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봉현 IBK경제연구소장, “글로벌 기업과 경쟁하려면 미국 유럽 등 다른 국가와 규제 수준 맞춰야”


[커버스토리 = 대한민국 신성장 전략 특별기획]
[“‘포스트 코로나’의 해법은 혁신과 규제개혁”…기업 활력을 추스르자]
- “노키아 부활시킨 핀란드 사례 검토 필요”



[한경비즈니스=차완용 기자]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의 글로벌 확산에 따라 한국 경제와 산업계가 어려움을 겪고 있다. 산업 활동 측면에선 생산·소비·투자, 시장별로는 실물·금융이 모두 흔들린다.

특히 기업들에 가해지는 부담이 크다. 더욱이 기업들은 이번 코로나19가 언제까지 이어질지 알 수 없어 더 답답하다. 종식된다고 하더라도 무너졌던 경쟁력을 되살리는데 얼마나 많은 시간이 소요될지 가늠조차 안 된다.

이에 많은 기업인들이 근본적인 대책을 요구하고 있다. 바로 기업을 둘러싸고 있는 ‘규제’를 푸는 것이다. 조봉현 IBK기업은행 IBK경제연구소장을 만나 기업이 코로나19에 효과적으로 대응하고 피해를 최소화할 수 있는 근본적인 문제인 규제 완화 정책에 대해 물었다.

▷ 코로나19 사태로 기업을 옥죄고 있는 규제에 대한 완화의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습니다.
“현장에서 뛰고 있는 기업들의 규제 완화에 대한 목소리는 절실하죠. 그럴 수밖에 없는 게 이런저런 규제 때문에 기업들이 못하는 것이 많아요. 가령 주문량이 많아 공장을 증축하고 싶어도 건설법이나 환경 평가 등으로 인해 기존 공장 주변에는 건물을 짓지 못하고 멀리 떨어진 곳에 지어야 해요. 그러면 기업은 생산 라인을 일원화하지 못해 손해를 볼 수밖에 없죠. 그런데 정작 큰 문제는 산업의 경쟁 패러다임이 변했다는 데 있습니다. 과거에는 국내에서 똑같이 규제를 받는 기업들이 국내에서 경쟁했죠. 하지만 지금은 글로벌 시장에서 세계 각국 기업들과의 경쟁이 불가피한 상황입니다. 미국이나 일본 등에서는 규제를 받지 않는 기업과 국내에서 규제를 받는 기업, 당연히 경쟁력의 차이가 생기죠. 이렇다 보니 처음엔 기업만 목소리를 냈지만 이젠 각계각층에서 규제 완화의 필요성에 공감하고 있죠.”

▷ 기업 규제가 잘 이뤄지고 있는 국가는 어디인가요.
“미국이나 유럽 우리가 흔히 선진국이라고 하는 나라 대부분은 현장에 입각한 유연한 기업 규제 정책을 펼치고 있어요. 가까이는 싱가포르가 기업 규제 정책이 잘 마련돼 있다고 볼 수 있죠. 그중에서도 가장 본받을 만한 곳은 핀란드입니다. 핀란드는 2008년 글로벌 금융 위기로 기업들이 어려움을 겪고 경제가 무너지자 대대적인 규제 완화 정책을 펼쳤어요. 이를 통해 쓰러져 가던 노키아가 다시 글로벌 무대에 등장했고 이제는 세계 각국의 스타트업들이 핀란드로 창업하기 위해 몰려들고 있죠.”

▷ 우리도 이번 기회에 규제 완화를 대대적으로 하면 되지 않을까요.
“한 번에 다 바꾸기는 쉽지 않아요. 하지만 계기는 마련됐죠. 세계 각국이 자국 보호 정책을 강화하고 있는 시점에 코로나19 사태까지 겹치면서 정부는 물론 국민도 국내 기업의 역할과 가치를 알아보게 된 거죠. 일단은 차근차근 접근하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근본적인 관점에서 기업에 대한 규제들을 한번 쭉 점검할 필요가 있어요. 이 가운데 2중·3중으로 적용되는 ‘복합 규제’나 세계 흐름을 따라가지 못하는 ‘소극 규제’에 대해서는 발 빠른 조치를 취하고 기업의 성장을 가로막는 ‘대못 규제’ 등은 기업 경쟁력을 저하시키지 않는 방법으로 현실적인 규제책을 마련해야 합니다. 이때 꼭 필요한 것이 정부가 현장에 나가 기업의 목소리도 듣고 잘나가는 선진국의 사례도 적극 검토해 봐야 합니다.”

