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직 성장의 핵심 열쇠 ‘임원’, 어떻게 뽑아야 할까 [한준기의 경영전략]

-‘급하니 일단 뽑자’는 절대 금물…‘인재 풀’ 미리 구축하고 선발 후 연착륙 도와야



[한준기 IGM 세계경영연구원 교수] 한 다국적 기업에서 겪었던 사건이 불현듯 떠오른다. 한때 이 기업은 독보적인 브랜드와 상품으로 시장을 호령했었다. 하지만 어느 순간 경쟁자에게 시장을 잠식당하기 시작했다.

설마 했던 영업 실적이 마지노선까지 붕괴되자 글로벌 본사는 분투하던 최고경영자(CEO)를 매정하게 집으로 돌려보냈다. 그리고 보다 강력한 실력과 명망을 겸비한 것으로 평가받는 CEO를 새로 영입했다.

신임 CEO는 비교적 짧은 시간 내 조직 안정과 함께 비즈니스의 성과를 반전시켜 놓았다. 동시에 결과론적으로 1년도 채 안 되는 시간 내에 그는 모든 임원들을 100% 물갈이하고 새로운 임원진을 구축했다. 조직 성장의 가장 중요한 열쇠를 임원들의 리더십이라고 확신했던 것이다.

계속 성과를 내지 못하면 도태될 수밖에 없는 것이 냉정한 기업의 세계다. 오늘도 예측 불허에다 통제 불가능한 복잡한 ‘외생 변수’는 속출한다. 그래도 임원 선발만큼은 아직 기업의 통제 영역에 있다. 임원 선발의 의미를 다시 생각해 봐야 할 시점이다.

◆임원 선발의 개념부터 재정의해야


조직 내부적으로 세 가지 중요한 질문을 짚어 봄으로써 성공적인 임원 선발의 실마리를 찾을 수 있다. 첫째는 임원을 채용하고 있는지 아니면 선발하고 있는지 물어야 한다.

이를 통해 임원 선발의 개념을 재정의하고 확장시킬 필요가 있다. 결론부터 얘기하면 임원은 선발이라는 큰 개념의 끝에서 채용해야 한다. 단지 공석을 채우는 것만이 능사는 아니다. 공석 여부에 상관없이 조직 안팎의 ‘차세대 유망주’를 포함해 그 직무를 가장 잘 수행할 수 있는 선수들로 구성된 가용한 ‘인재 풀(pool)’을 구축할 수 있어야 한다.

월드컵 축구 출전 준비를 하는 대표팀의 코치를 생각해 보자. 주전·후보·상비군 선수에 상관없이 가능성을 열어 두고 검증할 것이다. 지금도 글로벌 기업의 CEO들은 직접 팔을 걷어붙이고 전 세계를 돌며 인재를 찾는다. 거의 ‘헤드헌터’ 수준이다.

본사 최고위 임원들은 불과 하루 이틀의 짧은 출장 기간에도 현지 시장의 ‘유망주’들과의 만남을 꼭 성사시켜 달라고 주문한다. 흡사 프로 스포츠 세계의 코치와 스카우트들이 숨은 진주를 발굴하기 위해 경기가 열리는 곳이면 어디라도 날아가는 것을 연상시킨다.

둘째, 최적의 선발 도구와 바른 의사 결정 과정을 사용하는지 질문해야 한다. 이 과정에 소홀하면 훗날 상상하지 못했던 엄청난 금전적·시간적 손실이 발생할 수도 있다.

적어도 중요한 임원 포지션 선발만큼은 ‘어세스먼트센터(Assessment Center)’라는 도구를 통해 평가하는 절차를 거쳐볼 것을 권한다.

어세스먼트센터는 어떤 장소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실제 비즈니스 상황을 시뮬레이션화한 복수의 평가 도구 기법을 사용해 훈련된 다수의 평가자가 피평가자의 행동 특성을 관찰·평가하는 기법이다.

오랜 기간 동안 연구자들과 실무자들을 통해 다른 선발 도구에 비해 변별력이 뛰어난 것으로 입증됐다. 이미 유수의 다국적 기업에서는 핵심 포지션의 선발이나 승진 그리고 핵심 인재를 육성하는 도구로 유용하게 사용하고 있다.

임원에 대한 ‘평판조회(reference check)’ 역시 달라져야 한다. 서치 펌이 조사한 보고서만을 전적으로 의지하는 것은 위험하다.

