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물어 가는 '돈의 향연', 서서히 다가오는 '빚의 복수'

[한상춘의 국제경제 심층 분석]-중앙은행에서 정부로 경제의 무게 추 이동-늘어나는 국가 채무에 ‘복합 불황’ 논란


[한경비즈니스= 한상춘 한국경제TV 해설위원 겸 한국경제 논설위원]‘돈의 향연이 끝나고 반란이 시작된다.’ 6년 전 ‘머니 볼’의 저자인 마이클 루이스가 ‘빚의 복수(Revenge of Debt) 시대’가 들이닥칠 것을 예고한 문구다. 그 어느 국가보다 빚이 많은 한국 국민의 간담을 서늘하게 하는 경고다.

2009년 리먼브라더스 사태 이후 ‘금융 위기 극복’과 ‘실물 경기 회복’이라는 미명 아래 금리를 제로 수준(유럽과 일본은 마이너스)까지 내리면서 돈을 푸는 것이 마치 미덕인 것처럼 합리화됐다. 중앙은행은 ‘양적 완화’, 경제 주체는 ‘저리의 빚’이라는 수단을 거리낌 없이 사용해 왔다. 그 기간도 10년 이상 길어져 빚의 무서움도 잊혀 갔다.

세계 빚(국가+민간)도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났다. 국제통화기금(IMF)·국제결제은행(BIS) 등이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세계 빚은 한국 돈으로 20경원이 넘는 것으로 나타났다. 세계 국내총생산(GDP) 대비 250%로 임계치인 200%를 훨씬 넘어선 수준이다. 세계 인구 74억 명을 기준으로 1인당 빚을 계산한다면 3500만원에 달한다.

◆세계 인구 73억 명 3500만원씩 빚져

금융 위기 이후 급증한 달러 부채 만기가 2018년 하반기를 시작으로 올해부터 집중적으로 돌아오고 있다. 대부분 달러 자금을 10년 만기로 조달했기 때문이다. 국제금융공사(IIF)와 IMF 등에 따르면 달러 부채 만기는 올해부터 2025년까지 매년 평균 4000억 달러 이상이 돌아오는 것으로 나타났다.

달러 부채 만기가 집중적으로 돌아오는 상황에서 부도 우려를 불식하기 위해서는 원금을 상환하거나 신규로 달러 부채를 조달해 기존의 것을 상환하는 ‘롤오버’가 잘돼야 한다. 월가에서 한국의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진자 수를 주목하기 시작했던 지난 2월 말까지 달러 부채를 롤오버하는데 별다른 이상 징후가 발견되지 않았다.

문제는 그 이후다. 리스크 이론에서 가장 두려운 것으로 평가하는 ‘아무도 모른다(nobody knows)’ 위험인 코로나19 사태가 악화되자 달러 부채가 많고 국가 신인도가 낮은 신흥국부터 신용 부도 스와프(CDS) 프리미엄이 뛰기 시작했다. CDS 프리미엄은 특정국이 부도 우려가 제기될 때 가장 먼저 반영되는 지표다.

코로나19 사태가 길어지자 CDS 프리미엄이 급등하는 현상이 다른 국가에도 빠르게 확산되고 있다. 미국도 상승하기 시작했다. 당황한 각국이 달러 유동성 확보에 나서기 시작했다. 위험 자산과 안전 자산 가릴 것 없이 처분했다. 주식과 같은 위험 자산 가격이 떨이지면 금과 같은 안전 자산 가격이 오르는 관행이 깨지는 것도 이 때문이다.

문제는 세계 빚이 더 늘어날 가능성이 높다는 점이다. 금융 위기 이후 ‘금융 위기 극복’이라는 미명하에 돈을 무제한으로 풀었고 금리를 마이너스 수준까지 떨어뜨렸던 ‘중앙은행의 만능 시대’가 끝나가고 있다. 그 대신 ‘큰 정부론’이 국민에게 힘을 얻으면서 경제 정책의 주안점이 재정 정책으로 넘어가는 분위기다. 코로나19에 따른 재정 지출 요인도 가세하고 있다.

선도하는 국가는 미국이다. 3년 전 출범했던 트럼프 정부는 ‘미국의 재건’을 위해 도로·철도·항만 등 낙후된 사회간접자본(SOC)을 복구하는 과정에서 재정을 방만하게 운용해 오던 상황이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코로나19 사태에 따른 뜻하지 않은 재정 지출 요인이 가세되면서 재정 적자가 2011년에 이어 ‘또다시 국가 신용 등급이 강등되지 않겠느냐’는 우려가 나올 정도로 급증하고 있다.

유럽도 코로나19 사태를 맞아 양적 완화를 재추진하면서 재정 정책과 분담해 나가는 움직임이 뚜렷하다. 일본도 ‘금융 완화(하마다 고이치 미국 예일대 명예교수가 이론적 근거 제시)’ 중심의 1단계 아베노믹스를 마무리하고 ‘2단계 재정 정책(혼다 에쓰로 영국 대사가 이론적 근거 제시)’으로 이전하는 속도가 빨라지고 있다.