▷ 규제 완화와 함께 기업들의 구조적 변화도 필요해 보입니다.
“코로나19 사태 이전부터 기업들의 구조적 변화는 꼭 필요한 것이었죠. 가장 큰 문제는 미국과 중국 등 세계 경제를 움켜쥔 국가들의 자국 보호 정책이 심화되고 있다는 것인데, 이번 코로나19로 이런 정책이 극에 달했죠. 코로나19 사태가 끝나더라도 분명 잔상은 남아있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코로나19와 같은 팬데믹(대유행)이 언제 또 일어날지 모르고요. 이런 상황을 대비해 기업들은 생산이나 경영 활동에 지장이 없게 대책을 마련해야 합니다. 가장 안전한 것이 해외로 빠져나간 생산 기지를 국내로 돌리는 것인데 이를 현실화하기 위해선 정부의 대대적인 규제 완화와 인센티브 제도를 적극 도입해야 가능할 겁니다.”

▷ 하지만 기업들은 규제가 계속 더 심해지고 있다고 아우성입니다.
“현장과 제도에 차이가 있습니다. 일단 시스템 이야기를 해보죠. 현 정부의 규제 개혁 시스템은 많이 개선됐습니다. 실제로 시스템 자체만 놓고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34개 국가 중 셋째에서 여섯째를 오르내리죠. 그런데 이상하게 기업들은 힘들어 해요. 이유는 바로 연결고리가 제대로 만들어져 있지 않아서 그렇습니다. 쉽게 말해 정부가 생각하는 규제와 현장에서 생각하는 규제 사이에 괴리가 있는 것이죠. 하나의 예를 들면 법조항에 있는 규제를 중앙 정부에서 풀었는데 하위 단계인 지방 정부에 내려가면서 조례와 규칙에서 문제가 생기는 거예요. 결국 지방 정부는 풀지 못하고 기업은 여전히 규제에 갇히게 되는 것이죠. 탁상행정도 문제예요. 규제의 문제점을 파악해야 하는 담당 공무원들이 현장을 잘 몰라요. 그렇다 보니 기업들이 겪는 어려움을 이해하지 못하죠. 규제는 공급자의 측면에서 풀려고 하면 안 됩니다. 절대적으로 수요자의 관점에서 풀어야 합니다.”

▷ 규제 완화가 시급한 산업이 많을 것 같습니다. 특히 요즘 유통업계에서 목소리가 큰데요.
“코로나19로 인해 직접적인 타격을 받고 있는 곳은 바로 유통업계죠. 관광 산업·마트·백화점·면세점 등 모두 매출 감소로 힘들어 합니다. 단순히 이들만 힘든 게 아니에요. 하청 업체, 입점 매장, 노동자 등 모두가 힘들어요. 가장 아픈 문제가 골목 상권을 보호하기 위해 만든 영업 제한, 온라인 배송 금지 등이죠. 하지만 이제 풀어야 할 때가 된 것 같습니다. 당장 푸는 것이 어렵다면 융통성 있게 일시적으로라도 풀어야죠.”

▷ 금융 산업과 관련된 규제도 글로벌 시장에 비해 현실성이 떨어진다는 지적인데요.
“변해야죠. 그런데 쉽지가 않아요. 일단 전통적 금융업인 보험·증권·은행들이 핀테크를 앞세운 신규 사업자들의 진입을 꺼려요. 4차 산업혁명으로 신기술이 계속 개발되면서 금융업과 연결되고 있는데 일단 시장 논리에 맡기는 것이 좋을 것 같습니다. 수요가 있으면 당연히 길을 새로 내야죠. 전통적인 금융 기업들은 우리 시장을 핀테크 기업들이 뺏는다는 생각 대신 융합이나 협업할 수 있는 시스템을 만들어야 합니다. 그렇다고 무조건 개방해야 하는 것은 아닙니다. 금융업을 영위할 수 있는 자격 요건을 갖춘 곳을 추려내는 제도를 만들어야죠.”

