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 5000억 엔 기부금 모아…경쟁 과열되며 제도 맞지 않은 ‘답례품’ 내놓기도
[전영수 한양대 국제대학 대학원 교수]지방 없는 도시는 상상할 수 없다. 기울어진 운동장을 바로잡을 균형 발전이 요구되는 이유다. 문제는 방법이다. 자원 배분의 재조정이 불가피해 반발이나 논란의 여지가 많다. 흐름을 거스를 수 있는 부활 묘책이 간절하다.
일본은 ‘고향 납세’란 제도로 승부수를 띄웠다. 그럼에도 완벽하지 않다. 제도가 도입된 지 10여 년이 흐른 지금, 새로운 갈등 국면에 들어섰다.
◆납세라고 쓰고 기부라고 읽는 ‘고향 납세’
일본의 고향 납세는 대성공이었다. 2018년을 기준으로 고향 납세로 5000억 엔(약 5조원)의 기부금을 모았다. 부인하지 못할 급성장세다. 명분도 실리도 쥔 독특한 사업 구조 덕분이다. 고향 납세는 지역 부활을 대의명분으로 내세웠다.
역외 주민이 기부금을 지역에 보내면 지역 활성화의 금전 자원으로 활용된다. 재정이 악화돼 돈이 없는 지방자치단체엔 큰 힘이다. 뭔가 답례가 필요하다. 반복 구매를 받기 위해서도 그렇다. 이에 따라 지역의 답례품으로 감사의 메시지를 보낸다. 답례품은 당연히 지역 경제에 기여한다. 팔리지 않던 지역 물품과 서비스를 지자체가 사주니 수요 자극제로 제격이다.
기부자에게도 나쁠 게 거의 없다. 고향 납세는 사실 납세라고 쓰고 기부라고 읽는다. 특정 지자체에 기부한 후 기부 금액을 거주 지자체에 신고하면 그만큼 공제해 준다. 자기부담금 2000엔(약 2만원)을 뺀 금액에 소득·주민세를 빼주는 제도다.
가족·소득별로 공제액이 다르다. 상한액까지 내도 2000엔을 뺀 만큼 전액 공제된다. 즉 본인의 공제 상한액 안에서는 2000엔만 빼면 얼마든지 된다. 기부의 숫자·금액·횟수는 무제한이다. 일례로 연봉 700만 엔(약 7470만원)의 급여 소득자가 3만 엔(약 32만원)을 기부하면 2만8000엔(약 30만원)이 공제된다.
기부지만 공제이기 때문에 답례품까지 감안하면 손해 볼 일은 없다. 어차피 필요한 농산물을 생돈 내고 사느니 답례품으로 받는 게 실리라는 명분도 안겨주기 때문이다.
결국 고향 납세는 ‘세금공제+답례물품+지역재생’의 다목적 카드다. 중앙·지방정부도 좋다. 지역이 망가지면 어차피 투입될 돈이기 때문에 세제 혜택으로 직접화했을 뿐이다. 길게 보면 지자체의 브랜드 효과가 높아진다. 답례품이 화제가 되면 소셜 네트워크 서비스(SNS) 등에서 입소문이 발생해 관심 유도와 평판 향상으로 귀결된다. 관광 차원의 교류 인구로도 연결된다.
중앙 정부도 거든다. 더 편한 방식으로의 기부 독려책을 내놓았다. 2015년 폭발적인 성장세를 보였는데, 이때 5개 이내 지자체에 기부하면 확정 신고를 하지 않아도 공제해 주는 원스톱 특례 제도가 도입된 결과다.
기부액은 388억 엔(약 4140억원)에서 1652억 엔(약 1조7625억원)으로 1년 만에 급증했다. 종합하면 2016년 고향 납세로 225만 명이 납부한 2540억 엔(약 2조7101억원)이 기부됐고 이 중 1767억 엔(약 2조8854억원)이 공제됐다.
문제는 기부금을 내면 주는 답례품에서 발생한다. 제도가 시작된 2008년 이후 얼마까지는 괜찮았는데 답례품의 과당경쟁이 발생하면서 갈등이 증폭됐다. 지금도 논란이 되는 사안은 기부금보다 답례품에서 발생한다. 답례품에 따라 기부액과 빈도가 결정되는 부작용 때문이다.
답례품 시장마저 형성된다.
답례품을 소개·중개하는 사이트도 많다. 금액·지역·품목별로 구분해 원하는 답례품을 배치한다. 종류는 20만 개를 웃돈다. 2000엔만 내면 사실상 원하는 품목을 거저 얻을 수 있어 매력적이다. 포인트 제도로 기부자끼리의 상호 교환을 주선하는 사이트도 있다. 재거래다.
