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자 감소·부풀려진 매장량으로 감산 추세…민주당 대선 승리 시 ‘지각변동’ 예상
[뉴욕(미국)=김현석 한국경제 특파원]지난 10년간 세계 질서가 뒤바뀐 배경은 미국의 ‘셰일 혁명’이다. 중동에서 막대한 원유를 수입해야 했던 미국은 자급자족이 가능해지자 고립주의로 돌아서 무역 전쟁을 일으키고 이란과 베네수엘라 등 주요 산유국을 제재하는 등 무소불위의 힘을 휘두르고 있다. 과거 같으면 유가 폭등이 두려워 그러지 못했을 일이다.
최근 이런 셰일 혁명의 불꽃이 점점 사그라지는 게 아니냐는 의문이 제기되고 있다. 모하메드 바르킨도 석유수출국기구(OPEC) 사무총장은 지난 11월 13일 “미국 셰일오일 생산이 둔화되고 있다. 급격히 줄어들 가능성도 있다”고 밝혔다.
월스트리트저널은 11월 16일 “셰일 업자들은 채굴기를 해체하고 있고 프래킹(수압 파쇄) 장비는 놀고 있다. 그리고 에너지 회사들은 재정 긴축을 약속하고 있다”고 셰일오일 주산지인 텍사스와 오클라호마의 현 상황을 보도했다. 세계를 뒤흔들던 미국의 셰일 혁명에 무슨 일이 벌어진 것일까.
◆세계 질서를 뒤흔든 셰일 혁명, 브레이크 걸리다
“미국의 적국이 더 이상 에너지를 무기로 사용할 수 없는 세상을 상상해 보라. 멋지지 않은가.”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2016년 5월 대선 캠페인 당시 노스캐롤라이나 주에서 열린 에너지 콘퍼런스에서 “내가 대통령 임기를 마칠 때면 미국은 완전한 에너지 독립을 성취할 것”이라며 이같이 말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2017년 1월 취임 직후부터 에너지 독립에 박차를 가해 왔다. 멕시코만 연안의 석유 시추를 위해 국유지를 경매에 부쳤고 40년 만에 북극 인근의 국립 야생동물보호구역에서도 시추를 허용했다. 환경 단체의 반대로 지지부진하던 파이프라인 공사도 줄줄이 허용했다.
2차 세계대전 후 미국은 막강했다. 경제력과 군사력 모두 압도적이었다. 하지만 석유가 부족했다. 소비가 많은 데다 알래스카와 연안 지역에서의 원유 채굴을 금지했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미국은 산유국임에도 불구하고 최대 원유 수입국이었다.
이 때문에 1970년대 오일 쇼크가 터지자 큰 고통을 받았다. 유가를 안정시키는 것은 미국 대통령이 해야 할 중요한 일이었다. 미국은 중동에 항공모함 두 척을 상시 배치하는 등 강한 군사력을 투입해 유가를 안정시켰다. 세계 최대 원유 매장량을 보유한 사우디아라비아는 미국의 보호를 받으며 중동의 맹주가 됐다. 미국이 맡은 세계 경찰 역할은 중동에 그치지 않고 아프리카·남미·아시아 등지로 확산됐다.
하지만 트럼프 시대의 미국은 달라졌다. 셰일오일이 펑펑 치솟은 덕분이다. 미국의 산유량은 하루 1200만 배럴이 넘는다. 3분의 2 이상이 셰일오일이다. 작년 하반기 러시아와 사우디아라비아를 제치고 세계 최대 산유국에 오른데 이어 지난 9월에는 순수출국으로 전환됐다.
미국은 현재 핵심 산유국인 러시아·베네수엘라·이란에 한꺼번에 제재를 가하고 있다. 메건 오설리번 하버드대 케네디스쿨 교수는 “트럼프 대통령은 이제 유가 상승기에도 산유국인 이란과 베네수엘라를 동시에 공격하는 걸 어려워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동맹에 대한 태도도 달라졌다. 지난 9월 사우디아라비아가 주요 석유 시설을 공격당했지만 트럼프 대통령은 “이란 소행”이라면서도 군사 대응을 피했다. 에너지 독립이 가능해지자 이익이 없는 무역을 할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작년 7월 “무역을 하지 않는다면 엄청난 돈을 아낄 것”이라고 말했다. 보호주의 무역을 가속화하는 배경이다. 피터 자이한 안보전략가는 저서 ‘셰일 혁명과 미국 없는 세계’에서 “셰일 혁명으로 미국이 세계 질서를 유지해야 할 마지막 동기마저 사라졌다”며 “미국은 전략적으로 기존 세계를 유지하기보다 허물게 될 것”이라고 썼다.
