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영상의 피로에서 벗어나 ‘귀’로 힐링…오디오 콘텐츠의 인기 비결
입력 2020-06-30 13:32:29
수정 2020-06-30 13:32:29
[비즈니스 포커스]- 윌라·스토리텔·밀리의 서재…‘오디오북’으로 제2의 넷플릭스 노린다
[한경비즈니스=이현주 기자] 국내 독서율은 책 읽기에 대한 이상과 현실의 괴리를 잘 보여준다. 독서의 유익함에 대해서는 공감하면서도 한국 국민 10명 중 4명은 1년에 책을 한 권도 읽지 않는다. 문화체육관광부가 발표한 ‘2019 국민 독서 실태 조사’에 따르면 독서하기 어려운 첫째 이유는 ‘책 이외의 다른 콘텐츠 이용(29.1%)’이었다. ‘일(공부) 때문에 시간이 없어서’가 둘째 이유로 꼽혔다. 유튜브와 넷플릭스를 비롯한 동영상 콘텐츠가 넘쳐나는 가운데 습관이 들지 않은 책 읽기는 뒤로 밀려난다.
최근 독서 문화의 변화를 가져올 법한 책 읽기의 새로운 트렌드가 부상하고 있다. 눈으로 읽는 책이 아니라 귀로 듣는 ‘오디오북’이 인기다. 오디오북을 서비스하는 주요 업체들의 타깃은 ‘비독서 인구’다. 책을 가까이 하고 싶지만 시간을 내 집중하기 어렵거나 책 읽기의 습관이 들지 않은 사람들을 공략한다. 윌라·스토리텔·밀리의 서재 등 국내 오디오북 서비스 업체들은 이들에게 독서의 ‘즐거움’을 안내하는 가교 역할을 한다. 오디오북을 통해 ‘귀로 읽어’ 완독할 수 있고 내용에 흥미를 얻어 전자책 등으로 옮겨 갈 수도 있기 때문이다.
기계가 아닌 전문 성우·셀럽이 생생하게
최근 오디오북이 주목받는 배경에는 오디오 콘텐츠의 ‘재발견’이 있다. 최근 네이버의 ‘오디오클립’을 중심으로 다양한 오디오 콘텐츠가 등장, 진화하고 있다.
오디오북은 오디오 콘텐츠 가운데 핵심이다. ‘청각’이 주는 ‘새로운 경험’, ‘힐링 사운드’가 오디오 콘텐츠의 매력이다. 동영상 콘텐츠의 범람은 현란한 영상과 자막으로 시각적인 자극과 피로감을 불러일으킨다. 이미 일과 공부로 현대인들의 눈과 정신은 피곤한 상태다. ASMR(뇌를 자극해 심리적인 안정을 유도하는 영상)의 인기에서 엿볼 수 있듯이 청각은 시각과는 완전히 다른 경험을 선사한다. 시각에 비해 ‘멀티태스킹’이 가능한 점도 장점으로 꼽힌다. 그중에서도 오디오북은 책 읽기의 쓸모를 얻고 싶으면서도 ‘편리함’을 추구하는 사람들을 공략한다.
정보기술(IT)의 발전도 오디오북 콘텐츠 소비를 촉진한다. 커넥티드 카, 인공지능(AI) 스피커 등 미래 플랫폼에 유연하게 대응할 수 있다는 점에서 오디오 콘텐츠의 성장 가능성은 밝다.
특히 자동차가 라이프스타일의 중심으로 떠오르면서 차 안에서 즐기는 인포테인먼트 콘텐츠 중 하나로 오디오북이 각광받고 있다. 오디오 콘텐츠를 즐기기에 최적화된 공간 중 하나가 자동차다. 실제로 미국에서 오디오북 시장이 성장한 배경에는 출퇴근 시간, 장거리 이동 시 차에서 편하게 책을 듣는 문화가 보편화된 측면이 있다.
오디오북은 해외에서 빠르게 성장하는 산업이다. 미국·유럽·중국 등이 큰 시장이다. 미국 오디오북 시장은 4조원 규모로 전체 출판 시장의 10%를 차지하는 것으로 추산된다.
미국에는 대표적으로 ‘아마존 오더블’이 있다. 2008년 오디오북 제작 업체 오더블을 인수한 아마존이 오디오북 시장을 이끌었고 구글과 애플 등 새로운 경쟁자가 각축전을 벌이고 있다. 뉴욕타임스는 최근 기사를 읽어 주는 서비스 오디오 콘텐츠 스타트업 오덤을 인수했다. 아마존에선 종이책·전자책 버전 없이 오디오북만으로 소개되는 책들도 적지 않다. 글로벌 출판사인 펭귄랜덤하우스는 모든 신간 서적을 오디오북으로 제작하겠다고 선언했다.