▷ 우버 진입 좌절, 타다금지법 등 승차 공유 경제에 대한 규제도 말이 많습니다.
“가장 시끄러운 분야죠. 개인적으론 큰 흐름을 따라가야 한다고 봅니다. 세계 시장이 다 개방하고 서비스와 시스템을 속속 도입하는데 우리만 막고 있으면 안 됩니다. 그런데 이 역시 기존 사업자와 갈등이 문제입니다. 타다와 택시업계의 갈등에서 볼 수 있었듯이 가장 큰 문제는 택시업계 종사자들의 생계 문제예요. 타다나 우버가 시장에 들어올 때 기존 종사자들의 충격을 완화해 줄 안전장치를 마련해 줘야 하죠. 기존 사업자들이 납득하고 변화할 수 있는 시간 미리 3~5년 정도 알려주고 정책적인 계획을 세워야 합니다.”

▷ 기업들이 가장 힘들어 하는 것, 노동 규제도 문제가 심각한데요.
“상당히 민감한 문제입니다, 하지만 일단 코로나19로 기업들이 무너지기 직전인 만큼 강제적 주52시간 근무제는 한시적인 완화가 필요하다는 생각입니다. 유연성이 필요하죠. 당장 회사의 매출이 없어 직원 수를 줄였는데 코로나19가 진정되고 기업에 납품이 밀려들면 야근을 해서라도 매출을 올려야죠. 손해난 것을 채워야 하니까요. 하지만 소득 수준, 삶의 질 등을 고려할 때 장기적으로는 노동 시간 주52시간은 필요해 보입니다. 다만 정부의 강제적인 방법보다 기업이 좀 더 유연한 방법을 찾았으면 좋겠습니다.”

▷ 가업 승계와 관련된 규제도 기업 경쟁력을 저하시킨다는 지적인데요.
“잘나가는 선진국, 기업이 쑥쑥 크고 있는 나라의 모델을 벤치마킹해야 합니다. 선진국들은 기업 상속세를 없애는 추세입니다. 반면 한국은 50%에 할증 과세를 포함하면 거의 62%죠. 만약 상속을 받는 오너가 가진 돈이 없다면 경영권이 넘어갈 수도 있어요. 이렇다 보니 오너들이 이를 피하기 위해 탈세 등의 범법을 저지르죠. 상속세 자체를 외국처럼 완전히 없애지는 못하더라도 기업인들이 상속세 때문에 기업을 포기하게 해서는 안 됩니다. 독일처럼 유예해 감면해 주는 제도도 필요하고요. 제 생각에는 가업 승계에 대해서는 과감한 규제 완화가 필요하다고 봅니다.”

▷ 규제 완화가 기업 성장의 밑거름이 될 수 있을까요.
“불합리하고 시대 흐름을 따라가지 못하는 규제는 기업의 성장을 막습니다. 규제를 완화해 줄수록 기업들이 혁신에 성공하며 성장해 갈 가능성이 높아지죠.”

cwy@hankyung.com

[커버스토리 = 대한민국 신성장 전략 특별기획 기사 인덱스]
① ‘규제 개혁’ 없으면 성장 엔진 멈춘다
- 세계 경제 호령하는 G2의 비결은…‘네거티브 규제’
- ‘말로만 규제 완화’ 언제까지…늘어나는 규제에 속 터지는 기업들
- 조봉현 IBK경제연구소장 “글로벌 기업과 경쟁하려면 미국유럽 등 다른 국가와 규제 수준 맞춰야”
- 김영준 하나금융경영연구소 연구위원 “코로나19 이후의 경기 반등, 우리가 먼저 올라타야”
② 기업 발목 잡는 지뢰밭 규제 걷어 내자
- 신산업 발전 가로막는 촘촘한 ‘규제 트리’ 뽑아내야
- 화평법화관법미세먼지법…대처에 인력도 시간도 부족하다
- 실적 곤두박질치는 유통 기업에도 여전한 ‘출점 규제의무휴업’
- 덩치 커진 한국 금융…규제 완화로 ‘서비스 전환’ 이룰 때
- 꽉 막힌 의료 규제에 중국일본으로 가는 SK네이버
- ‘일하지 않고 성장이 가능할까’ 기업도 노동자도 우는 노동 규제
- ‘도대체 왜 기업해야 합니까?’ 규제에 꺽인 기업가 정신
③ 다시 뛰는 한국 기업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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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기사는 한경비즈니스 제 1269호(2020.03.23 ~ 2020.03.29)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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