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현모 KT 사장, ‘외풍에 흔들리지 않는 기업’ 어떻게 만들까

-‘90일 경영 구상’ 끝내고 공식 행보 나서…‘고객발 내부 혁신’ 선언하고 준법 경영 조직 대폭 강화


[한경비즈니스=이명지 기자] 12년 만에 내부 승진으로 KT 대표이사가 된 구현모 사장이 3월 30일 공식 취임했다. 구 사장은 지난해 차기 최고경영자(CEO)로 내정된 후 취임 전까지 90일간 내·외부 인사를 만나며 경영 구상에 집중해 왔다.

구 사장이 그리는 KT의 미래 모습은 ‘외풍으로부터 흔들리지 않는 기업, 국민들이 가장 필요로 하는 국민 기업, 매출과 이익이 쑥쑥 자라나는 기업, 임직원 모두가 자랑스러워하는 기업’이다. 이를 위해선 ‘구현모 시대’의 신성장 동력 발굴과 함께 조직 내부에서의 변화가 필요하다.
◆“내부 출신으로 조직 사정에 밝은 CEO”

구 사장은 취임사에서 “KT그룹은 정보통신기술(ICT) 발전의 변곡점을 파악하고 흐름을 선도해 온 경험과 역량이 있다”며 “인공지능(AI)·빅데이터·클라우드·5G(5세대 이동통신)를 기반으로 하는 디지털 혁신이 새로운 변곡점이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를 통해 다른 사업의 혁신을 이끌고 개인의 삶의 변화를 선도한다면 KT의 미래는 밝다고 말했다.

이는 통신 기업으로서 KT가 보유한 정보기술(IT) 기술력과 통신망을 통해 타 기업의 혁신을 돕고 그 안에서 비즈니스 기회를 찾겠다는 전략이다. 여기에 지난해 세계 최초로 국내 통신사들이 개막한 ‘5세대 이동통신’을 접목한다면 B2B(기업 간 거래) 영역을 개척할 수도 있다. 새로운 도전보다 KT가 갖고 있는 강점에 집중한다는 전략이다.

구 사장이 ICT와 함께 취임사에서 강조한 단어는 ‘고객’이다. 구 사장은 “도약의 중심에 고객이 있다”며 “고객이 원하는 바를 빠르고 유연하게 제공하기 위해 우리 스스로 바꿀 것은 바꾸자는 ‘고객발 내부 혁신’을 통해 사업 영역을 확장하고 사업의 질을 향상시킨다면 KT그룹의 성장과 발전은 자연스럽게 따라올 것”이라고 말했다.

이러한 기조는 이미 지난해 말 조직 개편에서 시사된 바 있다. 구 사장의 구상을 미리 읽을 수 있다는 점에서 연말 KT의 인사와 조직 개편은 일찌감치 주목받았다. KT가 강조한 조직 개편의 목적은 ‘빠르고 유연한 고객 요구 수용, 5G와 AI 기반의 디지털 혁신 가속화, 글로벌 수준의 준법 경영 체계 완성’이다.

KT는 우선 기존 커스터머&미디어 부문과 마케팅 부문을 합쳐 ‘커스터머’ 부문을 신설해 소비자 고객(B2C)을 전담하게 했다. 5G와 기가인터넷을 중심으로 유무선 사업과 IPTV·가상현실(VR) 등 미디어 플랫폼 사업에 대한 상품·서비스 개발과 영업을 총괄한다.

‘AI·DX 사업 부문’의 신설도 눈에 띈다. 5G 통신 서비스에 AI·빅데이터·클라우드·사물인터넷(IoT) 기술을 더해 소비자와 기업 고객의 디지털 혁신을 선도한다. 지난해 연말 인사에서 KT는 AI·DX융합사업부문장에 최고디지털혁신책임자(CDXO)인 전홍범 부사장을 임명했다. 전 CDXO는 디지털 혁신 사업 모델을 만드는 선임 부사장으로서 소프트웨어 개발 부서와 협업을 주도하는 역할을 수행한다.

안재민 NH투자증권 애널리스트는 “구 사장은 KT 내부 출신으로 사업 이해도가 높고 대주주가 없는 KT가 중·장기적인 전략을 펼칠 수 있게 구도를 바꾸는 중”이라며 “조만간 구체적인 플랜을 내놓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한편 구 사장은 회사 주식 매입을 통해 ‘책임 경영’의 뜻을 분명히 했다. KT는 3월 26일 공시를 통해 구 사장이 5234주의 KT 주식을 추가 매입했다고 밝혔다. 이날 종가 기준으로 1억100만원 상당이다. 구 사장은 추가 매입을 통해 1만8239주(약 3억5200만원)를 보유하게 됐다.