미국에너지정보청(EIA)에 따르면 미국의 하루 원유 생산량은 작년 초 935만 배럴에서 연말 1099만 배럴을 넘겼다. 하루 약 160만 배럴이 증산됐다. 올 들어선 하루 130만 배럴 정도 늘어 1200만 배럴을 훌쩍 넘기고 있다.
하지만 이런 폭발적 증가 추세가 갑작스레 벽에 부닥칠 것이란 관측이 나오고 있다. 시장 정보 업체 IHS마킷은 최근 2020년 미국 원유 생산량은 하루 40만 배럴 증가에 그칠 것이라고 발표했다. 기존의 하루 70만 배럴 증가 전망을 바꾼 것이다. 또 2021년엔 생산량이 정체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라울 르블랑 애널리스트는 “지난 몇 년간 매년 100만 배럴 이상 증산되던 것과는 극적으로 달라질 것”이라고 말했다. OPEC도 11월 에너지 전망 보고서에서 내년 비OPEC 산유국의 하루 산유량 증가 전망을 기존보다 3만6000배럴 낮췄다. 미국의 산유량 전망을 낮춘 때문이다.
이는 셰일오일을 뽑아내는 채굴기 수로도 확인된다. 시장 정보 업체 베이커휴스는 11월 마지막 주 미국 내에서 운영 중인 채굴기가 전주보다 3개 감소한 668개라고 발표했다. 올 초 877개에서 200개 이상 감소했다. 2017년 4월 이후 가장 적다.
셰일업계의 긴축이 가장 큰 원인으로 분석되고 있다. 지난 10년간 투자자들은 셰일업계에 막대한 돈을 쏟아부었다. 하지만 유가가 급락해 이익을 제대로 돌려받지 못했다. 월스트리트저널이 조사한 29개 셰일 기업들은 지난 10년 동안 매출보다 지출이 1120억 달러(약 133조5000억원) 많았다.
이 때문에 셰일업계는 월가에서 신뢰를 잃었다. 르블랑 애널리스트는 “셰일업계는 더 이상 외부 자금을 빌릴 능력이 없다”고 말했다.
컨설팅사 코웬앤드컴퍼니가 조사한 14개 대형 셰일 업체 중 11곳이 내년에 지출을 감축할 계획이다. 체사피크에너지의 닉 델로소 최고재무책임자(CFO)는 “내년에 시추 및 전체 비용을 약 30% 줄이겠다”고 밝혔다. 이 회사는 최근 외부 자금 수혈이 막히자 채무 불이행 위험을 경고한 뒤 주가가 40% 폭락했다.
다이아몬드백에너지의 트레비스 스티스 최고경영자(CEO)는 지난 11월 3분기 실적 발표 때 “투자자들이 현금 흐름 내 지출을 요구하고 있고 외부 자금 조달이 제한됨에 따라 굴착 장비 수가 계속 감소할 것”이라며 “2020년 원유 생산량 전망치를 낮춰야 할 것”이라고 밝혔다. 센테니얼 리소스의 마크 파파 CEO도 “셰일이 향후 10년간 성장에 어려움을 겪는 환경에 처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런 셰일업계의 침체는 제조업에도 영향을 주고 있다. 지난 2년간 미국 셰일 투자가 급증하면서 지난해 에너지업계의 파이프·장비 등 관련 제조업 구매액은 480억 달러(약 57조2000억원)로 2009년의 4배에 달했다. 상당수 셰일 사업자가 값비싼 장비를 부품별로 해체해 팔거나 아예 고철로 헐값에 매각하고 있다.
