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니스 포커스]
- 조직 슬림화하고 ‘제조 강점’에 집중, 이미지 센서 강자로…사업 간 벽 허물고 ‘원 소니’ 구축
[한경비즈니스=이현주 기자] 미국 라스베이거스에서 1월 6일 열린 ‘세계 가전 전시회(CES) 2020’에서 일본 전자 업체 소니가 뜻밖의 이목을 모았다. 한때 혁신의 대명사였던 소니가 전기·자율주행차 콘셉트카 ‘비전-S’를 선보이면서다.
소니는 이 자동차에 자사의 센서 기술과 엔터테인먼트 자산을 집약했다. 카메라 등 자동차 부품을 완성차 업체에 공급해 오던 소니가 자체적으로 자동차를 선보인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요시다 겐이치로 소니 사장은 “지난 10년의 트렌드가 모바일이었다면 다음 메가트렌드는 모빌리티”라고 말했다.
전자 업체가 실제 도로 주행이 가능한 시제품을 전시장에 선보이면서 해외 주요 언론들은 놀랍다는 반응을 쏟아냈다. 그동안 구조 조정을 통해 수익성을 꾸준히 개선해 온 소니가 과거와 같이 혁신적인 제품을 개발하려는 움직임을 보이면서 ‘소니 신화’가 부활하는 게 아니냐는 관측이 제기됐다.
모든 전자 회사가 모델로 삼았던 소니
소니는 원래 트랜지스터라디오·워크맨·비디오·CD·디지털카메라 등으로 세계적인 지위를 누렸다. 41년 전 탄생한 휴대용 카세트 플레이어 워크맨은 사람들의 생활 방식을 바꾸는 혁신의 아이콘이었다.
하지만 소니의 명성은 디지털 시대로 이어지지 못했다. 특히 2008년 글로벌 금융 위기 이후 장기 불황에 빠지면서 부진을 거듭했다. 세계 최고 품질을 자랑하던 TV는 적자 사업이 됐고 삼성전자와 LG전자에 선두 자리를 넘겨줬다. 한때 소니를 성장 모델로 삼았던 애플이 새로운 혁신의 아이콘으로 떠오르는 사이 소니의 스마트폰 사업은 ‘만년 적자’를 지속했다. 이 때문에 2010년 이후 ‘소니의 몰락’을 연구 주제로 삼은 보고서들을 심심치 않게 볼 수 있다.
소니의 부활을 알리는 신호가 감지된 것은 2015년 무렵부터다. 소니는 2015 회계연도부터 흑자로 돌아선 이후 서서히 상승세를 타기 시작했다. 2017년과 2018년 2년 연속 매출과 영업이익 모두 사상 최고 실적을 경신한 데 이어 올해도 좋은 성적이 기대된다. 소니의 주가는 지난해 말 2002년 이후 17년 만에 최고치를 기록했고 2012년 11월 이후 올 2월까지 9.6배나 상승했다.
일본 니혼게이자이신문은 1월 6일 “소니가 성장주로서의 빛을 되찾고 있다”며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의 융합으로 힘들었던 시기를 극복하고 여러 사업이 연계되는 ‘원 소니(One Sony)’의 확립으로 시가 총액 10조 엔(약 110조7000억원) 복귀를 앞두고 있다”고 보도했다.
이지평 LG경제연구원 상근자문위원은 “경영 개선과 투자 여력의 확대가 소니에 의한 이노베이션의 기대를 높이고 있다”며 “위기를 겪었던 게임이나 이미지 센서에서 소니가 그동안 신사업 영역을 개척해 왔고 구조 전환에 성공한 결과라고 볼 수 있다”고 말했다.
소니의 부활 스토리에는 말 그래도 ‘환골탈태’의 과정이 녹아 있다. 기업 고유의 강점과 약점을 잘 인식하고 이를 끊임없이 강화해 나갔다. 특히 이 과정을 진두지휘한 두 명의 리더가 눈길을 끈다. 조 단위의 적자에서 창사 이후 최대 이익을 경신하기까지 드라마틱한 변화를 이끌어 온 두 명의 리더는 히라이 가즈오 소니 전 회장과 요시다 겐이치로 현 소니 사장이다.
히라이 전 회장이 소니 최고경영자(CEO)에 임명된 것은 2012년 4월이다. 그는 그때부터 3년마다 총 3번의 ‘중기 기업 경영 전략’을 내놓았다. 그의 밑에는 당시 최고재무책임자(CFO)로 일했던 요시다 사장이 있었다.
2012~2014년 1차 경영 전략의 핵심은 ‘구조 조정’이었다. 히라이 전 회장은 소니를 추스르는 노력으로 조직 개편과 조직 슬림화를 단행했다. 먼저 ‘바이오(VAIO)’ 브랜드로 알려진 PC 사업 부문을 매각했다. 저렴한 중국산 노트북과 경쟁할 수 없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또한 적자의 늪에 빠진 TV 사업을 축소한 뒤 ‘소니 비주얼 프로덕트’란 이름의 자회사로 분사했고 워크맨을 만들던 오디오 사업과 반도체 디바이스 사업도 분사했다. 조직을 슬림화하면서 외부 비즈니스 환경에 빠르게 대처하고 책임 소재를 명확히 하기 위해서였다. 이와 함께 원가를 절감하기 위해 합작투자사에 대한 투자를 중단하고 TV 패널의 글로벌 멀티 소싱을 시작했다.
