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택근무는 ‘성과주의’의 다른 말…명확한 평가지표 투명한 공유 필수”
입력 2020-04-21 09:33:29
수정 2020-04-21 09:33:29
[커버스토리=코로나19가 바꾼 세계, 빅 퀘스천5] - 재택근무 시대, 생산성 유지 방안은- 최철규 HSG휴먼솔루션그룹 대표…“한국은 전형적 고맥락 사회, 효율적 소통 방안 찾아야”
[한경비즈니스=이현주 기자]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으로 달라진 것 중 하나는 ‘재택근무 확산’이다. ‘확진자 발생=직장 폐쇄’라는 초강경 대응이 나오자 기업들은 하나둘 재택근무·원격근무를 선택하기 시작했다. 재택근무는 이제 거스를 수 없는 하나의 흐름이 됐다. 기간이 길어지는 만큼 한쪽에서는 재택근무 회의론도 나오고 있다. 그렇다면 재택근무의 생산성을 높이는 노하우는 무엇일까. 최철규 HSG휴먼솔루션그룹 대표를 만나 재택근무가 어려운 이유와 해결 방안에 대해 의견을 들어봤다. 최 대표는 “재택근무가 활성화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성과주의가 명확해야 한다”며 “이를 위해서는 ‘업무 드러내기’와 같은 구체적인 지침과 기업 문화의 변화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코로나19 사태로 기업에 재택근무라는 커다란 변화가 오고 있습니다. 정상화 시기를 놓고 기업들의 고민도 커지고 있을 텐데요.
“재택근무가 어려운 이유이면서 활성화되기 위한 조건으로 먼저 성과주의를 꼽을 수 있습니다. 예전에는 누가 오래 앉아 있느냐, 눈에 잘 보이느냐로 평가했다면 재택근무는 포인트가 다릅니다. 결국 구체적인 업무 결과물로 평가할 수밖에 없죠. 예를 들어 기자들은 사무실로 출퇴근하지 않는 경우가 많습니다. 하지만 그날의 기사를 보면 어떻게 일했는지 다 알 수 있습니다. 결과로 말하는 직종이나 집단은 재택근무가 상대적으로 쉽죠. 그런데 많은 대기업, 특히 사무직 중에서도 지원 부서는 성과 지표가 명확하지 않습니다. 이 때는 재택근무가 쉽지 않죠.”
성과 지표뿐만 아니라 커뮤니케이션의 방법도 완전히 다릅니다. 의사소통 측면에서의 어려움은 무엇일까요.
“의사 소통 문화에 따라 저맥락(low context)과 고맥락(high context)으로 구분된다면 한국은 전형적인 고맥락 구조를 가지고 있습니다. 고맥락은 메시지에 담긴 정보보다 맥락을 통해 정보를 전달하는 게 특징이죠. 팀장이 말할 때 눈빛과 말투와 표정이 중요하죠. ‘너 이거 해’는 표현이 진짜인지 엄포용인지 만나서 이야기하면 대충 파악할 수 있는데 재택근무로는 파악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재택근무가 활성화되기 위해선 커뮤니케이션 방식이 달라져야 합니다. 상사가 일을 시킬 때는 일의 중요도가 어느 정도인지, 우선순위가 무엇인지 명확히 해주는 겁니다.”
재택근무를 놓고 직급이나 세대에 따라 다른 반응을 보이기도 합니다. 고용주가 재택근무를 결정하기가 쉽지 않은 이유는 무엇인가요.
“사업주로선 노동 시장의 유연성이 담보되지 않아서입니다. 프리랜서에겐 재택근무 시키기가 너무 쉽습니다. 회사는 과제를 주고 결과물을 보면서 판단합니다. 서구가 재택근무가 활성화돼 있는 배경에는 높은 노동 유연성이 있습니다. 회사 성장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판단이 들면 언제든지 ‘아웃’ 시킬 수 있는 거죠. 고용과 노동 시장의 유연성이 보장된다면 지금보다 재택근무는 더 늘어날 겁니다.”
