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리콘밸리의 성과 관리 체계…목표는 심플하게 방법은 구체적으로
구글이 쓴 신화는 실리콘밸리의 성공 바이블이다. 구글이 어떻게 일하고 어떻게 돈을 버는지 또 어디에 투자할지에 따라 전 세계 정보기술(IT) 기업이 움직인다.
구글이 창고에서 시작할 때부터 전해져 내려온 성공 방정식이 있다. 바로 ‘OKR(Objective Key Result, 목표·핵심결과지표)’이다. 앤디 그로브 전 인텔 회장이 1980년대에 창안한 개념으로 존 도어가 1999년 구글에 소개했다.
구글뿐만 아니라 아마존·디즈니·페이스북 등 세계 굴지의 기업이 택하고 있는 OKR은 국내에서도 이슈가 되고 있다. 지난해 SK에 이어 최근 한화 금융 계열사가 OKR을 새로운 성과 관리 체계로 도입하겠다고 밝혔다.
스타트업업계에서는 이미 여러 곳에서 도입돼 운영되고 있다. 화장품 정보 플랫폼 ‘화해’를 운영하는 버드뷰 역시 OKR을 도입한 성공적인 인사 관리(HR)로 유명하다. 이 밖에 샌드박스네트워크와 당근마켓 등 다양한 스타트업이 OKR을 도입해 운영하고 있다.
OKR은 달성하고자 하는 이상적인 목표(Objective)를 수립한 후 핵심 결과(Key result)를 통해 그 목표를 위한 방법들을 정하는 목표 관리 체계다. 목표는 ‘어떤 방향으로 갈 것인가’에 대한 고민이며 핵심 결과는 ‘그곳에 가기 위한 구체적인 방법들’이다.
그동안 국내 기업의 성과 측정 방식은 핵심성과지표(KPI)가 대세였다. KPI는 목표나 재무적 성과 달성에 중점을 두는 방식이다. 매출이 100억원이라면 과정 상관없이 목표만 달성하면 되는 방식이라고 볼 수 있다.
반면 OKR은 무엇 때문에 100억원 달성이 필요한지, 어떤 방향성으로 갈 것인지 대해 고민하는 방식이다.
조직원 모두에게 동기 부여가 될 만한 목표를 자유롭게 정한 후 목표를 달성할 수 있는 구체적인 방법을 고민하며 우선순위를 정한다. 그다음 주기적으로 성과를 향한 방법에 대해 측정해 나가는 방식이다.
OKR은 애초에 공격적이고 야심적인 목표를 설정하기 때문에 이를 달성하지 못했더라도 실패를 용인하는 환경이 구축된다. 또 목표 설정부터 구성원들이 참여하기 때문에 조직원들의 참여도와 책임 의식이 높아진다.
◆OKR은 평가 도구 아닌 실행 도구
“아이디어는 쉽다. 중요한 것은 실행이다.” 전설적인 투자자 존 도어는 실리콘밸리에 OKR을 전파한 주인공이다. 그가 많은 이들에게 OKR을 전도하는 이유는 ‘실행하는 방식’을 알려주기 위해서다.
OKR은 평가를 위한 도구가 아니다. OKR이 성과 측정 방식이라고 해서 직원들의 연봉이나 성과급으로 직결되지는 않는다. OKR은 목표를 설정하고 목표를 어떻게 실행에 옮길지에 대한 목표 관리법에 가깝다. 이 때문에 기업 전체와 팀·개인 등 모든 단위에서 적용할 수 있다.
OKR을 사용하기만 하면 반드시 뛰어난 성과가 나온다고 단언할 수는 없다. 하지만 좋은 실적을 내고 있는 기업의 상당수가 OKR을 채택하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구글 창업자 래리 페이지는 창고에서 구글을 시작할 때부터 존 도어의 조언을 듣고 OKR을 도입했다.
존 도어는 OKR이 ‘조직 전체가 동일한 사안에 관심을 집중하도록 만들어 주는 경영 도구’라고 말한다.
