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영식의 정치판] 이낙연, ‘독이 든 성배’ 대표 도전 나서나 마나

[홍영식의 정치판]“당 지지 기반 넓히기 위해 출마해야” vs “거대 여당대표 되면 집중 공격받아 치명상 입기 쉬워”


[한경비즈니스 = 홍영식 대기자] 정치권에서는 당 대표직을 두고 흔히 ‘독이 든 성배’라고 말한다. 선거 패배, 계파 갈등 등으로 인해 임기 2년을 채우는 게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과거 사례들이 이를 증명한다. 2000년 이후 더불어민주당 계열 정당 대표는 37번 바뀌었다. 평균 재임 기간은 6.4개월에 불과했다. 임기 2년을 채운 대표는 정세균 국무총리, 추미애 법무부 장관, 이해찬 대표(올해 8월까지 임기를 채울 것으로 예상) 등 3명뿐이다. 미래통합당은 지난 20년간 24번 바뀌어 대표 평균 재임 기간이 10개월을 넘지 못했다. 임기 2년을 채운 사람은 박근혜·강재섭·황우여 전 대표밖에 없다.

대표가 자주 바뀌는 가장 큰 이유는 선거 패배 때문이다. 전국 단위의 선거인 국회의원·지방선거가 2년마다 한 번 씩 돌아온다. 5년마다 대통령 선거가 치러진다. 재·보궐선거도 2014년까지는 매년 두 번, 그 이후엔 매년 한 번씩 실시된다. 최근 황교안 전 통합당 대표가 ‘4·15 총선’ 참패의 책임을 지고 사퇴했고 손학규·김무성·김한길·안철수 전 대표 등도 선거 패배의 책임을 지고 물러난 바 있다. 특히 박근혜 전 대통령이 ‘선거의 여왕’으로 불리던 한나라당 대표 재임 시절인 2004년 3월부터 2년 3개월 동안 상대 당인 열린우리당은 대표가 일곱 번 바뀌기도 했다.

계파 간 다툼도 대표를 ‘파리 목숨’으로 만든 주요 요인이다. 더불어민주당은 2000년대 친노(친노무현)계와 동교동계가, 미래통합당은 친박(친박근혜)과 친이(친이명박)계가 사생결단식 다툼으로 대표가 희생양이 되곤 했다. 2004년 이부영 열린우리당 의장이 국가보안법 문제를 두고 한나라당과 협상을 벌인 끝에 폐지하는 대신 일부 조항(고무·찬양)을 없애는 선에서 타협했다가 친노 강경파의 비판을 받은 끝에 의장직을 내려놓은 게 단적인 예다. 이 의장은 친노 강경파에게서 “당을 팔아먹었다”는 말까지 들었다. 이런 이유들 때문에 2015년 당시 새정치민주연합 ‘2·8 전당대회’에 출마한 문재인·박지원·이인영 후보는 당 대표직을 두고 ‘독이 든 성배’라고 했다.

◆“코로나19 위기, 뒷짐 질 때 아니다…수권 능력 보여야”

민주당이 예정대로 오는 8월 대표 등 지도부를 선출하는 전당대회를 개최하기로 함에 따라 경선 후보들의 발걸음도 빨라지고 있다. 최대 관심사는 유력 대선 주자인 이낙연 당 코로나19국난극복위원장의 대표 경선 출마 여부다. 이 위원장은 현재까지 유보적인 태도를 보이고 있다. 그는 대표 출마 여부에 대해 “여러 얘기를 듣고 있다”며 “유·불리를 떠나 고민하고 결정하겠다”고 말했다. 민주당의 한 관계자는 “이 위원장은 전대 후보 등록이 7월 초까지여서 여론 추이를 보고 있다. 코로나19 국난 극복과 문재인 정부 후반기 안정적인 국정 운영을 위해 ‘이낙연 대표’가 필요하다면 출마할 것이고 그렇지 않다면 나가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

민주당 내에선 출마와 불출마 주장이 갈린다. 지난 5월 15일 초선 당선인들과의 만남에서 이 위원장은 출마 여부에 대한 의견을 구했고, 출마 주장이 더 많았던 것으로 알려졌다. 출마해야 한다는 쪽은 대선에 유리한 고지를 점하기 위해선 당 대표라는 징검다리를 통해 당내 입지를 넓혀야 한다는 점을 내세우고 있다. 당내 확실한 이낙연계로 꼽히는 인사는 설훈·이개호·오영훈 의원 정도다. ‘4·15 총선’에서 이 위원장이 후원회장을 맡아 지원 유세를 한 후보 38명 가운데 당선된 22명이 잠재적 우군이 될 수도 있지만 대표를 맡아 확실한 ‘내 사람’으로 만들 필요가 있다는 지적이다.