재택근무의 대표적인 단점은 무엇인가요.
“스티브 잡스 애플 창업자는 재택근무를 ‘미친 짓’이라고 했습니다. 창의성은 즉흥적인 회의와 무작위로 이뤄지는 토론에서 비롯된다는 이유에서입니다. 새로운 아이디어는 ‘관계’ 속에서 상호 작용할 때 나온다는 겁니다. 커피를 마시면서 지나가다가 툭 이야기를 던지고 협업할 수 있는 동료를 찾죠. 그래서 공간 혁신을 할 때 중요한 게 스낵과 동선입니다. 사무실 공간을 배치하면서 우연한 마주침을 유발하기 위해 커피머신을 가져다 놓고 조직 내 사일로(silo)를 허물기 위해 칸막이를 없애는 것도 같은 이유에서입니다.”
실리콘밸리에서 한때 재택근무 붐이 일었다가 다시 사라진 것도 같은 이유입니까.
“일찌감치 재택근무를 시행한 외국 기업들 중에는 원격이 단절(disconnected)의 결과를 초래한다는 이유로 원래대로 다시 돌아간 곳이 종종 있습니다. IBM이 그중 대표 격입니다. 이들은 1990년부터 재택 등 원격근무를 도입했다가 한참 지난 뒤인 2017년 철폐했습니다. 당시 구조 조정의 목적이 없지 않았다는 설도 있지만 IBM은 얼굴을 맞대고 일하는 협업에서 창의성이 나올 수 있다는 이유를 가장 크게 내세웠죠. 구글은 재택근무를 선택지로 두고 있지만 직원들이 사무실에 나와 근무하도록 하기 위해 ‘집처럼 편안한 사무실 환경’ 만들기에 열을 올린다는 얘기가 있습니다. 지금 실리콘밸리에선 규모가 큰 대기업은 상대적으로 재택근무를 하지 않는 편이고 스타트업 위주로 실시하고 있습니다.”
스타트업들이 재택근무를 하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세대가 바뀌었기 때문입니다. 사무실 안에 모여 일하는 것보다 일하는 장소를 선택하고 싶어 하는 젊은 세대가 많아서입니다. 또 실리콘밸리의 부동산이 많이 비싼 영향도 있어 보입니다. 실리콘밸리 인근에 살기 위해서는 엄청난 돈을 내야 하기 때문에 탈실리콘밸리 바람이 불고 있습니다. 심지어 트럭에서 살기도 하죠. 재택근무나 원격근무를 선택하면 세계의 유능한 인재들과 함께 일할 수 있는 장점이 있습니다. 많은 스타트업들의 전략이 심플한 것도 한 이유입니다. 규모가 커질수록 복잡성이 증가하고 혼자 움직이는 게 쉽지 않아집니다.”
일반적으로 재택근무의 장점은 무엇인가요.
“‘직원 가치 제안(EVP : Employee Value Proposition)’에 도움이 됩니다. 좋은 인재를 유치하는 수단으로서 재택근무가 매력적인 측면이 있습니다. 일반적으로 불필요한 출퇴근 시간이 없어지고 대면으로 인해 생겨날 수 있는 감정 소비도 줄일 수 있습니다. 또 편한 공간에서 편한 복장으로 자유롭게 일할 수 있고 이런저런 급작스러운 부름에 응하지 않아도 되니 혼자 온전히 몰입하기에도 도움이 됩니다. IT의 발달로 가능해진 이른바 ‘미래의 노동’인 셈이죠.”
그러면 재택근무라는 도전을 기회로 바꾸기 위해 어떤 것들이 필요할까요.