그에 따르면 모두가 같은 방향을 바라봐야 할 소규모 신생 기업에 OKR은 생존 도구다. 성장 속도가 빠른 중간 규모 기업에 OKR은 공통어로서 조직의 기대를 구체적으로 만들어 준다.
대기업에 OKR은 선명한 도로 표지판과 같다. 파벌을 조장하는 장벽을 허물고 구성원 간 관계를 강화한다. 그리고 노동자의 자율성을 높여 새로운 아이디어를 이끌어 내 성공을 향한 흐름에 박차를 가한다.
기업이 혁신하기 위해서는 조직원이 스스로 목표를 세우고 투명하게 협업해야 한다. 그리고 성공이 곧 기업 문화로 자리 잡아야 한다.
국내에서도 OKR을 도입하는 기업들이 늘고 있다. 한화금융 계열사(한화생명·한화손해보험·한화투자증권·한화자산운용)는 올 2월부터 새로운 성과 관리 체계로 ‘OKR’을 도입한다고 밝혔다. 이 같은 결정은 한순간에 이뤄진 것이 아니다.
한화생명은 작년 초부터 파일럿 형태로 OKR을 도입해 실행해 왔다. 특히 디지털·혁신사업·IT 관련 부서에 도입해 OKR의 성과를 실험했다.
한화생명 관계자는 “이슈가 빠르게 변하는 환경에서 끊임없는 사고 전환의 필요성이 대두되고 있기 때문에 OKR을 모든 업무 부서로 확대해도 괜찮겠다고 판단했다”고 말했다.
한화 금융 계열사들은 그동안 애자일혁신실을 만들어 운영하며 ‘일하는 방식의 변화’를 꾀했다. 한화생명은 미래전략실·기술전략실·글로벌네트워크본부 등 주요 본부에서 애자일을 활용하고 있다. 한화투자증권도 작년 애자일혁신실을 신설했다.
이렇듯 업무 방식은 변하는데 성과 관리 체계는 그대로였다. 일하는 방식에 대한 변화는 곧 조직 관리와 운영의 변화로 이어져야 한다. 한화 금융 계열사들은 변화하는 업무 방식에 맞춰 OKR을 도입할 필요성을 느꼈다. 기존 성과 측정 방식으로는 지속적인 변화의 추진력을 얻을 수 없기 때문이다.
한화생명이 ORK 도입 후 가장 큰 변화는 바로 ‘목표 관리 일정이 짧아졌다’는 것이다. OKR은 짧게는 주 단위, 길게는 분기 단위로 목표 관리가 가능해 대내외 환경에 민첩하게 대응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기존의 성과 관리 지표인 KPI는 연간 단위로 평가되며 하향식으로 목표가 수립된다.
◆자율성 높아지니 참여 열기 뜨거워
한화 관계자는 “기존 KPI 성과 체계에서는 연초 계획이 상반기에 다 달성되는 경우도 있었다”며 “연 단위의 장기 목표를 세우다 보니 변화나 상황에 따라 이슈에 빠르게 대응하기 힘들 때가 많았다”고 말했다.
직원들의 목표도 더 구체적으로 변했다. KPI 방식으로 연간 목표와 성과를 세웠을 때는 목표가 덜 구체적이었다면 OKR 도입 이후 직원들의 참여도가 높아졌다.
한화 금융 계열사들은 OKR 진척도를 수시 모니터링할 수 있는 IT 시스템을 구축할 계획이다. 또 운영 전담 조직과 코치를 양성하고 중간 점검과 리뷰를 할 수 있는 협의체도 마련할 예정이다.
한화는 OKR 도입을 통해 부서 간 협업도 활발해질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한화생명 관계자는 “OKR 도입 후 업무 방식이 ‘목표 지향적’으로 변했다”며 “디지털 전환이 금융업의 미래를 견인하고 있는 만큼 OKR을 통해 IT 부서와 현업 부서의 협업이 활발해질 것”이라고 말했다.
화장품 정보 플랫폼 ‘화해’를 운영하고 있는 버드뷰 역시 창업 초기부터 OKR을 도입했다. 화해가 화장품 시장의 판도를 바꾸며 누적 다운로드 수 850만을 기록할 수 있던 힘도 OKR에서 나왔다.