셰일 굴착 장비를 제작하는 허트랜드엔터프라이즈는 올 들어 20% 정도 매출이 감소했다. 제이 제이 멀린크로드 부사장은 월스트리저널과의 인터뷰에서 “이런 관련 매출 감소세는 2020년에도 이어질 것으로 예상된다”면서 “매출을 다변화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고 말했다.
셰일 생산량의 관건은 결국 유가다. IHS 마킷은 서부텍사스산원유(WTI) 가격이 배럴당 65달러(약 7만7000원)까지 오르지 않는 한 증산은 어려울 것으로 내다봤다. 특히 유가가 50달러(약 6만원) 수준에 머무른다면 셰일업계의 투자액은 올해 작년보다 10% 감소한 1020억 달러(약 121조6000억원), 2020년에는 900억 달러(약 107조3000억원), 2021년에는 830억 달러(약 99조원)로 줄어들 것이라고 예상했다.
◆부풀려진 생산량 전망치…“아직 정점은 아니다”
투자 감소 외에 다른 요인도 있다. 우선 셰일업계의 기존 매장량 추정이 부풀려졌다는 지적이 나온다. 월스트리트저널은 “지난 5년 동안 수천 개의 셰일 광구에서 뽑아낸 석유·가스는 셰일 기업들이 사전에 투자자에게 홍보한 양보다 10~50% 적었다”고 분석했다. 파이어니어 내추럴리소스는 2015년 9월 텍사스의 이글포드 광구에서 원유를 130만 배럴 생산할 수 있을 것으로 예상했다. 하지만 현 추세를 보면 48만2000배럴에 그칠 것으로 보인다. 당초 예상보다 63% 적은 수치다.
시추비용이 적은 스위트 스폿(sweat spot) 지역에서 채굴이 거의 다 끝났다는 분석도 나온다. 하나의 셰일 광구에서 시추되는 원유의 양이 예상보다 빨리 감소하는 일이 자주 나타나고 있다. 유전 서비스 기업인 슐럼버거는 지난해 10월 연구 보고서에서 “서부 텍사스의 초기 셰일 광구 인근에 자리한 2차 광구의 생산량은 초기 광구에 비해 약 30% 적다”며 “미국 셰일 생산량 전망이 바뀔 우려가 크다”고 분석했다.
다만 아직은 유가가 오르면 셰일오일은 더 증산될 여지가 있다는 게 업계의 관측이다. 미국 증권사 스티펠의 마이크 스칼리아 연구위원은 기자와 만나 “셰일 피크(정점)를 얘기하는 사람들이 있지만 10년 내엔 그런 일이 오지 않을 것”이라며 “개발 초기처럼 급성장하는 일은 없겠지만 당분간 피크를 맞지도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셰일업계에는 또 다른 공포가 커지고 있다. 민주당의 유력 대선 주자인 엘리자베스 워런 상원의원이 당선되면 업계의 지각변동이 불가피해서다. 워런 의원은 지난 9월 대통령에 취임하면 청정에너지 계획을 부활시켜 연방 정부 토지에서 신규 시추권 부여를 중단하고 프래킹을 전면 금지하겠다고 밝혔다.
수압 파쇄는 물·화학제품·모래 등을 혼합한 물질을 고압 분사해 셰일 지층을 부수고 석유와 가스를 뽑아내는 공법이다. 셰일오일 채굴엔 필수적이지만 지하수와 토양을 오염시키고 지진을 발생시킨다는 비판을 받아 왔다. 민주당의 또 다른 대선 주자인 버니 샌더스 상원의원도 프래킹 금지를 주장하고 있다. RBC캐피털마케츠는 “워런 의원이 당선되면 에너지 업체에 큰 위험이 나타날 것”이라고 경고했다.
엑슨모빌의 닐 한센 부사장은 “프래킹을 금지하거나 미국의 석유 공급량을 위축시킨다고 해도 석유에 대한 글로벌 수요는 줄어들지 않을 것”라며 “미국의 공급 감소분은 결국 다른 국가의 업체들이 채우겠지만 그 사이 국제 유가는 크게 뛸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realist@hankyung.com
[본 기사는 한경비즈니스 제 1254호(2019.12.09 ~ 2019.12.15) 기사입니다.]