“크게 세 가지가 필요하다고 봅니다. ‘신뢰 관리’, ‘협업 관리’, ‘자기 관리’입니다. 특히 신뢰 관리가 키포인트입니다. 재택근무를 할 때 가장 어려운 것 중 하나가 상호 신뢰에 관한 것입니다. ‘재택인데 열심히 일할까’, ‘나만 열심히 일하면 손해 아닌가’와 같은 생각을 하면 대충하자는 결론에 이르고 생산성이 떨어지게 되죠. 글렌 더처 오스트리아 인스부르크대 교수는 이와 관련해 ‘재택근무를 할 때 제일 중요한 것은 신뢰를 관리하는 것’이라고 조언했습니다. 이를 위해서는 투명하게 업무 내용을 공유하는 ‘업무 드러내기’가 필요합니다.”
재택근무를 통해 ‘업무 드러내기’를 하고 있는 회사는 있나요.
“애플리케이션(앱) 디자인 툴 개발사인 인비전(InVision)은 사무실 없이 전 사원이 원격으로 근무하고 있습니다. 이 회사는 팀원들끼리 모니터로라도 얼굴을 맞대는 것을 중요하게 여기며 매일 45분씩 스크럼(scrum) 미팅을 진행합니다. 팀원 각자가 자기 업무에 대해 허심탄회하게 털어놓는데 이때는 3가지를 꼭 얘기하도록 하고 있어요. 첫째, 지금 하는 일. 둘째 앞으로 할 일, 셋째, 업무에서 가장 큰 장애물을 돌아가며 말하고 아이디어를 주고받습니다. 휴가나 업무상 빠지는 팀원을 위해 미팅을 비디오로 녹화하기도 합니다. 이 데일리 미팅의 가장 큰 이점은 업무가 투명하게 공개돼 서로 가질 수 있는 업무 태만에 대한 의심이 사라진다는 점이죠.”
협업 관리와 자기 관리를 위한 노하우는 무엇입니까.
“재택근무를 하게 되면 대면으로 인해 발생하는 감정 소비가 없는 반면 비대면으로 인한 감정 소비가 다시 생겨날 수 있습니다. e메일이나 메신저 등으로 메시지를 주고받는 일이 훨씬 더 많아지는데 실제 텍스트 외의 감정이나 맥락을 읽기가 어려워 오해가 생길 수 있다는 거죠. 오픈 소스 플랫폼을 운영하는 회사 깃랩(GitLab)은 1000여 명이 넘는 직원들이 66개국에 흩어져 일하면서 상세한 업무 매뉴얼을 통해 비대면 협업의 문제를 해결하고 있습니다. ‘메신저로 대화할 때 문장을 대문자로 쓰지 않는다(소리 지르는 느낌이 있기 때문에)와 같이 매우 자세한 지침이 있습니다. 자기 관리를 위해서는 집 안에서도 자기만의 일하는 공간이 필요합니다. 사적인 가정생활이 이뤄지는 곳과 업무 공간을 명확히 구분 짓고 업무 시간과 휴식 시간도 시간표를 만들거나 알람을 이용해 적절한 균형이 이뤄지도록 해야 합니다.”
코로나19 이후에도 재택근무가 대세가 될까요.
“재택근무 실험을 하는 노력을 고무적으로 보고 있습니다. 직원들의 건강이나 안전은 생산성과 비교할 수 없는 가치죠. 재택근무를 하나의 대체 근무 수단으로 인식하고 기업 문화 혁신의 또 다른 선택지가 될 수 있을 겁니다. 선택권이 많은 사회는 좋은 사회죠. 이제는 근무의 ‘양’으로 승부하는 시대가 아닙니다. 일의 ‘본질’과 ‘성과’로 평가하고 승부하는 시대가 오고 있습니다. 성과주의가 더 강화돼야 하는데 재택근무가 잘 정착되면 이러한 성과주의를 더 가속화할 것이라고 기대합니다. 가장 우려하는 점은 ‘해보니까 안 되네’라는 결과에 이르는 겁니다. 급박하게 혹은 어설프게 시도하면 오히려 도전하지 않는 것보다 더 못한 결과를 초래할 수 있습니다. 제도와 문화 전반에서 성공 가능성을 높이는 방법들을 찾아서 하려면 제대로 하자고 강조하고 싶습니다.”
charis@hankyung.com
[본 기사는 한경비즈니스 제 1273호(2020.04.20 ~ 2020.04.26) 기사입니다.]