버드뷰는 사업 초기인 2014년부터 OKR을 통해 모든 목표를 관리하고 성과를 창출해 왔다. 바꿔 말하면 화해가 만들어 온 비즈니스 성과는 모두 OKR을 통해 이뤄졌다고 볼 수 있다.
버드뷰는 OKR을 목표 관리 체계인 동시에 성과 관리 체계로 사용하고 있다. 목표를 설정하고 실행해 성과를 만들어 내는 것이 모두 하나로 연결되는 과정이기 때문이다.
◆목표는 달성 어렵고 가슴 떨리게
버드뷰는 사업 초기 목표 관리 체계의 필요성을 인지한 이후 OKR 외에도 MBO(Management by objectives)·KPI 등 다양한 방식을 고려했지만 결국 OKR을 선택했다. 이유는 OKR만의 뚜렷한 강점과 차이가 있었기 때문이다.
버드뷰 관계자는 “OKR은 단순 성과 관리나 목표 관리 체계를 넘어 경영 방법론으로도 볼 수 있다”며 “경영 목표 관리 체계의 필요성을 인지한 이후 여러 방법론을 찾아봤지만 KPI는 단순 지표 관리, MBO는 구성원 평가 및 관리 모델에 가깝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버드뷰에 따르면 OKR은 목표를 설정하고 목표를 위한 방법을 세운 뒤 그 결과를 검증할 수 있도록 만든다. 이 때문에 성과를 리뷰하고 학습할 수 있는 과정 역시 거친다.
버드뷰 관계자는 “OKR은 도전적인 목표 설정과 이를 위한 현실적 접근 방법 그리고 검증과 리뷰까지 모두 포괄할 수 있는 체계”라며 “이를 통해 기업의 성과와 구성원의 성장 모두를 함께 가져갈 수 있다”고 말했다.
버드뷰 조직원들은 OKR은 눈에 보이는 구체적인 성과로 나타난다고 말한다. 일례로 광고사업팀은 OKR을 도전적으로 설정하고 다른 팀과의 협업 포인트를 정리한다.
이후 구체적인 수치를 기반으로 검증하고 이를 리뷰하는 시간을 밀도 높게 가져 왔다. 이를 실행하는 과정에서 매출 상승과 서비스와의 균형, 구성원의 성장 모두를 이룰 수 있었다.
버드뷰 관계자는 “만약 OKR이 아닌 단순 지표 체계인 KPI로 접근했다면 포괄적인 관점을 갖기 어려워 서비스와의 균형점을 찾기 어려웠을 것”이라며 “또 MBO 체계를 도입했다면 구성원의 성장보다 평가와 관리에 힘쓰게 됐을 것”이라고 말했다.
한국 최초의 MCN 회사 '샌드박스네트워크'는 구글코리아에서 일했던 이필성 대표의 경험을 토대로 창업 초기부터 OKR을 도입했다.
샌드박스네트워크의 모든 구성원들은 분기별로 스스로의 목표를 설정하고 매월 실행 결과를 체크인하도록 시스템화해 본인의 과업을 정의하고 있다. 또한 분기별 실행 목표를 설정한 후 이를 성공적으로 달성하거나 수정할 수 있도록 유연하게 체크한다.
샌드박스의 OKR의 특징은 바로 ‘투명성’이다. 임원진이나 부서장, 팀장, 일반 직원 등 직급에 관계없이 모든 구성원들의 OKR을 전사에 공개하는 것을 원칙으로 한다.
이를 통해 모든 구성원들이 공통된 가이드라인 아래 서로의 OKR을 함께 설정하고 공유할 수 있다. 샌드박스네트워크는 올해부터 매월 10일을 ‘OKR 데이’로 지정했다. 전 구성원의 OKR 설정 및 한 달 간의 성과 측정을 통해 구성원 간 OKR에 대한 활발한 논의가 이뤄지는 날이다.
샌드박스네트워크 관계자는 “샌드박스의 OKR은 조직 구성원 모두가 각자의 멋진 비전과 과업을 직접 수립하고 이를 달성하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과정에서 회사 전체의 목표 달성에도 기여하고 있다”고 말했다.
