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기업의 미래, ‘마곡·송도·판교·용인’에 있다


- 덩치 키운 대기업 ‘R&D센터’ 속속 설립
- 4만 곳 중 수도권에 64.8% 집중



[한경비즈니스=차완용 기자] 연구·개발(R&D)은 기업의 핵심 성장 동력이다. 현재 대한민국을 이끌고 있는 삼성·현대차·SK·LG 등 대기업들은 막대한 투자를 기반으로 한 R&D 육성 전략으로 반도체·자동차·정보기술(IT)·석유화학·조선·철강 등의 핵심 산업 분야에서 성공을 이뤄 냈다.

반면 R&D에 실패한 기업들은 사업에서 철수하며 사세가 기울었거나 역사 속으로 사라지는 아픔을 겪어야만 했다.

이에 따라 수많은 기업들이 R&D 투자에 적극 나서고 있다. 기업부설연구소(R&D센터) 운영 현황이 이를 증명한다. 1981년 기업부설연구소 설립 신고 제도 도입 당시 53개였던 R&D센터는 현재 4만 개를 넘어섰다.

R&D센터에서 근무하는 연구원 역시 꾸준히 증가해 34만여 명에 이른다. 그런데 문제가 있다. R&D센터와 연구원들의 수가 수도권에 몰려 있다. 가뜩이나 수도권과 비수도권의 인구수, 일자리 수, 삶의 질 등의 격차가 벌어지고 있는 상황에서 아쉬운 부분이다.

물론 기업들도 이러한 사실을 잘 알고 있다. 하지만 R&D센터의 수도권 설립은 경쟁력을 확보하기 위한 어쩔 수 없는 선택이다. 본사와의 업무 효율, 고급 인력 유치, 해외 바이어와의 미팅 등을 고려할 때 지리적으로 수도권이 절대적으로 유리하기 때문이다.

◆ 수도권에서 덩치 키우는 R&D센터



한국산업기술진흥협회 기업부설연구소 통계 현황에 따르면 2월 말 기준 전체 R&D센터는 4만965개로 조사됐다. 1981년 7월 기업부설연구소 설립 신고 제도 도입 당시 53개였으니 39년 사이 800배 가까이 증가한 것이다.

R&D센터에서 일하는 인력도 꾸준히 늘었다. 2012년 27만1063명의 연구원 수는 현재 34만230명에 이른다. 인력의 질도 높아졌다. 학사 이상의 고급 인력이 30만2997명이다.

그런데 특이점이 있다. R&D센터와 연구원 수가 서울·인천·경기 등 수도권 지역에 집중되고 있다. 전체 4만965개의 R&D센터 중 64.8%인 2만6555개(서울 1만1810개, 인천 1863개, 경기 1만2882개)가 수도권에 자리해 있다.

연구원은 34만230명 중 70.6%인 24만415명이 수도권 R&D센터에서 근무 중이다. 수도권에 근무하는 연구원 비율이 수도권 R&D센터 비율보다 높다는 것은 수도권에 대형 R&D센터가 많다는 사실을 방증한다.

실제로 최근 수도권 R&D센터 비율이 감소하고 연구원 비율이 높아지는 현상이 두드러지고 있다. 수도권 내에 자리한 R&D센터 비율은 연말 기준으로 2017년 65.7%, 2018년 64.8%, 2019년 64.7%로 계속 감소하고 있다.

반면 연구원 비율은 2017년 70.6%, 2018년 70.8%, 2019년 71%로 계속 높아지고 있다. 이는 수도권에 대형 연구소가 설립되거나 지역 대형 연구소가 수도권으로 이전했기 때문이다.

신규 인정 R&D센터 현황을 보더라도 수도권 집중 현상이 심해지고 있다. 2018년과 2019년 새로 인정된 수도권 R&D센터 비율과 연구원 비율은 평균 수준보다 높다.

2019년 수도권의 전체 R&D센터와 연구원 비율은 각각 64.7%와 71%였다. 반면 신규로 인정된 R&D센터와 연구원 비율은 각각 65.3%와 71.9%다. 새로 설립되는 R&D센터와 연구원 비율이 전체 비율보다 높다는 것은 앞으로 수도권 집중도가 더 심해질 가능성이 높다는 것을 의미한다.

◆ LG 품은 마곡, 이랜드·에쓰오일도 들어서



실제로 최근 몇 년 사이 대기업들의 R&D센터가 서울과 인천 수도권에 터를 잡기 시작했다. 그중에서도 가장 대표적인 곳이 서울 마곡산업단지다.