[뉴욕(미국)=김현석 한국경제 특파원]지난 10년간 세계 질서가 뒤바뀐 배경은 미국의 ‘셰일 혁명’이다. 중동에서 막대한 원유를 수입해야 했던 미국은 자급자족이 가능해지자 고립주의로 돌아서 무역 전쟁을 일으키고 이란과 베네수엘라 등 주요 산유국을 제재하는 등 무소불위의 힘을 휘두르고 있다. 과거 같으면 유가 폭등이 두려워 그러지 못했을 일이다.
최근 이런 셰일 혁명의 불꽃이 점점 사그라지는 게 아니냐는 의문이 제기되고 있다. 모하메드 바르킨도 석유수출국기구(OPEC) 사무총장은 지난 11월 13일 “미국 셰일오일 생산이 둔화되고 있다. 급격히 줄어들 가능성도 있다”고 밝혔다.
월스트리트저널은 11월 16일 “셰일 업자들은 채굴기를 해체하고 있고 프래킹(수압 파쇄) 장비는 놀고 있다. 그리고 에너지 회사들은 재정 긴축을 약속하고 있다”고 셰일오일 주산지인 텍사스와 오클라호마의 현 상황을 보도했다. 세계를 뒤흔들던 미국의 셰일 혁명에 무슨 일이 벌어진 것일까.
◆세계 질서를 뒤흔든 셰일 혁명, 브레이크 걸리다
“미국의 적국이 더 이상 에너지를 무기로 사용할 수 없는 세상을 상상해 보라. 멋지지 않은가.”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2016년 5월 대선 캠페인 당시 노스캐롤라이나 주에서 열린 에너지 콘퍼런스에서 “내가 대통령 임기를 마칠 때면 미국은 완전한 에너지 독립을 성취할 것”이라며 이같이 말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2017년 1월 취임 직후부터 에너지 독립에 박차를 가해 왔다. 멕시코만 연안의 석유 시추를 위해 국유지를 경매에 부쳤고 40년 만에 북극 인근의 국립 야생동물보호구역에서도 시추를 허용했다. 환경 단체의 반대로 지지부진하던 파이프라인 공사도 줄줄이 허용했다.
2차 세계대전 후 미국은 막강했다. 경제력과 군사력 모두 압도적이었다. 하지만 석유가 부족했다. 소비가 많은 데다 알래스카와 연안 지역에서의 원유 채굴을 금지했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미국은 산유국임에도 불구하고 최대 원유 수입국이었다.
이 때문에 1970년대 오일 쇼크가 터지자 큰 고통을 받았다. 유가를 안정시키는 것은 미국 대통령이 해야 할 중요한 일이었다. 미국은 중동에 항공모함 두 척을 상시 배치하는 등 강한 군사력을 투입해 유가를 안정시켰다. 세계 최대 원유 매장량을 보유한 사우디아라비아는 미국의 보호를 받으며 중동의 맹주가 됐다. 미국이 맡은 세계 경찰 역할은 중동에 그치지 않고 아프리카·남미·아시아 등지로 확산됐다.
하지만 트럼프 시대의 미국은 달라졌다. 셰일오일이 펑펑 치솟은 덕분이다. 미국의 산유량은 하루 1200만 배럴이 넘는다. 3분의 2 이상이 셰일오일이다. 작년 하반기 러시아와 사우디아라비아를 제치고 세계 최대 산유국에 오른데 이어 지난 9월에는 순수출국으로 전환됐다.
미국은 현재 핵심 산유국인 러시아·베네수엘라·이란에 한꺼번에 제재를 가하고 있다. 메건 오설리번 하버드대 케네디스쿨 교수는 “트럼프 대통령은 이제 유가 상승기에도 산유국인 이란과 베네수엘라를 동시에 공격하는 걸 어려워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동맹에 대한 태도도 달라졌다. 지난 9월 사우디아라비아가 주요 석유 시설을 공격당했지만 트럼프 대통령은 “이란 소행”이라면서도 군사 대응을 피했다. 에너지 독립이 가능해지자 이익이 없는 무역을 할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작년 7월 “무역을 하지 않는다면 엄청난 돈을 아낄 것”이라고 말했다. 보호주의 무역을 가속화하는 배경이다. 피터 자이한 안보전략가는 저서 ‘셰일 혁명과 미국 없는 세계’에서 “셰일 혁명으로 미국이 세계 질서를 유지해야 할 마지막 동기마저 사라졌다”며 “미국은 전략적으로 기존 세계를 유지하기보다 허물게 될 것”이라고 썼다.
