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러지도 저러지도’ 혼돈에 빠진 한남3구역 재개발 사업


- “재입찰이냐, 수정안이냐” 결론도 못 내
- 최소 6개월 사업 지연 불가피



[한경비즈니스=차완용 기자] 결국 사달이 났다. 2003년 뉴타운 지정에 따라 16년간 재개발 사업을 추진해 온 서울 한남3구역 재개발 사업에 제동이 걸렸다. 그렇지 않아도 집값을 잡기 위해 총력을 기울이는 정부를 무시한 건설사들의 과도한 경쟁이 화를 불렀다.

정부가 조합에 입찰 무효를 선언하고 재입찰하라고 권고한 것이다. 이에 따라 한남3구역 재개발사업조합은 11월 28일 정기 총회를 열고 향후 입찰 방안을 논의했지만 아무것도 결정하지 못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 과정에서 일부 조합원들은 수정 제안서 제출과 재입찰을 놓고 이견을 보이면서 갈등이 표출되기도 했다. 결국 한남3구역 재개발 사업 시공사 선정은 적어도 6개월 정도 미뤄질 것으로 보인다.

◆ 칼 갈은 정부, ‘시공사 입찰 무효’ 초강수

한남3구역 재개발 사업지는 한남동 686 일대 38만6395.5㎡다. 분양 4940가구, 임대 876가구 등 총 5816가구를 짓는 대규모 재개발 사업이다. 사업비 7조원, 공사비만 2조원에 이른다.

보기 드문 대형 사업이다 보니 현대건설·GS건설·대림산업 등 3개 건설사들이 수개월 전부터 한남3구역 재개발 사업을 따내기 위해 치열한 경쟁을 벌여 왔다. 저마다 백화점 입점, 프리미엄 주거 단지 건설, 은행과 맺은 금융 조달 협약 등을 내세우며 조합원의 마음을 사로잡기 위해 열띤 수주전을 펼쳤다.

이 과정에서 정부는 입찰에 참여한 현대건설·GS건설·대림산업 등 3개 건설사들의 일부 위법 행위 정황을 포착하고 특별 점검에 나섰고 건설사당 7~8건씩 총 20여 건의 법령 위반 소지 의심 사례를 적발한 것으로 알려졌다.

구체적으로 △조합원 인테리어 비용 5000만원 환급(현대건설) △3.3㎡당 분양가 7200만원 보장(GS건설) △자회사를 통한 재개발 임대주택 매입(대림산업) △이주비 전액 지원(현대건설·GS건설·대림산업) 등이 대표적이다.

주거환경정비법 제132조에서는 재산상 이익을 제공한다는 의사를 표시하거나 제공을 약속하는 행위를 금지하고 있다. 정부는 이를 근거로 3개 건설사가 사업비·이주비 등의 무이자 지원(금융 이자 대납에 따른 이자 포함) 등 재산상 이익을 직접 제공하기로 약속했다고 판단했다.

분양가 상한제 적용 지역인데도 일정 가격 이상의 분양가를 보장한다는 식으로 간접적 재산상 이익도 보장했다고 봤다. 이에 따라 정부는 시공 3개사를 모두 검찰에 수사 의뢰했고 용산구청과 조합에 입찰 무효가 될 수 있는 사유에 해당돼 시정 조치하라고 통보했다.

행정 당국이 정비 사업 시공사 수주 입찰을 점검해 업체를 수사 의뢰하고 ‘입찰 무효’라고 유권 해석을 내리기는 이번이 처음이다.

◆ 패닉에 빠진 건설사, 보증금 날릴 수도

정부의 방침은 단호하다. 한남3구역 재개발사업조합 정기 총회에 앞서 서울시청에서 기자 간담회를 열고 재입찰 방침을 분명히 했다.

김성보 서울시 주택기획관은 “시공사들이 문제가 있는 제안서를 제출했으니 기존 입찰을 중단하고 재입찰하는 게 바람직하다는 방침을 조합에 전달했다”고 말했다.

11월 26일 국토부와 한남3구역 특별 점검 결과를 발표하며 재입찰을 권고했던 방침을 조합에 다시 한 번 확인한 것이다.

정부의 압박은 주효했다. 하루 전만 해도 조합은 긴급 이사회를 열고 기존 사업 일정을 최대한 유지하기 위해 도시 및 주거환경정비법 위반 논란이 제기된 시공사의 제안만 배제한 상태에서 입찰을 그대로 추진하는 방안을 검토했다.

하지만 서울시가 재차 조합을 압박하자 아직 어떠한 결정도 내놓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다. 일단 조합은 12월 15일 조합원 총회를 다시 열고 재입찰 또는 수정 제안 수용 여부를 논의할 계획인 것으로 전해졌다.