국내에서도 오디오북 시장은 점차 커지는 추세다. 특히 최근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이 장기화되면서 오디오 콘텐츠 소비가 증가하고 있는 것으로 분석된다. 네이버가 2017년 ‘오디오클립’ 출시에 이어 국내 최초 오디오북 제작사 ‘오디언’을 인수, 오디오북의 판을 키웠다면 이후 출판·교육·IT 등 다양한 곳에서 오디오북 서비스를 선보이고 있다. 오디오북은 기존 서비스의 자물쇠 효과(lock-in effect)에 유효한 전략으로 통한다. 여기에 전문 오디오 콘텐츠 플랫폼들이 가세하고 있다.
윌라, ‘전문 성우가 읽는 완독형 오디오북’
오디오북 플랫폼 ‘윌라’는 최근 애독가로 알려진 배우 김혜수 씨를 광고 모델로 발탁하고 홍보를 강화하고 나섰다. 강연 전문 기업 인플루엔셜이 운영하는 윌라는 최근 성장하는 오디오북 시장에 대응하기 위해 ‘제2 스튜디오’를 열었다. 국내 오디오북 시장에서 콘텐츠 확대를 통해 차별화된 서비스 경쟁력을 확보하고 회원 수 증가에 따른 이용자의 장르 다양화 요구를 충족시키기 위해서다.
새롭게 문을 연 녹음실 5개는 오디오북 제작에 최적화된 녹음 환경을 지원하고 있다. 문자 음성 자동 변환 기술(TTS) 형태의 기계음이 아닌 100% 전문 낭독자의 녹음에 효과적인 녹음 연출과 특수 음향 효과 삽입 등 다양한 시도를 통해 윌라 오디오북 품질을 높인다는 전략이다. 문태진 인플루엔셜 대표는 “경영·경제·자기 계발 외에도 소설·에세이·매거진 등 오디오북 콘텐츠의 종류와 범위를 지속 넓혀 가겠다”고 말했다.
인플루엔셜은 2018년 ‘네이버-KTB 오디오 콘텐츠 펀드’ 투자를 유치하면서 ‘지식 콘텐츠 플랫폼’를 지향하는 윌라를 론칭했다. 인플루엔셜은 강사의 말 한마디 한마디가 콘텐츠가 된다는 것에 착안해 강연을 디지털 콘텐츠로 만들었고 나아가 전문 오디오북 플랫폼을 선보였다. 오디오북과 별개로 출판 서비스도 겸하고 있다.
이화진 윌라 오디오북 총괄 부장은 “오디오북은 종이책이나 전자책과 고객층이 다르다”며 “한국 사람들이 상대적으로 책을 잘 안 읽어 출판 시장이 주춤한 가운데 오디오북의 등장은 필연적이었다”고 말했다. 그는 “전자책은 책이라는 텍스트보다 영화·음악·게임 등 과 같은 킬링 타임용 콘텐츠로 자리 잡으면서 장르 소설이 특히 인기를 누렸다면 오디오북은 책을 읽기 싫어하는 사람들에게 활용도가 높은 편”이라고 말했다.
월정액 구독형 스트리밍 서비스로 선보이는 윌라는 올해 6월 기준 105만 다운로드를 기록하고 있다. 누적 회원은 73만 명, 누적 멤버십은 15만 명이다. 회원 수와 오디오북 재생 시간 등을 포함한 성장률이 2018년과 2019년 사이 350% 높아질 만큼 성장속도가 빠르다. 특히 작년 하반기부터 회원 수가 빠른 속도로 늘어나는 추세다.
윌라의 주요 고객층은 3040세대의 직장인이다. 이들은 주로 출퇴근 시간과 점심시간을 활용해 오디오북을 듣곤 한다. 요일별로 보면 월요일이 가장 높은 이용률을 나타내고 주 후반으로 갈수록 조금씩 감소하는 패턴을 보이고 있다. 분야별로는 주로 자기 계발, 경제·경영, 재테크 분야에서 콘텐츠를 소비하고 있다. 여기에 최근 20대 후반과 50대 이상의 신규 고객이 늘어나는 추세다. 윌라는 이들 고객층을 분석해 특히 경제·경영 서적을 특화하는 전략을 펴고 있다.