답례품의 끝은 없다. 갈수록 지역 한정의 제품·서비스를 벗어나 고급 식자재·가전제품·상품권 등으로 확산된다. 쇼핑 카탈로그처럼 변질된 사이트도 흔하다. 상품권은 전매 목적의 재활용 수요도 적지 않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화제를 모을 품목 고안이 지자체의 당면 과제다.
노력은 성과로 되돌아온다. 최근 지자체 사마가와초는 여행권을 선보였다. 이후 기부금이 쇄도했다. 2018년 3월 1개월 한정 이벤트로 여행권을 내놓았는데 기부금이 2017년보다 150배 급증했다. 연간 1000만 엔(약 1억원)에서 15억 엔(약 160억원)으로 불어났다. 여행권 말고도 답례품을 준비했지만 총액의 96%가 쏠렸다. 놀랄 정도였다.
기부금의 50% 가격대에 맞춘 답례 비율인 데다 여행권이 흔하다는 점에서 더 그렇다. 굳이 꼽자면 여행권 기간 한정이 몰린 12월이 아닌 3월 답례품이란 점 정도다.
◆누구도 책임지지 않는 공공사업이란 비판도
답례품 경쟁은 지자체 간 경쟁으로 번진다. 분명한 온기 차이 때문이다. 대체적인 기부 흐름은 ‘도시→농촌’으로 향한다. 도시 주민의 농촌 기부가 보통이다. 도시 지자체의 불만이 높아진 이유다. 거주민이 다른 곳에 기부하면 세수를 빼앗기는 것과 같기 때문이다.
특산물이 부족한 도시 지자체로선 답례품 선택지도 적다. 지자체로선 제로섬 게임이기 때문에 경쟁 낙오가 두렵다. 기부하든지 기부 받든지 선택지는 하나뿐이다. 주민 기부가 많으면 손해(세수 유출)이기 때문에 외지 기부를 늘리는 게 결정적이다. 즉 기부 촉진책으로 매력과 값어치가 충분한 답례품이 관건이다. 제도의 취지에서 벗어난 부작용인 셈이다.
고향 납세의 칼자루는 중앙 정부가 쥐고 있다. 세제공제가 제도의 뿌리이기 때문에 중앙 정부의 결심이 사업 성패를 가른다. 정부는 도를 넘은 답례품의 과당경쟁이 불거지자 브레이크를 걸었다. 2019년 6월부터 실질적인 인허가제로 제도 방침을 선회했다. 제도 대상의 지자체를 지정하겠다는 의미다. 답례품 값을 기부액의 30% 이하로 묶고 지역산에 한정하며 과도한 선전 홍보 등을 보고 지정 여부를 정한다는 방침이다. 모두 8가지 체크 항목을 따를 때 허용된다. 지정되지 않으면 기부해도 세제 우대를 받을 수 없다.
이에 따른 반향이 적지 않다. 총무성은 2019년 6월 아마존 상품권을 답례품으로 제공한 지자체 이즈미사노를 고향 납세 제도에서 제외했다. 이른바 ‘아마존 100억 엔 환원’ 프로그램이 문제였다. 지역 자원에 한정해 답례하고 금액 상한을 30%로 하자는 권고를 무시, 다른 지자체에 좋지 않은 선례를 남겼다는 이유다. 취지에서 벗어난 불공정 거래라고 봤다.
해당 지자체는 법정에 호소할 방침이다. 논쟁은 뜨겁다. 자치 분권에 맞지 않게 중앙이 지방을 기술적으로 통제한다는 쪽과 금권으로 기부금을 모아 다른 지자체의 세수 유출을 초래한다는 찬반양론이 치열하다. 그럼에도 공통적인 것은 지금처럼 운영해선 곤란하다는 지적이다.
답례품은 지역 경제의 활력 지점이다. 다만 선정 재량권은 지자체 몫이다. 기획공모·경쟁입찰 등이 많지만 엄밀하지는 않다. 가격이나 품질도 뒤로 밀린다. 포인트는 기부 확대로 집중된다. 어떤 상품·서비스로 기부금을 더 모을지가 포인트다. 경제 논리는 밀린다. 공무원은 오직 이것만 따져 고른다.
기부자도 가격에 둔감하다. 어떤 답례품이든 세금보다 낫다. 납품 기업은 굳이 품질을 신경 쓸 필요가 없다. 선전이나 홍보도 지자체가 해주니 납품으로 끝이다. 품질이나 가격을 개선하는 혁신 동기는 떨어진다. 길게 봐 좀비 기업이 될 수밖에 없다. 일각에선 누구도 책임지지 않는 새로운 ‘공공사업’이라고 질타한다.
