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 1월부터 화물 차주에게 지급하는 최소 운임 공표…중간 운송업자들 부담 늘어
[한경비즈니스=이명지 기자] 새해 벽두부터 물류업계가 ‘화물차 안전운임제’로 혼란을 겪고 있다. 화물차 안전운임제는 저운임에 따른 과로·과적·과속의 위험에 노출된 화물 운송 노동자의 노동 여건을 개선하기 위해 화물 차주가 지급 받는 최소한의 운임을 공표하는 제도다.
이 제도로 물류업계가 혼란에 빠진 이유는 화주와 화물 차주 사이에 존재하는 수많은 중간 운송 사업자들의 마진이 줄고 부담이 늘기 때문이다. 여기에 별도의 유예 기간 없이 연초부터 당장 제도가 시행되면서 중간 운송 사업자들이 대책을 마련하기도 전에 과태료를 걱정해야 하는 처지에 몰렸다.
◆초대받지 못한 물류업계…‘의견 전달 못했다’
국토교통부는 지난해 12월 12일 화물차 안전운임위원회를 열고 2020년 화물차 안전 위탁 운임 및 안전 운송 운임을 컨테이너는 km당 평균 2033원, 2277원, 시멘트는 km당 평균 899원, 957원으로 의결했다.
그동안 물류업계에서는 운송사와 화물 차주가 단가 협의를 거친 후 이 단가를 기준으로 화주와 운송사가 견적을 논의하는 방식이 통용됐다. 하지만 안전운임제의 시행으로 화물 차주가 받을 수 있는 최소한의 운임이 설정되면서 일종의 ‘가이드라인’이 공표됐다.
국토부가 지난해 12월 공시한 운임표에 따르면 컨테이너를 부산항~서울 강동구(383km) 구간에서 왕복 운송할 경우 화주가 운수 사업자에게 지급하는 안전 운송 운임은 82만9000원 수준, 운수 사업자가 화물 차주에게 지급하는 안전 위탁 운임은 73만6000원 수준이다.
국토부는 제도 도입에 대해 “시장 혼란에 대한 우려가 있어 컨테이너·시멘트 품목에 한해 3년 일몰제(2020~2022년)로 도입했다”고 설명하며 올해 1월부터 2월까지 두 달을 계도 기간으로 설정했다. 계도 기간에 발생한 위반 사항에 대해선 추후 과태료를 부과할 수 있다.
안전운임제 시행에 따라 컨테이너 화물 차주의 운임이 오르게 됐다. 국토부는 한국교통연구원에서 조사한 차주 운임과 비교해 컨테이너 화물 차주는 평균 12.5%의 운임 인상을 기대할 수 있다고 밝혔다.
하지만 화물 차주의 운임이 오른 만큼 화주와 화물 차주 사이에 존재하는 수많은 중간 운송 사업자들의 부담이 늘어나게 됐다. 업계의 가장 큰 불만은 제도를 도입하는 과정에서 물류를 운송하는 다양한 이해관계인들이 참여할 수 없었다는 점이다.
국토부는 안전 운임 공표를 위해 지난해 7월부터 ‘화물차 안전운임위원회’를 발족했다. 위원회는 공익 대표 위원 4명, 화주·운수사업자·화물차주 대표 위원 각 3명 등 총 13명으로 구성됐다.
하지만 이 과정에서 선사·국제물류주선업자(포워더) 등 직간접적으로 운송에 참여하는 이들이 배제되면서 이들의 애로 사항이 반영되지 않았다는 반발이 나오고 있다. 한국선주협회 관계자는 “운임을 결정하는 과정에서 선사들의 의견을 전달할 기회가 없었다”며 “지난해 12월 31일 고시를 받고서야 결정된 사항을 확인하게 되면서 상당히 당황스러웠다”고 말했다. 이에 따라 선주협회는 지난 한 달 동안 국토부와의 논의를 통해 업계의 부담을 전달하고 있다.
대표적인 예는 ‘환적 화물’이다. 환적 화물은 한국이 최종 목적지가 아닌 국내 항만을 거쳐 다른 나라로 가는 화물을 말한다. 국내 최대 항만인 부산항은 환적 화물을 적극적으로 유치해 물동량을 늘렸다. 지난해 부산항의 컨테이너 물동량은 2191만TEU(1TEU는 20피트 컨테이너 한 대)였는데 이 중 환적 물동량이 1158만 TEU 로 전체 물량의 52%를 차지했다.