윌라는 또한 ‘전문 성우가 읽어주는 완독형 오디오북’을 경쟁력으로 내세운다. TTS 형태가 아니라 100% 전문 성우가 책을 끝까지 읽어 주는 서비스로 차별화를 시도한다. 이화진 부장은 “기존에도 전자책 서비스에서 TTS 기능으로 텍스트를 읽는 서비스가 존재했지만 인기를 얻지 못했고 오디오북 서비스는 2시간 이내의 요약형 콘텐츠가 주를 이뤘다”며 “처음에는 대단한 강점이 아니라고 생각했는데 사람의 목소리로 처음부터 끝까지 읽어 주는 콘텐츠가 다른 곳에 없었기 때문에 강점이 됐다”고 말했다. 그는 또한 “목소리 좋은 사람은 많지만 오래 들을 수 있는 사람의 목소리를 찾는 게 관건”이라고 말했다. 윌라는 이 같은 완독형 자체 콘텐츠 보유에 역량을 모으고 있다.
또 다른 차별점은 ‘오디오북 에디터’에 있다. 오디오북 에디터는 종이책을 편집하듯이 오디오북 낭독용 원고를 별도 편집한다. 예를 들어 ‘명견만리’는 책은 두껍고 다양한 도표가 활용된다. 경제·경영 서적의 상당수는 인포그래픽을 가지고 있다. 윌라는 오디오북 에디터를 통해 원고를 꼼꼼히 살펴본 후 오디오로 서비스하기 가장 적합한 언어로 바꾸는 작업을 하고 있다. 문어체를 일상생활에서 많이 쓰는 구어체로 바꾸거나 소설은 단어의 뉘앙스를 살리는 데 공을 들인다.
스웨덴의 인기 오디오북 ‘스토리텔’, 한국에
스토리텔은 2005년 서비스를 시작한 스웨덴의 오디오북 기업이다. 지난해 11월 아시아에서 셋째로 국내에 지사를 설립하고 한국 시장 개척에 나서고 있다. 스토리텔은 ‘오디오북업계의 넷플릭스’라고 부를 정도로 해외 시장에서 큰 영향력을 가지고 있다. 세계 최초로 모바일 오디오북 스트리밍 서비스를 선보였고 현재까지 20개 이상의 언어로 총 30만 권이 넘는 오디오북을 제작했다. 2018년 12월 나스닥 유럽 시장에 상장했다.
스토리텔이 인도와 싱가포르에 이어 한국을 아시아·태평양 지역에서의 서비스 확대 거점으로 선택한 이유는 국내 오디오북 시장의 잠재력을 높게 평가해서다. 콘텐츠 월정액 서비스에 대한 이해도가 높은 한국 소비자들에게 오디오북으로 ‘킬러 콘텐츠’를 선보일 수 있다면 폭발적인 성장이 가능할 것으로 내다봤다.
스토리텔은 한국어·영어 완독형 오디오북으로 국내 시장의 문을 두드리고 있다. 유럽에서 스토리텔이 성장할 수 있었던 배경에는 휴가 문화가 자리한다. 또 장르로 볼 때 범죄·스릴러가 최고 인기를 누린다. 한국 시장은 특성도 인기 장르도 다르다. 이에 따라 한국형 모델을 구축하기 위해 국내 베스트셀러 소설을 중심으로 자체 제작 오디오북 콘텐츠를 늘려 나가고 있다. 특히 박완서 작가의 대표작들을 독점 출간해 인기를 얻고 있다. 또 글로벌 스토리텔의 인기 도서들을 한국어 버전으로 다시 제작해 두 개의 언어로 선보이면서 ‘독서+영어 공부’가 차별화 전략이 되고 있다.
박세령 스토리텔 지사장은 “3050세대 여성이 전체 고객의 70%를 차지하고 있다”며 “장르로 보면 소설과 동화 등에 타깃을 맞춰 여성들을 위한 힐링 콘텐츠로 제작하는 데 중점을 두고 있다”고 말했다.
월정액 독서 플랫폼 밀리의 서재는 ‘저자·셀럽(유명인사)·전문 성우가 30분 만에 읽어주는 오디오북’을 선보인다. 2018년 7월 ‘리딩북’으로 선보인 이후 ‘책이 보이는 오디오북’으로 진화했다. 책이 보이는 오디오북은 오디오 북과 전자책을 결합한 독서 콘텐츠에 해당한다. 또한 30분 정도의 ‘요약형·발췌형’ 형태로 선보이는 게 차별점이다.