[돋보기 : OKR 실천하기] OKR 첫걸음은?
OKR은 달성하고자 하는 이상적인 목표(Objective)를 수립하고 핵심 결과(Key result)를 통해 그 목표를 위한 방법들을 정하는 목표 관리 체계다. 목표를 위한 핵심 결과를 3~5개 정도 정해 달성해 나가면 된다.
아마노 마사루 OKR재팬 퍼실리테이터가 지은 책 ‘OKR 실천편’에 따르면 목표는 ‘가슴 떨리는 내용’으로 정해야 한다. 구성원들 모두에게 동기 부여가 돼야 하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영어 공부가 목표라면 ‘토익 900점’을 목표로 세우는 사람들이 있다. 하지만 수치를 목표로 삼으면 어딘가 무미건조하다. 그보다는 ‘해외 출장 때 현지인과 상담할 수 있을 정도로 하겠다’, ‘해외여행에서 쇼핑할 때 값을 깎을 수 있는 실력이 되겠다’ 등 자신이 원하는 이미지를 절실하게 떠올리며 공부하는 편이 한결 의욕이 솟는다.
OKR도 이와 마찬가지로 의욕을 고무시키는 내용을 ‘목표’라고 한다. 목표를 정할 때 또 중요한 것은 성공률이 50% 정도에 불과한 ‘야심적인 내용’이어야 한다는 점이다.
목표를 정했다면 수치로 표현할 수 있는 핵심 결과 지표를 세워야 한다. 팀의 성과를 올리기 위해 어떤 활동이 있고 그것이 어떻게 영향을 미치는지 이해할 수 있다면 핵심 결과를 바로 설정할 수 있다. 이때 핵심 결과는 구체적이고 측정 가능하며 기한이 정해져 있고 공격적이어야 한다. (참고도서=존 도어 OKR|존도어, OKR 실천편| 아마노 마사루)
김영은 기자 kye0218@hankyung.com
[본 기사는 한경비즈니스 제 1265호(2020.02.24 ~ 2020.03.01) 기사입니다.]
구글이 쓴 신화는 실리콘밸리의 성공 바이블이다. 구글이 어떻게 일하고 어떻게 돈을 버는지 또 어디에 투자할지에 따라 전 세계 정보기술(IT) 기업이 움직인다.
구글이 창고에서 시작할 때부터 전해져 내려온 성공 방정식이 있다. 바로 ‘OKR(Objective Key Result, 목표·핵심결과지표)’이다. 앤디 그로브 전 인텔 회장이 1980년대에 창안한 개념으로 존 도어가 1999년 구글에 소개했다.
구글뿐만 아니라 아마존·디즈니·페이스북 등 세계 굴지의 기업이 택하고 있는 OKR은 국내에서도 이슈가 되고 있다. 지난해 SK에 이어 최근 한화 금융 계열사가 OKR을 새로운 성과 관리 체계로 도입하겠다고 밝혔다.
스타트업업계에서는 이미 여러 곳에서 도입돼 운영되고 있다. 화장품 정보 플랫폼 ‘화해’를 운영하는 버드뷰 역시 OKR을 도입한 성공적인 인사 관리(HR)로 유명하다. 이 밖에 샌드박스네트워크와 당근마켓 등 다양한 스타트업이 OKR을 도입해 운영하고 있다.
OKR은 달성하고자 하는 이상적인 목표(Objective)를 수립한 후 핵심 결과(Key result)를 통해 그 목표를 위한 방법들을 정하는 목표 관리 체계다. 목표는 ‘어떤 방향으로 갈 것인가’에 대한 고민이며 핵심 결과는 ‘그곳에 가기 위한 구체적인 방법들’이다.
그동안 국내 기업의 성과 측정 방식은 핵심성과지표(KPI)가 대세였다. KPI는 목표나 재무적 성과 달성에 중점을 두는 방식이다. 매출이 100억원이라면 과정 상관없이 목표만 달성하면 되는 방식이라고 볼 수 있다.