[본 기사는 한경비즈니스 제 1250호(2019.11.11 ~ 2019.11.17) 기사입니다.]
[전영수 한양대 국제대학 대학원 교수]지방 없는 도시는 상상할 수 없다. 기울어진 운동장을 바로잡을 균형 발전이 요구되는 이유다. 문제는 방법이다. 자원 배분의 재조정이 불가피해 반발이나 논란의 여지가 많다. 흐름을 거스를 수 있는 부활 묘책이 간절하다.
일본은 ‘고향 납세’란 제도로 승부수를 띄웠다. 그럼에도 완벽하지 않다. 제도가 도입된 지 10여 년이 흐른 지금, 새로운 갈등 국면에 들어섰다.
◆납세라고 쓰고 기부라고 읽는 ‘고향 납세’
일본의 고향 납세는 대성공이었다. 2018년을 기준으로 고향 납세로 5000억 엔(약 5조원)의 기부금을 모았다. 부인하지 못할 급성장세다. 명분도 실리도 쥔 독특한 사업 구조 덕분이다. 고향 납세는 지역 부활을 대의명분으로 내세웠다.
역외 주민이 기부금을 지역에 보내면 지역 활성화의 금전 자원으로 활용된다. 재정이 악화돼 돈이 없는 지방자치단체엔 큰 힘이다. 뭔가 답례가 필요하다. 반복 구매를 받기 위해서도 그렇다. 이에 따라 지역의 답례품으로 감사의 메시지를 보낸다. 답례품은 당연히 지역 경제에 기여한다. 팔리지 않던 지역 물품과 서비스를 지자체가 사주니 수요 자극제로 제격이다.
기부자에게도 나쁠 게 거의 없다. 고향 납세는 사실 납세라고 쓰고 기부라고 읽는다. 특정 지자체에 기부한 후 기부 금액을 거주 지자체에 신고하면 그만큼 공제해 준다. 자기부담금 2000엔(약 2만원)을 뺀 금액에 소득·주민세를 빼주는 제도다.
가족·소득별로 공제액이 다르다. 상한액까지 내도 2000엔을 뺀 만큼 전액 공제된다. 즉 본인의 공제 상한액 안에서는 2000엔만 빼면 얼마든지 된다. 기부의 숫자·금액·횟수는 무제한이다. 일례로 연봉 700만 엔(약 7470만원)의 급여 소득자가 3만 엔(약 32만원)을 기부하면 2만8000엔(약 30만원)이 공제된다.
기부지만 공제이기 때문에 답례품까지 감안하면 손해 볼 일은 없다. 어차피 필요한 농산물을 생돈 내고 사느니 답례품으로 받는 게 실리라는 명분도 안겨주기 때문이다.
결국 고향 납세는 ‘세금공제+답례물품+지역재생’의 다목적 카드다. 중앙·지방정부도 좋다. 지역이 망가지면 어차피 투입될 돈이기 때문에 세제 혜택으로 직접화했을 뿐이다. 길게 보면 지자체의 브랜드 효과가 높아진다. 답례품이 화제가 되면 소셜 네트워크 서비스(SNS) 등에서 입소문이 발생해 관심 유도와 평판 향상으로 귀결된다. 관광 차원의 교류 인구로도 연결된다.
중앙 정부도 거든다. 더 편한 방식으로의 기부 독려책을 내놓았다. 2015년 폭발적인 성장세를 보였는데, 이때 5개 이내 지자체에 기부하면 확정 신고를 하지 않아도 공제해 주는 원스톱 특례 제도가 도입된 결과다.
기부액은 388억 엔(약 4140억원)에서 1652억 엔(약 1조7625억원)으로 1년 만에 급증했다. 종합하면 2016년 고향 납세로 225만 명이 납부한 2540억 엔(약 2조7101억원)이 기부됐고 이 중 1767억 엔(약 2조8854억원)이 공제됐다.
문제는 기부금을 내면 주는 답례품에서 발생한다. 제도가 시작된 2008년 이후 얼마까지는 괜찮았는데 답례품의 과당경쟁이 발생하면서 갈등이 증폭됐다. 지금도 논란이 되는 사안은 기부금보다 답례품에서 발생한다. 답례품에 따라 기부액과 빈도가 결정되는 부작용 때문이다.
답례품 시장마저 형성된다.
답례품을 소개·중개하는 사이트도 많다. 금액·지역·품목별로 구분해 원하는 답례품을 배치한다. 종류는 20만 개를 웃돈다. 2000엔만 내면 사실상 원하는 품목을 거저 얻을 수 있어 매력적이다. 포인트 제도로 기부자끼리의 상호 교환을 주선하는 사이트도 있다. 재거래다.
