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이 무너져도 솟아날 구멍 있다’ 화물 운송 늘리는 항공업계
입력 2020-05-05 13:12:15
수정 2020-05-05 13:12:15
-화물 실적 1~2% 정도밖에 줄지 않아…대한항공·아시아나, ‘벨리 카고’ 활용에 집중
[한경비즈니스=이명지 기자]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으로 인해 글로벌 경제가 얼어붙고 있다. 그중에도 항공 산업은 사상 최악의 위기를 맞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위기를 버티기 위해 대형 항공사(FSC)는 화물기 취항을 늘리고 여객 대신 화물을 싣는 등 자구책을 마련하고 있다. 사람은 가지 못해도 화물은 움직일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저비용 항공사(LCC)는 화물 수송도 쉽지 않은 상황이다.
◆여객을 화물로…조원태 회장의 ‘발상의 전환’
대한항공은 3월 13일부터 베트남 호찌민 노선에 20여 톤의 화물을 실을 수 있는 A330-300 여객기를 투입했다. 이 항공편은 베트남에 진출한 현지 한국 기업의 물량과 농산물 등 각종 화물을 운송하는 용도로 활용되고 있다. 또 노선이 끊긴 중국 칭다오에도 여객기를 투입해 화물을 수송한다.
이는 조원태 한진그룹 회장의 아이디어인 것으로 알려졌다. 조 회장은 최근 임원 회의에서 유휴 여객기를 화물기로 활용하자는 방안을 제시하며 “여객기의 화물칸을 이용해 화물 수요 변화에 능동적으로 대응하면 공급처를 다양화하고 고정 비용도 줄일 수 있을 것”이라고 말한 것으로 알려졌다.
또 화물 수송을 늘림으로써 수출 기업에 대한 지원도 가능해졌다. 최근엔 코로나19로 수요가 늘어난 진단 키트 등 의약품 수송도 활발하다. 특히 의약품은 민감성 화물로 수송이 까다로운데 대한항공은 충분한 노하우를 갖췄다는 평가를 받는다.
최근 대한항공은 세계 최고 권위의 물류 전문지인 ‘에어 카고 월드’가 주관하는 ‘에어 카고 엑설런스 어워드’에서 최고 등급인 ‘다이아몬드 어워드’를 수상했다. ‘에어 카고 엑셀런스 어워드’는 항공사의 실제 고객인 화주와 포워더(운송 주선인) 등이 직접 고객 서비스 품질·정시성·공급력·네트워크 경쟁력을 평가해 항공사의 화물 운송 서비스 경쟁력을 나타내는 척도로 여겨진다.
매각 절차를 밟고 있는 아시아나항공도 매출 회복을 위해 여객 전세기와 화물기 영업에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다. 아시아나항공은 여객기 화물칸을 활용해 화물을 수송하는 ‘벨리 카고(여객기의 화물칸)’ 영업에 주력 중이다.
아시아나항공은 총 14대의 화물기(자사기 12기, 임차기 2대)를 보유 중이며 2개 국가, 28개 도시, 28개 노선에서 운항 해 왔다. 아시아나항공에 따르면 코로나19 발생 전인 올해 1~2월에 비해 적재율이 10% 정도 상승했다.
아시아나항공은 온습도와 이산화탄소 농도 유지가 필요해 운송이 까다로운 생동물(말·돼지·돌고래 등)과 체리·망고 등 신선식품 등 고부가 가치 화물 수송에 특화돼 있다. 숙련된 아시아나항공의 로드마스터(Load Master)가 시뮬레이션을 통해 탑재 화물 특성에 맞는 최적의 운송 환경을 제공한다. 또 아시아나항공 화물 전산 시스템으로 운송 전 과정을 실시간으로 모니터링할 수 있다.
◆FSC, 화물로 버티지만…그마저도 힘든 LCC
코로나19로 인해 전례 없는 위기를 맞이한 항공업계에서 대형 항공사들은 화물 수송으로 버텼다.