반면 OKR은 무엇 때문에 100억원 달성이 필요한지, 어떤 방향성으로 갈 것인지 대해 고민하는 방식이다.
조직원 모두에게 동기 부여가 될 만한 목표를 자유롭게 정한 후 목표를 달성할 수 있는 구체적인 방법을 고민하며 우선순위를 정한다. 그다음 주기적으로 성과를 향한 방법에 대해 측정해 나가는 방식이다.
OKR은 애초에 공격적이고 야심적인 목표를 설정하기 때문에 이를 달성하지 못했더라도 실패를 용인하는 환경이 구축된다. 또 목표 설정부터 구성원들이 참여하기 때문에 조직원들의 참여도와 책임 의식이 높아진다.
◆OKR은 평가 도구 아닌 실행 도구
“아이디어는 쉽다. 중요한 것은 실행이다.” 전설적인 투자자 존 도어는 실리콘밸리에 OKR을 전파한 주인공이다. 그가 많은 이들에게 OKR을 전도하는 이유는 ‘실행하는 방식’을 알려주기 위해서다.
OKR은 평가를 위한 도구가 아니다. OKR이 성과 측정 방식이라고 해서 직원들의 연봉이나 성과급으로 직결되지는 않는다. OKR은 목표를 설정하고 목표를 어떻게 실행에 옮길지에 대한 목표 관리법에 가깝다. 이 때문에 기업 전체와 팀·개인 등 모든 단위에서 적용할 수 있다.
OKR을 사용하기만 하면 반드시 뛰어난 성과가 나온다고 단언할 수는 없다. 하지만 좋은 실적을 내고 있는 기업의 상당수가 OKR을 채택하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구글 창업자 래리 페이지는 창고에서 구글을 시작할 때부터 존 도어의 조언을 듣고 OKR을 도입했다.
존 도어는 OKR이 ‘조직 전체가 동일한 사안에 관심을 집중하도록 만들어 주는 경영 도구’라고 말한다.
그에 따르면 모두가 같은 방향을 바라봐야 할 소규모 신생 기업에 OKR은 생존 도구다. 성장 속도가 빠른 중간 규모 기업에 OKR은 공통어로서 조직의 기대를 구체적으로 만들어 준다.
대기업에 OKR은 선명한 도로 표지판과 같다. 파벌을 조장하는 장벽을 허물고 구성원 간 관계를 강화한다. 그리고 노동자의 자율성을 높여 새로운 아이디어를 이끌어 내 성공을 향한 흐름에 박차를 가한다.
기업이 혁신하기 위해서는 조직원이 스스로 목표를 세우고 투명하게 협업해야 한다. 그리고 성공이 곧 기업 문화로 자리 잡아야 한다.
국내에서도 OKR을 도입하는 기업들이 늘고 있다. 한화금융 계열사(한화생명·한화손해보험·한화투자증권·한화자산운용)는 올 2월부터 새로운 성과 관리 체계로 ‘OKR’을 도입한다고 밝혔다. 이 같은 결정은 한순간에 이뤄진 것이 아니다.
한화생명은 작년 초부터 파일럿 형태로 OKR을 도입해 실행해 왔다. 특히 디지털·혁신사업·IT 관련 부서에 도입해 OKR의 성과를 실험했다.
한화생명 관계자는 “이슈가 빠르게 변하는 환경에서 끊임없는 사고 전환의 필요성이 대두되고 있기 때문에 OKR을 모든 업무 부서로 확대해도 괜찮겠다고 판단했다”고 말했다.
한화 금융 계열사들은 그동안 애자일혁신실을 만들어 운영하며 ‘일하는 방식의 변화’를 꾀했다. 한화생명은 미래전략실·기술전략실·글로벌네트워크본부 등 주요 본부에서 애자일을 활용하고 있다. 한화투자증권도 작년 애자일혁신실을 신설했다.
이렇듯 업무 방식은 변하는데 성과 관리 체계는 그대로였다. 일하는 방식에 대한 변화는 곧 조직 관리와 운영의 변화로 이어져야 한다. 한화 금융 계열사들은 변화하는 업무 방식에 맞춰 OKR을 도입할 필요성을 느꼈다. 기존 성과 측정 방식으로는 지속적인 변화의 추진력을 얻을 수 없기 때문이다.
