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은 국가 차원에서 개발자 키우는데 한국은 대학에서 컴퓨터학과 사라져"

- 조현정 비트컴퓨터 회장…“불확실성의 시대, 새 방향 제시하는 게 기업가 역할”


[한경비즈니스=이명지 기자] 조현정 비트컴퓨터 회장 앞에는 늘 ‘1호’라는 수식어가 따라다닌다. 1983년 비트컴퓨터를 창업하며 얻게 된 ‘벤처업계 1호 경영인’이란 타이틀을 시작으로 그는 국내 소프트웨어업계에 늘 첫 발자국을 남기는 역할을 맡아 왔다.

조 회장은 1983년 한국 최초의 소프트웨어 전문 개발 회사이자 벤처 1호인 비트컴퓨터를 창업해 의료 정보와 헬스 케어 시장을 개척했다. 1982년 의료보험 청구 프로그램 개발을 시작으로 종합병원 원무 관리, 처방 전달 시스템(OCS), 전자 의무 기록(EMR) 등을 출시했다.

지난해에는 클라우드 컴퓨팅 기반의 요양병원 EMR인 ‘비트닉스 클라우드’를 출시해 의료 정보 산업을 이끌었다. 업계에서는 벤처기업협회·한국소프트웨어산업협회를 설립함으로써 벤처와 소프트웨어업계의 양적·질적 성장을 이끈 주역으로 활약했다.

조 회장은 지난해 12월 2일 소프트웨어 산업 발전에 기여한 공로로 금탑산업훈장을 받았다. 소프트웨어 개발자 출신으로는 최초다. 조 회장과 늘 함께하는 ‘1호’ 수식어가 한 가지 더 추가된 것이다.

▶의료와 소프트웨어를 접목한 계기는 무엇인가요.

“1980년대에는 소프트웨어의 가치를 인정해 주는 곳이 많지 않았습니다. 맨 처음 급여 관리 소프트웨어를 만들었는데 주공급처인 회사들이 급여 관리를 위해 컴퓨터를 구입하고 또 소프트웨어 프로그램을 사야 한다는 것을 이해하지 못하더군요. 그래서 ‘소프트웨어의 가치를 인정하면서 지불 능력이 있는 인텔리 집단’이 모여 있는 곳이 어디일지 생각하다가 의료계를 떠올렸습니다.

1983년 9월 의료보험 청구 프로그램을 만들었습니다. 당시 친구의 친척이 의사였는데 그분이 첫 고객이었죠. ‘얼마 줄까’라는 물음에 가치를 잘 몰라 섣불리 대답하지 않았어요. 나중에 그분이 주신 봉투를 열어보니 150만원이 들어 있었어요. 당시 사립대 1년 등록금이 60만원이었던 것을 감안하면 매우 큰돈을 주신 겁니다.

그분이 이 프로그램을 쓰기 전에는 의료보험 청구를 위해 진료가 끝난 후 매일 밤마다 네 사람이 수기로 정리했다고 해요. 그런데 소프트웨어 프로그램이 그 절차를 3~4일 안에 해결해 버린 거죠.”

▶소프트웨어 산업 발전을 위한 ‘쓴소리’도 아끼지 않는다고 들었습니다.

“중국은 2018년 기준으로 하루에 1만8000개 업체가 창업합니다. 지금 한국에 현존하는 벤처기업이 4만3000여 곳이니 비교가 안 되는 숫자죠. 여기에 중국은 전국 35개 대학을 통해 ‘국가 시범성 소프트웨어’ 학원을 운영하면서 2006년 기준 학부생 3만7865명, 대학원생 2만5174명이 교육을 받았어요.

저는 늘 ‘소프트웨어 개발자 30만 명 양성’이라는 목표를 제시해 왔어요. 하지만 지금의 상황으로는 매우 어려워요. 해결책은 학교 안에 있습니다. 소프트웨어 교육이 의무화되면서 초등학교와 중학교의 학습 시간이 각각 17시간, 34시간으로 정해졌지만 중국·일본·이스라엘 등에 비하면 터무니없이 모자란 시간이에요.

여기에 최근 대학들은 컴퓨터교육학과 등을 줄이는 추세죠. 이런 교육 환경으로는 4차 산업혁명을 이루기 어렵다고 봅니다.”

▶조 회장은 비트교육센터와 장학재단 등 다양한 사회 공헌 활동도 하고 있습니다.