◆코로나19 지원금에 불붙는 ‘국가 채무’ 논쟁
재정 지출이 늘어나면 ‘재정 적자를 어떻게 감당할 것인가’ 하는 점에 의문이 든다. 코로나19 사태가 진정되고 경기가 회복될 때까지 늘어날 재정 적자를 국채로 채운다면 국가 채무가 늘어나고 국채 금리가 올라가 빚 상환 부담이 가중될 가능성이 높다. ‘부채의 악순환’이자 ‘빚의 복수’의 출발점이다.

IMF를 비롯한 예측 기관들은 빚 부담을 연착시키지 못하면 세계 경제에 복합 불황이 닥칠 것이라고 경고해 왔다. 기준 금리 등 정책 수단이 제자리에 복귀되지 않은 여건에서 자산 가격이 하락하면 경제 주체의 빚 상환 능력과 가처분 소득이 더 떨어지고 정책 대응마저 쉽지 않아 1990년대 일본 경제의 전철을 밟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 어느 국가보다 한국은 가계 빚이 많다. BIS가 민간 부채의 건전성을 평가하는 ‘신용 갭(GDP 대비 민간 부채 비율이 호드릭-프레스코트 필터로 구한 장기 추세에서 벗어난 정도)’은 3.1%포인트다. 주의(2%포인트 미만 ‘보통’, 2~10%포인트 ‘주의’, 10%포인트 이상 ‘경고’) 단계다.

단순히 빚이 많다고 반드시 무서운 것은 아니다. 빚 상환 능력, 즉 소득이 받쳐준다면 저금리 시대에는 빚을 잘 활용하는 것이 한 나라의 경기나 개인의 재테크 차원에서 더 좋을 수 있다. 하지만 경기가 받쳐주지 못하는 여건에서 임계 수준에 도달한 빚을 더 늘려 경기 부양을 모색하는 것은 위험한 발상이다.

오히려 빚을 줄이는 것이 우선순위다. 이때 주의해야 할 것은 잘못된 정책으로 이미 빚이 늘어난 상황에서는 의욕만 앞세워 과도하게 빚을 줄이면 가뜩이나 좋지 않은 경기를 더 침체시킬 수 있다. 2018년 11월 말 ‘대내외 불균형 시정’이라는 모호한 이유를 들어 금리를 올린 것이 그 이후 이자 부담 증가로 한국의 경제성장률을 지속적으로 끌어내렸다.

가계 부채에 이어 최근에는 코로나19 지원금 지급 문제를 놓고 국가 채무 논쟁이 거세게 불고 있다. 재정은 민간과 다르다. ‘양입제출(量入制出)’을 지향하는 민간은 흑자를 내는 것이 바람직하지만 ‘양출제입(量出制入)’을 전제로 하는 재정은 적자가 발생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국가 채무가 발생해도 관리 가능한 수준이면 국민으로부터 세금을 덜 걷고 재정 지출도 국민에게 되돌려 줘야 한다는 원칙에서 건전하다고 보고 있다.

재정 건전성은 국내총생산(GDP) 대비 국가 채무 비율로 평가한다. 선진국은 100%, 신흥국은 70% 이내면 재정이 건전하다고 보고 있다. 선진국은 신흥국보다 국가 신뢰도가 높아 재정 운영에서 여유가 많다는 의미다. 일본처럼 최종 대부자 역할이 저축성이 높은 국민에게 있을 때는 국가 채무 비율이 250%에 달해도 국가 부도가 날 가능성은 낮다.

특정국의 재정이 건전한지를 파악하기 위해서는 국가 채무의 개념부터 명확히 할 필요가 있다. 국가 채무는 포함 대상과 채무 성격에 따라 세 가지로 분류한다. 협의 개념은 중앙과 지방 정부의 현시적 채무, 광의 개념은 협의 개념에다 공기업의 현시적 채무, 최광의 개념은 광의 개념에다 준정부 기관 그리고 모든 기관의 묵시적 채무까지 포함된다.

한국은 세 가지 기준에 따라 국가 채무 비율이 크게 차이가 나는 것도 특징이다. 협의 개념으로는 44%, 광의 개념으로는 73%, 최광의 개념으로는 145% 내외다. “재정이 건전하다”, “국가 부도가 곧 닥친다”라는 극과 극의 주장이 함께 나오는 것을 이해할 수 있다는 것이 글로벌 투자은행과 국제 평가사 한국 포스트의 시각이다.

한국은 유난히 논쟁이 많은 나라다. 코로나19 사태 이후 국가채무·외환위기·화폐개혁 등 고질적인 3대 논쟁이 재현되고 있다. 종전과 다른 것은 3대 논쟁의 출발점이 정책 당국과 집권당인 민주당이라는 점도 눈에 띈다. 특히 코로나19 재난 지원금을 전 국민에게 주는 문제를 놓고 국가 채무 논쟁과 함께 지급이 늦어지고 있다. 과연 국민은 어떻게 볼까.


[본 기사는 한경비즈니스 제 1275호(2020.05.04 ~ 2020.05.10)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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