[한경비즈니스=이현주 기자]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으로 달라진 것 중 하나는 ‘재택근무 확산’이다. ‘확진자 발생=직장 폐쇄’라는 초강경 대응이 나오자 기업들은 하나둘 재택근무·원격근무를 선택하기 시작했다. 재택근무는 이제 거스를 수 없는 하나의 흐름이 됐다. 기간이 길어지는 만큼 한쪽에서는 재택근무 회의론도 나오고 있다. 그렇다면 재택근무의 생산성을 높이는 노하우는 무엇일까. 최철규 HSG휴먼솔루션그룹 대표를 만나 재택근무가 어려운 이유와 해결 방안에 대해 의견을 들어봤다. 최 대표는 “재택근무가 활성화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성과주의가 명확해야 한다”며 “이를 위해서는 ‘업무 드러내기’와 같은 구체적인 지침과 기업 문화의 변화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코로나19 사태로 기업에 재택근무라는 커다란 변화가 오고 있습니다. 정상화 시기를 놓고 기업들의 고민도 커지고 있을 텐데요.
“재택근무가 어려운 이유이면서 활성화되기 위한 조건으로 먼저 성과주의를 꼽을 수 있습니다. 예전에는 누가 오래 앉아 있느냐, 눈에 잘 보이느냐로 평가했다면 재택근무는 포인트가 다릅니다. 결국 구체적인 업무 결과물로 평가할 수밖에 없죠. 예를 들어 기자들은 사무실로 출퇴근하지 않는 경우가 많습니다. 하지만 그날의 기사를 보면 어떻게 일했는지 다 알 수 있습니다. 결과로 말하는 직종이나 집단은 재택근무가 상대적으로 쉽죠. 그런데 많은 대기업, 특히 사무직 중에서도 지원 부서는 성과 지표가 명확하지 않습니다. 이 때는 재택근무가 쉽지 않죠.”
성과 지표뿐만 아니라 커뮤니케이션의 방법도 완전히 다릅니다. 의사소통 측면에서의 어려움은 무엇일까요.
“의사 소통 문화에 따라 저맥락(low context)과 고맥락(high context)으로 구분된다면 한국은 전형적인 고맥락 구조를 가지고 있습니다. 고맥락은 메시지에 담긴 정보보다 맥락을 통해 정보를 전달하는 게 특징이죠. 팀장이 말할 때 눈빛과 말투와 표정이 중요하죠. ‘너 이거 해’는 표현이 진짜인지 엄포용인지 만나서 이야기하면 대충 파악할 수 있는데 재택근무로는 파악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재택근무가 활성화되기 위해선 커뮤니케이션 방식이 달라져야 합니다. 상사가 일을 시킬 때는 일의 중요도가 어느 정도인지, 우선순위가 무엇인지 명확히 해주는 겁니다.”
재택근무를 놓고 직급이나 세대에 따라 다른 반응을 보이기도 합니다. 고용주가 재택근무를 결정하기가 쉽지 않은 이유는 무엇인가요.
“사업주로선 노동 시장의 유연성이 담보되지 않아서입니다. 프리랜서에겐 재택근무 시키기가 너무 쉽습니다. 회사는 과제를 주고 결과물을 보면서 판단합니다. 서구가 재택근무가 활성화돼 있는 배경에는 높은 노동 유연성이 있습니다. 회사 성장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판단이 들면 언제든지 ‘아웃’ 시킬 수 있는 거죠. 고용과 노동 시장의 유연성이 보장된다면 지금보다 재택근무는 더 늘어날 겁니다.”
재택근무의 대표적인 단점은 무엇인가요.