“회사를 창업할 때부터 ‘부분이 좋아야 전체가 좋다’고 생각했습니다. 소프트웨어 산업이 발전해야만 비트컴퓨터도 성장할 수 있죠. 그래서 몸담고 있는 소프트웨어 산업 발전에 기여할 수 있는 방법이 무엇일지 고민해 왔습니다.

사람을 키우고 조현정이 갖고 있는 DNA를 전달하기 위해 교육센터를 만들었습니다. 1990년 문을 연 비트교육센터는 올해 30주년을 맞이했습니다. 처음부터 수익을 목적으로 하기보다 장기적 투자로 분류했어요. 특히 비트교육센터는 1997년 외환위기 이후 5년간 유일한 취업 창구 역할을 수행했습니다. 지금까지 8970명이 교육을 받았고 ‘평생교육 100%’를 자랑합니다.”

▶비트교육센터는 국내 소프트웨어업계의 생태계를 바꾸기도 했습니다.

“비트교육센터를 설립할 때만 해도 전 세계 소프트웨어 시장의 90%는 코볼(COBLE)이었어요. C언어 개발자는 국내에선 ‘소수 인재’에 불과했죠. 하지만 비트교육센터는 C언어를 택했습니다. 제가 C언어를 접해 보니 이식성이 좋기 때문에 유사한 프로그램을 만들 때 시간과 속도를 획기적으로 개선할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만약 당시 수익성을 생각했다면 교육 과정을 코볼 위주로 구성했을 겁니다. 장점 덕분에 한국에서도 C언어가 대중화됐고 여기엔 비트교육센터의 역할이 크다고 자부합니다.”

▶꾸준히 장학재단을 운영하는 것으로도 유명합니다.

“‘조현정 장학재단’은 2000년 설립됐고 벌써 20주년을 맞았습니다. 인터뷰 직전에 20기 학생들의 대입 결과를 보고 받았는데 다들 성과가 매우 좋습니다. 올해 2020 대학수학능력시험에서 만점을 받은 송영준 학생도 조현정 장학재단에서 지원한 학생입니다.

재단을 운영할 때 중요하게 여기는 것은 ‘네트워크’입니다. 재단에서 지원한 학생들이 자주 모여야만 멘토링이 이뤄진다고 봐요. 재단에서 지원한 학생 중 한 명은 외교관을 꿈꾸며 외교부에서 일하고 있습니다. 이 학생이 외교관이란 꿈을 갖게 된 것은 재단 2기 졸업생 선배를 만나면서부터예요. 그 선배도 외교부에서 일하는 인재인데 좋은 롤 모델이 된 거죠.

지금 우리 사회는 ‘흙수저는 공부를 잘할 수 없다’, ‘드라마 스카이캐슬이 곧 현실이다’는 분위기가 조성돼 있습니다. 제가 강조하고 싶은 것은 가정 형편은 어렵지만 공부를 잘할 수 있는 가능성을 가진 친구들이 많다는 겁니다. 그 아이들을 찾아 금전적인 지원과 함께 멘토링을 도맡는 게 재단의 역할입니다.

한 가지 아쉬운 점도 있습니다. 조현정 장학재단의 장학생으로 지원하는 학생들의 이력서가 몇몇 특정 지역에서는 크게 줄었습니다. 왜 그런지 사정을 알아보니 학생인권조례가 시행된 일부 지역에서 학생의 집안 사정을 교사가 조사할 수 없게 돼 있어 선생님들이 학생을 추천하기가 어려워졌다고 해요. 그래도 학생 한 명 한 명을 발굴하는 데 심혈을 기울이고 있습니다.”

▶회장님이 생각하는 ‘기업가 정신’은 무엇입니까.

“인터넷이 등장한 지 불과 25년밖에 되지 않았고 모바일도 이제 세상에 나온 지 딱 10년 됐습니다. 현존하는 직업 중 80%는 30년 전에는 없던 것이죠. 앞으로 세상이 어떻게 변화할지는 아무도 모릅니다.

하지만 이러한 상황에서도 새로운 방향이나 트렌드를 제시하는 게 기업가들의 역할이라고 생각합니다. 창조·창직·창업을 실현하는 것이 곧 기업가 정신이 아닐까요.”
mjlee@hankyung.com
[본 기사는 한경비즈니스 제 1261호(2020.01.27 ~ 2020.02.02)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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