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를린(독일) = 박진영 통신원]건강과 행복을 기원하는 덕담을 나누고 맛있는 음식을 즐기고 행운이 깃든 선물 등을 주고받으며 희망찬 한 해를 맞이하는 풍경은 세계 어디나 같다. 그뿐만 아니라 언제부턴가 불꽃놀이 또한 전 세계적으로 새해 전야제 행사의 필수적인 부분으로 자리 잡았다. 독일의 새해맞이 풍경도 크게 다르지 않지만 불꽃놀이만큼은 역사적으로 뿌리가 깊을 뿐만 아니라 참여 규모 면에서도 압도적이다.
지금은 축제적 성격이 강하지만 애초 불꽃놀이의 기원은 중세시대의 미신적인 믿음에서 시작됐다. 한 해의 마지막 날, 사악한 악령이 재앙을 일으키지 못하도록 불이 붙은 나무 바퀴 등을 계곡 아래로 굴려 보내는 등 소음을 만들어 낸 것이 그 유래로, 이후 형태가 변하면서 현재의 폭죽 쇼와 불꽃놀이로 이어져 왔다.
문제는 새해 전야에 벌어지는 이 불꽃놀이가 많은 문제를 야기하며 해마다 뜨거운 찬반 논쟁을 불러일으키고 있다는 점이다. 지정된 장소에서 이뤄지는 ‘공식적’ 불꽃놀이 외에도 수많은 사람들이 동네 및 거리거리마다 폭죽을 들고 다니며 불꽃을 터뜨리는 바람에 인명 피해는 물론 화재 위험과 소음으로 인한 충격과 환경 문제까지 초래하고 있는 것.
최근 몇 년간 끊임없이 개인의 불꽃놀이를 금지해야 한다는 요구가 거세진 가운데 몇몇 지자체에서는 정당한 이유를 들어 제한적인 금지령을 내리고 있는 추세다.
◆연간 불꽃놀이 폭죽 판매만 ‘1464억원’
섣달 그믐날 밤, 독일인들은 친구나 가족들과 함께 먼저 유리를 쨍그랑 소리가 나도록 깨뜨린 후 폭죽과 불꽃을 터뜨리기 위해 거리로 나선다. 독일에서는 폭죽과 로켓 발사형 불꽃놀이를 터뜨리는 것이 매년 새해 전날 밤 이뤄지는 전통의 일부로 여겨져 왔다. 이날을 위해 단 3일간 합법적으로 판매되는 폭죽과 불꽃놀이 용품을 비축하는 데 들이는 비용도 만만치 않다. 독일의 폭약공업협회에 따르면 작년 한 해에만 무려 1억1300만 유로(약 1464억원)의 매출을 올렸을 정도다.
하지만 불꽃놀이를 위한 폭약의 자유방임주의적 ‘허용’은 심각한 결과를 초래하고 있다. 어린 아이들뿐만 아니라 동물들을 놀라게 하고 충격을 줄 수 있고 불량 폭죽의 폭발이나 무모한 사용 등으로 매년 수많은 부상자, 심지어 사망자가 발생하기도 한다. 현재 베를린·함부르크·뮌헨 등 독일의 30여 개 도시와 지방자치단체가 새해 전야제 기간 동안 민간 불꽃놀이에 대한 전면적 또는 부분적 금지령을 내렸다.
독일 서부의 도시 아헨도 올해 행사에서 2m 이상 비행할 수 있는 로켓 발사형 불꽃 폭죽 사용을 금지했다. 린다 플레시 아헨시 대표는 이에 대해 “우리의 역사적 건물을 보호하기 위한 것”이라고 말했다. 아헨의 도심에는 성당과 반목조 가옥은 물론 다른 역사적인 건물들이 즐비하다. 플레시 대표는 9년 전 아헨 교회에서 화재가 발생했고 로켓이 높은 제단을 심하게 손상시켰다고 밝혔다.
특히 기후 변화 관련 시위 등 환경에 대한 관심이 그 어느 때보다 높아지면서 환경 보호적 측면에서도 개인의 불꽃놀이가 금지돼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독일의 환경 관련 단체인 환경행동독일(DUH)은 독일의 98개 도시들에 공식 불꽃놀이 외에 사적인 불꽃놀이를 금지할 것을 촉구하고 독일인들에게도 이를 촉구하는 탄원서를 지방자치단체에 요구할 것을 요청하고 있다.
실제로 새해 전날 하루 동안 도심 곳곳에서 열리는 불꽃놀이로 인한 대기 오염은 심각한 수준인 것으로 알려졌다. 2019년 초 독일 연방 환경청의 발표에 따르면 새해맞이 불꽃놀이로 발생하는 미세먼지는 4500톤에 달한다.
특히 폭죽이 집중적으로 터지는 새해 첫 1시간 동안에는 미세먼지 농도가 무려 ㎥당 20마이크로그램(㎍)까지 치솟고 하루 동안 500㎍까지 오르는 곳도 있는 등 환경에 끼치는 해악이 작지 않은 수준이다. 이에 따라 독일 호흡기학회는 어린이나 노인, 만성 질환자에게 폭죽을 사용하지 말 것을 권고할 정도다.
◆지자체들, 전면 혹은 부분 금지 시작
이러한 흐름에 힘입어 독일의 많은 슈퍼마켓과 DIY(직접 만들 수 있도록 한 상품) 용품 체인점들이 불꽃놀이용 폭죽과 폭약 등을 판매하지 않기로 하는 등 반불꽃놀이 기조가 형성되는 분위기다. 독일의 유명 DIY 체인 기업인 호른바흐는 2020년부터 불꽃놀이 용품 판매를 중단할 것이라고 발표했다. 독일의 슈퍼마켓 체인인 레베와 에데카의 일부 매장들 역시 판매 중단을 선택하기도 했다.
독일인들 사이에서도 개인적인 폭죽 사용과 불꽃놀이를 자제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최근 이와 관련한 한 설문 조사에 따르면 응답자의 75%가 폭죽에 대한 전면적 또는 부분적 금지를 선호한다고 답했다. 여성 응답자는 80%가 금지 또한 제한을 지지했고 남성은 69%가 찬성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하지만 개인의 불꽃놀이를 완전 제한 또는 금지하기까지는 갈 길이 멀어 보인다. 완전 금지 조치가 이뤄진 곳은 북해를 따라 실트 섬 등 몇몇 섬에 지나지 않고 부분 금지 조치를 취한 일부 도시들도 역사적 건물 보호나 보안과 관련한 이유로 부과되는 등 실제로 제기되는 불꽃놀이의 많은 문제점들은 간과되고 있다.
몇몇 마켓 등을 제외하면 여전히 대부분의 슈퍼마켓 등에서는 수많은 종류의 불꽃놀이용 폭죽들이 불티나게 팔리고 있다. 일각에서는 불꽃놀이로 새해를 시작하는 것은 독일의 오랜 전통이며 이를 통해 행복한 새해를 기원하는 독일인들의 표현 방식을 존중해야 한다는 의견도 제기되고 있다.
[본 기사는 한경비즈니스 제 1258호(2020.01.06 ~ 2020.01.12)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