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리 하한선은 ‘0’?…마이너스 금리 채권 11조 달러


[머니 인사이트]
-2020년도 금리 변수 혼재
-전 세계 확대 재정 확산되면 국고채 금리 상승 가능성

[한경비즈니스=윤지호 이베스트투자증권 리서치본부장] 전통적인 경제 이론에서는 금리 하한을 제로로 가정해 왔다. 금리가 마이너스가 되면 화폐를 보유하지 채권을 보유할 이유가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현실은 이 같은 가정을 벗어난다.

금융 위기 이후 주요국들의 중앙은행은 경기 하방 리스크를 방어하기 위해 기준 금리 인하, 자산 매입 등 완화적 통화 정책을 실시했다. 그 결과 전 세계적으로 낮은 레벨의 금리가 형성됐다.

글로벌 금리 수준 하락과 동시에 마이너스 일드 채권 시장 규모도 2018년 말부터 상승세를 보였는데 지난 8월에는 18조 달러(약 2경1060조원)까지 확대되기도 했다. 최근에는 11조 달러(약 1경2870조원)까지 하락했지만 여전히 작지 않은 규모다.




◆미·중 무역 분쟁 이슈 2020년에도 지속 전망

마이너스 일드(수익) 채권은 마이너스 금리를 주는 채권으로, 만기까지 보유하면 손실을 보게 된다. 통상 채권 투자를 통해 얻을 수 있는 수익은 캐리 수익, 롤다운 수익, 자본 수익 등 크게 세 가지로 구분된다.

캐리 수익은 채권 투자 시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이익으로, 채권을 보유함으로써 정해진 기간마다 받는 발행 시점의 표면 금리에 따른 이익이다. 롤다운 수익은 일드 커브가 우상향할 때 시간 경과에 따라 만기가 짧아지면서 금리가 하락해 취할 수 있는 이익이다. 자본 수익은 시장 금리 하락으로 가격이 상승하면서 얻을 수 있는 이익이다.

마이너스 금리 채권에서는 롤다운 수익과 자본 수익은 유효할 수도 있지만 캐리 수익은 얻을 수가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투자자들이 마이너스 일드 채권에 투자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글로벌 경제 둔화 우려에 따른 주요국 중앙은행의 완화적 통화 정책이 지속되면서 저금리 기조가 유지될 것으로 예상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여전히 높은 대외 불확실성 때문에 안전 자산을 선호하면서 여전히 완만한 우상향을 보이는 일드 커브에 따른 롤다운 수익이 유효하기 때문이다. 마지막으로 미국 투자자는 유럽과 일본 등 선진국 시장 대비 금리가 높기 때문에 환율 변동에 대응하기 위해 마이너스 채권에 투자하고 있다.

지난 9월 이후 마이너스 일드 채권 시장 규모가 하락하고 있는 것은 미·중 무역 협상 합의 기대감, ‘노딜 브렉시트(아무런 합의 없이 영국이 유럽연합에서 탈퇴)’ 우려 완화 등 리스크 요인이 일단락되면서 글로벌 금리가 바닥을 다지고 소폭 반등한 것과 연동돼 나타난 현상이다.

또한 미국 중앙은행(Fed)과 유럽중앙은행(ECB)의 추가적 통화 완화 정책 가능성이 낮아지면서 향후 금리 방향성의 하방 압력이 둔화될 것으로 예상하기 시작한 것으로 판단된다.

그렇다면 2020년 마이너스 일드 채권 시장 규모는 확대와 축소 중 어떤 방향으로 움직일까. 마이너스 일드 채권은 글로벌 금리 변동에 민감하게 반응할 수밖에 없기 때문에 글로벌 금리 하락·상승 요인들을 점검할 필요가 있다. 2020년 금리 하락·상승 요인으로는 완화적 통화 정책, 정치적 불확실성 확대, 글로벌 무역 갈등 심화, 완화적 재정 정책 등을 꼽을 수 있다.

제롬 파월 Fed 의장은 지난 11월 13일 상하원 합동경제위원회에 출석해 “현재의 통화 정책 기조는 적절하고 금리 인하의 충분한 효과가 현실화하려면 시간이 지나야 한다”며 기준 금리 동결을 암시했다. 또한 “미·중 무역 분쟁과 맞물려 기업 투자가 위축됐지만 개인 소비는 강하고 미국 경제는 11년째 확장 국면을 지속 중인데다 우리 경제는 강한 위치에 있다”며 미국 경제를 낙관적으로 평가했다.

글로벌 제조업 부진과 교역량 감소가 지속돼 세계 경기 회복이 지연된다면 글로벌 중앙은행들은 완화적 통화 정책을 유지할 수밖에 없다. 미국·유로존·일본 등 선진국 중앙은행은 이머징 국가보다 상대적으로 기준 금리 인하 여력이 제한적인 만큼 자산 매입 관련 완화책과 선제적 안내(포워드 가이던스) 조정 등이 가능하다.

