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모레퍼시픽 비레디 “아이디어만 있으면 벤처처럼 일할 수 있어요”

[비즈니스 포커스 : 기업 문화 혁신 탐방③ 아모레퍼시픽]
-사내 벤처 육성해 매년 신규 브랜드 론칭-기획에서 출시까지 빠른 업무 진행 가능




[한경비즈니스=안옥희 기자] 아모레퍼시픽이 최근 ‘Z세대(Gen Z·젠지)’ 남성을 겨냥한 메이크업 브랜드 ‘비레디(BeREADY)’를 론칭해 남성 메이크업 시장에 돌풍을 일으키고 있다. 사장 직속 사내 벤처로 지난 9월 첫 제품을 론칭한 비레디는 올해 매출 목표를 3주 만에 달성하며 시장에 존재감을 각인시켰다.

◆ 비레디, 린 스타트업으로 ‘틈새’ 공략

11월 6일 아모레퍼시픽그룹 용산 사옥 21층에 자리 잡은 비레디 사무실을 방문했다. 21층 한쪽에는 이제까지 선발된 1~4기 린 스타트업들의 사무실이 모여 있고 반대편에는 공유 오피스로 활용할 수 있는 공간이 연결돼 있다.

아모레퍼시픽 속의 ‘작은 위워크’ 같은 분위기였다. 공유 오피스 공간과 사무 공간은 분리돼 있지만 중간 통로로 자유롭게 오갈 수 있다. 린 스타트업 팀들은 이곳에서 다른 팀과 아이디어를 공유하고 협업을 진행하기도 한다.

직원들은 “같은 공간에 모여 있어 앞 기수 린 스타트업의 성공 노하우와 경험을 공유하기에도 좋다”고 입을 모았다.

기획부터 실행까지 모든 의사결정이 모두 한 공간에서 이뤄져 업무 프로세스가 리드미컬하면서도 속도감 있게 막힘없이 이뤄지는 것도 장점이다.

허석철 비레디 브랜드 담당은 “메이크업 브랜드는 스피드가 생명이어서 빠른 의사결정이 중요한데 린 스타트업이 사장실 직속 조직이고 담당들에게 권한을 위임해 업무 진행 속도가 굉장히 빠르다”고 설명했다.

또 “린 스타트업은 기존 업무 프로세스에 갇히면 안 된다. 새롭고 트렌디하고 재미있는 제품이 나올 수 있게 내부적으로 불필요한 업무 프로세스를 과감하게 정리한 것도 성과를 내는 데 도움이 됐다”고 말했다.

남성 화장품 시장은 1조3000억원에 육박하지만 제품군이 아직 여성 화장품만큼 세분되지 않은 상태다. 남성 화장품 제품은 헤어·보디·기초화장품에 머물러 있다.

남성 화장품 시장은 지속 성장하고 있지만 주력인 여성 화장품 시장보다 작고 실패할 가능성도 있기 때문에 아직은 조심스러운 시장이다. 이런 분위기에서 비레디는 색조 시장이라는 틈새를 공략했다. 최초의 남성 전용 메이크업 브랜드를 과감하게 선보이면서 업계도 비레디의 행보에 주목하고 있다.

비레디는 출범 스토리부터 남다르다. 아모레퍼시픽 직원 4명으로 구성된 사내벤처팀인 비레디는 허석철·오규민·김중용·이규재 비레디 브랜드 담당의 ‘남성 화장품 시장이 커지고 있는데 왜 아직 제대로 된 남성 전용 메이크업 브랜드는 없을까’라는 물음에서 출발했다.

비레디는 자연스러운 메이크업을 즐기는 Z세대 남성 소비자가 늘고 있지만 기존 시장에 이들을 위한 색조 브랜드가 없었다는 점에 주목했다.

남성들도 당당하게 피부 결점을 커버하고 일상적으로 메이크업을 즐길 수 있도록 전용 색조 브랜드를 만들자는 생각으로 상품 개발·마케팅·글로벌·영업 등을 담당하던 직원들이 의기투합해 팀을 꾸렸다.

비레디는 올 초 사내 벤처 프로그램인 ‘린 스타트업’에 선발되면서 제품을 시장에 선보일 기회를 잡았다. 아모레퍼시픽에서 젊은 남성을 위한 전용 색조 브랜드 론칭은 이번이 처음이다.

비레디의 탄생에는 ‘아모레퍼시픽 최초의 남성 전용 색조 브랜드’라는 점도 주효했다. 허석철 담당은 “에뛰드하우스에서 여성 화장품 개발 업무를 하면서 한국은 K뷰티의 강국인데도 남성을 위한 메이크업 제품이 너무 부족하다고 느꼈다”며 “남자들이 자신의 피부 톤에 맞는 다양한 메이크업 제품들을 경험하게 해주고 싶어 시너지를 낼 수 있는 팀원들을 모아 린 스타트업 공모에 참여했다”고 말했다.

비레디가 가장 먼저 선보인 제품은 남성의 피부 특성에 맞춘 5가지 색상의 파운데이션과 립밤이다. 매우 밝은 피부 톤부터 매우 어두운 피부 톤까지 5가지 컬러로 제품을 출시했고 지속력이 높고 자연스러운 커버가 가능해 남성 고객의 호응을 얻고 있다.

비레디는 기획 단계부터 철저하게 Z세대와의 소통에 방점을 찍었다. 유튜브·인스타그램·틱톡 등 소셜 미디어를 활용해 제품을 알렸고 뷰티 유튜버를 통해 색상 고르기 팁을 제공한다.