2009년 첫 삽을 뜬 마곡산업단지는 R&D 중심의 산업·업무 거점으로 계획됐고 2018년부터 LG·롯데·코오롱 등의 기업이 이전했고 R&D센터가 설립됐다.

특히 LG그룹의 역량을 총집결시킨 LG사이언스파크는 축구장 24개 규모인 17만여㎡의 부지에 20여 개 연구동이 세워지는 등 국내 최대 규모의 R&D센터로 건립됐다.

현재 LG사이언스파크에 근무하는 상주인구만 1만7000여 명에 달하는데 LG그룹은 올해 안에 그룹 내 모든 R&D 인력을 이곳에 집결시킨다는 방침이다.

코오롱그룹도 마곡산업단지에 R&D센터를 설립했다. 지하 4층~지상 10층, 총면적 7만6349㎡ 규모의 R&D센터에는 핵심 계열사인 코오롱인더스트리와 코오롱생명과학, 코오롱글로텍의 R&D 지원 인력 1100여 명이 근무 중이다.

롯데그룹도 이곳에 R&D센터를 지었다. 롯데중앙연구소의 신축 연구소인 ‘롯데 R&D센터’는 건립 기간 2년, 총 2247억원을 투자해 완공됐다.

지하 3층, 지상 8층 건물에 총면적 8만2929㎡(2만5086평)로 기존 양평연구소보다 5배 이상 규모가 크다. 현재 근무 중인 연구 인력은 430여 명으로 롯데에서 출시하는 식품의 연구·개발에 한창이다.

마곡산업단지에는 앞으로 수많은 기업들의 R&D센터 건립이 예정돼 있다. 우선 이랜드그룹이 글로벌 R&D센터를 짓고 있는데 규모가 엄청나다. LG사이언스파크보다 더 큰 축구장 34개 크기, 총면적 25만㎡ 규모에 이른다.

에쓰오일은 2014년 2월 서울 마곡산업단지에 2만9099㎡ 규모의 연구소 부지를 확보한 뒤 기술개발센터(TS&D)를 건립 중이다.

국내 제약 기업인 한독과 바이오벤처 제넥신도 양 사의 R&D 협력을 강화하고 각 사의 신약 개발을 가속화하기 위한 R&D센터를 세운다.

양 사의 마곡 R&D센터는 총면적 6만912㎥ 규모로 ‘한독 R&D센터’, ‘제넥신과 프로젠의 신사옥 및 R&D센터’가 각각 들어서게 되며 2021년 11월 완공될 계획이다. 이 밖에 넥센타이어·귀뚜라미 등도 R&D센터를 건설 중이다.

삼성전자는 서울 강남 서초동에 R&D센터를 운영하고 있다. 2015년 문을 연 이곳은 삼성전자 최초의 서울 소재 연구단지로 33만㎡ 규모다. 현재 5000여 명의 연구 인력이 근무 중이다.

수도권에서는 인천 송도국제도시가 R&D센터의 메카로 자리 잡고 있다. 2010년 포스코 글로벌 R&D센터가 들어선 이후 코오롱글로벌·셀트리온·삼성바이오로직스 등이 차례로 R&D센터를 설립해 급격한 성장세를 보이고 있다.

현재 인천 지역에 둥지를 튼 R&D센터가 1863개인데 앞으로 증가 추세가 더욱 가팔라질 것으로 예상된다. 이는 인천경제자유구역청이 4차 산업혁명 기술 육성을 위해 추가적인 R&D센터 유치를 계획하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인천경제자유구역청은 국내 바이오업계의 쌍두마차인 셀트리온과 삼성바이오로직스가 터를 잡고 있다는 점에 착안해 추가적으로 대규모 첨단 바이오 생태계 조성에 한창 열을 올리고 있다.

셀트리온과 삼성바이오로직스가 들어선 기존 4·5·7공구(91만㎡)에 이어 인근 11공구(99만㎡)를 추가 조성(2022년 말)해 바이오 클러스터를 세계적인 수준으로 끌어올린다는 계획이다.

셀트리온과 삼성바이오로직스도 적극적인 투자 의지를 밝혔다. 셀트리온은 송도 1·2공장에 이어 3공장을 송도에 추가 건설할 예정이다. 바이오 의약품 R&D센터와 생산 시설을 갖춘 삼성바이오로직스도 인근 용지를 추가로 확보해 넷째 공장 신설을 추진 중이다.