이번 정부의 강력 조치로 발등에 불이 떨어진 곳은 건설사다. 조합이 종전 시공사의 제안서 수정으로 결정을 내리면 다행이지만 재입찰로 방향을 틀면 4500억원(각 1500억원)에 달하는 입찰 보증금은 서울시 고시(공공 지원 시공자 선정 기준 제18조)에 의거해 모두 조합에 귀속된다. 입찰 보증금을 돌려 받으려면 별도로 정부와 소송을 벌여야 한다.

다행히 기존 시공사의 제안서 수정으로 결정이 나도 문제다. 건설사들은 처음부터 다시 입찰을 준비해야 한다. 이 과정 역시 상당한 시간과 금액 지출이 발생하게 된다.

한남3구역 재개발 조합과 정비업계에 따르면 시공사 입찰 방안 결정은 도시 및 주거환경정비법 절차에 따라 집행부 의견 수렴→이사회 개최→대의원회 개최→조합 총회 결정 등으로 이뤄진다.

그리고 이사회 개최 이후는 절차별로 2~3주 가까운 시간을 유예해야 하기 때문에 총회에서 시공사 입찰 방안 결정까지 6~8주 걸리게 된다. 당장 대의원 개최를 결정하는 데도 절차상 2~3주의 시간이 필요하다.

따라서 종전 시공사의 제안서 수정과 재입찰을 결정하는 데만 2개월여가 걸리고 종전 시공사가 제안서를 수정하는 데만 3개월여 이상이 소요될 것으로 예상됨에 따라 시공사 선정은 계획보다 6개월 정도 늦어질 것으로 전망된다.

이와 별도로 이번 사태는 서울시내 재개발·재건축 사업에도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한남3구역 재개발에 참여한 현대건설·대림산업·GS건설 등은 정비 사업에서 선두를 달리고 있는 대형 건설사들이다.

수사 결과에 따라 최대 2년간 정비 사업 수주 입찰이 제한될 수도 있다. 당장 이들 회사들이 관련된 수주 사업만 서초구 반포주공1단지 3주구 재건축, 은평구 갈현1구역 재개발, 제기1구역 재건축 사업 등이다.

앞으로 진행될 재건축·재개발에도 큰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관리처분인가 전 단계로, 시공사만 선정된 서울 시내 재개발 사업장 전체 37개에 달한다. 이 중 13곳(35%)이 이들 3개 업체가 따낸 사업장으로 알려졌다.

◆ 허술한 법령 방관한 정부 책임도

한편 일각에서는 이번 한남3구역 재개발 사업의 문제가 정부의 허술한 법령 때문이라는 지적을 내놓고 있다. 주거환경정비법에 따르면 건설사 3사가 모두 제안한 이주비 지원은 재개발 사업장의 이주비 지원에 제한이 없다고 명시하고 있다.

재개발 사업에서는 추가 이주비 대여가 가능하다는 자의적 해석을 할 수 있다. 다만 정비사업비 점검 항목에 금융비용을 인근 사례와 은행 대출 금리에 비해 적정선인지 따져보게 돼 있다.

도정법 제132조 ‘그 밖의 재산상 이익 제공 의사를 표시하거나 제공을 약속하는 행위’에도 해당한다고 볼 수 있다. 이에 따라 주택담보대출비율(LTV) 40% 이상의 이주비를 건설사가 무이자로 대출 지원하겠다는 것은 법령 위반의 소지가 높다.

하지만 현재 건설사들은 ‘이율’과 관련해 입찰 제안서에 구체적으로 제안하지 않은 상황이어서 불법으로 단정 짓기는 모호하다.

현대건설이 제안한 조합원 인테리어 비용 5000만원 환급이나 GS건설이 제시한 3.3㎡당 분양가 7200만원 보장의 경우 관점에 따라 해석이 달라질 수 있다.

주거환경정비법 제29조와 관련, ‘금품·향응 또는 그 밖의 재산상 이익을 제공하거나 제공 의사를 약속하는 행위’에 해당될 수도 있지만 반대로 시공사가 조합원의 분양가를 낮췄을 때 사업 진행 중 차익을 부담하지 않는다면 조합원에게 금전적 이득을 줬다고 보기가 모호해 법적 문제가 안 된다.

대림산업이 제안한 임대주택 제로도 국회 상임위 법상으로는 법적으로 제한을 받을 만한 소지가 없다. 현행 도정법 시행령에 따르면 재개발의 경우 조합은 전체 가구 중 15% 이하를 임대주택으로 건립해야 한다.

해당 법은 2008년 국회 상임위의 대체안을 거쳐 2009년 ‘국토해양부장관, 시·도지사, 시장·군수 또는 주택공사 등은 조합이 요청하는 경우 주택 재개발 사업의 시행으로 건설된 임대주택을 인수해야 한다’고 개정됐다.

즉 조합이 요청하면 공공의 요청에 따라 매입해야 한다는 의무 규정은 있지만 공공에 임대주택을 강제로 매각하거나 임대주택을 무조건 처분해야 하는 강제 규정은 없다.

cwy@hankyung.com
[본 기사는 한경비즈니스 제 1253호(2019.12.02 ~ 2019.12.08)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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