한국공항공사와 인천공항공사에 따르면 3월 전국 공항을 통해 출입국한 국제선 여객은 64만8000여 명으로 전년 대비 91.5% 감소했다. 코로나19의 확산으로 총 181개 국가가 한국발 입국을 제한했고 감염 우려로 인해 수요가 급감했기 때문이다. 화물 실적은 전년 대비 12.2% 줄어든 23만7000톤으로 집계됐다. 물동량의 감소는 피할 수 없었지만 여객보다 타격이 적었다. 대한항공의 전체 화물 실적은 16만2000톤으로 전년 대비 2.3% 감소했고 아시아나항공은 10만6000톤으로 1.7% 감소했다. 여객에 비해선 ‘선방’한 것이다.
반면 LCC의 화물 수송 실적은 전년 대비 94.4%나 감소했다. LCC는 벨리 카고 수송이 화물 수송의 대부분을 차지하기 때문이다. 여객기를 운항할 수 없었던 LCC로서는 화물 수송량의 감소를 피할 수 없었다.
실제로 LCC 중 화물기 활용에 나선 곳은 진에어뿐이다. 진에어는 국내 LCC 중 유일하게 보유한 중대형 B777-200ER 여객기를 화물기로 활용해 수익 창출을 시도했다. 3월 말부터 4월 13일까지 B777-200ER 여객기를 인천~타이베이 노선에 투입해 원단·의류와 전기·전자 부품류 등을 모두 6차례에 걸쳐 수송했다. 여객기 하부 전체를 화물칸으로 사용하는 방식이었다.
향후 대형 항공사들은 화물 전용기 수송을 더 늘림으로써 위기를 버텨낼 것으로 보인다. 2002년 사스(중증급성호흡기증후군)가 유행할 때에도 항공업계의 여객 수요는 30% 정도 감소했지만 화물 수송량은 계속 성장했다. 이에 따라 당시 항공 화물 사업을 영위하던 항공사들은 화물로 실적을 방어할 수 있었다.
박성봉 하나금융투자 애널리스트는 “코로나19로 재택근무·온라인 교육 등 실내 활동이 증가함에 따라 반도체·컴퓨터·무선통신 기기 등 정보기술(IT) 관련 품목 수출이 증가한 것이 최근 화물 실적 선방의 주요 원인”이라고 지적했다. 하지만 무작정 화물에만 기댈 수는 없다. 코로나19의 확산으로 글로벌 경기 침체가 본격화된다면 교역 부진에 따라 화물 수송 실적이 둔화될 가능성도 남아 있다.
예상하지 못했던 외부 변수지만 코로나19가 항공사들에 미치는 타격은 매우 크다. 현재는 여객 수요의 회복을 점치기 어려운 상황이다. 외교부에 따르면 4월 29일 기준 한국 출발 여행객에게 입국 금지 조치를 내리거나 입국 절차를 강화한 국가는 총 183개국이다.
이 중 입국 금지 조치를 내린 국가는 151개국(한국 일부 지역에 대한 입국 금지 조치 1개국, 중국 지역 포함)에 다다른다. 코로나19로 국제선 운항은 98.1% 감소했고 올해 상반기에만 6조원 이상의 항공사 매출 피해가 예상된다.
항공사들은 단순히 화물 수송을 늘리는 데서 벗어나 여객 수요가 회복될 때까지 버틸 수 있는 힘을 길러야 한다. 따라서 체력을 뒷받침해 줄 수 있는 정부의 지원책에 눈길이 쏠린다.
최근 정부는 대한항공과 아시아나항공에 3조원 규모의 유동성을 긴급 수혈하기로 한데 이어 LCC에 대한 추가 지원도 검토하기로 했다. 정부는 4월 29일 위기관리대책회의에서 LCC에 대해 기존에 발표한 3000억원 내외의 유동성을 조속히 집행하고 필요하다면 추가 유동성 지원을 검토할 것이라고 밝혔다.
현재 3000억원 중 1304억원이 집행된 상태이며 KDB산업은행과 수출입은행은 제주항공이 해외 기업 결합 심사를 마무리하는 대로 이스타항공 인수를 위해 1700억원을 지원할 예정이다.
mjlee@hankyung.com
[본 기사는 한경비즈니스 제 1275호(2020.05.04 ~ 2020.05.10) 기사입니다.]