환적 화물은 배정된 터미널에 따라 항만 내에서도 트럭 운송을 통해 다른 터미널로 이동하는 경우가 부지기수다. 특히 부산항은 북항과 신항으로 나눠져 있어 화물 육상 수송을 거쳐야 하는 화물의 비율이 상당히 높다. 한국선주협회 관계자는 “부산항에 입항하는 화물 중 환적 화물이 절반가량을 차지하고 이 환적 화물 중에서도 30~40%는 트럭을 통해 다른 터미널로 운송되는 것이 현재 실정”이라고 말했다.
그런데 이 환적 화물의 육상 수송비용은 실화주가 아닌 선사들이 지불한다. 안전운임제 도입 시 환적 물량에 대한 선사의 부담이 늘어나지만 국토부가 안전운임위원회를 구성할 때 실화주만을 포함하면서 선사들의 의견을 반영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특히 현재 원양 선사가 현대상선과 SM상선밖에 없는 상황에서 해외 선사들이 상승한 운임 때문에 다른 국가의 항만을 환적지로 이용한다면 국내 항만과 해운 전체 경쟁력이 떨어질 것이란 우려도 나오고 있다.
◆간담회 시행 중이지만 애로 사항은 여전해
국제물류주선업계(포워딩)의 상황은 한층 더 복잡하다. 이들의 주 업무는 화주에게 의뢰 받아 선하증권·항공화물운송장 등을 발급한 후 국내운송·국제운송·통관·보관·집하로 연계해 해외 목적지까지 화물을 안전하게 운송하는 것이다. 직접 화물이나 선박을 소유하지는 않았지
만 수출입 물류의 큰 축을 차지한다.
국내 포워딩업계를 대변하는 한국국제물류주선업협회는 지난 2월 6일 국토부에 건의서를 제출했다. 국제물류주선업협회가 건의한 내용은 먼저 국토부가 포워딩 업체들을 ‘화주’로 분류한 것이 ‘옳지 않다’는 것이다. 국토부는 국제물류주선업자가 화주의 지위를 갖는다고 판단해 이번 안전운임제의 과태료 부과 대상에 포함했다.
하지만 국제물류주선업협회는 ‘국제물류주선업자는 자기 명의로 운송 계약을 체결한 운송을 인수하는 경우에는 복합 운송인의 지위를 획득한다’는 대법원의 2019년 판례를 들며 이를 반박했다.
국제물류주선업협회 관계자는 “포워딩 업체들은 국제 운송을 주선하는 주선업자로 실화주의 지위를 갖지 않는다”며 이를 철회해 달라고 요청했다. 협회 관계자는 또 “만약 국토부가 분류한 대로 포워딩 업체가 화주라면 왜 안전운임위원회에 포함해 주지 않았는지도 의문”이라고 말했다.
여기에 더해 지난해 12월 31일 고지가 전달된 후 새해 첫날부터 바로 제도가 시행됨에 따라 준비할 수 있는 기간이 없었다는 것도 문제로 지적된다. 운송업자들은 화물 차주에겐 바로 대금을 지급해야 하지만 화주에게는 월말 계산 방식으로 대금을 받는다. 이익이 나지 않은 상황에서 인상된 운임을 지급해야 하는데 중소 업체들은 이를 버틸 체력이 없다는 것이다.
포워딩 업체 관계자는 “포워딩 업체들은 보통 월말에 화주에게 요금을 청구하는데 계도 기간이 끝나는 다음 달부터 본격적으로 운임 인상의 부담이 시작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물류업계의 불만의 목소리가 높아지자 국토부는 2월 중순부터 선주협회·외국 선사·운송업자·화물연대 등이 참여하는 간담회를 두 차례 열었다. 하지만 아직까지 뾰족한 결론은 나지 않은 상황이다.
업계 또한 계도 기간이 1주일밖에 남지 않은 시점에서 나름대로 대책을 강구하고 있다. 일부 포워딩 업체들은 국내 운송 구간에 참여할 수 있는 운송 면허를 획득해 수익을 얻는 방안을 고려 중이다. 부산 지역 900개 직접 운송 사업자들로 이뤄진 ‘부산컨테이너직업운송사업자협의회’는 안전운임제와 관련한 헌법 소원 등을 검토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선주협회 등은 간담회를 통해 지속적으로 국토부에 의견을 전달할 예정이다.
mjlee@hankyung.com
[본 기사는 한경비즈니스 제 1265호(2020.02.24 ~ 2020.03.01) 기사입니다.]