‘이낙연 멘토’로 불리는 정대철 민주당 전 대표는 이 위원장의 약점으로 꼽히는 당내 지지 기반을 마련하기 위해서라도 대표에 나가야 한다고 출마론을 적극 개진하고 있다. 출마론자들은 “코로나19 위기 상황을 맞아 총리를 지낸 여권 유력 대선 주자라면 적극적 역할을 통해 수권 능력을 보여줄 필요가 있다”는 점도 내세운다. 수도권의 한 재선 의원은 “코로나19 사태로 경제·사회 등 모든 면에서 비상등이 켜졌는데도 유력 대선 주자가 별다른 활동을 하지 않는다면 박원순 서울시장과 이재명 경기지사 등 활발하게 움직이고 있는 다른 주자들과 비교가 될 것”이라며 “그렇게 되면 지금은 압도적인 대선 지지율 1위를 달리고 있지만 대권 구도가 어떻게 달라질지 장담할 수 없다. 뒷짐 지고 있을 때가 아니다”고 말했다. 당 대표를 맡아 위기관리 능력을 발휘한다면 총리 시절의 국정 경험과 함께 국민들에게 좋은 이미지를 심어줄 수 있다.

찬성파들은 문재인 대통령의 과거 사례를 거울삼아야 한다고 주장하기도 한다. 문 대통령은 2015년부터 1년간 민주당 대표직을 맡았고 이때 당내 세력을 확대하는 발판이 됐다는 평가를 받았다.

◆“다른 대표 경선 주자들 적으로 돌려놓는 것 부담”

신중론도 만만치 않다. 대표에 당선되더라도 임기 7개월밖에 안 돼 능력을 발휘하기엔 너무 짧다는 게 부담이다. 민주당 당헌에는 ‘당 대표 및 최고위원이 대선에 출마하고자 할 땐 대선 1년 전까지 사퇴해야 한다’고 돼 있다. 차기 대선은 2022년 3월 9일 실시된다. 이 위원장이 대선에 출마하기 위해선 2021년 3월 이전에 대표직을 내려놓아야 한다.

대표 경선 과정에서 다른 후보들과의 경쟁으로 상처를 입을 수 있다는 점도 불출마를 주장하는 배경이다. 민주당 관계자는 “다른 후보들이 유력 주자인 이 위원장을 집중 공격할 것이 확실한 만큼 이 위원장으로선 또 다른 위험 요인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 과정에서 대표 경선 경쟁자들을 적으로 돌려놓을 가능성이 있다는 것도 이 위원장에겐 마이너스다. 민주당 선거 전략가로 꼽히는 한 의원은 “겨우 7개월 대표를 하려고 경선 경쟁자들과 마찰을 빚고 결과적으로 이들의 마음을 잃는다면 대선 경선에서 결코 유리할 것이 없다”고 강조했다. 현재 송영길·우원식·홍영표·김영춘·김부겸 의원 등이 당권 후보군으로 거론된다.

대표직을 수행하는 과정에서 난제를 만나 치명상을 입을 수 있다는 점도 부담이다. 177석의 거대 여당 대표이기에 더욱 그런 위험에 노출될 수 있다. 코로나19 사태를 극복하기 위한 3차 추가경정예산안, 21대 국회 원구성,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 출범, 준연동형비례대표제를 담은 선거법 개정 문제 등을 두고 야당은 유력 대선 주자인 이 위원장을 집중 겨냥, 상처를 입히려고 할 수도 있다. 여당 대표는 국정 운영의 공동 운명체다. 경제 상황이 더 나빠진다면 이 위원장도 그 책임에서 빠질 수 없다. 자칫 집권 후반기 여권발 의혹들이 터져 나온다면 대표직은 ‘독이 든 성배’가 될 수 있다. 그런 만큼 임기가 7개월밖에 안 되는 대표직에 도전하지 말고 한 발 물러서 있는 것이 대선 가도에 더 유리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 위원장의 출마에 대해 최대 계파인 친문(친문재인)계의 움직임이 주목된다. 친문계의 범위가 워낙 넓은 만큼 단일된 목소리를 내기는 어려울 것으로 예상된다. 다만 친문 핵심 인사들이 이 위원장의 출마에 긍정적인 태도를 보인 것으로 알려졌다. 한 관계자는 “대통령 임기 후반기 유력 대선 주자가 당 대표를 맡는다면 자칫 권력의 추가 당에 쏠릴 가능성이 있어 청와대로선 달갑지 않다”며 “하지만 힘 있는 대표가 정권을 뒤에서 강력하게 떠받쳐주는 것도 나쁜 구도는 아니다”고 말했다.

그는 또 “코로나19 사태의 향방, 정국 상황 등 변수가 많지만 이 위원장이 대표에 당선되면 능력에 따라 대표직이 독이 든 성배가 될 수도, 약이 든 성배가 될 수도 있다”며 “대표직은 대선 리트머스 시험지 역할을 할 것”이라고 했다. yshong@hankyung.com
[본 기사는 한경비즈니스 제 1277호(2020.05.16 ~ 2020.05.22)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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