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정부, 일본 경제 보복 조치 WTO에 반드시 제소해야”

-김남은 국방대 교수 “일본의 부당성 널리 알리는 최선의 방법”…지나친 불매운동은 ‘우려’


[한경비즈니스=김정우 기자] “일본의 경제 보복 조치에 대한 한국 정부의 직접적인 대응 조치는 반드시 필요합니다.”
한국과 일본의 무역 갈등이 악화 일로를 걷고 있는 가운데 한일미래포럼이 8월 14일 주최한 세미나에서 김남은 국방대 연구교수가 건넨 발언이다. 이날 세미나는 ‘한·일 미래 새로운 100년을 꿈꾸며’라는 주제로 열렸다.
김 교수는 “한·일 양국은 그동안 경제와 외교를 현명하게 분리함으로써 전후 난국을 극복해 왔는데 일본의 경제 보복 조치로 인해 이 같은 ‘투 트랙’ 전략이 사실상 무너졌다”고 우려했다.
◆“국제 여론 끌어오는 것 중요해”
김 교수는 일본 정부의 경제 보복 조치에 대해 ‘무리수’를 둔 것이라고 비판했다. 일본 정부는 줄곧 한국 대법원의 강제징용 판결과 무관하다고 주장하고 있다. 한국이 대북 제재를 위반했고 ‘자국민의 안전’을 위협해 이런 결정을 내렸다고 밝힌 것. 이와 관련해 김 교수는 “일본이 구체적으로 어떻게 한국이 대북 제재를 위반했고 자국민의 안전을 위협하는지에 대해 마땅한 설명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런 맥락에서 그는 “일본의 수출 규제 조치에 대해 우리 정부가 세계무역기구(WTO)에 반드시 제소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현재 정부는 WTO에 일본을 제소할 계획이다.
하지만 일각에서는 제소하더라도 3~5년이라는 오랜 시간이 걸리는 만큼 실효성이 낮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특히 우리 정부 역시 일본을 백색 국가에서 배제하는 ‘맞불 카드’를 검토 중인 상황이다. 하지만 이를 꺼내들면 WTO 제소에 악영향을 미칠 것이라는 관측도 나온다.
배경은 이렇다. 일본의 경제 보복 조치는 WTO 회원국이 수출 허가 등을 통해 수출을 금지하거나 제한하지 못하도록 의무화하는 ‘관세 및 무역에 관한 일반 협정(GATT)’ 11조에 위반된다. 한국이 일본을 백색 국가에서 제외하면 일본도 똑같은 논리로 한국을 공격할 수 있는 만큼 걸림돌로 작용할 수 있다.
이와 관련해 김 교수는 “WTO 제소는 일본 정부가 취한 경제 보복 조치의 부당성과 한국 정부가 취할 대응 조치의 정당성을 널리 알리는 계기가 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를 위해선 국제 여론을 한국에 유리하게 움직일 필요가 있다고 그는 말했다. 특히 국제 여론을 한국 쪽으로 끌어오기 위해 미국과의 협조가 중요하다는 게 그의 설명이다.
김 교수는 “미국의 중재에만 매달릴 필요는 없지만 일본의 영향력을 차단하고 국제 여론을 움직이기 위해선 입김이 센 미국을 움직여야 한다”며 “트럼트 정부의 특성을 감안해 미국의 ‘국익’에 입각해 한국 정부의 의견을 이해시켜야 한다”고 말했다.
최근 국내에서 번지고 있는 일본 제품의 불매운동에 대해서도 입을 열었다. 그는 불매운동에 대해선 전반적으로 ‘긍정적’이라는 평가를 내렸다.
일본의 부당한 처사에 대해 국민의 경각심을 일깨워 주는 동시에 정부의 대일 정책에도 힘을 실어 줄 수 있다는 이유에서다. 다만 지나치게 극단적으로 불매운동이 번져서는 안 된다며 우려의 목소리를 내기도 했다.
◆“아베 정권의 ‘정치 득실’이 경제 보복 이유”
가장 큰 관심사는 향후 한·일 관계가 어떻게 나아갈지 여부다. 전반적으로 장기화될 것이라는 시각이 지배적이다.
한국경제가 8월 13일 국내 30대 그룹 계열사 최고경영자(CEO)와 중견·중소기업 대표 67명을 대상으로 한 ‘한·일 경제 전쟁 긴급 설문 조사’에서도 나타난다. 답변자 중 56.7%가 내년까지 일본의 경제 보복이 이어질 것이라고 응답했다. 그만큼 해결이 어려울 것이라는 관측이 우세한 상황이다.
김 교수 역시 향후 양국 관계 개선에 대해 ‘쉽지 않다’는 견해를 내비쳤다. 그는 “일본이 향후 수출 규제 품목을 확대할 가능성까지 시사하고 나선 상황”이라고 말했다.
