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평법·화관법·미세먼지법…대처에 인력도 시간도 부족하다

[커버스토리 = 대한민국 신성장 전략 특별기획]
[“‘포스트 코로나’의 해법은 혁신과 규제개혁”…기업 활력을 추스르자]
-10년간 도입된 환경 규제만 509건…기준 맞추려 중소기업 생산 공장 아예 멈춰 서기도


[한경비즈니스=이명지 기자] 2011년 가습기 살균제 사망 사건, 2012년 구미 불산 유출 사고로 인명 피해가 발생하면서 화학 물질을 보다 엄격히 관리해야 한다는 사회적 분위기가 형성됐다. 이에 따라 ‘화학 물질의 등록 및 평가 등에 관한 법률(이하 화평법)’, ‘화학물질관리법(이하 화관법)’이 제정됐다. 생산 현장에서 발생하는 화학 물질의 관리와 배출을 엄격히 함으로써 작업 현장의 안전을 지키자는 의도다.

화평법과 같은 환경 규제는 큰 특징이 있다. 사업장의 입지부터 원료 사용, 오염 물질 배출과 사후 관리 등 전반적인 생산 활동에 다수의 규제가 ‘한꺼번에’ 적용된다는 점이다. 여기에 환경 규제는 최근 들어 전 세계적으로 친환경 경영이 선택이 아닌 필수로 여겨지면서 날이 갈수록 촘촘해지고 있다. 대기업 또한 바뀐 규제를 따라가기 쉽지 않다며 토로한다. 중소기업엔 더 큰 부담이다.
◆“다수의 규제가 적용돼 내용 파악도 어렵다”

환경 문제의 심각성이 대두되면서 세계 각국은 각종 규제의 고삐를 짧게 쥐고 있다. 과거 경제 성장을 위해 느슨한 규제를 적용받았던 기업들도 이제는 달라진 현실을 마주한다. 지난 10년간 국내에서 새로 시작된 환경 규제만 해도 509건이다.

한국무역협회 국제무역통상연구원이 2008년부터 2018년까지 규제를 분석해 발표한 ‘기업 현장 방문을 통한 환경 규제 합리화 방안 연구’ 보고서에 따른 수치다. 여기에 기존 규제도 매년 30~80건씩 강화되고 있는 게 현실이다.

종류 또한 다양하다. 화평법·화관법에 이어 올해 2월부터 시작된 ‘미세먼지 저감 및 관리에 관한 특별법(이하 미세먼지법)’, 4월 시행 예정인 ‘대기관리권역의 대기 환경 개선에 관한 특별법(이하 대기관리권역법)’ 시행을 기다리고 있다.

규제가 많아지고 엄격해지면서 기업들은 혼란을 겪고 있다. 무역협회는 지난해 환경 규제 대응에 가장 어려운 점이 무엇인지 기업들에 물었다.

그 결과 68%의 기업이 규제 내용을 파악하기가 어렵다는 점을 가장 큰 애로 사항으로 꼽았다. 뒤이어 비용 부담(65%), 내부 전문 인력 부족(56%), 불시 점검과 단속 증가(55%), 규제 대응 시간 부족(50%) 순으로 조사됐다.

무역협회는 “환경 규제는 정보 공개와 단속·처벌 강화를 동반하고 있어 환경 사고를 일으키지 않고 고의성이 없어도 기업은 인허가·운영 기준 미준수, 예방이나 모니터링 조치 미흡에 따른 형사, 행정적 처분을 받게 된다”고 분석했다.

이 중에서도 국내 산업계가 가장 부담을 느끼고 있는 규제는 이른바 ‘화평법’과 ‘화관법’이다. 화평법은 2013년 제정돼 2015년부터 적용됐다. 2011년 가습기 살균제 사망 사건을 계기로 화학 물질을 관리해야 한다는 필요성이 커지면서 제정된 법안이다.

화관법은 ‘화학물질관리법’의 준말로 체계적인 관리를 위해 유해 화학 물질의 취급 기준을 강화하는 법률이다. 기존 유해화학물질관리법을 개정해 2015년부터 시행됐는데 지난해 연말을 끝으로 유예 기간이 종료됐다.

이전과 크게 달라진 점은 유해 물질 취급 공장이 충족해야 할 안전 기준이 79개에서 413개로 늘었다는 점이다. 법이 시행되기 전 설립된 공장도 5년의 유예 기간을 거쳐 이 기준을 맞춰야만 한다. 화관법에 따라 인체에 유해한 화학 물질 유출 사고를 내면 해당 사업장 매출의 최대 5%에 이르는 과징금을 부과 받는다.


◆계도 기간 1년·가동 개시 신고제 등 도입돼야

화평법과 화관법은 도입부터 산업계가 주목하던 법안이었다. 그런데 지난해부터 제도가 한층 강화되고 유예 기간이 끝나면서 산업계는 더더욱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생산 현장에 미치는 영향이 차차 본격화되고 있기 때문이다.