미국에너지정보청(EIA)에 따르면 미국의 하루 원유 생산량은 작년 초 935만 배럴에서 연말 1099만 배럴을 넘겼다. 하루 약 160만 배럴이 증산됐다. 올 들어선 하루 130만 배럴 정도 늘어 1200만 배럴을 훌쩍 넘기고 있다.
하지만 이런 폭발적 증가 추세가 갑작스레 벽에 부닥칠 것이란 관측이 나오고 있다. 시장 정보 업체 IHS마킷은 최근 2020년 미국 원유 생산량은 하루 40만 배럴 증가에 그칠 것이라고 발표했다. 기존의 하루 70만 배럴 증가 전망을 바꾼 것이다. 또 2021년엔 생산량이 정체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라울 르블랑 애널리스트는 “지난 몇 년간 매년 100만 배럴 이상 증산되던 것과는 극적으로 달라질 것”이라고 말했다. OPEC도 11월 에너지 전망 보고서에서 내년 비OPEC 산유국의 하루 산유량 증가 전망을 기존보다 3만6000배럴 낮췄다. 미국의 산유량 전망을 낮춘 때문이다.
이는 셰일오일을 뽑아내는 채굴기 수로도 확인된다. 시장 정보 업체 베이커휴스는 11월 마지막 주 미국 내에서 운영 중인 채굴기가 전주보다 3개 감소한 668개라고 발표했다. 올 초 877개에서 200개 이상 감소했다. 2017년 4월 이후 가장 적다.
셰일업계의 긴축이 가장 큰 원인으로 분석되고 있다. 지난 10년간 투자자들은 셰일업계에 막대한 돈을 쏟아부었다. 하지만 유가가 급락해 이익을 제대로 돌려받지 못했다. 월스트리트저널이 조사한 29개 셰일 기업들은 지난 10년 동안 매출보다 지출이 1120억 달러(약 133조5000억원) 많았다.
이 때문에 셰일업계는 월가에서 신뢰를 잃었다. 르블랑 애널리스트는 “셰일업계는 더 이상 외부 자금을 빌릴 능력이 없다”고 말했다.
컨설팅사 코웬앤드컴퍼니가 조사한 14개 대형 셰일 업체 중 11곳이 내년에 지출을 감축할 계획이다. 체사피크에너지의 닉 델로소 최고재무책임자(CFO)는 “내년에 시추 및 전체 비용을 약 30% 줄이겠다”고 밝혔다. 이 회사는 최근 외부 자금 수혈이 막히자 채무 불이행 위험을 경고한 뒤 주가가 40% 폭락했다.
다이아몬드백에너지의 트레비스 스티스 최고경영자(CEO)는 지난 11월 3분기 실적 발표 때 “투자자들이 현금 흐름 내 지출을 요구하고 있고 외부 자금 조달이 제한됨에 따라 굴착 장비 수가 계속 감소할 것”이라며 “2020년 원유 생산량 전망치를 낮춰야 할 것”이라고 밝혔다. 센테니얼 리소스의 마크 파파 CEO도 “셰일이 향후 10년간 성장에 어려움을 겪는 환경에 처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런 셰일업계의 침체는 제조업에도 영향을 주고 있다. 지난 2년간 미국 셰일 투자가 급증하면서 지난해 에너지업계의 파이프·장비 등 관련 제조업 구매액은 480억 달러(약 57조2000억원)로 2009년의 4배에 달했다. 상당수 셰일 사업자가 값비싼 장비를 부품별로 해체해 팔거나 아예 고철로 헐값에 매각하고 있다.