[한경비즈니스=이명지 기자] 새해 벽두부터 물류업계가 ‘화물차 안전운임제’로 혼란을 겪고 있다. 화물차 안전운임제는 저운임에 따른 과로·과적·과속의 위험에 노출된 화물 운송 노동자의 노동 여건을 개선하기 위해 화물 차주가 지급 받는 최소한의 운임을 공표하는 제도다.
이 제도로 물류업계가 혼란에 빠진 이유는 화주와 화물 차주 사이에 존재하는 수많은 중간 운송 사업자들의 마진이 줄고 부담이 늘기 때문이다. 여기에 별도의 유예 기간 없이 연초부터 당장 제도가 시행되면서 중간 운송 사업자들이 대책을 마련하기도 전에 과태료를 걱정해야 하는 처지에 몰렸다.
◆초대받지 못한 물류업계…‘의견 전달 못했다’
국토교통부는 지난해 12월 12일 화물차 안전운임위원회를 열고 2020년 화물차 안전 위탁 운임 및 안전 운송 운임을 컨테이너는 km당 평균 2033원, 2277원, 시멘트는 km당 평균 899원, 957원으로 의결했다.
그동안 물류업계에서는 운송사와 화물 차주가 단가 협의를 거친 후 이 단가를 기준으로 화주와 운송사가 견적을 논의하는 방식이 통용됐다. 하지만 안전운임제의 시행으로 화물 차주가 받을 수 있는 최소한의 운임이 설정되면서 일종의 ‘가이드라인’이 공표됐다.
국토부가 지난해 12월 공시한 운임표에 따르면 컨테이너를 부산항~서울 강동구(383km) 구간에서 왕복 운송할 경우 화주가 운수 사업자에게 지급하는 안전 운송 운임은 82만9000원 수준, 운수 사업자가 화물 차주에게 지급하는 안전 위탁 운임은 73만6000원 수준이다.
국토부는 제도 도입에 대해 “시장 혼란에 대한 우려가 있어 컨테이너·시멘트 품목에 한해 3년 일몰제(2020~2022년)로 도입했다”고 설명하며 올해 1월부터 2월까지 두 달을 계도 기간으로 설정했다. 계도 기간에 발생한 위반 사항에 대해선 추후 과태료를 부과할 수 있다.
안전운임제 시행에 따라 컨테이너 화물 차주의 운임이 오르게 됐다. 국토부는 한국교통연구원에서 조사한 차주 운임과 비교해 컨테이너 화물 차주는 평균 12.5%의 운임 인상을 기대할 수 있다고 밝혔다.
하지만 화물 차주의 운임이 오른 만큼 화주와 화물 차주 사이에 존재하는 수많은 중간 운송 사업자들의 부담이 늘어나게 됐다. 업계의 가장 큰 불만은 제도를 도입하는 과정에서 물류를 운송하는 다양한 이해관계인들이 참여할 수 없었다는 점이다.
국토부는 안전 운임 공표를 위해 지난해 7월부터 ‘화물차 안전운임위원회’를 발족했다. 위원회는 공익 대표 위원 4명, 화주·운수사업자·화물차주 대표 위원 각 3명 등 총 13명으로 구성됐다.
하지만 이 과정에서 선사·국제물류주선업자(포워더) 등 직간접적으로 운송에 참여하는 이들이 배제되면서 이들의 애로 사항이 반영되지 않았다는 반발이 나오고 있다. 한국선주협회 관계자는 “운임을 결정하는 과정에서 선사들의 의견을 전달할 기회가 없었다”며 “지난해 12월 31일 고시를 받고서야 결정된 사항을 확인하게 되면서 상당히 당황스러웠다”고 말했다. 이에 따라 선주협회는 지난 한 달 동안 국토부와의 논의를 통해 업계의 부담을 전달하고 있다.
대표적인 예는 ‘환적 화물’이다. 환적 화물은 한국이 최종 목적지가 아닌 국내 항만을 거쳐 다른 나라로 가는 화물을 말한다. 국내 최대 항만인 부산항은 환적 화물을 적극적으로 유치해 물동량을 늘렸다. 지난해 부산항의 컨테이너 물동량은 2191만TEU(1TEU는 20피트 컨테이너 한 대)였는데 이 중 환적 물동량이 1158만 TEU 로 전체 물량의 52%를 차지했다.
