늘어나는 ‘김포족’…쑥쑥 크는 포장 김치 시장

-5년 새 시장 규모 80%↑…식품·유통 기업 넘어 조선·워커힐 등 특급호텔까지 진출



[한경비즈니스=김정우 기자] 포장 김치 브랜드 ‘종가집’을 생산·판매 중인 대상은 매년 김장철을 앞두고 시장 조사 차원에서 ‘김장 관련’ 설문을 진행 중이다. 2019년 역시 약 3000명의 주부들을 대상으로 ‘올해 김장 계획’을 물었는데 응답자의 54.9%가 “올해 김장을 하지 않을 것”이라고 써냈다. 주부 두 명 중 한 명은 김장 계획을 갖고 있지 않은 셈이다.

대상 관계자에 따르면 매년 조사 때마다 설문 대상이나 응답자 수의 차이는 있지만 전반적으로 김장을 포기하는 이른바 ‘김포족(김장포기족)’들이 해마다 늘어나고 있다.

눈에 띄는 것은 김포족의 포장 김치 구매 의사다. 2016년 조사(30·40대 주부 약 1000명)와 비교해 보면 당시 응답자의 47%가 김장을 하지 않겠다고 했는데 이들 중 약 33% 정도만 포장 김치를 사겠다는 의사를 밝힌 바 있다. 2019년에는 58%로 크게 높아졌다.

대상 관계자는 “수년 전만 하더라도 대부분의 김포족들이 ‘가족이나 지인에게 김치를 얻겠다’고 밝혔지만 이제는 김치를 사 먹겠다는 사람들이 더 많아졌다”고 말했다. 최근 여러 기업들이 급증하는 김포족을 겨냥해 다양한 포장 김치 상품을 내놓는 등 적극적인 행보를 펼치는 이유다.

◆주부 두 명 중 한 명은 ‘김장 안 해’


김포족에 힘입어 포장 김치 시장 규모도 매년 커지고 있다. 한국농수산식품유통공사(aT)가 지난해 11월 펴낸 ‘2019년 배추김치 시장 현황’ 보고서에서도 나타난다.

2018년 국내 전체 김치 시장 규모는 1조4473억원으로 전년(1조3220억원) 대비 약 10% 정도 커졌다. aT에 따르면 그중에서도 특히 일반 소비자들의 포장 김치 구매가 급증하며 전체 김치 시장의 성장을 견인하고 있다.

김치 시장은 80%가 외식·급식 업체에서 구매하는 B2B 시장이 차지하고 있다. 포장 김치의 판매 수치라고 볼 수 있는 오프라인 소매 채널과 온라인 등의 비율은 약 20% 정도인데 최근 오름세가 가파르다. 판매액은 2018년 기준으로 2037억원을 기록했다. 2014년(1128억원)과 비교하면 무려 80.5%나 늘었다. 설문 조사에서처럼 매년 김포족들이 증가하고 있다는 것을 엿볼 수 있다.

김포족이 늘어나는 원인은 다양하다. 1인 가구 증가와 식품 포장·생산 기술의 발전 등도 영향을 미쳤지만 관련 업계에서는 가장 주된 배경으로 소비 트렌드의 변화를 꼽는다.

과거엔 ‘절약’이 대세였지만 최근 소비자들은 자신의 삶의 질 개선과 행복 추구를 위해 돈을 아끼지 않는다. 빨래와 청소 등을 대신해 주는 ‘홈 케어’ 업체들이 인기를 끄는 것처럼 김치도 간편하게 사먹는 것으로 인식이 전환되고 있다는 얘기다.

한 업계 관계자는 “포장 김치 구매는 김장에 들어가는 시간을 사는 것이나 마찬가지”라며 “김장할 시간에 자신이 좋아하는 취미 활동이나 여가를 즐기기 위해 김포족이 늘어나는 것으로 볼 수 있다”고 설명했다.

그의 말처럼 김장은 투입되는 시간과 노동 강도가 상당하다. 일일이 필요한 재료들을 골라 담아야 하고 배추를 자르고 양념을 묻혀 보관 용기에 옮겨 담기까지 수많은 작업들을 거쳐야 한다. 대상이 진행한 2019년 조사에서도 ‘김장 시 가장 스트레스 받는 요인’을 물었는데 ‘고된 노동과 김장으로 인한 후유증(75.1%)’을 선택한 이들이 가장 많았다.