셰일 굴착 장비를 제작하는 허트랜드엔터프라이즈는 올 들어 20% 정도 매출이 감소했다. 제이 제이 멀린크로드 부사장은 월스트리저널과의 인터뷰에서 “이런 관련 매출 감소세는 2020년에도 이어질 것으로 예상된다”면서 “매출을 다변화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고 말했다.
셰일 생산량의 관건은 결국 유가다. IHS 마킷은 서부텍사스산원유(WTI) 가격이 배럴당 65달러(약 7만7000원)까지 오르지 않는 한 증산은 어려울 것으로 내다봤다. 특히 유가가 50달러(약 6만원) 수준에 머무른다면 셰일업계의 투자액은 올해 작년보다 10% 감소한 1020억 달러(약 121조6000억원), 2020년에는 900억 달러(약 107조3000억원), 2021년에는 830억 달러(약 99조원)로 줄어들 것이라고 예상했다.
◆부풀려진 생산량 전망치…“아직 정점은 아니다”
투자 감소 외에 다른 요인도 있다. 우선 셰일업계의 기존 매장량 추정이 부풀려졌다는 지적이 나온다. 월스트리트저널은 “지난 5년 동안 수천 개의 셰일 광구에서 뽑아낸 석유·가스는 셰일 기업들이 사전에 투자자에게 홍보한 양보다 10~50% 적었다”고 분석했다. 파이어니어 내추럴리소스는 2015년 9월 텍사스의 이글포드 광구에서 원유를 130만 배럴 생산할 수 있을 것으로 예상했다. 하지만 현 추세를 보면 48만2000배럴에 그칠 것으로 보인다. 당초 예상보다 63% 적은 수치다.
시추비용이 적은 스위트 스폿(sweat spot) 지역에서 채굴이 거의 다 끝났다는 분석도 나온다. 하나의 셰일 광구에서 시추되는 원유의 양이 예상보다 빨리 감소하는 일이 자주 나타나고 있다. 유전 서비스 기업인 슐럼버거는 지난해 10월 연구 보고서에서 “서부 텍사스의 초기 셰일 광구 인근에 자리한 2차 광구의 생산량은 초기 광구에 비해 약 30% 적다”며 “미국 셰일 생산량 전망이 바뀔 우려가 크다”고 분석했다.
다만 아직은 유가가 오르면 셰일오일은 더 증산될 여지가 있다는 게 업계의 관측이다. 미국 증권사 스티펠의 마이크 스칼리아 연구위원은 기자와 만나 “셰일 피크(정점)를 얘기하는 사람들이 있지만 10년 내엔 그런 일이 오지 않을 것”이라며 “개발 초기처럼 급성장하는 일은 없겠지만 당분간 피크를 맞지도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셰일업계에는 또 다른 공포가 커지고 있다. 민주당의 유력 대선 주자인 엘리자베스 워런 상원의원이 당선되면 업계의 지각변동이 불가피해서다. 워런 의원은 지난 9월 대통령에 취임하면 청정에너지 계획을 부활시켜 연방 정부 토지에서 신규 시추권 부여를 중단하고 프래킹을 전면 금지하겠다고 밝혔다.
수압 파쇄는 물·화학제품·모래 등을 혼합한 물질을 고압 분사해 셰일 지층을 부수고 석유와 가스를 뽑아내는 공법이다. 셰일오일 채굴엔 필수적이지만 지하수와 토양을 오염시키고 지진을 발생시킨다는 비판을 받아 왔다. 민주당의 또 다른 대선 주자인 버니 샌더스 상원의원도 프래킹 금지를 주장하고 있다. RBC캐피털마케츠는 “워런 의원이 당선되면 에너지 업체에 큰 위험이 나타날 것”이라고 경고했다.
엑슨모빌의 닐 한센 부사장은 “프래킹을 금지하거나 미국의 석유 공급량을 위축시킨다고 해도 석유에 대한 글로벌 수요는 줄어들지 않을 것”라며 “미국의 공급 감소분은 결국 다른 국가의 업체들이 채우겠지만 그 사이 국제 유가는 크게 뛸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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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기사는 한경비즈니스 제 1254호(2019.12.09 ~ 2019.12.15)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