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19 잊은 한세실업, 비결은 ‘스마트 팩토리’


- 매출 6.8% 하락 불구하고 영업이익 1.9% 증가
- 자체 개발한 ‘햄스’ 30여 개 해외 공장에서 가동



[한경비즈니스=차완용 기자]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으로 섬유·패션업계가 비상이다. 대기업·중소기업 할 것 없이 영업이익이 적자투성이다.

특히 의류 벤더(주력 공급사)가 주력인 기업들은 상황이 더 심각하다. 미국과 유럽 등 주요 시장이 코로나19의 직격탄을 맞으면서 주문이 대부분 중단된 여파로 적자 폭이 급증하고 있다.

급기야 일부 중소 의류 벤더 기업 중에는 유동성 한계로 사업을 포기하는 곳까지 나온 상황이다. 대형 벤더사들 역시 어려움에 허덕인다.

5월 15일 발표된 1분기 기업 공시에 따르면 신성통상은 67억원이 넘는 영업 손실을 냈다. 전년 동기 영업 이익이 67억원이었으니 감소 폭이 200%에 이른다. 신원 역시 영업이익은 전년 동기(21억원)보다 38% 감소한 13억원을 기록했다.

이런 와중에 국내 최대 의류 벤더사인 한세실업만 선방하고 있다. 한세실업은 올 1분기 52억원의 영업이익을 올려 오히려 전년 동기(51억원)보다 1.9% 늘어났다. 한세실업의 1분기 영업이익이 지난해보다 절반 이상 줄어들 것이라는 시장의 전망을 보기 좋게 무너뜨렸다.

물론 한세실업이 코로나19의 타격을 온전히 피해 간 것은 아니다. 1분기 매출 3940억9571만원으로 지난해 동기 매출 4228억1618만원 대비 6.8% 하락했다.

◆ 주문 물량 변동에 즉각 대응



한세실업이 매출 하락에도 불구하고 영업이익을 높일 수 있었던 비결은 4차 산업혁명 시대를 대비하기 위해 꾸준히 준비해 온 스마트 팩토리 덕분이다.

수년 전부터 인력과 생산 설비 등 생산 능력을 필요한 만큼만 유지하면서 생산 효율을 극대화하는 생산 시스템인 ‘린 생산 방식’을 구축하기 위해 다양한 시스템을 도입하고 있는데 이번 코로나19로 인한 바이어들의 주문 물량 변동에 즉각적으로 대응, 손실을 최소화할 수 있었다.

현재 한세실업이 도입하고 있는 스마트 팩토리 시스템은 크게 3가지다. 우선 한세실업이 직접 개발한 ‘햄스’ 시스템은 전 세계에 흩어진 30여 개 공장의 가동·생산 현황 등을 별도의 개인정보단말기(PDA)를 통해 실시간으로 점검한다.

또한 재단·봉제 등 제조 과정에 문제가 생기면 바로 파악해 즉각적인 조치가 취해지도록 시스템 돼 있어 불량품은 줄이고 업무 효율성을 높이고 있다.

둘째, 스마트 팩토리는 패턴과 재단 작업을 자동화하기 위해 생산 공장에 도입한 자동 연단기와 자동 재단기(CAM)다. 기존에는 공장장이 짜놓은 생산 스케줄대로 재단 양을 정했기 때문에 개인 역량과 여러 변수에 따라 생산량이 차이가 났었다.

이런 불안 요소들이 자동 재단기를 도입한 후에는 필요 인원과 시간, 기계 사용률 등을 계산해 운용함으로써 생산 효율성을 극대화하고 있다. 이번 코로나19 사태에도 주문 물량 변동에 즉각적으로 대응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셋째는 기존 시스템의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실시간으로 제작 환경을 모니터링하고 제어·관리할 수 있는 생산 관리 시스템(MES : Manufacturing Execution System) 도입이다.



이와 별도로 한세실업의 스마트 팩토리 구축 작업은 현재도 진행 중이다.

향후 베트남·미얀마·인도네시아·니카라과·과테말라·아이티 등 6개국에서 운영 중인 공장 전체를 바이어와 시장 상황 등 다양한 변동 사항에 따라 누적된 데이터를 이용해 생산 전 과정을 통제하는 스마트 시스템 구축을 목표로 하고 있다.

이를 위해 한세실업은 스마트폰을 이용해 생산 과정을 제어할 수 있는 공정 관리(SFC) 시스템 구축을 이른 시일 내에 도입할 방침이다.