[한경비즈니스=이명지 기자]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으로 인해 글로벌 경제가 얼어붙고 있다. 그중에도 항공 산업은 사상 최악의 위기를 맞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위기를 버티기 위해 대형 항공사(FSC)는 화물기 취항을 늘리고 여객 대신 화물을 싣는 등 자구책을 마련하고 있다. 사람은 가지 못해도 화물은 움직일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저비용 항공사(LCC)는 화물 수송도 쉽지 않은 상황이다.
◆여객을 화물로…조원태 회장의 ‘발상의 전환’
대한항공은 3월 13일부터 베트남 호찌민 노선에 20여 톤의 화물을 실을 수 있는 A330-300 여객기를 투입했다. 이 항공편은 베트남에 진출한 현지 한국 기업의 물량과 농산물 등 각종 화물을 운송하는 용도로 활용되고 있다. 또 노선이 끊긴 중국 칭다오에도 여객기를 투입해 화물을 수송한다.
이는 조원태 한진그룹 회장의 아이디어인 것으로 알려졌다. 조 회장은 최근 임원 회의에서 유휴 여객기를 화물기로 활용하자는 방안을 제시하며 “여객기의 화물칸을 이용해 화물 수요 변화에 능동적으로 대응하면 공급처를 다양화하고 고정 비용도 줄일 수 있을 것”이라고 말한 것으로 알려졌다.
또 화물 수송을 늘림으로써 수출 기업에 대한 지원도 가능해졌다. 최근엔 코로나19로 수요가 늘어난 진단 키트 등 의약품 수송도 활발하다. 특히 의약품은 민감성 화물로 수송이 까다로운데 대한항공은 충분한 노하우를 갖췄다는 평가를 받는다.
최근 대한항공은 세계 최고 권위의 물류 전문지인 ‘에어 카고 월드’가 주관하는 ‘에어 카고 엑설런스 어워드’에서 최고 등급인 ‘다이아몬드 어워드’를 수상했다. ‘에어 카고 엑셀런스 어워드’는 항공사의 실제 고객인 화주와 포워더(운송 주선인) 등이 직접 고객 서비스 품질·정시성·공급력·네트워크 경쟁력을 평가해 항공사의 화물 운송 서비스 경쟁력을 나타내는 척도로 여겨진다.
매각 절차를 밟고 있는 아시아나항공도 매출 회복을 위해 여객 전세기와 화물기 영업에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다. 아시아나항공은 여객기 화물칸을 활용해 화물을 수송하는 ‘벨리 카고(여객기의 화물칸)’ 영업에 주력 중이다.
아시아나항공은 총 14대의 화물기(자사기 12기, 임차기 2대)를 보유 중이며 2개 국가, 28개 도시, 28개 노선에서 운항 해 왔다. 아시아나항공에 따르면 코로나19 발생 전인 올해 1~2월에 비해 적재율이 10% 정도 상승했다.
아시아나항공은 온습도와 이산화탄소 농도 유지가 필요해 운송이 까다로운 생동물(말·돼지·돌고래 등)과 체리·망고 등 신선식품 등 고부가 가치 화물 수송에 특화돼 있다. 숙련된 아시아나항공의 로드마스터(Load Master)가 시뮬레이션을 통해 탑재 화물 특성에 맞는 최적의 운송 환경을 제공한다. 또 아시아나항공 화물 전산 시스템으로 운송 전 과정을 실시간으로 모니터링할 수 있다.
◆FSC, 화물로 버티지만…그마저도 힘든 LCC
코로나19로 인해 전례 없는 위기를 맞이한 항공업계에서 대형 항공사들은 화물 수송으로 버텼다.