제품은 아모레퍼시픽 온라인몰과 아모레퍼시픽 본사 2층에 있는 아모레 스토어에서만 살 수 있다. 소셜 미디어의 적극적인 활용과 온라인 판매 중심 전략도 린 스타트업이기 때문에 가능했다.



◆ 아모레식 ‘위워크’…파일럿 형태 브랜드 운영

아모레퍼시픽은 2016년부터 사내 벤처 프로그램을 통해 창의적인 브랜드를 육성하는 ‘린 스타트업’ 제도를 시행 중이다.

작은 규모의 태스크포스(TF) 팀을 구성해 민첩하고 새로운 시도를 통해 창의적인 브랜드를 육성하는 기반을 다지고 창조적인 니치 브랜드의 신규 개발을 장려하겠다는 생각으로 시작했다.

큰 조직에서 하기 힘든 파일럿 형태의 브랜드 운영을 통해 빠른 실행과 빠른 실패를 독려하는 방식이다. 린 스타트업은 짧은 시간 동안 제품을 만들고 성과를 측정해 다음 제품 개선에 반영하는 과정을 반복해 성공 확률을 높이는 방법론을 뜻한다.

아모레퍼시픽은 끊임없이 가설을 세우고 방향을 전환하면서 지속적으로 실행하고 단계별 시행착오를 통해 변화를 추구하는 ‘테스트 앤드 런(test & learn)’의 방법론을 강조한다.

이 같은 방식으로 2016년 1월부터 3~4명의 팀원으로 구성된 린 스타트업 TF팀을 통해 해마다 신규 브랜드를 내놓고 있다.

비레디의 성공 비결 역시 이 같은 아모레퍼시픽의 안정적이고 체계적인 사내 벤처 육성 제도에서 찾을 수 있다. 린 스타트업은 직원들이 혁신적인 아이디어를 구현할 수 있도록 전폭적으로 지원하되 실패나 성과에 대해서도 책임을 묻지 않는 점이 특징이다.

비레디는 린 스타트업답게 군더더기 없이 핵심에만 집중하기 위해 불필요한 업무 프로세스를 과감하게 없앴다. 모든 의사결정은 오직 실무자 4명의 몫이다.

팀장이나 임원을 거치는 결재 라인이 없기 때문에 업무 진행 과정과 속도가 기존 조직에 있을 때와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수평적이고 빠르다. 그 결과 비레디는 올 초 린 스타트업에 선발된 이후 상반기 준비 작업을 거쳐 하반기 제품 론칭에 이어 이미 매출액에서도 의미 있는 성과를 달성했다.


[인터뷰] 허석철 아모레퍼시픽 비레디 브랜드 담당

“린 스타트업 하며 업무 주도성·오너십 생겼죠”




남성 전용 메이크업 브랜드 ‘비레디’를 운영하는 허석철 비레디 브랜드 담당은 린 스타트업 제도에 대해 “기존에는 제품을 개발하고 출시하고 판매되는 부분만 주로 생각했는데 브랜드를 새로 만들고 키워 나가면서 ‘내 일을 한다’는 오너십이 생겼다”고 말했다.

업무에 대한 책임감이 더 강해진 것도 린 스타트업을 하며 체감한 또 다른 변화라고 설명했다. 사내 벤처의 성공 확률을 높이기 위해서는 기존 방식을 탈피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기존에 한 가지 업무만 담당하던 때와 비교해 어떤 점이 달라졌나.

“기존에는 상품 개발(BM) 업무가 메인이었기 때문에 제품에만 초점을 맞췄다. 하지만 지금은 제품이 고객에 도달하기까지 바이럴, 홍보, 영상, 콘텐츠, 각종 테스트, 수요 예측 등 전 과정에 직접 참여해 진행하기 때문에 진정한 마케터가 된 것 같다고 느낀다. 제품 기획부터 시장에 출시되기까지의 전 과정에서 함께 호흡하며 전보다 더 깊이 생각하게 되고 더 많은 배움을 얻을 수 있어 만족스럽다.”

-린 스타트업을 하면 어떤 혜택을 볼 수 있나.

“갑갑한 사무 공간을 벗어나 21층의 스타트업 팀들이 일하는 특별한 공간에서 일할 수 있다. 팀장 승인이 아니라 팀원들끼리의 의사결정을 통해 주도적으로 일할 수 있는 점도 큰 혜택이라고 본다.”

-성과 평가와 실패에 대한 부담감은 없나.

“연초에 팀원들끼리 합의해 자체적으로 목표를 설정하고 있다. 위에서부터 톱다운(top-down) 방식으로 목표를 부여받는 것이 아니라 자체적으로 목표를 설정해 진행하기 때문에 더 현실적인 성과를 도출할 수 있다.”

-사내 벤처 제도가 실질적인 성과로 이어지기 위해 어떤 노력을 해야 할까.

“기존에 해오던 업무 수행 방식에서 탈피해야 한다. 큰 기업들은 업무에 대한 자체 프로세스나 룰이 있기 마련이다. 이러한 것들에 얽매여 빠른 시장 흐름에 대응하지 못한다면 사내 벤처 역시 실패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 기존에 우리가 해오던 불필요한 업무와 시스템, 프로세스가 무엇인지 냉철하게 점검하고 효율적으로 일하는 방법을 고민하는 것이 사내 벤처 제도의 성과를 높이는 방법이라고 생각한다.”


ahnoh05@hankyung.com



[본 기사는 한경비즈니스 제 1250호(2019.11.11 ~ 2019.11.17)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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