전망도 긍정적이다. 특히 관련 업계에서는 포장 김치 판매가 소량 위주에서 점차 대용량으로 커지는 추세가 나타난다며 향후 포장 김치 시장이 더욱 커질 것이라고 예측했다.

한 업계 관계자는 “(대용량 제품 판매 증가는) 포장 김치에 대해 다소 거부감이 강했던 기성세대 주부들의 인식이 점차 바뀌고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고 해석했다.



늘어나는 수요에 발맞춰 자연히 김포족을 사로잡기 위한 기업 간 경쟁도 치열하다. 국내 포장 김치 시장은 오래전부터 대상의 종가집이 최강자로 군림해 왔다. 1988년 국내 최초로 포장 김치를 선보이며 시장을 선점한 효과를 톡톡히 누리고 있다.

다만 최근 포장 김치 수요가 급격히 늘어나고 있는 것이 후발 주자들에게도 새로운 ‘기회’가 되고 있다는 설명이다.

◆급증하는 수요에 후발 주자 ‘새 기회’


종가집의 시장점유율에서도 잘 나타난다. 대상에 따르면 종가집 포장 김치 매출은 매년 18% 정도 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과거 60%를 웃돌던 점유율은 최근 약 47%까지 떨어진 상태다.

새롭게 김치를 사먹기 시작한 이들은 특정 브랜드에 대한 충성도가 그리 높지 않은 만큼 이들을 잘 공략하면 충분히 시장점유율을 끌어올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CJ제일제당은 그 틈새를 비집고 들어간 김치업계의 ‘신흥 강자’다. 2016년 ‘비비고 김치’를 론칭한 CJ제일제당은 대중에게 익숙한 비비고 브랜드를 앞세워 다양한 프로모션 등 활발한 마케팅을 펼치며 새 소비자들을 끌어당겼다. 그 결과 출시 약 3년 만에 점유율을 35% 수준까지 끌어올리며 업계 2위를 차지하게 됐다.

이를 목격한 호텔업계들도 김치 시장 공략에 박차를 가하며 ‘다크호스’로 떠오르고 있다. 신세계조선호텔과 워커힐호텔을 예로 들 수 있다.

두 호텔은 오래전부터 내부에서 한식 조리사들이 직접 담근 김치를 소량으로 포장해 판매해 왔다. 호텔을 자주 찾는 ‘상위 1% 고객’을 타깃으로 삼아 고급 재료와 한식 전문 요리사들의 레시피를 접목해 각각 ‘조선호텔 김치’와 ‘워커힐 수펙스 김치’라는 이름으로 선보였다.



가격이 비쌌지만 ‘맛이 좋다’는 입소문을 타며 매년 물량이 모자랄 정도로 불티나게 팔려 나갔다. 이런 인기에 힘입어 현재 두 호텔 모두 소량으로 판매하던 김치를 대량 생산으로 전환하고 가격을 낮춰 판매 중이다.

조선호텔은 신세계 계열사인 이마트와 손잡고 ‘피코크 조선호텔 김치’를 선보이고 있다. 워커힐은 김치 전문 생산 공장에 자체 레시피를 제공해 ‘워커힐 호텔 김치’를 출시하며 김포족을 공략 중이다.

고급스러운 이미지의 호텔 브랜드를 앞세워 홈쇼핑에서도 판매하며 점차 소비자들에게 인지도를 넓혀 나가는 모습이다.

이런 가운데 최근에는 편의점업계까지 포장 김치 판매에 뛰어들 조짐을 보이고 있다. 2019년 말 세븐일레븐은 김치 장인으로 불리는 심영순 요리 연구가의 레시피로 만든 소포장 김장 김치를 ‘예약 판매’하기도 했다.

세븐일레븐 관계자는 “명인의 맛을 담은 소용량 김치 세트를 차별화 상품으로 새롭게 도입했다”며 “최근 김포족의 증가 속에 편의점에서도 김치에 대한 수요가 늘어나는 것이 그 배경”이라고 밝혔다.

진입 장벽이 높지 않아 앞으로 더욱 다양한 기업들이 포장 김치 시장에 뛰어들 가능성도 제기된다. 한 업계 관계자는 “자체적으로 생산 시설을 보유하지 않았더라도 김치를 전문으로 만드는 공장에 레시피를 건네 외주를 맡기면 자사 브랜드를 부착한 포장 김치를 시중에서 판매할 수 있다”고 말했다.

enyou@hankyung.com


[본 기사는 한경비즈니스 제 1258호(2020.01.06 ~ 2020.01.12)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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