 시장에 본격적으로 진입할 수 있는 기회의 문이 열리는 셈이다.
모든 산업이 ‘도입기·성장기·성숙기·쇠퇴기’의 곡선을 그린다면 자동차 배터리 시장은 아직 출발점에 서 있다는 게 주목할 부분이다. INI산업리서치에 따르면 BEV와 PEVE를 포함한 전기차 침투율은 2.3%다. HEV까지 포함하면 5%다. 전 세계 자동차 1억 대를 팔 때 230만 대가 전기차다. 2024년이 되면 현재의 2.3%에서 전체 3분의 1 수준으로, 2030년에는 50% 수준으로 늘어난다는 게 국내외 시장조사 기관의 발표다.
홍유식 INI산업리서치 대표는 “반도체 시장이 400조원 시장이라면 현재 전기차 침투율이 2.3%임에도 불구하고 전기차 배터리만으로 15조원 수준”이라며 “배터리 탑재량이 늘어날수록 수치는 급격히 커지고 여기에 ESS라는 쌍두마차를 이루며 2차전지가 반도체를 넘어서는 것은 시간문제”라고 말했다.
글로벌 강자들의 본격적인 주도권 싸움도 시작됐다. 2차전지 기술의 중요한 척도인 에너지 밀도와 가격 면에서 진짜 실력자들 위주의 시장으로 재편되는 과정에 진입했다는 분석이 나온다. 국내 4대 기업 중 완성차 업체인 현대차를 제외하고 삼성·LG·SK그룹이 모두 이 배터리 사업에 뛰어들었다.
중국 1위, 정말 1위일까?
현재 글로벌 배터리 시장은 ‘한·중·일’ 삼국에서 휩쓸고 있다. 시장조사 기관 SNE리서치에 따르면 2019년 상반기 전기 자동차용 2차전지 출하량 기준으로 글로벌 5강은 중국의 CATL과 일본의 파나소닉, 중국의 BYD, 한국의 LG화학, 삼성SDI다.
지금까지 배터리 시장의 1위는 매년 중국의 차지였다. 이유는 명확하다. 전기차 시장의 60%를 차지하는 중국에서 자국의 배터리만 사용하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시장의 왜곡이라고 보는 시각도 지배적이다. 4대 소재를 비롯한 기술력과 안정성 측면에서 진짜 실력자를 가리기 위해서는 중국 시장을 제외하고 따져봐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국내 3사의 경쟁력은 특히 ‘배터리 제조 공정 기술’에 있다. 전지를 설계하고 만드는 기술로, 제조에 강한 한국의 특징이 배터리 산업에도 그대로 적용된다. 배터리 3사는 각각 중국·유럽·미국 등에 생산 기지를 두고 지속적인 공장 투자를 확대하면서 제조 역량을 강화하고 있다. 공격적인 투자는 향후 치킨게임이 진행될 때 가격 경쟁력을 확보할 수 있는 대비책이 될 수 있다.
일찌감치 유럽 시장을 공략하면서 레퍼런스를 쌓아 온 것도 강점이다. 일본이나 중국이 내수 기반으로 성장해 온 것과 비교해 수출 기반으로 해외 자동차 업체와의 협력을 다져온 게 차이점이다. 초기 공격적인 제품 개발 및 상용화 추진으로 업체들의 신뢰를 확보한 게 주효했다. 또 연구·개발(R&D) 인력의 수준이 높다는 점도 강점으로 꼽힌다. 박사급 인력이나 유학파 인재들이 현장에서 뛰고 있다. 일각에서는 이 인력들이 중국으로 향하고 있다는 것을 우려하고 있다.
반면 핵심 소재 부문에서는 아직 갈 길이 멀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김현수 한국전기연구원 박사는 “전지 기술의 핵심을 소재라고 볼 때 기술력 측면에서는 우리가 일본에 이어 뒤를 쫓아가고 있는 형국”이라고 말했다. 4대 핵심 소재를 중심으로 볼 때 소재 국산화율은 아직 낮은 수준이다.