한국공항공사와 인천공항공사에 따르면 3월 전국 공항을 통해 출입국한 국제선 여객은 64만8000여 명으로 전년 대비 91.5% 감소했다. 코로나19의 확산으로 총 181개 국가가 한국발 입국을 제한했고 감염 우려로 인해 수요가 급감했기 때문이다. 화물 실적은 전년 대비 12.2% 줄어든 23만7000톤으로 집계됐다. 물동량의 감소는 피할 수 없었지만 여객보다 타격이 적었다. 대한항공의 전체 화물 실적은 16만2000톤으로 전년 대비 2.3% 감소했고 아시아나항공은 10만6000톤으로 1.7% 감소했다. 여객에 비해선 ‘선방’한 것이다.
반면 LCC의 화물 수송 실적은 전년 대비 94.4%나 감소했다. LCC는 벨리 카고 수송이 화물 수송의 대부분을 차지하기 때문이다. 여객기를 운항할 수 없었던 LCC로서는 화물 수송량의 감소를 피할 수 없었다.
실제로 LCC 중 화물기 활용에 나선 곳은 진에어뿐이다. 진에어는 국내 LCC 중 유일하게 보유한 중대형 B777-200ER 여객기를 화물기로 활용해 수익 창출을 시도했다. 3월 말부터 4월 13일까지 B777-200ER 여객기를 인천~타이베이 노선에 투입해 원단·의류와 전기·전자 부품류 등을 모두 6차례에 걸쳐 수송했다. 여객기 하부 전체를 화물칸으로 사용하는 방식이었다.
향후 대형 항공사들은 화물 전용기 수송을 더 늘림으로써 위기를 버텨낼 것으로 보인다. 2002년 사스(중증급성호흡기증후군)가 유행할 때에도 항공업계의 여객 수요는 30% 정도 감소했지만 화물 수송량은 계속 성장했다. 이에 따라 당시 항공 화물 사업을 영위하던 항공사들은 화물로 실적을 방어할 수 있었다.
박성봉 하나금융투자 애널리스트는 “코로나19로 재택근무·온라인 교육 등 실내 활동이 증가함에 따라 반도체·컴퓨터·무선통신 기기 등 정보기술(IT) 관련 품목 수출이 증가한 것이 최근 화물 실적 선방의 주요 원인”이라고 지적했다. 하지만 무작정 화물에만 기댈 수는 없다. 코로나19의 확산으로 글로벌 경기 침체가 본격화된다면 교역 부진에 따라 화물 수송 실적이 둔화될 가능성도 남아 있다.
예상하지 못했던 외부 변수지만 코로나19가 항공사들에 미치는 타격은 매우 크다. 현재는 여객 수요의 회복을 점치기 어려운 상황이다. 외교부에 따르면 4월 29일 기준 한국 출발 여행객에게 입국 금지 조치를 내리거나 입국 절차를 강화한 국가는 총 183개국이다.
이 중 입국 금지 조치를 내린 국가는 151개국(한국 일부 지역에 대한 입국 금지 조치 1개국, 중국 지역 포함)에 다다른다. 코로나19로 국제선 운항은 98.1% 감소했고 올해 상반기에만 6조원 이상의 항공사 매출 피해가 예상된다.
항공사들은 단순히 화물 수송을 늘리는 데서 벗어나 여객 수요가 회복될 때까지 버틸 수 있는 힘을 길러야 한다. 따라서 체력을 뒷받침해 줄 수 있는 정부의 지원책에 눈길이 쏠린다.
최근 정부는 대한항공과 아시아나항공에 3조원 규모의 유동성을 긴급 수혈하기로 한데 이어 LCC에 대한 추가 지원도 검토하기로 했다. 정부는 4월 29일 위기관리대책회의에서 LCC에 대해 기존에 발표한 3000억원 내외의 유동성을 조속히 집행하고 필요하다면 추가 유동성 지원을 검토할 것이라고 밝혔다.
현재 3000억원 중 1304억원이 집행된 상태이며 KDB산업은행과 수출입은행은 제주항공이 해외 기업 결합 심사를 마무리하는 대로 이스타항공 인수를 위해 1700억원을 지원할 예정이다.
mjlee@hankyung.com
[본 기사는 한경비즈니스 제 1275호(2020.05.04 ~ 2020.05.10)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