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이 미·중 무역 전쟁에 ‘희토류 카드’를 쓴다면

- 2010년 대일 수출 제한 때 가격 10배 폭등
- 미국, 캐나다·호주 등과 협력 강화 나서


[한경비즈니스=이명지 기자] 미국과 중국의 무역 분쟁이 희토류 전쟁으로 번지고 있다. 세계 희토류의 90%를 공급하는 중국이 미국을 상대로 희토류 수출 제한을 시사한 것이다.

‘희토류의 큰손’ 중국이 희토류 공급을 줄인다면 미국뿐만 아니라 전 세계 국가에 미치는 영향이 지대할 것으로 보인다. 특히 최근 희토류가 4차 산업혁명의 필수품으로 떠오르면서 몸값 상승도 우려되고 있다.

◆독특한 성질로 대체품 없어 더 귀한 희토류

지난 8월 홍콩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에 따르면 중국희토류산업협회는 성명을 통해 “우리의 산업 지배력을 미국과 무역 전쟁에서 무기로 쓸 준비가 돼 있다”며 “미국 소비자들은 미국 정부가 부과한 관세 부담을 짊어져야 할 것”이라고 선언했다. 이 협회에는 중국 내 희토류 채굴·처리 업체 300여 개가 회원으로 속해 있다.

이는 미국의 대중 무역 관세 인상과 중국 통신 장비 업체 ‘화웨이’에 대한 거래 제한 조치에 따른 것이었다. 희토류는 반도체·스마트폰을 비롯해 전자 기기, 미사일과 같은 군사 무기에 다양하게 쓰인다. 특히 대체재가 없다는 점에서 산업의 필수 원료로 여겨진다. 희토류는 제품을 만들 때 소량이 사용되지만 화학적 성질이 독특해 대체 물질이 없어 ‘전략자원’으로 분류된다.

미국 또한 상당량의 희토류를 중국에서 수입하고 있다. 연간 1만1000톤 이상의 희토류를 수입하고 있고 수입량의 80%는 중국에서 중간 공정이 진행된다. 대책이 필요했던 미국이 선택한 방법은 중국 외에 희토류 생산 국가와의 협력을 강화하는 것이다. 미국과 캐나다는 지난 6월 희토류 광물 공급을 위한 안보 협력 체계를 구축하기로 했다.

저스틴 트뤼도 캐나다 총리는 9월 30일 “미국과 캐나다 양국은 중국에 대한 희토류 의존도를 줄이는 방법을 논의 중”이라고 밝혔다. 또 호주와도 안정적인 희토류 수급에 관한 의견을 나눴다. 8월 12일자 AFP통신에 따르면 호주는 미국과 영국 등 동맹국들에 희토류를 안정적으로 공급하기 위해 생산량을 확대할 것이라고 밝혔다.

세계 최대 희토류 생산 국가인 중국은 과거에도 희토류를 무기로 앞세워 외교 분쟁에 이용한 바 있다. 2010년 센카쿠열도(댜오위댜오열도)를 둘러싼 일본과의 영토 분쟁이 발생하자 중국은 일본을 상대로 희토류 수출 제한 조치를 내렸다.

그 결과 전기자동차와 하이브리드 자동차 모터에 필수인 고성능 자석의 원료가 되는 ‘네오디뮴(Nd)’과 자석의 내열성을 높이는 ‘디스프로슘(Dy)’의 가격이 2010년 전후 10배 이상 폭등했다. 위기를 겪은 일본은 희토류 수입처를 다각화했고 대체 기술 등 유관 기술 개발에 총력을 기울였다.

중국이 외교 분쟁에서 희토류를 앞세우는 이유는 무엇일까. 사실 희토류는 중국 영토에만 집중적으로 매장된 자원은 아니다. 중국의 매장량 점유율은 37%이며 그 뒤를 잇는 것은 브라질로 16%를 보유하고 있다. 하지만 실질적인 공급 비율은 무려 90%다. 중국이 희토류 생산에서 독점적 지위를 차지할 수 있었던 것은 자국의 정책과 함께 안이한 환경의식이 어우러진 결과다.