밀리의 서재가 리딩북을 론칭하면서 가장 중요하게 생각했던 목표와 전략은 오디오북을 통해 독서에 대한 접근성을 높이는 것이었다. 그래서 책을 쉽게 접할 수 있는 콘텐츠로 만드는 데 집중했다. 밀리의 서재 오디오북은 ‘리더’가 책에 대해 해설을 더한다. 함께 이야기하는 듯한 느낌을 주기 위해 재해석한 콘텐츠다. 친근함을 더하기 위해 전문 성우뿐만 아니라 저자와 셀럽 등이 리더로 나선다.
밀리의 서재 오디오북 중 꾸준히 많이 소비되는 ‘사피엔스’는 배우 이병헌 씨와 가수 장기하 씨가 낭독자로 나서 인기를 모았다. 오디오북을 들으면서도 책의 내용을 눈으로도 확인할 수 있어 어렵게 느껴지는 고전이나 인문 분야 오디오북에 강점을 가진다.
김태형 밀리의 서재 유니콘팀 팀장은 “친근한 목소리의 셀럽이 읽어 주는 ‘셀럽형 오디오북’, 실제 책을 쓴 저자가 읽어주는 방식, 해당 분야의 식견이 있는 전문가가 해설을 더하는 방식과 같이 다양한 형태로 오디오북 서비스를 선보이고 있다”며 “무엇보다 책의 재미를 느끼도록 오디오북을 제작하는 게 중요한 역할이라고 본다”고 말했다.
2020년 6월 5일 기준 서비스되는 오디오북은 총 732권, 밀리 오디오북에 참여한 리더는 101명이다.
[돋보기]윌라, 상반기 베스트셀러 분석코로나19 이후…‘위기를 기회로’
윌라의 2020년 상반기 지식 콘텐츠 인기 차트 순위에서 엿본 오디오북 트렌드는 ‘슬기로운 머니(Money) 생활’, ‘윌라는 달라달라’, ‘스테디셀러의 재발견’이다.
윌라의 2020년 상반기 오디오북 톱10 중 무려 5종이 재테크와 경제·경영 분야였다. 1위를 차지한 ‘부의 추월차선’, 2위 ‘부의 인문학’을 비롯해 ‘마흔의 돈 공부’, ‘언스크립티드’ 등의 경제·경영 오디오북이 상위권을 휩쓸었다. 올 상반기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에 따라 ‘위기를 기회로’ 극복하기 위해 돈과 관련된 오디오북에 많은 관심을 가진 것으로 분석된다.
상반기 클래스 콘텐츠에서도 이와 같은 트렌드가 발견됐다. 윌라 클래스 톱30에서 8종이 재테크와 경제·경영 콘텐츠로, 특히 코로나19의 영향으로 발생한 ‘동학개미운동’ 트렌드에 따라 ‘슬기로운 투자생활 : 주식·부동산’, ‘당신이 주목해야 할 2020 4대 전방산업’ 등 주식 관련 클래스가 인기를 얻었다.
상반기 오디오북 순위에서는 낯선 작품이 종종 눈에 띄었다. 9위 ‘확신은 어떻게 삶을 움직이는가’, 15위 ‘인간의 흑역사’, 19위 ‘익명의 소녀’ 등 인터넷 서점 종합 순위에서 보지 못했던 비교적 새로운 콘텐츠가 상위권에 자리 잡고 있었다. 이는 오디오북 콘텐츠가 기성 출판사나 작가 등의 영향을 상대적으로 적게 받으며 책 내용 외에도 낭독자의 낭독 스킬 등이 선호도에 반영된 것으로 분석된다.
클래스 콘텐츠는 코로나19 상황 속에서도 사회적 변화에 적응하는 자기 계발을 멈추지 않았다는 점이 눈에 띄었다. 상반기 클래스 순위 톱10에서 4종이 소통 관련 클래스로, ‘매력 있는 사람의 말, 대화의 기술’ 등 재택근무, 사회적 거리 두기 시행으로 비대면 활동이 증대되면서 커뮤니케이션에 대한 관심이 늘어났다. 또 ‘어디서도 알려주지 않은 어른들을 위한 공부법’, ‘인생을 획기적으로 바꿔줄 자기혁명, 몰입’ 등 코로나19로 힘든 상황 속에서도 일과 삶 전반에서 자기 계발을 꿈꾸는 모습이 발견됐다.
‘하버드 상위 1퍼센트의 비밀’, ‘일 잘하는 사람은 단순하게 합니다’ 등 대형 서점 베스트셀러 외에도 2008년 국내 출간된 ‘클루지’, 3년 전 출간된 ‘제4의 물결이 온다’와 ‘하루 3분 세계사’ 등 종이책 출간 시기가 꽤 오래된 콘텐츠도 오디오북으로 재출시되며 제2의 전성기를 맞고 있다.
charis@hankyung.com
[본 기사는 한경비즈니스 제 1283호(2020.06.27 ~ 2020.07.03) 기사입니다.]