배터리 전기차 시대가 열리고 있다. 이때 국내 배터리 3사가 중국과 일본을 제치고 글로벌 최강자가 되기 위해서는 어떤 전략을 펴야 할까. 김현수 연구원은 “전기차 수요가 급증하면서 리튬과 같은 핵심 원재료 확보에 비상이 걸려 어떻게 이를 안정적이고 장기적으로 확보할 수 있을지가 비즈니스의 관건이 될 것이고 이와 함께 신기술 경쟁력을 확보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또한 “민간 기업에만 맡기지 말고 정부 정책이 뒷받침돼야 제2의 반도체가 가능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김영준 성균관대 성균나노과학기술원 교수는 “앞으로도 당분간 국내 업체들은 세계적인 자동차 업체의 공급 대상 1순위 후보인 것은 사실이지만 중국이나 일본 업체들과 현격한 차이가 있는 것은 아니기 때문에 난전이 예상된다”며 “다만 우리는 공격적인 투자를 먼저 했기 때문에 가격 경쟁력 확보가 용이한 측면이 있고 이런 점에서 일본보다 중국 업체와의 경쟁이 심해질 것으로 예상된다”고 말했다.
배터리 3사의 전략은 조금씩 다른 지점을 향하고 있다. LG화학은 오랜 업력을 바탕으로 탄탄한 수주 기반과 생산능력을 자랑한다. 삼성SDI는 소형 전지 1위의 경험을 바탕으로 다소 보수적인 전기차 시장 확대 전략을 펴고 있다. SK이노베이션은 후발 주자이지만 그룹의 전폭적인 지원을 얻고 공격적인 투자에 나섰다. 지금부터 3사의 경쟁력과 전략을 구체적으로 살펴본다.
charis@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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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기사는 한경비즈니스 제 1234호(2019.07.22 ~ 2019.07.28) 기사입니다.]
-전기차 메가 프로젝트 본격 발주…기술력·수주 실적 앞선 한국 기업 글로벌 강자로
[한경비즈니스=이현주 기자] “현재 23%인 자동차 전지 사업 비율을 2024년까지 50%대까지 올릴 계획이다. 이를 통해 5년 후 매출 59조원, 글로벌 톱5 화학 기업으로 도약하겠다.”
신학철 LG화학 부회장이 7월 9일 서울 여의도 LG트윈타워에서 취임 후 첫 기자간담회에서 밝힌 ‘배터리 선언’이다. 그룹의 주력 사업이 배터리로 변화하는 중·장기 계획을 밝히면서 강한 자신감을 내비쳤다. 신 부회장의 자신감의 배경에는 전기차라는 무대가 있다.
LG화학뿐만이 아니다. 삼성SDI·SK이노베이션 등 국내에서 배터리를 생산하는 배터리 3사 모두 사활을 건 투자 경쟁을 예고한다. 전기차 시장이 급성장하면서 전기차의 ‘연료’인 배터리를 놓고 벌어지는 일들이다.
전기차 배터리 시장은 현재 ‘동 트기 직전’의 형국이다. ‘제2의 반도체’라는 별칭도 붙는다. 노트북과 스마트폰이 소비 시장의 주도권을 쥐고 메모리 반도체라는 열매를 맺었다면 이제 키는 자동차에 있다는 데 의견이 모인다. 자율주행차가 시스템 반도체의 미래를 터준다면 전기차는 배터리의 잠재력을 높인다.
배터리 글로벌 강자들은 ‘한국·중국·일본’에 몰려 있다. 한국은 후발 주자로 시작해 최고 수준의 경쟁력을 확보했다. 이미 소형 전지 시장에서는 2010년 이후 한국이 1등을 차지했다. 1등의 경험과 저력으로 이제 중대형 배터리, 곧 전기차 배터리를 공략한다. 중국의 특수 상황을 빼놓고 보면 글로벌 무대에서 싸울 국내 업체들의 기초 체력은 최고라는 의견이 나온다.
전기차 침투율은 아직 한 자릿수에 불과하다. 이제부터가 진짜 시작이다. 400조원 규모의 반도체 시장을 넘어설 수 있는 기대주로 떠오르는 배터리, 국내 배터리 3사는 막 오른 전기차 시대의 진정한 수혜주가 될 수 있을까. 전기차 시장을 둘러싼 다양한 기회 요인과 시장 재편의 움직임을 눈여겨볼 필요가 있다.
현존하는 최고의 2차전지, 리튬 이온 전지
한 번 쓰고 버리는 건전지가 아닌 충전해 다시 사용하는 2차전지가 등장한 이후 고성능의 배터리를 만드는 시도는 여러 차례 있었다. 대표적인 2차전지는 자동차 납전지다. 그런데 너무 무겁다. 납전지를 대체할 2차전지를 찾는 노력의 과정에서 현존하는 최고의 2차전지, 리튬 이온 전지가 나왔다.