환적 화물은 배정된 터미널에 따라 항만 내에서도 트럭 운송을 통해 다른 터미널로 이동하는 경우가 부지기수다. 특히 부산항은 북항과 신항으로 나눠져 있어 화물 육상 수송을 거쳐야 하는 화물의 비율이 상당히 높다. 한국선주협회 관계자는 “부산항에 입항하는 화물 중 환적 화물이 절반가량을 차지하고 이 환적 화물 중에서도 30~40%는 트럭을 통해 다른 터미널로 운송되는 것이 현재 실정”이라고 말했다.
그런데 이 환적 화물의 육상 수송비용은 실화주가 아닌 선사들이 지불한다. 안전운임제 도입 시 환적 물량에 대한 선사의 부담이 늘어나지만 국토부가 안전운임위원회를 구성할 때 실화주만을 포함하면서 선사들의 의견을 반영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특히 현재 원양 선사가 현대상선과 SM상선밖에 없는 상황에서 해외 선사들이 상승한 운임 때문에 다른 국가의 항만을 환적지로 이용한다면 국내 항만과 해운 전체 경쟁력이 떨어질 것이란 우려도 나오고 있다.
◆간담회 시행 중이지만 애로 사항은 여전해
국제물류주선업계(포워딩)의 상황은 한층 더 복잡하다. 이들의 주 업무는 화주에게 의뢰 받아 선하증권·항공화물운송장 등을 발급한 후 국내운송·국제운송·통관·보관·집하로 연계해 해외 목적지까지 화물을 안전하게 운송하는 것이다. 직접 화물이나 선박을 소유하지는 않았지
만 수출입 물류의 큰 축을 차지한다.
국내 포워딩업계를 대변하는 한국국제물류주선업협회는 지난 2월 6일 국토부에 건의서를 제출했다. 국제물류주선업협회가 건의한 내용은 먼저 국토부가 포워딩 업체들을 ‘화주’로 분류한 것이 ‘옳지 않다’는 것이다. 국토부는 국제물류주선업자가 화주의 지위를 갖는다고 판단해 이번 안전운임제의 과태료 부과 대상에 포함했다.
하지만 국제물류주선업협회는 ‘국제물류주선업자는 자기 명의로 운송 계약을 체결한 운송을 인수하는 경우에는 복합 운송인의 지위를 획득한다’는 대법원의 2019년 판례를 들며 이를 반박했다.
국제물류주선업협회 관계자는 “포워딩 업체들은 국제 운송을 주선하는 주선업자로 실화주의 지위를 갖지 않는다”며 이를 철회해 달라고 요청했다. 협회 관계자는 또 “만약 국토부가 분류한 대로 포워딩 업체가 화주라면 왜 안전운임위원회에 포함해 주지 않았는지도 의문”이라고 말했다.
여기에 더해 지난해 12월 31일 고지가 전달된 후 새해 첫날부터 바로 제도가 시행됨에 따라 준비할 수 있는 기간이 없었다는 것도 문제로 지적된다. 운송업자들은 화물 차주에겐 바로 대금을 지급해야 하지만 화주에게는 월말 계산 방식으로 대금을 받는다. 이익이 나지 않은 상황에서 인상된 운임을 지급해야 하는데 중소 업체들은 이를 버틸 체력이 없다는 것이다.
포워딩 업체 관계자는 “포워딩 업체들은 보통 월말에 화주에게 요금을 청구하는데 계도 기간이 끝나는 다음 달부터 본격적으로 운임 인상의 부담이 시작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물류업계의 불만의 목소리가 높아지자 국토부는 2월 중순부터 선주협회·외국 선사·운송업자·화물연대 등이 참여하는 간담회를 두 차례 열었다. 하지만 아직까지 뾰족한 결론은 나지 않은 상황이다.
업계 또한 계도 기간이 1주일밖에 남지 않은 시점에서 나름대로 대책을 강구하고 있다. 일부 포워딩 업체들은 국내 운송 구간에 참여할 수 있는 운송 면허를 획득해 수익을 얻는 방안을 고려 중이다. 부산 지역 900개 직접 운송 사업자들로 이뤄진 ‘부산컨테이너직업운송사업자협의회’는 안전운임제와 관련한 헌법 소원 등을 검토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선주협회 등은 간담회를 통해 지속적으로 국토부에 의견을 전달할 예정이다.
mjlee@hankyung.com
[본 기사는 한경비즈니스 제 1265호(2020.02.24 ~ 2020.03.01)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