반면 브라질·인도·인도네시아 등 이머징 국가는 상대적으로 기준 금리 인하 여력이 있기 때문에 추가 기준 금리 인하도 가능하다. 다만 Fed와 ECB가 금리 동결과 추가 완화 정책 기조 중단을 암시하고 있다는 점에 주목해야 한다. 이를 고려한다면 현 수준보다 더 낮은 레벨로 금리가 하락할 가능성은 낮아 보인다. 현 수준이 지속되거나 소폭 상승한 수준에서 등락을 반복할 것으로 예상된다.

2020년에는 브렉시트 시한(1월 31일), 미국 대통령 선거(11월 3일) 등이 예정돼 있다. 브렉시트가 시한이 재연기되면서 노딜 브렉시트 우려는 소폭 완화됐다. 하지만 12월 12일 영국 조기 총선에서 야당인 노동당이 승리한다면 또 다른 국면을 맞을 수 있는 만큼 여전히 안갯속에 있는 상황이다.

미국 대통령 선거 여론 조사 결과 민주당 후보의 승리가 예상되지만 대선 예측 모델 결과는 경제 성적표상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재선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2020년 대선에 대해 상이한 결과가 나오고 있고 트럼프 대통령에 대한 탄핵 조사 절차가 진행 중인 만큼 아직 결과를 예측하기 어렵다. 물론 공화당이 상원을 장악하고 있어 빌 클린턴 전 대통령의 탄핵 사례와 유사하게 대통령 탄핵안이 하원을 통과하더라도 상원에서 부결될 가능성이 높다.

따라서 현시점에서 트럼프 대통령의 탄핵 가능성은 매우 낮아 보이지만 만약 탄핵 조사 과정에서 대통령의 비리가 밝혀진다면 미국채 금리에 영향을 줄 수 있다. 미국채 장·단기물 금리가 트럼프 대통령의 지지율과 동일한 방향으로 움직이는 경향이 있기 때문이다.

◆글로벌 무역 전쟁 확대 가능성 높아




미·중 무역 분쟁 이슈가 2020년에도 지속될 것으로 예상되는 가운데 미국·EU 간 무역 갈등으로 확대될 가능성이 농후하다.

세계무역기구(WTO)가 지난 10월 2일 에어버스 보조금 분쟁에서 미국의 손을 들어줬고 미국은 10월 18일부터 유럽산 수입품에 대해 75억 달러(약 8조8000억원) 규모의 징벌적 관세를 부과할 것이라고 발표했다.

2020년에는 유럽연합(EU)이 제소한 보잉 보조금 분쟁 결과가 나오기 때문에 EU도 미국 수입품에 대해 징벌적 관세를 부과할 것으로 보인다. 일본과 EU 자동차에 대한 미국의 관세 부과 가능성도 있으므로 미·중에서 미·EU 간 무역 갈등으로 글로벌 무역 전쟁이 확대될 수 있다.

이에 따라 글로벌 수요 위축과 교역량 감소가 지속된다면 글로벌 경기 둔화가 더욱 심화되면서 금리 하방 압력 요인으로 작용할 것으로 판단된다.

주요국 중앙은행의 기준 금리 레벨이 낮아지면서 실효 하한 금리에 근접해 가고 있다. 실효 하한 금리를 밑도는 금리는 부작용이 있을 뿐만 아니라 저금리의 유의미한 효과가 약해진다. 선진국 중앙은행은 통화 정책 여력이 감소하고 있어 경기를 부양하기 위해서는 재정 정책을 통한 복합적인 대응이 필요한 시점이다.

마리오 드라기 ECB 전 총재와 크리스틴 라가르드 현 총재는 재정 정책 여력이 있는 국가들이 확대 재정 정책에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고 누차 강조했다. 유로존 회원국 중 그나마 재정 정책 여력이 있는 국가는 독일과 네덜란드인데, 독일은 균형 재정의 원칙을 고수하고 있고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도 아직은 재정 부양 패키지가 필요한 상황이 아니라는 방침을 유지하고 있다.

불행 중 다행으로 메르켈 총리의 임기가 2021년 종료되며 집권당인 기민당의 지지율이 꾸준히 하락하고 극우·극좌 포퓰리즘 정당이 득세하고 있다. 이와 함께 부진한 경제 지표가 지속되면서 독일 경기 둔화 우려가 더욱 심화되면 정책 전환을 기대할 수 있다.

12월 조기 총선이 예정된 영국은 보수당과 제1야당인 노동당의 공약에 경제 관련 내용이 많은데, 이는 정부 재정 지출이 수반될 수밖에 없다. 한국 또한 2020년 예산안에 따르면 재정 지출 규모는 약 513조5000억원(전년 대비 9.3% 증가), 적자 국채 발행은 약 60조2000억원(전년 대비 78.1% 증가)이다.

재정 지출 확대에 상응하는 수준의 재정 수입이 없으면 국채 발행이 불가피하다. 전 세계적으로 확대 재정 정책 기조가 형성되고 만약 늘어난 국채 물량을 커버할 정도의 수요가 부재하다면 재정 지출 확대는 결국 국고채 금리의 상승 요인이 될 수 있다.
[본 기사는 한경비즈니스 제 1252호(2019.11.25 ~ 2019.12.01)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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