1991년 일본 소니가 세계 최초로 상용화한 이후 국내에서도 2000년을 전후로 LG화학과 삼성SDI가 이 시장에 진입했다. 이후 SK이노베이션이 들어오면서 현재의 배터리 3강 구도를 형성했다. 코캄·EIG 등 비교적 작은 규모의 배터리 회사도 주인을 바꿔 가며 현재까지 존재하고 있다.
배터리가 상용화되기 위해서는 첫째, 가격이 싸고 둘째, 안전하며 셋째, 힘이 세야 한다. 리튬 이온 전지는 이 세 가지 조건을 가장 많이 충족하면서 전기차 배터리의 유력한 주자로 활약해 왔다. 여기에서 배터리가 세다는 것은 곧 오래 지속된다는 얘기다. 배터리의 수명은 에너지 밀도(부피÷중량)로 표현한다. 그래서 배터리 회사들은 싸고 안전하며 에너지 밀도가 높은 리튬 이온 전지를 만드는 데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
배터리는 비교적 단순한 구조를 이루고 있다. 200년 전 최초의 전지인 볼타 전지가 나온 뒤부터 모든 전지는 핵심 4가지 요소로 구성된다. 양극재·음극재·전해액·분리막이 그것이다. 서로 다른 두 개의 금속을 걸고 금속 간에 전기가 흐를 수 있는 전도체를 넣으면 된다. 여기에 전기 쇼트(short-circuit) 현상이 일어나지 않도록 금속 사이를 갈라놓는 분리막 등을 전지의 기본이자 4대 소재로 부르곤 한다.
4대 소재에서도 맏형은 양극재다. 소재 원가를 100이라고 할 때 약 30~35%가 양극재에 해당한다. 그다음으로 분리막이 약 13~17% 사이를 차지한다. 음극재가 약 10~15%다. 전해질이 10% 이하 그리고 기타 등등이 있다. 국내 3대 배터리 업체들은 4대 소재를 기본적으로 외부에서 조달하는데, 특히 양극재는 자체 기술로 내재화하는 데 공통적인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4대 소재만으로는 전기차 배터리가 완성되지 않는다. 재료들을 통 안에 넣어 안전하게 싸매야 한다. 통은 크게 세 가지로 요약된다. 원통형·각형·파우치형이 그것이다. 원통형은 동그란 모양으로 크기가 작아 여러 개를 묶어 사용한다. 각형은 스마트폰에 들어가는 모양을 생각하면 이해하기가 쉽다. 파우치형은 일종의 과자 봉지에 비유할 수 있다. 특수한 알루미늄 포일을 겹쳐 만든 파우치형은 크게 만들 수 있는 장점이 있다.
2000년대 이후 국내 배터리 업체들은 먼저 소형 전지 시장에서 활약했다. 노트북, 휴대전화, 태블릿 PC, 무선 이어폰 등 정보기술(IT) 기기에 주로 사용됐다. 일본 소닉가 가장 먼저 시장을 열었다면 후발 주자로 시작한 삼성SDI·LG화학이 소형 전지 시장의 세계 최고 자리를 차지했다.
시장조사 업체 INI산업리처치에 따르면 현재 세계 전지 시장은 약 100조원 규모다. 리튬 이온 전지 시장은 30조원, 그중에서도 소형 전지 시장은 15조원 이하다. 나머지 15조원 이상은 중대형 전지가 차지한다. 중대형 전지에서 약 2%가 에너지 저장 장치(ESS), 나머지가 전기차 배터리 시장이다. 주목할 점은 이 전기차 배터리 시장이 매년 40% 이상 성장해 왔다는 점이다.
전기차가 이끄는 중대형 전지의 성장성 주목
배터리는 부품에 해당돼 그 자체로는 시장이 커지지 않는다. 배터리가 탑재되는 기기가 커지면 덩달아 커진다. 노트북과 휴대전화가 소형 전지 시장을 이끌어 왔지만 이제는 성장 정체를 맞았다. 전기차의 인기를 주도한 테슬라의 등장 이후 특히 중국과 유럽을 중심으로 전기차 시대가 도래하면서 향후의 먹거리는 전기차 배터리로 집중되고 있다.