[한경비즈니스=이현주 기자] 국내 독서율은 책 읽기에 대한 이상과 현실의 괴리를 잘 보여준다. 독서의 유익함에 대해서는 공감하면서도 한국 국민 10명 중 4명은 1년에 책을 한 권도 읽지 않는다. 문화체육관광부가 발표한 ‘2019 국민 독서 실태 조사’에 따르면 독서하기 어려운 첫째 이유는 ‘책 이외의 다른 콘텐츠 이용(29.1%)’이었다. ‘일(공부) 때문에 시간이 없어서’가 둘째 이유로 꼽혔다. 유튜브와 넷플릭스를 비롯한 동영상 콘텐츠가 넘쳐나는 가운데 습관이 들지 않은 책 읽기는 뒤로 밀려난다.
최근 독서 문화의 변화를 가져올 법한 책 읽기의 새로운 트렌드가 부상하고 있다. 눈으로 읽는 책이 아니라 귀로 듣는 ‘오디오북’이 인기다. 오디오북을 서비스하는 주요 업체들의 타깃은 ‘비독서 인구’다. 책을 가까이 하고 싶지만 시간을 내 집중하기 어렵거나 책 읽기의 습관이 들지 않은 사람들을 공략한다. 윌라·스토리텔·밀리의 서재 등 국내 오디오북 서비스 업체들은 이들에게 독서의 ‘즐거움’을 안내하는 가교 역할을 한다. 오디오북을 통해 ‘귀로 읽어’ 완독할 수 있고 내용에 흥미를 얻어 전자책 등으로 옮겨 갈 수도 있기 때문이다.
기계가 아닌 전문 성우·셀럽이 생생하게
최근 오디오북이 주목받는 배경에는 오디오 콘텐츠의 ‘재발견’이 있다. 최근 네이버의 ‘오디오클립’을 중심으로 다양한 오디오 콘텐츠가 등장, 진화하고 있다.
오디오북은 오디오 콘텐츠 가운데 핵심이다. ‘청각’이 주는 ‘새로운 경험’, ‘힐링 사운드’가 오디오 콘텐츠의 매력이다. 동영상 콘텐츠의 범람은 현란한 영상과 자막으로 시각적인 자극과 피로감을 불러일으킨다. 이미 일과 공부로 현대인들의 눈과 정신은 피곤한 상태다. ASMR(뇌를 자극해 심리적인 안정을 유도하는 영상)의 인기에서 엿볼 수 있듯이 청각은 시각과는 완전히 다른 경험을 선사한다. 시각에 비해 ‘멀티태스킹’이 가능한 점도 장점으로 꼽힌다. 그중에서도 오디오북은 책 읽기의 쓸모를 얻고 싶으면서도 ‘편리함’을 추구하는 사람들을 공략한다.
정보기술(IT)의 발전도 오디오북 콘텐츠 소비를 촉진한다. 커넥티드 카, 인공지능(AI) 스피커 등 미래 플랫폼에 유연하게 대응할 수 있다는 점에서 오디오 콘텐츠의 성장 가능성은 밝다.
특히 자동차가 라이프스타일의 중심으로 떠오르면서 차 안에서 즐기는 인포테인먼트 콘텐츠 중 하나로 오디오북이 각광받고 있다. 오디오 콘텐츠를 즐기기에 최적화된 공간 중 하나가 자동차다. 실제로 미국에서 오디오북 시장이 성장한 배경에는 출퇴근 시간, 장거리 이동 시 차에서 편하게 책을 듣는 문화가 보편화된 측면이 있다.
오디오북은 해외에서 빠르게 성장하는 산업이다. 미국·유럽·중국 등이 큰 시장이다. 미국 오디오북 시장은 4조원 규모로 전체 출판 시장의 10%를 차지하는 것으로 추산된다.
미국에는 대표적으로 ‘아마존 오더블’이 있다. 2008년 오디오북 제작 업체 오더블을 인수한 아마존이 오디오북 시장을 이끌었고 구글과 애플 등 새로운 경쟁자가 각축전을 벌이고 있다. 뉴욕타임스는 최근 기사를 읽어 주는 서비스 오디오 콘텐츠 스타트업 오덤을 인수했다. 아마존에선 종이책·전자책 버전 없이 오디오북만으로 소개되는 책들도 적지 않다. 글로벌 출판사인 펭귄랜덤하우스는 모든 신간 서적을 오디오북으로 제작하겠다고 선언했다.