한화생명이 ORK 도입 후 가장 큰 변화는 바로 ‘목표 관리 일정이 짧아졌다’는 것이다. OKR은 짧게는 주 단위, 길게는 분기 단위로 목표 관리가 가능해 대내외 환경에 민첩하게 대응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기존의 성과 관리 지표인 KPI는 연간 단위로 평가되며 하향식으로 목표가 수립된다.
◆자율성 높아지니 참여 열기 뜨거워
한화 관계자는 “기존 KPI 성과 체계에서는 연초 계획이 상반기에 다 달성되는 경우도 있었다”며 “연 단위의 장기 목표를 세우다 보니 변화나 상황에 따라 이슈에 빠르게 대응하기 힘들 때가 많았다”고 말했다.
직원들의 목표도 더 구체적으로 변했다. KPI 방식으로 연간 목표와 성과를 세웠을 때는 목표가 덜 구체적이었다면 OKR 도입 이후 직원들의 참여도가 높아졌다.
한화 금융 계열사들은 OKR 진척도를 수시 모니터링할 수 있는 IT 시스템을 구축할 계획이다. 또 운영 전담 조직과 코치를 양성하고 중간 점검과 리뷰를 할 수 있는 협의체도 마련할 예정이다.
한화는 OKR 도입을 통해 부서 간 협업도 활발해질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한화생명 관계자는 “OKR 도입 후 업무 방식이 ‘목표 지향적’으로 변했다”며 “디지털 전환이 금융업의 미래를 견인하고 있는 만큼 OKR을 통해 IT 부서와 현업 부서의 협업이 활발해질 것”이라고 말했다.
화장품 정보 플랫폼 ‘화해’를 운영하고 있는 버드뷰 역시 창업 초기부터 OKR을 도입했다. 화해가 화장품 시장의 판도를 바꾸며 누적 다운로드 수 850만을 기록할 수 있던 힘도 OKR에서 나왔다.
버드뷰는 사업 초기인 2014년부터 OKR을 통해 모든 목표를 관리하고 성과를 창출해 왔다. 바꿔 말하면 화해가 만들어 온 비즈니스 성과는 모두 OKR을 통해 이뤄졌다고 볼 수 있다.
버드뷰는 OKR을 목표 관리 체계인 동시에 성과 관리 체계로 사용하고 있다. 목표를 설정하고 실행해 성과를 만들어 내는 것이 모두 하나로 연결되는 과정이기 때문이다.
◆목표는 달성 어렵고 가슴 떨리게
버드뷰는 사업 초기 목표 관리 체계의 필요성을 인지한 이후 OKR 외에도 MBO(Management by objectives)·KPI 등 다양한 방식을 고려했지만 결국 OKR을 선택했다. 이유는 OKR만의 뚜렷한 강점과 차이가 있었기 때문이다.
버드뷰 관계자는 “OKR은 단순 성과 관리나 목표 관리 체계를 넘어 경영 방법론으로도 볼 수 있다”며 “경영 목표 관리 체계의 필요성을 인지한 이후 여러 방법론을 찾아봤지만 KPI는 단순 지표 관리, MBO는 구성원 평가 및 관리 모델에 가깝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버드뷰에 따르면 OKR은 목표를 설정하고 목표를 위한 방법을 세운 뒤 그 결과를 검증할 수 있도록 만든다. 이 때문에 성과를 리뷰하고 학습할 수 있는 과정 역시 거친다.
버드뷰 관계자는 “OKR은 도전적인 목표 설정과 이를 위한 현실적 접근 방법 그리고 검증과 리뷰까지 모두 포괄할 수 있는 체계”라며 “이를 통해 기업의 성과와 구성원의 성장 모두를 함께 가져갈 수 있다”고 말했다.
버드뷰 조직원들은 OKR은 눈에 보이는 구체적인 성과로 나타난다고 말한다. 일례로 광고사업팀은 OKR을 도전적으로 설정하고 다른 팀과의 협업 포인트를 정리한다.