화평법과 화관법을 우려하는 목소리를 꾸준히 내 온 곳은 중소기업계다. 지난 1월 중소기업중앙회와 업계 대표들은 조명래 환경부 장관을 만나 정부가 기존 화학 물질 등록에 필요한 시험 자료 생산을 대폭 확대하고 제조업 대상 화학 물질 등록 비용을 전액 지원해야 한다고 호소했다. 또 소기업은 인력이 부족해 규제를 이행하기 어려운 곳이 많다며 이에 대한 비용 지원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지난 2월 20일에는 이낙연 더불어민주당 공동상임선대위원장을 초대해 제21대 총선 정책 과제를 전달하고 총선 공약에 반영될 수 있도록 협조를 요청했다. 특히 화평법과 화관법 등 환경 규제 개선을 반드시 21대 국회에서 해결해야 한다고 강조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들이 꾸준히 제기해 온 것은 ‘규제 완화’다. 중소기업계는 신규 화학 물질의 등록 대상을 국제 기준인 1톤 이상으로 완화해 달라고 요청하고 있다.

화관법의 경우 올해 유예 기간이 끝나면서 법 준수조차 어려운 중소기업들이 생산 공장을 가동 중단하는 등 문제점이 불거지고 있다. 중소기업중앙회에 따르면 영세 중소기업들은 컨설팅 비용이나 저감 설비 구축에 애로를 겪고 있다. 관리자와 기술 인력 선임, 안전 교육 이수 등 각종 부담도 따라온다. 유해 화학 물질 취급 시설 변경에 따라 최소 1개월에서 최대 6개월 걸리는 검사 결과를 받아들기 전까지 생산 공장을 가동하지 못하는 상황도 발생하고 있다.

이에 따라 중소기업계는 유해 화학 물질 품목과 용량을 추가할 때 ‘선가동 후신고’를 토대로 한 가동 개시 신고제를 신설하고 사고 대비 물질 취급 사업자에 대한 영업 허가 면제 기준을 완화할 것도 요구했다.

여기에 산업계는 국내 소재 부품 산업의 경쟁력이 약화될 수 있다는 우려도 하고 있다. 지난해 8월 일본 수출 규제 문제가 불거지던 시기에 한국경제연구원은 세미나를 통해 소재 부품 산업에서 한국과 일본의 기술 격차는 화학 물질 관련 규제의 강도에서 비롯됐다고 지적했다. 일본과 미국은 신규 물질만 신고하지만 국내의 화평법은 신규와 기존 물질을 모두 신고하게 돼 있다는 것이다. 이덕환 서강대 화학과 명예교수는 "화학 물질의 정보를 관리하는 데만 집중함으로써 화평법과 화관법의 본래 취지인 산업 현장의 안전 관리에는 도리어 소홀한 부분이 있다"고 말했다.
환경부는 이에 대해 "EU와 일본도 연간 1톤 미만 소량 제조 수입 물질에 대해 꼼꼼한 관리체계를 보유하고 있어 한국 규제가 더 강하다고 말할 수 없다"고 말했다. EU는 2008년부터 양에 관계없이 모든 유해성 물질에 대해 식별정보와 유해성 분류정보 등을 제출토록 하고 있다. 일본은 연간 1톤 미만 신규물질도 모두 식별정보, 제조·수입량 등 정보를 제출하고 국가 총량이 1톤을 초과하면 분해성, 축적성 등 유해성 정보를 추가로 제출토록 의무를 부과하고 있다는 것이다.
중소기업계의 의견에 대해선 1:1 전과정 등록 지원과 유해성 시험자료 생산 및 저가 제공 등 관련 예산을 기존 90억에서 5배 늘린 446억으로 증액했다고 밝혔다.

mjlee@hankyung.com
[커버스토리 = 대한민국 신성장 전략 특별기획 기사 인덱스]
① ‘규제 개혁’ 없으면 성장 엔진 멈춘다
- 세계 경제 호령하는 G2의 비결은…‘네거티브 규제’
- ‘말로만 규제 완화’ 언제까지…늘어나는 규제에 속 터지는 기업들
- 조봉현 IBK경제연구소장 “글로벌 기업과 경쟁하려면 미국유럽 등 다른 국가와 규제 수준 맞춰야”
- 김영준 하나금융경영연구소 연구위원 “코로나19 이후의 경기 반등, 우리가 먼저 올라타야”
② 기업 발목 잡는 지뢰밭 규제 걷어 내자
- 신산업 발전 가로막는 촘촘한 ‘규제 트리’ 뽑아내야
- 화평법화관법미세먼지법…대처에 인력도 시간도 부족하다
- 실적 곤두박질치는 유통 기업에도 여전한 ‘출점 규제의무휴업’
- 덩치 커진 한국 금융…규제 완화로 ‘서비스 전환’ 이룰 때
- 꽉 막힌 의료 규제에 중국일본으로 가는 SK네이버
- ‘일하지 않고 성장이 가능할까’ 기업도 노동자도 우는 노동 규제
- ‘도대체 왜 기업해야 합니까?’ 규제에 꺽인 기업가 정신
③ 다시 뛰는 한국 기업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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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기사는 한경비즈니스 제 1269호(2020.03.23 ~ 2020.03.29)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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