국내에서도 오디오북 시장은 점차 커지는 추세다. 특히 최근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이 장기화되면서 오디오 콘텐츠 소비가 증가하고 있는 것으로 분석된다. 네이버가 2017년 ‘오디오클립’ 출시에 이어 국내 최초 오디오북 제작사 ‘오디언’을 인수, 오디오북의 판을 키웠다면 이후 출판·교육·IT 등 다양한 곳에서 오디오북 서비스를 선보이고 있다. 오디오북은 기존 서비스의 자물쇠 효과(lock-in effect)에 유효한 전략으로 통한다. 여기에 전문 오디오 콘텐츠 플랫폼들이 가세하고 있다.
윌라, ‘전문 성우가 읽는 완독형 오디오북’
오디오북 플랫폼 ‘윌라’는 최근 애독가로 알려진 배우 김혜수 씨를 광고 모델로 발탁하고 홍보를 강화하고 나섰다. 강연 전문 기업 인플루엔셜이 운영하는 윌라는 최근 성장하는 오디오북 시장에 대응하기 위해 ‘제2 스튜디오’를 열었다. 국내 오디오북 시장에서 콘텐츠 확대를 통해 차별화된 서비스 경쟁력을 확보하고 회원 수 증가에 따른 이용자의 장르 다양화 요구를 충족시키기 위해서다.
새롭게 문을 연 녹음실 5개는 오디오북 제작에 최적화된 녹음 환경을 지원하고 있다. 문자 음성 자동 변환 기술(TTS) 형태의 기계음이 아닌 100% 전문 낭독자의 녹음에 효과적인 녹음 연출과 특수 음향 효과 삽입 등 다양한 시도를 통해 윌라 오디오북 품질을 높인다는 전략이다. 문태진 인플루엔셜 대표는 “경영·경제·자기 계발 외에도 소설·에세이·매거진 등 오디오북 콘텐츠의 종류와 범위를 지속 넓혀 가겠다”고 말했다.
인플루엔셜은 2018년 ‘네이버-KTB 오디오 콘텐츠 펀드’ 투자를 유치하면서 ‘지식 콘텐츠 플랫폼’를 지향하는 윌라를 론칭했다. 인플루엔셜은 강사의 말 한마디 한마디가 콘텐츠가 된다는 것에 착안해 강연을 디지털 콘텐츠로 만들었고 나아가 전문 오디오북 플랫폼을 선보였다. 오디오북과 별개로 출판 서비스도 겸하고 있다.
이화진 윌라 오디오북 총괄 부장은 “오디오북은 종이책이나 전자책과 고객층이 다르다”며 “한국 사람들이 상대적으로 책을 잘 안 읽어 출판 시장이 주춤한 가운데 오디오북의 등장은 필연적이었다”고 말했다. 그는 “전자책은 책이라는 텍스트보다 영화·음악·게임 등 과 같은 킬링 타임용 콘텐츠로 자리 잡으면서 장르 소설이 특히 인기를 누렸다면 오디오북은 책을 읽기 싫어하는 사람들에게 활용도가 높은 편”이라고 말했다.
월정액 구독형 스트리밍 서비스로 선보이는 윌라는 올해 6월 기준 105만 다운로드를 기록하고 있다. 누적 회원은 73만 명, 누적 멤버십은 15만 명이다. 회원 수와 오디오북 재생 시간 등을 포함한 성장률이 2018년과 2019년 사이 350% 높아질 만큼 성장속도가 빠르다. 특히 작년 하반기부터 회원 수가 빠른 속도로 늘어나는 추세다.
윌라의 주요 고객층은 3040세대의 직장인이다. 이들은 주로 출퇴근 시간과 점심시간을 활용해 오디오북을 듣곤 한다. 요일별로 보면 월요일이 가장 높은 이용률을 나타내고 주 후반으로 갈수록 조금씩 감소하는 패턴을 보이고 있다. 분야별로는 주로 자기 계발, 경제·경영, 재테크 분야에서 콘텐츠를 소비하고 있다. 여기에 최근 20대 후반과 50대 이상의 신규 고객이 늘어나는 추세다. 윌라는 이들 고객층을 분석해 특히 경제·경영 서적을 특화하는 전략을 펴고 있다.