이후 구체적인 수치를 기반으로 검증하고 이를 리뷰하는 시간을 밀도 높게 가져 왔다. 이를 실행하는 과정에서 매출 상승과 서비스와의 균형, 구성원의 성장 모두를 이룰 수 있었다.
버드뷰 관계자는 “만약 OKR이 아닌 단순 지표 체계인 KPI로 접근했다면 포괄적인 관점을 갖기 어려워 서비스와의 균형점을 찾기 어려웠을 것”이라며 “또 MBO 체계를 도입했다면 구성원의 성장보다 평가와 관리에 힘쓰게 됐을 것”이라고 말했다.
한국 최초의 MCN 회사 '샌드박스네트워크'는 구글코리아에서 일했던 이필성 대표의 경험을 토대로 창업 초기부터 OKR을 도입했다.
샌드박스네트워크의 모든 구성원들은 분기별로 스스로의 목표를 설정하고 매월 실행 결과를 체크인하도록 시스템화해 본인의 과업을 정의하고 있다. 또한 분기별 실행 목표를 설정한 후 이를 성공적으로 달성하거나 수정할 수 있도록 유연하게 체크한다.
샌드박스의 OKR의 특징은 바로 ‘투명성’이다. 임원진이나 부서장, 팀장, 일반 직원 등 직급에 관계없이 모든 구성원들의 OKR을 전사에 공개하는 것을 원칙으로 한다.
이를 통해 모든 구성원들이 공통된 가이드라인 아래 서로의 OKR을 함께 설정하고 공유할 수 있다. 샌드박스네트워크는 올해부터 매월 10일을 ‘OKR 데이’로 지정했다. 전 구성원의 OKR 설정 및 한 달 간의 성과 측정을 통해 구성원 간 OKR에 대한 활발한 논의가 이뤄지는 날이다.
샌드박스네트워크 관계자는 “샌드박스의 OKR은 조직 구성원 모두가 각자의 멋진 비전과 과업을 직접 수립하고 이를 달성하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과정에서 회사 전체의 목표 달성에도 기여하고 있다”고 말했다.
[돋보기 : OKR 실천하기] OKR 첫걸음은?
OKR은 달성하고자 하는 이상적인 목표(Objective)를 수립하고 핵심 결과(Key result)를 통해 그 목표를 위한 방법들을 정하는 목표 관리 체계다. 목표를 위한 핵심 결과를 3~5개 정도 정해 달성해 나가면 된다.
아마노 마사루 OKR재팬 퍼실리테이터가 지은 책 ‘OKR 실천편’에 따르면 목표는 ‘가슴 떨리는 내용’으로 정해야 한다. 구성원들 모두에게 동기 부여가 돼야 하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영어 공부가 목표라면 ‘토익 900점’을 목표로 세우는 사람들이 있다. 하지만 수치를 목표로 삼으면 어딘가 무미건조하다. 그보다는 ‘해외 출장 때 현지인과 상담할 수 있을 정도로 하겠다’, ‘해외여행에서 쇼핑할 때 값을 깎을 수 있는 실력이 되겠다’ 등 자신이 원하는 이미지를 절실하게 떠올리며 공부하는 편이 한결 의욕이 솟는다.
OKR도 이와 마찬가지로 의욕을 고무시키는 내용을 ‘목표’라고 한다. 목표를 정할 때 또 중요한 것은 성공률이 50% 정도에 불과한 ‘야심적인 내용’이어야 한다는 점이다.
목표를 정했다면 수치로 표현할 수 있는 핵심 결과 지표를 세워야 한다. 팀의 성과를 올리기 위해 어떤 활동이 있고 그것이 어떻게 영향을 미치는지 이해할 수 있다면 핵심 결과를 바로 설정할 수 있다. 이때 핵심 결과는 구체적이고 측정 가능하며 기한이 정해져 있고 공격적이어야 한다. (참고도서=존 도어 OKR|존도어, OKR 실천편| 아마노 마사루)
김영은 기자 kye0218@hankyung.com
[본 기사는 한경비즈니스 제 1265호(2020.02.24 ~ 2020.03.01)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