그리고 여기에는 아베 정권의 ‘정치적 득실’이 존재하고 있다고 그는 진단했다. 김 교수는 “일본의 경제 보복 조치는 대내적으로 한국과의 과거사 문제를 부각시켜 지지층을 결집하는 것이 목적”이라고 바라봤다. 이에 따라 얻고자 하는 것은 장기 집권 기반 마련과 이를 통한 ‘개헌’이라고 진단했다.
김 교수에 따르면 2012년 ‘일본을 되찾자’라는 선거 캠페인으로 재집권에 성공한 아베 정권은 ‘전후 체제로의 탈각’을 국정 목표로 제시하고 집단적 자위권을 행사할 수 있도록 ‘헌법의 재해석’을 언명했다.
이후 활발한 외교 행보를 벌이며 2014년 무기 수출이 가능하도록 헌법을 개정했고 이후에도 ‘안보관련법’이라고 통칭되는 법률들을 개정하거나 신설했다. 이때마다 ‘북한’을 이용해 개정의 당위성을 강조해 왔다.
김 교수는 “북한의 도발이 아베 정권에는 개헌을 이룰 수 있는 ‘고마운 지원군’이었던 셈”이라고 분석했다.
그는 이어 “하지만 올해 미국과 북한의 정상회담이 이뤄지면서 북한의 위협이 낮아졌고 일본과 중국과의 관계도 개선되다 보니 새로운 위협 국가를 설정할 필요가 생겼다. 마침 강제징용 배상 판결을 내린 한국을 새로운 위협으로 설정하고 개헌을 추진할 수 있는 동력을 확보하는 것이 경제 보복 조치를 일으킨 아베 정권의 숨겨진 의도”라고 강조했다.
아직까지 일본 내부에서 개헌 반대를 외치는 목소리가 찬성보다 많은 만큼 이런 여론을 뒤집기 위한 ‘묘수’로 경제 보복 조치를 꺼냈다는 얘기다. 지난 7월 21일 참의원 선거 출구 조사에서도 개헌 반대는 47.5%로 찬성(40.8%)을 웃돌았다.
관계 개선이 쉽지 않을 것으로 보이지만 김 교수는 “그래도 양국 간의 대화를 이어 가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노력을 멈춰서는 안 된다”고 주장했다.
그는 “한국 정부가 일본이 스스로 경제 보복 조치를 철회하도록 설득해 경제와 외교를 분리하며 이뤄진 양국 간의 투 트랙 전략이 다시 이어져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김 교수는 마지막으로 “이번 사태를 교훈 삼아 양국이 새로운 협력 모델을 찾고 관계가 개선되길 기대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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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날 세미나에는 한국에서 학업이나 개인적인 연구를 목적으로 거주 중인 일본 학생들도 참석해 한·일 갈등에 대한 원인과 자신의 의견을 내놓으며 눈길을 끌었다.
한국에 교환학생으로 오게 된 시라미네 미카(국민대)는 “한국에 수출된 반도체 소재가 북한과 이란 등으로 흘러갔을 것이라는 판단에 따라 일본 정부가 한국 측에 용도 확인 요청을 했다. 하지만 한국 정부는 응하지 않았다”고 견해를 밝혔다. 그는 “일본 정부가 한국에 경제 보복 조치를 한 것은 맞지만 이런 부분을 감안했을 때 경제 보복이라는 단어가 조금 비약된 것처럼 보인다”고 덧붙였다.
어학 연수를 목적으로 최근 한국에 온 구로다 아쓰호(고배대 대학원 국제협력연구과)는 한국과 일본이 관계 개선을 위해 양국 간의 불매운동을 정부 차원에서 진정시킬 필요가 있다고 주장했다.
그는 “예컨대 한국의 불매운동이 일본 기업을 대상으로 진행 중이지만 일본에서는 ‘일본 국민’이 표적이라고 생각한다. 한국 국민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이처럼 양국 국민의 감정도 더욱 나빠지고 있다”며 “이런 추세가 계속되면 양국의 관계 회복은 더욱 요원해질 것”이라고 내다봤다.
이마사토 아지메(리쓰메이칸대 대학원 첨단종합학술연구과)은 한국의 거주 중인 일본인들의 생활을 연구하기 위해 올해 초부터 한국 생활을 시작했다. 그는 양국 간의 오랜 갈등과 관련한 자신의 견해를 펼쳤다.
그는 “양국 간의 갈등에는 과거사에 기반한 뿌리 깊은 ‘편견’과 ‘차별’이 자리하고 있다”며 “이런 요인들로 인해 영토 문제나 일본군 성노예 문제 등이 수시로 불거지며 갈등을 빚는 것 같다”고 말했다.
이어 “이런 편견과 차별은 후천적으로 얻어지는 것이다. ‘일본인’이나 ‘한국인’ 모두 서로에 대한 반감을 갖고 태어나는 것이 아니다. 그런 문화 속에 살다 보니 결국 서로를 싫어하게 되는 것인데 조금씩 이런 문화적 특징을 줄여 나가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enyou@hankyung.com
[본 기사는 한경비즈니스 제 1238호(2019.08.19 ~ 2019.08.25)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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