우선 희토류의 분리·정제 작업은 심각한 환경오염을 유발해 중국과 말레이시아 등 개발도상국에서 주로 이뤄진다. 여기에 중국 정부는 지난 20여 년에 걸쳐 저가의 대량 물량 공급을 통해 희토류 시장을 석권했다.

또 2010년 희토류 수출 쿼터를 40%로 제한하며 희토류 가격 급등을 주도하기도 했다. 이는 향후 희토류가 산업 전쟁에서 요긴하게 쓰일 수 있는 무기라고 파악했기 때문이었다.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도 지난 5월 20일 희토류 매장지를 방문해 “희토류는 중요한 전략적 자원”이라고 강조했다.

다만 중국의 희토류 수출 규제는 센카쿠열도 사태처럼 영향력이 크지는 않을 것이란 전망이다. 이종민 포스코경영연구소 수석 연구위원은 ‘중국 희토류 자원 무기화, 그 위력과 한계’ 보고서를 통해 “2010년 중국 수출 규제로 일본과 미국을 비롯한 세계 여러 나라가 중국의 자원 무기화의 위협을 느꼈고 이미 적정 규모의 자원 개발이 이뤄졌다”고 분석했다.

희토류 대체 기술이 아직 완벽하지는 않지만 중국이 수출 제한 조치를 본격적으로 시작한다면 대체 기술 개발을 가속화할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한국, 희토류 수입 의존…‘대체 기술’ 시급해

희토류를 둘러싼 강대국의 자원전쟁이 본격화될 조짐이 보이면서 ‘자원 빈국’ 한국의 걱정이 커지고 있다. 만약 중국이 희토류 생산을 줄인다면 희토류 값이 폭등할 가능성도 있기 때문이다. 여기에 최근 일본과의 무역 분쟁을 겪으며 국내에서도 희소금속 등 광물자원을 확보할 수 있는 다양한 방법을 마련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한국광물자원공사에 따르면 한국의 희토류 자원은 임진강 하류와 서해안 해변에 부존한다. 1950년 한국희토류개발이 충청남도 서천군 비인면에서 모나자이트를 생산해 정광 형태로 수출하기도 했지만 지금은 광산 생산이 전무하고 정제 기술 낙후로 국내 수요 전량을 수입에 의존한다. 수입된 중간화합물은 최종 제품의 원료로 사용된다.

원료 상태의 희토류는 분리 원소의 화합물 형태로 수입되며 수입량이 가장 많은 세륨은 주로 연마제·촉매제·유리 산업에 사용된다. 한국광물자원공사 관계자는 “1990년대 후반부터 형광체 생산 개시로 이트륨과 유로퓸의 혼합 형태로 연간 500톤 내외가 수입된다”고 설명했다. 삼성SDI와 LG화학 등이 주요 수입자다.

포스코경영연구소에 따르면 한국의 희토류 수입 물량은 2018년 기준 3246만 톤, 금액은 2015년 5959만 달러(약 719억원)에서 2018년 6935만 달러(약 837억원)로 꾸준히 증가했다. 국가별 수입 비율은 지난해 기준으로 중국 42%, 일본 39%, 프랑스 3% 순이다.

하지만 중국에서 원료를 수입해 일본에서 가공·수출하는 물량 비중이 커 한국 또한 실질적으로는 중국 의존도가 높은 편이다. 이에 따라 한국 또한 희토류 재활용이나 대체 기술을 개발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국내에서 희토류 비축을 담당하는 기관은 한국광물자원공사다. 광물자원공사는 희토류를 포함한 희유금속들에 대해선 60일 치를 미리 전략적으로 비축해 두고 있다. 급격한 가격 변동과 수급 리스크에 대비하기 위해서다.

이렇게 비축한 광물들은 필요한 곳에 현물로 대여해 주거나 비축 시기가 오래된 광물은 구매를 통해 방출한다. 광물자원공사는 “희토류는 반제품과 완제품이 너무 다양해 비축이 어려우므로 원료(화합물·금속) 부문을 비축 검토 대상으로 삼는다”고 밝혔다.

mjlee@hankyung.com




[본 기사는 한경비즈니스 제 1245호(2019.10.07 ~ 2019.10.13)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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