그 대신 ‘선택과 집중’을 통해 전자 부문의 ‘프리미엄 전략’을 추구했다. 소니 부활의 핵심에는 오랫동안 적자를 내던 전자 사업이 제품 차별화와 프리미엄 전략으로 안정적인 수익을 창출하게 된 데 있다. 2004년부터 10년 동안 8000억 엔(약 8조9000억원)의 적자를 내던 소니 TV 비즈니스는 ‘4K(초고화질)’와 ‘대화면’ 위주로 전환했고 라인업뿐만 아니라 출시 국가와 지역에도 선택과 집중 전략을 폈다. 그 결과 TV비즈니스는 2016년 5%대, 2017년 7%대의 영업이익률을 올릴 수 있었다.
2차 중기 기업 경영 전략이 실행되던 2015년부터 2017년까지 소니는 본격적인 수익을 내기 시작했다. 2차 중기 기업 전략의 목표는 10% 이상의 자기자본이익률(ROE), 5000억 엔(약 5조5000억원) 이상의 영업이익 달성이었다. 그리고 2차 경영 전략이 마무리되던 2017년 소니는 목표를 훌쩍 뛰어넘는 7349억 엔(약 8조1400억원)의 영업이익을 달성하며 당시 역대 최고 실적을 기록했다.
제조 강점에 집중하고 기술 혁신 추구
소니의 대표적인 성장 사업으로는 ‘이미지 센서’가 있다. 소니는 기존 주력 사업을 정리하는 대신 2015년 공모 증자로 마련한 4000억 엔(약 4조4000억원)을 상보형금속산화반도체(CMOS) 이미지 센서 사업에 투자했다. 이미지 센서는 최근 스마트폰의 멀티 카메라 채용 흐름에 따라 수요가 많은 사업이다. 또 자율주행차의 눈 역할을 수행하기도 한다. 소니는 애플과 화웨이 등에 CMOS를 공급하며 글로벌 시장점유율 약 50%로 1위를 차지하고 있다.
소니는 ‘제조 강점’에 집중하고 ‘기술 혁신’을 추진해 이미지 센서 시장의 절대 강자가 됐다. 소니의 이미지 센서 사업은 원래 전자결합소자(CCD : Charge Coupled Device) 기술을 기반으로 성장해 왔다. 1985년 CCD를 탑재한 카메라 일체형 8mm VTR을 출시하면서 가정용 비디오카메라로 화제를 불러일으킨 바 있다. CCD의 강자가 된 소니는 1990년대 이후 디지털카메라 등에서 CCD로 신규 시장을 개척했다. 하지만 2015년 이후 CMOS에 주력하는 전략으로 전환을 꾀했다. CMOS는 CCD에 비해 화질이 떨어지지만 가격이 저렴하다. 소니는 CMOS의 성능을 대폭 개선하는 혁신을 통해 시장을 재패해 나갔다.
이지평 자문위원은 “이면조사(裏面照射) 기술을 개발한 것이 화질 개선에 크게 기여했다”며 “고객을 감동시키는 혁신을 위해서는 그 기초가 되는 제조 강점에 집중할 필요가 있고 기술 차별화를 통해 강점 기술을 시대 변화에 맞게 다양하게 활용하는 노력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소니는 이 기술을 활용해 향후 자동차 시장을 적극 공략하겠다는 전략을 가지고 있다.
2018년 5월 발표된 3차 중기 경영 전략에는 하드웨어와 함께 소니의 엔터테인먼트 비즈니스 전략이 잘 녹아 있다. 소니는 전자뿐만 아니라 게임·영화·음악 등 엔터테인먼트 콘텐츠 비즈니스 부문에서 독보적인 기업으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특히 플레이스테이션은 월정액 서비스인 ‘플레이 스테이션 네트워크’의 성장으로 소니의 단일 비즈니스 부문 중에선 매출과 이익 모두 사상 최고의 성과를 거뒀다. 일종의 ‘구독 경제’를 통해 인터넷 플랫폼 비즈니스로 게임 산업을 혁신한 것이다.
또한 소니는 EMI 뮤직 퍼블리싱(EMI)을 인수하며 세계 최대의 뮤직 퍼블리싱 회사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또 세계 최대 독립 스튜디오로서 영화 ‘쥬만지’와 같은 리메이크가 가능한 수많은 콘텐츠 라이브러리를 보유하고 있다.
히라이 전 회장이 주창한 ‘원 소니’ 개념은 소니가 보유한 하드웨어와 콘텐츠 간, 사업 간 벽을 허물고 융합을 통한 시너시를 추구하는 전략이다. 이 자문위원은 “‘원 소니’로 고객에 대응하는 플랫폼을 통일하고 이를 기초로 게임·음악·비디오 등의 구독 경제 서비스 모델을 정착시켜 수익성을 크게 높인 것도 소니 부활의 비결”이라고 분석했다.
charis@hankyung.com
[본 기사는 한경비즈니스 제 1266호(2020.02.29 ~ 2020.03.06)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