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일만에 나타난 김정은 의도는 … 남측 떠보기? 미국 정보력 시험?

전 세계 이목 끌기 성공 … 미국 정보 취약성 도마에 올라
충성과 결속 유도 … 이상분자 색출 목적도
‘건강 · 내부 권력 장악에 이상 없다’ 과시
남남 갈등 촉발, 위중설 · 사망설 제기 태영호 · 지성호에 비판 쇄도
“정부 ‘특이 동향이 없다’ 수준 벗어나 혼란 줄였어야” 지적도


[한경비즈니스=홍영식 대기자]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지난 1일 공개활동을 재개한 사실이 2일 보도되면서 건강 이상설을 불식시켰다. 그가 공개활동에 나선 것은 지난달 11일 노동당 정치국 회의를 주재한 이후 20일만이다.

궁금한 것은 그와 북한이 그의 건강을 두고 온갖 의혹과 추측이 난무했는데도 입을 다문 의도와 배경이다.

그의 건강 이상설이 처음 제기된 것은 조부 김일성 전 북한 주석 생일인 지난달 15일. 그가 권력을 잡은 이후 처음으로 금수산태양궁전을 참배하지 않으면서다. 그의 건강 문제를 두고 사망설에서부터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을 피해 원산에 갔다 △심혈관 수술을 받고 중태에 빠졌다 △심혈관 수술을 받았지만 일상적인 활동에 문제가 없다 △미사일 발사 실험 때 사고로 다쳤다 등 다양한 추측들이 제기되면서 우리 사회와 세계를 혼란에 빠트렸다.

그의 신변을 두고 우리 정부는 줄곧 “북한 내 특이 동향은 없다”는 입장을 나타냈지만, 미국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과 고위 당국자들의 발언은 혼선을 불렀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달 21일 김정은의 상태에 대해 “우리는 모른다”고 했다. 그러다가 지난 1일엔 “상황을 잘 알고 있지만 말할 수 없다”며 “모든 것이 괜찮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뭔가 이상이 있다는 느낌을 주는 발언이었다.

마이크 폼페이오 국무장관은 지난달 30일 “김 위원장의 공개 활동을 2주 이상 확인할 수 없었다. 통상적이지는 않다”며 “만일의 사태에 확실히 대비할 수 있도록 노력하고 있다”고 말해 뭔가 심상찮은 분위기를 자아냈다. 미국 CNN은 지난달 20일 “김정은이 수술을 받았으며 위중한 상태”라고 했다.

이 때문에 김정은이 20일만에 공개활동을 재개하면서 미국 정보 당국의 취약성이 도마에 오르고 있다. 미국 뉴욕타임스(NYT)는 “세계가 ‘불투명하고 핵으로 무장한’ 북한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에 대해 얼마나 모르고 있는지를 다시 한 번 보여준다”고 평가했다.

김정은이 2011년 말 집권 이후 공개 석상에서 20일 이상 자취를 감춰 건강 이상설이 제기된 것은 이번을 포함해 여섯 번이다. 2014년엔 40일간 모습을 드러내지 않아 ‘쿠데타로 축출됐다’는 소문까지 돌았다.

김정은이 온갖 의혹과 추측이 난무하는데도 불구하고 지난 20일 간 입을 닫은 것은 여러 목적이 있었다는 분석이 나온다. 우선 미국의 정보력 시험이다. 김정은이 의도했든, 그렇지 않든 그의 잠행이 국제적인 관심을 끄는데는 성공했다. 주요 국가들의 정보기관들이 촉각을 곤두세우고 정보 수집에 나섰다.
전직 통일부 차관은 “김정은은 항상 신변에 위협을 느끼고 살고 있다”며 “한국은 물론 특히 미국이 자신에 대한 정보를 얼마나 정확하게 파악하고 분석하고 있는지 알아보려는 의도가 있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김정은이 지난 1일 비료공장 준공식에 나타나 담배를 피운 것은 내 건강에 이상이 없다는 점을 보여주려는 의도로 보인다. 또 내부 권력 장악에 이상이 없다는 점을 과시하려는 뜻도 있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전문가들은 아울러 온갖 의혹을 불식시키고 전격적으로 등장해 내부 결속을 다지고 위상을 높여 충성을 유도하려는 목적도 있는 것으로 보고 있다. 북한 신문들이 김정은이 공개 활동에 나선 날 자력갱생 정신을 거듭 강조하며 “어떤 천지풍파가 닥쳐와도 영도자(김정은)만 믿고 따르는 열혈 충신이 돼야 한다”고 독려하고 나선 것은 이런 관측을 뒷받침한다. 건강 이상설을 불러 일으켜 북한 내 ‘이상 분자’를 색출하려는 의도가 있는 것 아니냐는 분석도 나온다.

일각에선 남측 내 분위기를 떠보려는 의도가 있다는 의혹도 제기한다. 이미 남남갈등은 벌어지고 있다. 우리 정부가 ‘특이 동향이 없다’고 지속적으로 설명해왔음에도 건강 이상설을 제기한 탈북자 출신 태영호 미래통합당 당선인과 지성호 미래한국당 당선인에 대한 비판이 거세다.

태 당선인은 지난달 28일 “김 위원장이 스스로 일어서거나 제대로 걷지 못하는 상태”라고 했고, 지 당선인은 지난 1일 “김 위원장의 사망을 99% 확신한다”며 주말 북한의 공식 발표가 있을 것이라는 예상도 내놓았다. 하지만 지 당선인이 이 같은 발언을 한 날 김정은은 공개활동에 나섰다.

여권은 이 같은 두 사람의 발언에 대해 일제히 비판에 나서면서 사과를 촉구했다. 청와대는 “무책임한 발언”이라고 했고, 강훈식 더불어민주당 수석대변인은 “코로나19 사태로 전 국민이 힘겨운 상황에서 두 사람의 ‘가짜뉴스’가 대한민국을 또 한 번 혼란에 빠뜨렸다”고 비판했다. 윤건영 민주당 당선인은 “사망설부터 후계자 운운까지 호들갑을 떨었던 일부 언론과 무책임한 정치인들의 행태에 씁쓸한 마음”이라며 “북한 지도자 신상에 대한 자극적인 보도는 구시대의 행태일 뿐”이라고 했다.

그러나 일각에선 온갖 추측과 의혹이 난무하는 상황에서 정부의 대응이 무책임하다는 비판도 나온다. “특이 동향이 없다”는 수준에만 머물지 말고 의혹을 불식할만한 적정 수준의 내용을 공개해 혼란을 줄였어야 하는 게 정부의 바람직한 태도 아니냐는 것이다.

yshong@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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