복수의 채널을 활용해 평판을 조회해 보거나 전문 업체에 의뢰해 보는 것도 보완책이 될 수 있다. 또한 최종 선발의 의사 결정은 가능하면 선발 과정에 참여했던 모든 이해 관계 당사자의 완전한 합의로 결론을 내리는 것이 좋다. 여전히 이견이 있고 확신이 서지 않는다면 차라리 최종 결론을 유보하는 것이 오히려 낫다.

셋째, 선발된 임원의 ‘연착륙(soft-landing)’을 위해 어떻게 지원해 주고 있는지 되새겨 보자. 최근에는 과거보다 경력 사원의 이직이나 전직이 훨씬 더 활발하게 진행되고 있다. 임원 정도라면 ‘진짜 선수’라는 생각에 ‘얼마나 잘하는지 지켜보자’는 생각으로 현미경부터 들이대기 시작할 수도 있는데 이런 방식은 정말 실수를 하는 것이다.

체계적인 ‘온보딩(onboarding)’ 프로그램을 만들어 주지는 못하더라도 조직과 비즈니스와 사람을 하루 빨리 파악할 수 있도록 어떻게든 지원해야 한다.

이 단계에서 한 번 고려해 볼 수 있는 프로그램은 새로운 임원과 그의 팀의 모든 구성원들 간에 간극을 좁히고 상호 이해도를 높이기 위한 ‘동화(assimilation) 과정’ 워크숍이다.

◆구성원들과 간극 좁히는 프로그램도 준비해야


임원의 비즈니스에 대한 생각이나 비전, 계획, 개인적인 모든 사안까지도 구성원들의 다양한 질문을 받아 현장에서 가감 없이 진솔하게 답변해 준다면 좋을 것이다.

문자 그대로 서로가 좀 더 동화되는 것이다. 또 앞서 언급했던 어세스먼트센터를 평가 중심이 아닌 역량 개발 중심의 ‘디벨로프먼트센터(Development Center)’로 재구성해 운영해 보는 것도 추천한다.

이를 통해 해당 임원이 새 조직에서 잘 안착하고 좋은 성과를 내기 위해 어떤 영역에 선택과 집중을 해야 할지 진단해 주고 방법론을 제안해 줄 수 있다.

우리는 지금까지 별생각 없이 되풀이했던 관성의 법칙에서 벗어나 보이지 않는 악순환의 고리를 끊어야 할 때가 됐다. 왜 임원을 선발해야 하는지 망각한 채 시간에 쫓겨 제대로 선발하지 않고 단편적으로 채용하는 일이 빈번했다.

훈련되지 않은 면접관들이 ‘감(感)’으로 면접을 보는 등 검증되지 않은 방법과 과정 속에서 적당히 타협해 채용하고 조직에 입사하고 난 뒤에는 은연중에 눈에 보이지 않는 장벽으로 가로막고 ‘알아서 잘해 봐라’는 식으로 방임한다면 무언가 심각하게 잘못된 일을 범하고 있는 것이다.

‘의인물용 용인물의(疑人勿用 用人勿疑)’라는 말이 있다. ‘의심하는 사람이면 쓰지를 말고 쓰는 사람이면 의심을 하지 말라’는 뜻이다.

명확한 방향을 수립하고 확신을 갖고 인재를 선발하는 것이 그 어느 때보다 필요하다. 고개를 갸웃거리면서도 마땅한 대안이 없고 사람은 필요하니까 ‘일단 뽑아 보고 나중에 아니다 싶으면 3개월 수습 평가 제도가 있으니 그때 내보내면 되지 않을까’라는 생각으로 채용을 결정하는 경영자들도 기업 현장에 적지 않이 있다.

필자는 직원을, 특히 임원들을 피도 눈물도 없이 매정하게 잘라버리는 세계적인 유수의 다국적 기업에서 오랜 시간을 보냈다.

결과론적으로만 보면 그들은 참으로 사람을 잘도 해고해 내보내지만 사람에 대해 확신이 서지 않아 고개를 갸웃거리면서도 일단 먼저 뽑고 써보자는 식으로 접근했던 사례는 20여 년의 세월 동안 단 한 건도 목격하지 못했다.

그것이 그들이 때로는 비난을 받으면서도 여전히 수많은 인재들이 함께 일하고 싶어 하는 세계 최고의 기업으로 명맥을 유지하고 있는 비결이 아닐까.
[본 기사는 한경비즈니스 제 1266호(2020.02.29 ~ 2020.03.06) 기사입니다.]
상단 바로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