구 사장뿐만 아니라 3월 18일부터 4월 초까지 KT 임원들은 장내 매수 방식으로 총 20억원어치의 회사 주식을 매입했다. 최근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으로 인한 대외 불확실성 확대로 주식 시장의 변동성이 커진 상황에서 KT의 주가가 기업 가치 대비 과도하게 저평가됐다고 판단해서다.

KT 최고재무책임자(CFO)인 윤경근 재무실장은 “새로운 대표 취임과 5G·AI 기반의 산업 환경 변화는 KT가 통신·플랫폼 시장을 이끌고 리더십을 강화할 수 있는 좋은 기반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5G와 ICT 외에도 KT의 포트폴리오에 중요한 한 축을 차지하는 것이 ‘유료 방송’이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의 지난해 유료 방송 시장점유율 조사에 따르면 KT(KT·KT스카이라이프)는 31.31%의 점유율로 업계 1위를 차지하고 있다.

하지만 SK브로드밴드가 티브로드와 합병하고 LG유플러스가 CJ헬로비전을 인수해 ‘LG헬로비전’으로 재탄생시키면서 점유율 격차는 크게 좁혀졌다. LG유플러스·LG헬로비전의 점유율은 24.72%, SK브로드밴드·티브로드는 24.03%다.


◆딜라이브 인수, ‘결정된 바 없다’

1위 자리를 위협받게 된 KT는 업계 4위인 딜라이브(점유율 6.09%)의 인수를 꾸준히 검토해 왔다. 하지만 번번이 발목을 잡은 게 ‘유료 방송 합산 규제’다. 한 기업의 계열사 점유율이 전체의 3분의 1을 넘지 못하도록 한 규정으로, 2018년 6월 일몰됐지만 정치권을 중심으로 합산 규제 재도입 가능성이 거론된 상황이다. 신임 구 사장의 선택에 업계의 관심이 쏠렸다.

KT는 4월 8일 딜라이브 인수와 관련해 “유료 방송 사업의 경쟁력을 강화하기 위한 방안들을 검토 중이며 이런 측면에서 딜라이브 인수를 검토하고 있다”며 “현재까지 구체적으로 결정된 사항은 없고 추후 내용이 결정되는 시점 또는 6개월 내 재공시하겠다”고 밝혔다. 같은 날 구 사장도 제3차 범부처 민·관 합동 ‘5G+ 전략위원회’ 영상회의에 참가한 후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딜라이브 인수에 대해 “방침에 큰 변화는 없다”고 말했다.

기업의 수장은 비즈니스와 함께 조직 문화도 챙겨야 한다. KT는 지난해 연말 인사에서 ‘준법 경영’을 강화하기 위해 조직과 인력을 보강했다. 그동안 비상설로 운영하던 컴플라이언스위원회를 상설화하고 이를 이끌어 갈 수장으로 김희관 전 법무연수원장을 영입했다.

김 전 법무연수원장은 대전고등검찰정 검사장, 광주고등검찰정 검사장을 지냈다. 2015년 퇴임 후 변호사로 활동했다. 컴플라이언스위원회 위원장은 경영 전반과 사업 추진에서 KT의 준법 경영의 수준을 글로벌 기준에 맞게 끌어올리는 역할을 맡게 된다.

KT는 또 준법 경영을 포함한 ‘정도 경영’을 기업의 핵심 가치 중 하나로 선정하며 준법 경영 실천을 위해 노력할 것이라고 밝혔다. 새로운 CEO를 맞아 글로벌 기업에 걸맞은 윤리성을 확보하기 위해 컴플라이언스를 한층 강화하는 것이다. 이는 최근 2년간 KT가 처한 상황과 무관하지 않다. KT는 정치자금법과 채용 비리로 압수 수색을 받았고 구 사장도 황창규 전 회장과 함께 정치자금법 혐의로 검찰에 송치된 상황이다.

여기에 최근 기업들은 실적 개선뿐만 아니라 준법 경영에 심혈을 기울이고 있다. 삼성은 ‘준법감시위원회’를 출범시켰고 SK텔레콤 등은 법조인 출신 외부 인사를 영입했다. 전 세계적으로 기업에 기대하는 윤리 의식이 커져 가고 있다. 동시에 기업의 리스크는 가치 훼손으로 연결될 수 있어 선제적인 관리는 더욱 중요해지고 있다.

mjlee@hankyung.com

[본 기사는 한경비즈니스 제 1273호(2020.04.20 ~ 2020.04.26)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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