“스티브 잡스 애플 창업자는 재택근무를 ‘미친 짓’이라고 했습니다. 창의성은 즉흥적인 회의와 무작위로 이뤄지는 토론에서 비롯된다는 이유에서입니다. 새로운 아이디어는 ‘관계’ 속에서 상호 작용할 때 나온다는 겁니다. 커피를 마시면서 지나가다가 툭 이야기를 던지고 협업할 수 있는 동료를 찾죠. 그래서 공간 혁신을 할 때 중요한 게 스낵과 동선입니다. 사무실 공간을 배치하면서 우연한 마주침을 유발하기 위해 커피머신을 가져다 놓고 조직 내 사일로(silo)를 허물기 위해 칸막이를 없애는 것도 같은 이유에서입니다.”
실리콘밸리에서 한때 재택근무 붐이 일었다가 다시 사라진 것도 같은 이유입니까.
“일찌감치 재택근무를 시행한 외국 기업들 중에는 원격이 단절(disconnected)의 결과를 초래한다는 이유로 원래대로 다시 돌아간 곳이 종종 있습니다. IBM이 그중 대표 격입니다. 이들은 1990년부터 재택 등 원격근무를 도입했다가 한참 지난 뒤인 2017년 철폐했습니다. 당시 구조 조정의 목적이 없지 않았다는 설도 있지만 IBM은 얼굴을 맞대고 일하는 협업에서 창의성이 나올 수 있다는 이유를 가장 크게 내세웠죠. 구글은 재택근무를 선택지로 두고 있지만 직원들이 사무실에 나와 근무하도록 하기 위해 ‘집처럼 편안한 사무실 환경’ 만들기에 열을 올린다는 얘기가 있습니다. 지금 실리콘밸리에선 규모가 큰 대기업은 상대적으로 재택근무를 하지 않는 편이고 스타트업 위주로 실시하고 있습니다.”
스타트업들이 재택근무를 하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세대가 바뀌었기 때문입니다. 사무실 안에 모여 일하는 것보다 일하는 장소를 선택하고 싶어 하는 젊은 세대가 많아서입니다. 또 실리콘밸리의 부동산이 많이 비싼 영향도 있어 보입니다. 실리콘밸리 인근에 살기 위해서는 엄청난 돈을 내야 하기 때문에 탈실리콘밸리 바람이 불고 있습니다. 심지어 트럭에서 살기도 하죠. 재택근무나 원격근무를 선택하면 세계의 유능한 인재들과 함께 일할 수 있는 장점이 있습니다. 많은 스타트업들의 전략이 심플한 것도 한 이유입니다. 규모가 커질수록 복잡성이 증가하고 혼자 움직이는 게 쉽지 않아집니다.”
일반적으로 재택근무의 장점은 무엇인가요.
“‘직원 가치 제안(EVP : Employee Value Proposition)’에 도움이 됩니다. 좋은 인재를 유치하는 수단으로서 재택근무가 매력적인 측면이 있습니다. 일반적으로 불필요한 출퇴근 시간이 없어지고 대면으로 인해 생겨날 수 있는 감정 소비도 줄일 수 있습니다. 또 편한 공간에서 편한 복장으로 자유롭게 일할 수 있고 이런저런 급작스러운 부름에 응하지 않아도 되니 혼자 온전히 몰입하기에도 도움이 됩니다. IT의 발달로 가능해진 이른바 ‘미래의 노동’인 셈이죠.”
그러면 재택근무라는 도전을 기회로 바꾸기 위해 어떤 것들이 필요할까요.
“크게 세 가지가 필요하다고 봅니다. ‘신뢰 관리’, ‘협업 관리’, ‘자기 관리’입니다. 특히 신뢰 관리가 키포인트입니다. 재택근무를 할 때 가장 어려운 것 중 하나가 상호 신뢰에 관한 것입니다. ‘재택인데 열심히 일할까’, ‘나만 열심히 일하면 손해 아닌가’와 같은 생각을 하면 대충하자는 결론에 이르고 생산성이 떨어지게 되죠. 글렌 더처 오스트리아 인스부르크대 교수는 이와 관련해 ‘재택근무를 할 때 제일 중요한 것은 신뢰를 관리하는 것’이라고 조언했습니다. 이를 위해서는 투명하게 업무 내용을 공유하는 ‘업무 드러내기’가 필요합니다.”
