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형 화주의 변심?…포스코 물류 자회사 추진에 해운업계 ‘발끈’

-계열사별 물류 기능 통합해 효율성 제고 나서…업계, ‘생태계 교란’·‘매출 타격’ 반발


[한경비즈니스=이명지 기자] 해운 물류업계의 주요 화주 중 한 곳인 포스코가 물류 자회사를 연내 세운다. 그룹 계열사에 흩어져 있는 물류 기능을 한곳에 모으는 것이다. 포스코와 해운 선사를 잇는 ‘포워딩(물류 주선사)을 설립한다는 계획이다.

이에 대해 해운 물류업계가 즉각 반발하고 나섰다. 가뜩이나 어려운 상황에서 대량의 물량을 확보한 화주가 물류 자회사를 설립한다면 협상 과정에서 손해를 볼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포스코는 선을 긋고 있지만 결국 해운업으로 발을 넓힐 것이라는 의심의 눈초리를 거두지 않고 있다.


◆포스코그룹, 연간 물류비로 3조원 지출

포스코는 5월 12일 그룹 내 물류 업무를 통합한 법인 ‘포스코GSP(가칭)’를 연내 출범한다고 밝혔다. 새 물류 통합법인은 포스코와 그룹사 운송 물량의 통합 계약과 운영 관리를 담당하고 물류 파트너사들의 스마트·친환경 인프라 구축을 지원해 물류 효율성과 시너지를 창출하는 역할을 한다.

포스코 측이 신규 법인을 세우는 이유는 ‘중복과 낭비’를 없애기 위해서다. 현재 철강 원료 구매, 국내외 제품 판매와 관련된 각종 운송 계약은 포스코 내부 여러 부서에 분산돼 있다. 또 포스코인터내셔널·SNNC·포스코강판 등 계열사별로 물류 기능도 흩어져 있다.

포스코 측은 물류 업무가 회사별·기능별로 분산돼 판매와 조달 지원 기능으로만 운영되고 있어 효율성 제고가 시급한 상황이라고 밝혔다. 지난해 계열사를 포함한 포스코의 물동량은 1억6000만 톤, 물류비는 약 3조원에 달한다.

이에 대한 해결책이 ‘물류 자회사’다. 포스코는 물류 자회사를 통해 중복과 낭비를 제거해 효율성을 높이고 전문성을 강화한다는 전략이다. 포스코는 물류 자회사에 대해 “원료와 제품의 수송 계획 수립, 운송 계약 등 물류 서비스를 통합 운영함으로써 효율성을 높이고 인공지능(AI)과 로봇 기술을 접목해 스마트 물류 플랫폼으로 성장할 것”이라고 밝혔다.

기존 포스코 계열사들이 운송·하역·창고의 입고·통관 등을 개별 운송 회사들과 거래했지만 앞으로 운송사들은 포스코와 직거래가 아닌 포스코 신규 물류사와 계약하게 된다. 이는 기존의 2자 물류 회사들과 비슷한 역할이다. 국내 주요 2자 물류 회사로는 현대글로비스·판토스·롯데글로벌로지스 등이 있다. 포스코로서는 여러 계약이 아닌 물류 자회사와 단일 종합 물류 계약만 체결하면 되기 때문에 업무를 단순화할 수 있게 된다.

하지만 이들의 물량을 수송하는 해운 물류업계는 난색을 표하고 있다. 업계는 포스코의 물류 자회사 설립이 가시화되기 시작한 4월 말부터 정부에 청원서를 전달하고 성명서를 발표하며 반발해 왔다. 이는 한국선주협회·한국항만물류협회·한국해운조합 등 55개 해운 물류 단체가 연합한 ‘한국해양산업총연합회(한해총)’를 중심으로 이뤄졌다.

한해총은 5월 18일 기자 회견을 열고 포스코에 자회사 설립 철회와 업계와의 상생을 요구했다. 강무현 한해총 회장은 “포스코가 물류 자회사를 설립해 시장에 진입한다면 해운과 물류 생태계가 급속도로 악화될 것”이라고 말했다.
◆또 다른 ‘대기업 물류 자회사’ 등장 경계

포스코는 물류 자회사 설립 이슈가 불거진 5월 초 해운업에 진출하는 일은 없을 것이라고 밝혔다. 최정우 포스코 회장은 5월 15일 “포스코의 해운업 진출은 불가능하고 그럴 생각도 없다”며 선을 그었다.