답례품의 끝은 없다. 갈수록 지역 한정의 제품·서비스를 벗어나 고급 식자재·가전제품·상품권 등으로 확산된다. 쇼핑 카탈로그처럼 변질된 사이트도 흔하다. 상품권은 전매 목적의 재활용 수요도 적지 않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화제를 모을 품목 고안이 지자체의 당면 과제다.
노력은 성과로 되돌아온다. 최근 지자체 사마가와초는 여행권을 선보였다. 이후 기부금이 쇄도했다. 2018년 3월 1개월 한정 이벤트로 여행권을 내놓았는데 기부금이 2017년보다 150배 급증했다. 연간 1000만 엔(약 1억원)에서 15억 엔(약 160억원)으로 불어났다. 여행권 말고도 답례품을 준비했지만 총액의 96%가 쏠렸다. 놀랄 정도였다.
기부금의 50% 가격대에 맞춘 답례 비율인 데다 여행권이 흔하다는 점에서 더 그렇다. 굳이 꼽자면 여행권 기간 한정이 몰린 12월이 아닌 3월 답례품이란 점 정도다.
◆누구도 책임지지 않는 공공사업이란 비판도
답례품 경쟁은 지자체 간 경쟁으로 번진다. 분명한 온기 차이 때문이다. 대체적인 기부 흐름은 ‘도시→농촌’으로 향한다. 도시 주민의 농촌 기부가 보통이다. 도시 지자체의 불만이 높아진 이유다. 거주민이 다른 곳에 기부하면 세수를 빼앗기는 것과 같기 때문이다.
특산물이 부족한 도시 지자체로선 답례품 선택지도 적다. 지자체로선 제로섬 게임이기 때문에 경쟁 낙오가 두렵다. 기부하든지 기부 받든지 선택지는 하나뿐이다. 주민 기부가 많으면 손해(세수 유출)이기 때문에 외지 기부를 늘리는 게 결정적이다. 즉 기부 촉진책으로 매력과 값어치가 충분한 답례품이 관건이다. 제도의 취지에서 벗어난 부작용인 셈이다.
고향 납세의 칼자루는 중앙 정부가 쥐고 있다. 세제공제가 제도의 뿌리이기 때문에 중앙 정부의 결심이 사업 성패를 가른다. 정부는 도를 넘은 답례품의 과당경쟁이 불거지자 브레이크를 걸었다. 2019년 6월부터 실질적인 인허가제로 제도 방침을 선회했다. 제도 대상의 지자체를 지정하겠다는 의미다. 답례품 값을 기부액의 30% 이하로 묶고 지역산에 한정하며 과도한 선전 홍보 등을 보고 지정 여부를 정한다는 방침이다. 모두 8가지 체크 항목을 따를 때 허용된다. 지정되지 않으면 기부해도 세제 우대를 받을 수 없다.
이에 따른 반향이 적지 않다. 총무성은 2019년 6월 아마존 상품권을 답례품으로 제공한 지자체 이즈미사노를 고향 납세 제도에서 제외했다. 이른바 ‘아마존 100억 엔 환원’ 프로그램이 문제였다. 지역 자원에 한정해 답례하고 금액 상한을 30%로 하자는 권고를 무시, 다른 지자체에 좋지 않은 선례를 남겼다는 이유다. 취지에서 벗어난 불공정 거래라고 봤다.
해당 지자체는 법정에 호소할 방침이다. 논쟁은 뜨겁다. 자치 분권에 맞지 않게 중앙이 지방을 기술적으로 통제한다는 쪽과 금권으로 기부금을 모아 다른 지자체의 세수 유출을 초래한다는 찬반양론이 치열하다. 그럼에도 공통적인 것은 지금처럼 운영해선 곤란하다는 지적이다.
답례품은 지역 경제의 활력 지점이다. 다만 선정 재량권은 지자체 몫이다. 기획공모·경쟁입찰 등이 많지만 엄밀하지는 않다. 가격이나 품질도 뒤로 밀린다. 포인트는 기부 확대로 집중된다. 어떤 상품·서비스로 기부금을 더 모을지가 포인트다. 경제 논리는 밀린다. 공무원은 오직 이것만 따져 고른다.
기부자도 가격에 둔감하다. 어떤 답례품이든 세금보다 낫다. 납품 기업은 굳이 품질을 신경 쓸 필요가 없다. 선전이나 홍보도 지자체가 해주니 납품으로 끝이다. 품질이나 가격을 개선하는 혁신 동기는 떨어진다. 길게 봐 좀비 기업이 될 수밖에 없다. 일각에선 누구도 책임지지 않는 새로운 ‘공공사업’이라고 질타한다.
[본 기사는 한경비즈니스 제 1250호(2019.11.11 ~ 2019.11.17)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