SFC 시스템은 공장에 근무하는 직원들에게 생산 효율성, 부자재 정보 등을 실시간으로 제공하고 함께 근무하는 직원들끼리 공유할 수 있는 시스템이다.

이를 통해 직원들이 내 업무량과 해야 할 업무에 대한 예측이 가능하게 해 공장 전체 생산성을 향상시키는 환경을 제공할 예정이다. 이 밖에 공장 내에 혁신센터와 트레이닝센터를 만들고 스마트 팩토리 도입에 따른 직원 재교육에도 신경 쓰고 있다.

또한 한세실업은 미얀마 띨라와 경제특구 내 8만4000㎡ 규모의 생산 공장 증설 작업을 진행 중인데 증설되는 3개 공장 총 180개 생산 라인에 햄스 시스템 구축도 준비 중이다.

한세실업의 스마트 팩토리는 코로나19 사태에 대응하기 위해 구축한 것은 아니다. 인력 집약적 산업인 만큼 4차 산업혁명 시대의 변화를 따라가기 위한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 한창 변화를 준비하고 있던 와중에 코로나19 사태가 터지면서 우연히 덕을 본 셈이다.

하지만 이를 단순한 운으로만은 볼 수 없다. 다른 기업들은 한세실업보다 한 발 늦은 움직임으로 피해를 고스란히 받고 있기 때문이다.

◆ 한 번 실패의 교훈, 지금의 한세실업으로



한세실업의 스마트 팩토리 구축은 창업자 김동녕 한세예스24홀딩스 회장의 작품이다. 업계에서도 준비성이 철저하기로 소문이 날 만큼 항상 시장 변화에 적극적인 그가 이번에도 진두지휘했다.

김 회장의 준비성에는 아픈 과거사가 있다. 김 회장은 한세실업의 뿌리라고 할 수 있는 한세통상을 1972년 설립했지만 오일쇼크로 인해 문을 닫아야 했다.

이후 심기일전해 1982년 한세실업을 다시 설립했고 당시의 교훈으로 김 회장은 항상 시장의 변화를 주목하고 갑자기 불어 닥칠지 모르는 위기 상황에 대비하고 있다.

가장 대표적인 것이 해외 공장 개척이다. 김 회장은 인건비 상승으로 국내 생산 경쟁력이 크게 떨어지자 일찌감치 해외로 눈을 돌렸다. 1986년 사이판에 진출한 데 이어 베트남·미얀마·인도네시아·니카라과·과테말라·아이티 등 7개국에 공장을 설립했다.

이를 토대로 미국 시장을 적극 개척했다. 중미자유무역협정(CAFTA) 등을 통해 대미 수출 관세 혜택을 누릴 수 있다는 판단에서다. 예상은 적중했다.

인건비 상승이라는 위기를 돌파하기 위해 선택한 해외 공장 설립으로 또 다른 기회를 만들었다. 현재 한세실업의 미국 수출 비율은 80~90%에 이른다.

갭·나이키·언더아머·아메리칸이글·랄프로렌 등 정통 의류 브랜드와 H&M·자라 등 패스트 패션 브랜드, 월마트 등 할인 매장의 자체 상표(PB) 의류 생산 등 40여 개의 글로벌 패션 기업들과 전략적 파트너십을 맺고 있다. 연간 판매되는 의류만 3억 장 이상이다.

이처럼 김 회장은 준비성과 위기 대응 능력을 바탕으로 국제통화기금(IMF) 외환 위기, 글로벌 금융 위기 등의 파고를 이겨내며 한세실업을 매출 1조9224억원(2019년 기준)을 올리는 섬유·패션업계(상장사 기준) 3위로 키워냈다.

LF(4위), 삼성물산 패션부문(5위), 신세계인터내셔날(6위), 한섬(7위), 코오롱Fnc(9위) 등 대기업이 운영하는 패션 회사보다 더 많은 옷을 팔고 있다.

다만 한세실업은 아직도 초긴장 사태다. 스마트 팩토리 덕분에 1분기 실적 방어에 성공하긴 했지만 진짜 위기는 2분기부터라는 판단에서다.

특히 3월부터 록다운 체제를 선언한 국가들이 많아 정상적인 경제 활동이 이뤄지기 어려웠기 때문이다. 이에 한세실업은 지난 3월부터 비상 경영 대책에 들어간 상태다.

cwy@hankyung.com
[본 기사는 한경비즈니스 제 1279호(2020.05.30 ~ 2020.06.05)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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