전기차의 대수에 비례할 뿐만 아니라 전기차 한 대의 배터리 탑재량이 늘어나면서 실제로는 전기차의 증가 속도를 넘어서는 성장세를 보이는 게 전기차 배터리 시장의 특징이다. 전문가들은 전기차 배터리 시장이 2027년 메모리 반도체 시장을 뛰어넘을 것이라는 전망을 내놓는다( 참고). 한병화 유진투자증권 애널리스트는 “2018~2025년 글로벌 전기차 판매량은 연평균 29% 증가할 것으로 예상되며 글로벌 전기차 시장 성장이 가속화하는데 유럽 시장의 정책 지원 강화의 의미가 크다”고 말했다.
IT 기기가 매년 트렌드를 바꾸는 것에 비해 전기차는 5년 이상의 기간을 두고 등장한다. 2010년 전후로 1세대 전기차들이 세상에 나오기 시작한 이후 전기차는 지금까지 3세대의 진화 과정을 겪고 있다. INI리처치의 분류에 따르면 1세대 전기차는 16~24KWh, 2016년 이후 2세대 전기차는 30~55KWh, 2021년 이후 나오는 3세대 전기차는 50~100KWh의 배터리 용량을 자랑한다. 한 번 충전했을 때 얼마나 오래가는지를 판가름하는 배터리 용량이 세대가 진행될수록 급격히 커지고 있다.
물론 배터리를 많이 실으면 지금 당장에도 오래 달릴 수 있다. 그런데 가격이 문제다. 테슬라와 같은 고급차를 제외하면 현실적으로 어려운 방법이다. 그래서 배터리 업체들은 센 배터리를 만들기 위해 노력하고 반면 완성차 업체들은 가격을 낮추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지금까지 전기차 배터리 시장의 주도권은 완성차 업체가 쥐고 있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런데 최근 의미 있는 변화가 포착되고 있다. 전기차 배터리 업체들의 목소리가 커지면서 공급가격을 놓고 팽팽한 기싸움을 시작한 것이다. 전기차 3세대 시대를 맞이하면서 수요가 급증하자 배터리 회사들이 가격 인상을 요구하고 수익성 중심 운영 전략을 강화하고 나섰다.
시장의 판이 달라진 것이다. 특히 자동차 배터리 시장의 질적 변화를 부르는 두 개의 기회 요인이 있다. 첫째는 유럽발 호재다. 특히 2021년부터 유럽의 완성차 업체들의 메가 프로젝트가 줄줄이 대기 중이다. 또 하나는 중국에서 들려온 소식이다. 지금까지 중국은 빗장을 걸어둔 채 전기차 배터리 산업을 육성해 왔다. 자국의 제품에만 보조금을 지급하는 등 산업 육성 정책을 펴 오면서다. 그런데 내년부터 이 보조금 지급 정책이 폐지될 예정이다. 전기차 시장의 절반을 차지하는 중국 시장에 본격적으로 진입할 수 있는 기회의 문이 열리는 셈이다.
모든 산업이 ‘도입기·성장기·성숙기·쇠퇴기’의 곡선을 그린다면 자동차 배터리 시장은 아직 출발점에 서 있다는 게 주목할 부분이다. INI산업리서치에 따르면 BEV와 PEVE를 포함한 전기차 침투율은 2.3%다. HEV까지 포함하면 5%다. 전 세계 자동차 1억 대를 팔 때 230만 대가 전기차다. 2024년이 되면 현재의 2.3%에서 전체 3분의 1 수준으로, 2030년에는 50% 수준으로 늘어난다는 게 국내외 시장조사 기관의 발표다.
홍유식 INI산업리서치 대표는 “반도체 시장이 400조원 시장이라면 현재 전기차 침투율이 2.3%임에도 불구하고 전기차 배터리만으로 15조원 수준”이라며 “배터리 탑재량이 늘어날수록 수치는 급격히 커지고 여기에 ESS라는 쌍두마차를 이루며 2차전지가 반도체를 넘어서는 것은 시간문제”라고 말했다.
글로벌 강자들의 본격적인 주도권 싸움도 시작됐다. 2차전지 기술의 중요한 척도인 에너지 밀도와 가격 면에서 진짜 실력자들 위주의 시장으로 재편되는 과정에 진입했다는 분석이 나온다. 국내 4대 기업 중 완성차 업체인 현대차를 제외하고 삼성·LG·SK그룹이 모두 이 배터리 사업에 뛰어들었다.