하지만 해운 물류업계는 이번 포스코의 물류 자회사 설립이 결국 해운업으로 발을 들여놓는 것과 같다고 주장한다. 이는 과거 포스코가 해운업 진출을 시도한 전적이 있기 때문이다. 포스코의 전신인 포항제철은 1990년 ‘거양해운’을 설립해 1995년 한진해운에 매각했다. 2009년에도 대우로지스틱스를 인수하며 해운업 진출을 시도했지만 업계의 반대로 무산된 바 있다.

해상법 학자인 김인현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해상법 교수는 “포스코가 물류정책기본법상 국제 물류 주선업자로 등록하면 종합 물류를 제공하는 자가 되기 때문에 그 안에는 필연적으로 해상 운송이 포함된다”고 말했다. 지금은 해운법의 적용을 받지 않지만 상법상으로는 엄연한 해상 운송인이라는 설명이다.

업계는 포스코의 물류 자회사 설립이 또 다른 화주인 한국전력공사·한국가스공사에도 영향을 줄 것이라고 경계한다. 가뜩이나 대기업의 시장 지배로 혼란을 겪고 있는 컨테이너 수송에 이어 벌크 수송까지 생태계 혼란을 겪게 된다는 것이다. 또 포스코가 물류 자회사를 통해 포스코의 물량을 가져가면 수수료 역할을 하는 ‘통행세’를 부과함으로써 해운 물류사들의 수익이 줄 것이란 우려도 나온다.

포스코는 통행세 의혹과 해운업 진출에 대해 ‘근거 없는 억측’이라며 운송사와 선사 하역사 등 기존 거래처들과의 계약과 거래 구조에 변동이 없을 것이라고 반박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해운 물류업계가 계속 반발하는 것은 그동안 업계가 대기업 물류 자회사들의 ‘일감 몰아주기’를 경계해 왔기 때문이다.

대기업 물류 자회사들은 계열사 물량과 3자 물류 시장의 물량을 대거 흡수해 2000년 1조3000억원에서 2018년 39조7000억원으로 17년 만에 28배 급성장했다. 이들의 성장과 달리 해운업의 매출은 2010년 이후 줄곧 하락하고 있다. 성장세는 18년간 1.8배로 정체됐고 급기야 2017년에는 국내 1위 해운사였던 한진해운이 파산했다. 김인현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해상법센터 교수는 “화주와 운송 기업 거래 사이에 2자 물류 업체가 추가되기 때문에 해운 물류 기업엔 5~10%의 매출액 손해가 발생할 수 있다”고 추산했다.

업계는 다른 대기업 물류 자회사들이 급성장한 것과 같이 포스코의 물류 자회사 또한 일감 몰아주기로 인해 각종 문제를 야기하며 성장할 것이라고 우려하고 있다. 일종의 ‘해묵은 감정’이 이번 포스코 물류 자회사 문제로 폭발했다는 것이다.

김형태 한국해양수산개발원 박사는 “대형 화주 물류 자회사는 직접 자산과 인력을 보유하지 않고 기존 3자 물류 기업 위에 군림하기 때문에 시장 질서가 붕괴될 우려가 매우 높다”며 “현재 항만 물류 산업이 포화 상태이기 때문에 신규 사업자가 진입하더라도 신규 수요 창출이 어려울 뿐만 아니라 기존 사업자의 퇴출을 촉진시켜 시장 질서가 혼란에 빠질 것”이라고 전망했다.

이에 따라 해운 물류업계는 포스코의 물류 자회사 설립 철회, 대량 화주와 해운 항만 물류업계 간 상생 방안을 마련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 선주협회가 지난 수년간 정기선 분야의 대기업 물류 자회사와 해운업계와의 상생을 추진한 결과 국적선을 많이 이용하는 화주에게 법인 세액 공제 혜택을 제공하게끔 해운법과 조세특례제한법을 개정했다. 이러한 사례처럼 부정기선 분야에서도 대량 화주와의 생상 방안 마련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김인현 교수는 “물류 흐름의 단일화를 위한 종합 물류 서비스 제공은 자회사만이 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며 “거래 관계에 있는 해상 기업이나 하역 회사에 종합 물류 서비스를 만들어 달라고 요구한 후 이들이 서비스를 원활히 제공하지 못한다면 자회사 설립을 검토해도 늦지 않았을 것”이라고 말했다.

mjlee@hankyung.com
[본 기사는 한경비즈니스 제 1279호(2020.05.30 ~ 2020.06.05)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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