애경그룹도 송도에 R&D센터를 짓는다. 애경그룹은 지난 1월 인천경제자유구역청과 인천 송도국제도시 첨단산업클러스터 B구역 내 용지 2만8722㎡를 345억원에 매수하는 계약을 체결했다.

이는 송도 종합기술원 설립을 위한 계약으로, 그룹 주요 계열사인 애경유화와 애경산업이 각각 6 대 4의 비율로 투자했다. 이 용지에 들어설 R&D센터는 총면적 4만3000㎡ 규모로 2021년 착공해 2022년 하반기에 준공될 예정이다.

애경그룹은 경영 혁신의 일환으로 송도 R&D센터를 설립하고 기초·원천·미래 기술에 대한 연구를 전담할 새 조직을 만들 계획이다. 이를 통해 첨단 소재 개발, 독자 기술 확보, 친환경·바이오 연구 등을 적극 추진하고 신제품 개발을 가속화할 예정이다.

또한 400명의 연구 인력을 배치하고 설비를 확충해 글로벌 최고 수준의 R&D센터로 만든다는 목표다.

◆ 혁신의 상징 판교, 경기도 R&D 거점으로



경기도에서는 판교와 용인에 주로 R&D센터들이 들어서고 있다. 우선 판교는 NHN·엔씨소프트·넥슨·네오위즈 등을 포함해 20여 개에 이르는 주요 게임사가 본사를 운영하고 있고 대부분 R&D센터를 운영 중이다.

이 중에서도 업계 1위인 엔씨소프트는 대규모 R&D센터를 운영 중인데 매년 매출액의 20%에 해당하는 금액을 투자하고 있다. 이 R&D센터에는 현재 2525명에 이르는 연구 인력이 근무 중이다.

삼성중공업도 판교에 R&D센터를 설립했다. 판교 테크노밸리에 있는 삼성중공업 판교 R&D센터는 지하 5층, 지상 8층 규모로 면적 5만7460㎡에 약 1500명을 수용하고 있다. 이곳에서 연구 인력들은 해양 플랜트 원유·가스 처리 설비(톱 사이드) 공정과 건설·설계(엔지니어링) 역량 강화에 대해 중점적으로 연구 중이다.

삼양그룹도 2017년 판교에 R&D센터인 ‘삼양디스커버리센터’를 설립했다. 삼양디스커버리센터는 분당구 판교로에 지상 9층, 지하 6층, 총면적 4만4984㎡ 규모에 식품과 의약 바이오 부문 연구원과 마케팅 인력 400여 명이 근무 중이다.

또한 대기업들의 R&D센터 개소 준비 소식도 들리고 있다. 현재 KT는 판교 제2테크노밸리 E8-1·2블록에 총면적 5만1826㎡ 규모의 자율주행·5G·인공지능(AI) 등을 연구할 R&D센터를 조성 중이다.

현대중공업도 2022년 말까지 판교에 그룹 통합 R&D센터를 구축할 계획인데 투자 규모만 3600억원에 달한다. 현대중공업은 5000여 명 규모의 R&D 인력을 센터에 한데 모아 효율성을 극대화할 방침이다.

경기도 용인에는 GC녹십자가 R&D센터를 운영하고 있다. 2018년 문을 연 이곳은 세포 치료제 연구·개발 전용 시설 가운데 아시아 최대 규모로 지어졌고 총면적 2만900㎡에 지하 2층, 지상 4층 건물로 이뤄져 있다.

그동안 흩어져 있던 GC녹십자셀·GC녹십자랩셀·GC녹십자지놈 등 바이오 계열사의 R&D 인력 등 300여 명이 이곳에서 연구에 매진하고 있다.

아모레퍼시픽 R&D센터도 용인에 자리하고 있다. 1954년 국내 화장품업계 최초로 설립된 이 R&D센터는 1992년 이곳에 터를 잡은 후 지금까지 역사를 이어 오고 있다.

1990년까지만 해도 화장품용 소재 개발을 주로 연구했지만 1994년 의약품연구소까지 추가로 설립되며 덩치를 키웠다. 이어 2001년 헬스 연구동을 개설하고 2006년 식품연구소를 신설해 녹차·건강식품·헬스케어 등으로 연구 분야를 넓히고 있다.

cwy@hankyung.com


[본 기사는 한경비즈니스 제 1268호(2020.03.16 ~ 2020.03.22)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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