중국 1위, 정말 1위일까?
현재 글로벌 배터리 시장은 ‘한·중·일’ 삼국에서 휩쓸고 있다. 시장조사 기관 SNE리서치에 따르면 2019년 상반기 전기 자동차용 2차전지 출하량 기준으로 글로벌 5강은 중국의 CATL과 일본의 파나소닉, 중국의 BYD, 한국의 LG화학, 삼성SDI다.
지금까지 배터리 시장의 1위는 매년 중국의 차지였다. 이유는 명확하다. 전기차 시장의 60%를 차지하는 중국에서 자국의 배터리만 사용하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시장의 왜곡이라고 보는 시각도 지배적이다. 4대 소재를 비롯한 기술력과 안정성 측면에서 진짜 실력자를 가리기 위해서는 중국 시장을 제외하고 따져봐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국내 3사의 경쟁력은 특히 ‘배터리 제조 공정 기술’에 있다. 전지를 설계하고 만드는 기술로, 제조에 강한 한국의 특징이 배터리 산업에도 그대로 적용된다. 배터리 3사는 각각 중국·유럽·미국 등에 생산 기지를 두고 지속적인 공장 투자를 확대하면서 제조 역량을 강화하고 있다. 공격적인 투자는 향후 치킨게임이 진행될 때 가격 경쟁력을 확보할 수 있는 대비책이 될 수 있다.
일찌감치 유럽 시장을 공략하면서 레퍼런스를 쌓아 온 것도 강점이다. 일본이나 중국이 내수 기반으로 성장해 온 것과 비교해 수출 기반으로 해외 자동차 업체와의 협력을 다져온 게 차이점이다. 초기 공격적인 제품 개발 및 상용화 추진으로 업체들의 신뢰를 확보한 게 주효했다. 또 연구·개발(R&D) 인력의 수준이 높다는 점도 강점으로 꼽힌다. 박사급 인력이나 유학파 인재들이 현장에서 뛰고 있다. 일각에서는 이 인력들이 중국으로 향하고 있다는 것을 우려하고 있다.
반면 핵심 소재 부문에서는 아직 갈 길이 멀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김현수 한국전기연구원 박사는 “전지 기술의 핵심을 소재라고 볼 때 기술력 측면에서는 우리가 일본에 이어 뒤를 쫓아가고 있는 형국”이라고 말했다. 4대 핵심 소재를 중심으로 볼 때 소재 국산화율은 아직 낮은 수준이다.
배터리 전기차 시대가 열리고 있다. 이때 국내 배터리 3사가 중국과 일본을 제치고 글로벌 최강자가 되기 위해서는 어떤 전략을 펴야 할까. 김현수 연구원은 “전기차 수요가 급증하면서 리튬과 같은 핵심 원재료 확보에 비상이 걸려 어떻게 이를 안정적이고 장기적으로 확보할 수 있을지가 비즈니스의 관건이 될 것이고 이와 함께 신기술 경쟁력을 확보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또한 “민간 기업에만 맡기지 말고 정부 정책이 뒷받침돼야 제2의 반도체가 가능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김영준 성균관대 성균나노과학기술원 교수는 “앞으로도 당분간 국내 업체들은 세계적인 자동차 업체의 공급 대상 1순위 후보인 것은 사실이지만 중국이나 일본 업체들과 현격한 차이가 있는 것은 아니기 때문에 난전이 예상된다”며 “다만 우리는 공격적인 투자를 먼저 했기 때문에 가격 경쟁력 확보가 용이한 측면이 있고 이런 점에서 일본보다 중국 업체와의 경쟁이 심해질 것으로 예상된다”고 말했다.
배터리 3사의 전략은 조금씩 다른 지점을 향하고 있다. LG화학은 오랜 업력을 바탕으로 탄탄한 수주 기반과 생산능력을 자랑한다. 삼성SDI는 소형 전지 1위의 경험을 바탕으로 다소 보수적인 전기차 시장 확대 전략을 펴고 있다. SK이노베이션은 후발 주자이지만 그룹의 전폭적인 지원을 얻고 공격적인 투자에 나섰다. 지금부터 3사의 경쟁력과 전략을 구체적으로 살펴본다.
charis@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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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기사는 한경비즈니스 제 1234호(2019.07.22 ~ 2019.07.28)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