윌라는 또한 ‘전문 성우가 읽어주는 완독형 오디오북’을 경쟁력으로 내세운다. TTS 형태가 아니라 100% 전문 성우가 책을 끝까지 읽어 주는 서비스로 차별화를 시도한다. 이화진 부장은 “기존에도 전자책 서비스에서 TTS 기능으로 텍스트를 읽는 서비스가 존재했지만 인기를 얻지 못했고 오디오북 서비스는 2시간 이내의 요약형 콘텐츠가 주를 이뤘다”며 “처음에는 대단한 강점이 아니라고 생각했는데 사람의 목소리로 처음부터 끝까지 읽어 주는 콘텐츠가 다른 곳에 없었기 때문에 강점이 됐다”고 말했다. 그는 또한 “목소리 좋은 사람은 많지만 오래 들을 수 있는 사람의 목소리를 찾는 게 관건”이라고 말했다. 윌라는 이 같은 완독형 자체 콘텐츠 보유에 역량을 모으고 있다.
또 다른 차별점은 ‘오디오북 에디터’에 있다. 오디오북 에디터는 종이책을 편집하듯이 오디오북 낭독용 원고를 별도 편집한다. 예를 들어 ‘명견만리’는 책은 두껍고 다양한 도표가 활용된다. 경제·경영 서적의 상당수는 인포그래픽을 가지고 있다. 윌라는 오디오북 에디터를 통해 원고를 꼼꼼히 살펴본 후 오디오로 서비스하기 가장 적합한 언어로 바꾸는 작업을 하고 있다. 문어체를 일상생활에서 많이 쓰는 구어체로 바꾸거나 소설은 단어의 뉘앙스를 살리는 데 공을 들인다.
스웨덴의 인기 오디오북 ‘스토리텔’, 한국에
스토리텔은 2005년 서비스를 시작한 스웨덴의 오디오북 기업이다. 지난해 11월 아시아에서 셋째로 국내에 지사를 설립하고 한국 시장 개척에 나서고 있다. 스토리텔은 ‘오디오북업계의 넷플릭스’라고 부를 정도로 해외 시장에서 큰 영향력을 가지고 있다. 세계 최초로 모바일 오디오북 스트리밍 서비스를 선보였고 현재까지 20개 이상의 언어로 총 30만 권이 넘는 오디오북을 제작했다. 2018년 12월 나스닥 유럽 시장에 상장했다.
스토리텔이 인도와 싱가포르에 이어 한국을 아시아·태평양 지역에서의 서비스 확대 거점으로 선택한 이유는 국내 오디오북 시장의 잠재력을 높게 평가해서다. 콘텐츠 월정액 서비스에 대한 이해도가 높은 한국 소비자들에게 오디오북으로 ‘킬러 콘텐츠’를 선보일 수 있다면 폭발적인 성장이 가능할 것으로 내다봤다.
스토리텔은 한국어·영어 완독형 오디오북으로 국내 시장의 문을 두드리고 있다. 유럽에서 스토리텔이 성장할 수 있었던 배경에는 휴가 문화가 자리한다. 또 장르로 볼 때 범죄·스릴러가 최고 인기를 누린다. 한국 시장은 특성도 인기 장르도 다르다. 이에 따라 한국형 모델을 구축하기 위해 국내 베스트셀러 소설을 중심으로 자체 제작 오디오북 콘텐츠를 늘려 나가고 있다. 특히 박완서 작가의 대표작들을 독점 출간해 인기를 얻고 있다. 또 글로벌 스토리텔의 인기 도서들을 한국어 버전으로 다시 제작해 두 개의 언어로 선보이면서 ‘독서+영어 공부’가 차별화 전략이 되고 있다.
박세령 스토리텔 지사장은 “3050세대 여성이 전체 고객의 70%를 차지하고 있다”며 “장르로 보면 소설과 동화 등에 타깃을 맞춰 여성들을 위한 힐링 콘텐츠로 제작하는 데 중점을 두고 있다”고 말했다.
월정액 독서 플랫폼 밀리의 서재는 ‘저자·셀럽(유명인사)·전문 성우가 30분 만에 읽어주는 오디오북’을 선보인다. 2018년 7월 ‘리딩북’으로 선보인 이후 ‘책이 보이는 오디오북’으로 진화했다. 책이 보이는 오디오북은 오디오 북과 전자책을 결합한 독서 콘텐츠에 해당한다. 또한 30분 정도의 ‘요약형·발췌형’ 형태로 선보이는 게 차별점이다.
밀리의 서재가 리딩북을 론칭하면서 가장 중요하게 생각했던 목표와 전략은 오디오북을 통해 독서에 대한 접근성을 높이는 것이었다. 그래서 책을 쉽게 접할 수 있는 콘텐츠로 만드는 데 집중했다. 밀리의 서재 오디오북은 ‘리더’가 책에 대해 해설을 더한다. 함께 이야기하는 듯한 느낌을 주기 위해 재해석한 콘텐츠다. 친근함을 더하기 위해 전문 성우뿐만 아니라 저자와 셀럽 등이 리더로 나선다.