재택근무를 통해 ‘업무 드러내기’를 하고 있는 회사는 있나요.
“애플리케이션(앱) 디자인 툴 개발사인 인비전(InVision)은 사무실 없이 전 사원이 원격으로 근무하고 있습니다. 이 회사는 팀원들끼리 모니터로라도 얼굴을 맞대는 것을 중요하게 여기며 매일 45분씩 스크럼(scrum) 미팅을 진행합니다. 팀원 각자가 자기 업무에 대해 허심탄회하게 털어놓는데 이때는 3가지를 꼭 얘기하도록 하고 있어요. 첫째, 지금 하는 일. 둘째 앞으로 할 일, 셋째, 업무에서 가장 큰 장애물을 돌아가며 말하고 아이디어를 주고받습니다. 휴가나 업무상 빠지는 팀원을 위해 미팅을 비디오로 녹화하기도 합니다. 이 데일리 미팅의 가장 큰 이점은 업무가 투명하게 공개돼 서로 가질 수 있는 업무 태만에 대한 의심이 사라진다는 점이죠.”
협업 관리와 자기 관리를 위한 노하우는 무엇입니까.
“재택근무를 하게 되면 대면으로 인해 발생하는 감정 소비가 없는 반면 비대면으로 인한 감정 소비가 다시 생겨날 수 있습니다. e메일이나 메신저 등으로 메시지를 주고받는 일이 훨씬 더 많아지는데 실제 텍스트 외의 감정이나 맥락을 읽기가 어려워 오해가 생길 수 있다는 거죠. 오픈 소스 플랫폼을 운영하는 회사 깃랩(GitLab)은 1000여 명이 넘는 직원들이 66개국에 흩어져 일하면서 상세한 업무 매뉴얼을 통해 비대면 협업의 문제를 해결하고 있습니다. ‘메신저로 대화할 때 문장을 대문자로 쓰지 않는다(소리 지르는 느낌이 있기 때문에)와 같이 매우 자세한 지침이 있습니다. 자기 관리를 위해서는 집 안에서도 자기만의 일하는 공간이 필요합니다. 사적인 가정생활이 이뤄지는 곳과 업무 공간을 명확히 구분 짓고 업무 시간과 휴식 시간도 시간표를 만들거나 알람을 이용해 적절한 균형이 이뤄지도록 해야 합니다.”
코로나19 이후에도 재택근무가 대세가 될까요.
“재택근무 실험을 하는 노력을 고무적으로 보고 있습니다. 직원들의 건강이나 안전은 생산성과 비교할 수 없는 가치죠. 재택근무를 하나의 대체 근무 수단으로 인식하고 기업 문화 혁신의 또 다른 선택지가 될 수 있을 겁니다. 선택권이 많은 사회는 좋은 사회죠. 이제는 근무의 ‘양’으로 승부하는 시대가 아닙니다. 일의 ‘본질’과 ‘성과’로 평가하고 승부하는 시대가 오고 있습니다. 성과주의가 더 강화돼야 하는데 재택근무가 잘 정착되면 이러한 성과주의를 더 가속화할 것이라고 기대합니다. 가장 우려하는 점은 ‘해보니까 안 되네’라는 결과에 이르는 겁니다. 급박하게 혹은 어설프게 시도하면 오히려 도전하지 않는 것보다 더 못한 결과를 초래할 수 있습니다. 제도와 문화 전반에서 성공 가능성을 높이는 방법들을 찾아서 하려면 제대로 하자고 강조하고 싶습니다.”
charis@hankyung.com
[본 기사는 한경비즈니스 제 1273호(2020.04.20 ~ 2020.04.26)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