밀리의 서재 오디오북 중 꾸준히 많이 소비되는 ‘사피엔스’는 배우 이병헌 씨와 가수 장기하 씨가 낭독자로 나서 인기를 모았다. 오디오북을 들으면서도 책의 내용을 눈으로도 확인할 수 있어 어렵게 느껴지는 고전이나 인문 분야 오디오북에 강점을 가진다.
김태형 밀리의 서재 유니콘팀 팀장은 “친근한 목소리의 셀럽이 읽어 주는 ‘셀럽형 오디오북’, 실제 책을 쓴 저자가 읽어주는 방식, 해당 분야의 식견이 있는 전문가가 해설을 더하는 방식과 같이 다양한 형태로 오디오북 서비스를 선보이고 있다”며 “무엇보다 책의 재미를 느끼도록 오디오북을 제작하는 게 중요한 역할이라고 본다”고 말했다.
2020년 6월 5일 기준 서비스되는 오디오북은 총 732권, 밀리 오디오북에 참여한 리더는 101명이다.
[돋보기]윌라, 상반기 베스트셀러 분석코로나19 이후…‘위기를 기회로’
윌라의 2020년 상반기 지식 콘텐츠 인기 차트 순위에서 엿본 오디오북 트렌드는 ‘슬기로운 머니(Money) 생활’, ‘윌라는 달라달라’, ‘스테디셀러의 재발견’이다.
윌라의 2020년 상반기 오디오북 톱10 중 무려 5종이 재테크와 경제·경영 분야였다. 1위를 차지한 ‘부의 추월차선’, 2위 ‘부의 인문학’을 비롯해 ‘마흔의 돈 공부’, ‘언스크립티드’ 등의 경제·경영 오디오북이 상위권을 휩쓸었다. 올 상반기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에 따라 ‘위기를 기회로’ 극복하기 위해 돈과 관련된 오디오북에 많은 관심을 가진 것으로 분석된다.
상반기 클래스 콘텐츠에서도 이와 같은 트렌드가 발견됐다. 윌라 클래스 톱30에서 8종이 재테크와 경제·경영 콘텐츠로, 특히 코로나19의 영향으로 발생한 ‘동학개미운동’ 트렌드에 따라 ‘슬기로운 투자생활 : 주식·부동산’, ‘당신이 주목해야 할 2020 4대 전방산업’ 등 주식 관련 클래스가 인기를 얻었다.
상반기 오디오북 순위에서는 낯선 작품이 종종 눈에 띄었다. 9위 ‘확신은 어떻게 삶을 움직이는가’, 15위 ‘인간의 흑역사’, 19위 ‘익명의 소녀’ 등 인터넷 서점 종합 순위에서 보지 못했던 비교적 새로운 콘텐츠가 상위권에 자리 잡고 있었다. 이는 오디오북 콘텐츠가 기성 출판사나 작가 등의 영향을 상대적으로 적게 받으며 책 내용 외에도 낭독자의 낭독 스킬 등이 선호도에 반영된 것으로 분석된다.
클래스 콘텐츠는 코로나19 상황 속에서도 사회적 변화에 적응하는 자기 계발을 멈추지 않았다는 점이 눈에 띄었다. 상반기 클래스 순위 톱10에서 4종이 소통 관련 클래스로, ‘매력 있는 사람의 말, 대화의 기술’ 등 재택근무, 사회적 거리 두기 시행으로 비대면 활동이 증대되면서 커뮤니케이션에 대한 관심이 늘어났다. 또 ‘어디서도 알려주지 않은 어른들을 위한 공부법’, ‘인생을 획기적으로 바꿔줄 자기혁명, 몰입’ 등 코로나19로 힘든 상황 속에서도 일과 삶 전반에서 자기 계발을 꿈꾸는 모습이 발견됐다.
‘하버드 상위 1퍼센트의 비밀’, ‘일 잘하는 사람은 단순하게 합니다’ 등 대형 서점 베스트셀러 외에도 2008년 국내 출간된 ‘클루지’, 3년 전 출간된 ‘제4의 물결이 온다’와 ‘하루 3분 세계사’ 등 종이책 출간 시기가 꽤 오래된 콘텐츠도 오디오북으로 재출시되며 제2의 전성기를 맞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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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기사는 한경비즈니스 제 1283호(2020.06.27 ~ 2020.07.03) 기사입니다.]